맛없는 요리
에레체크
퇴고X
파티를 이틀 남긴 날.
수업 중간에 사라진 후, 하굣길에나 다시 나타난 체스터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함께 숲으로 가면서 레드가 뭘 숨기는 거냐고 캐물었지만, 체스터는 모두가 모이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주 들떠 보였다.
왕실 숲 깊은 곳에 들어서자, 미리 와있던 에이스가 둘을 반겼다. 그리고 잠시 후, 왕실 업무를 핑계로 나온 건지 메이드복 차림인 크로까지 도착했다.
원더랜드 파티 위원회 넷이 모두 모이자, 체스터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두꺼운 책을 내려놓았다.
“창고에서 찾았어.”
B ’S BETTER BAKING
워낙 낡은 책인지라 제목의 일부가 찢어지고 종이도 너덜너덜하며 색은 다 바랬지만, 분명한 요리책이다. 몇 페이지 넘겨보니 누군지 모를 전주인이 남겨둔 메모 몇 가지와 여러 레시피가 보인다. 왕궁을 뒤졌어도 못 찾았을 거 같은 책이라, 평소 같으면 한마디 했을 크로도 이번엔 조용했다.
“이걸 정말로 구했어?” 에이스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뜻이야?” 레드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보며 물었다.
“음,” 에이스가 말을 골랐다. “파티에 맛없는 피자만 있는 건 별로잖아.”
“그래서 생각했지.” 체스터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만들면 어떨까?”
체스터는 혹시 모를 가능성에 걸어본 과감하게 수업을 나가, 아무도 모르게 조금도 정리되지 않은 학교 창고에서 겨우 찾았다는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위험한 행동이야.” 크로가 비난했다.
“어쨌든, 잘 되었잖아?” 체스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넷은 책을 한가운데 펼쳐놓고 둥글게 앉았다.
컵케이크, 크루아상, 파운드케이크, 피낭시에, 까눌레… 먹어보지도 못한 디저트가 많다. 성에서 열리는 ‘파티가 아닌 파티’에 어릴 때부터 참가했던 레드나, 준비를 돕던 크로조차도 처음 보는 게 있었다.
“금지된 게 이렇게 많았다니.” 체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레시피가 필요한데, 괜찮은 게 안 보인다. 레드는 이 책의 저자가 원더랜드 신민인지, 오라돈 국민인지는 몰라도 분명 대단한 실력자일 거라고 예상했다. 제과는 살며 처음으로 해보는 넷이 시도해 보기엔 전부 난이도가 높다.
“이거 어때?” 책을 넘기던 에이스의 손이 멈췄다.
* 초코칩 쿠키 *
중력분 300g
버터 200g
설탕 150g
달걀 2알
초코칩 100g
…
확실히 다른 것에 비하면 간단해 보였다. 잘 섞어서, 잘 뭉친 후, 잘 구우면 된다. 뒷장을 조금 더 살펴보았지만, 훨씬 어려우면 어렵지, 쉬운 건 없어 보였다.
“좋아, 그럼 혹시 쿠키 구워본 적 있는 사람?” 답을 알면서도 레드가 물었다.
당연히 모두가 침묵했다.
“그럼 만드는 걸 본 적 있는 사람?” 레드가 다시 물었다.
여전히 모두가 침묵했다.
“그래, 첫 시도여도 잘할 수 있겠지.” 레드는 더 말하지 않았다.
“문제가 하나 더 있어.” 에이스가 말했다. 셋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빌 말로는 최근 설탕의 거래가 더 엄격해졌대. 설탕 없이도 쿠키를 구울 수 있을까?”
“안 되겠지.” 체스터가 중얼거렸다. 빌은 과감하게 저지를 줄 아는 남자지만, 평소엔 조심스럽다. 불확실한 일에 위험을 무릅쓰고 설탕을 나눠주진 않을 거다.
“…성에서 가져온다면?” 크로가 조용히 제안했다.
“가능해?” 레드가 물었다.
“성의 물건은 전부 아버지와 제가 관리하니까요.” 크로가 답했다. “많은 양은 안 되겠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로는 나머지 재료들도 주방에서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시간은 오늘 새벽 2시, 장소는 원더랜드 고등학교의 빈 조리실.
카드 병정을 피해 무사히 도착하길 빌며, 넷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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