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합작
디에고키아라
리스 하그리브스에 대해 말하자면, 걔는 눈에 띄지만 띄지 않는 애였다. 그게 뭔소리냐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랬다. 윈스테일 고등학교엔 충분히 성격 나쁜 애들이 많고, 관심이 고픈 애들도 널려 있다. 그러니 리스가 하는 짓 정도는 쉽게 묻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들이 못 떠올리느냐. 그건 아니다.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한 짓들을 걔보다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애는 없다. 대리과제부터 정학 당할지도 모르는 싸움까지, 어지간한 건 다. 매번 자신의 기억까지 모호하게 남는 게 문제지.
루네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네타가 리스와 대화하는 일은 손에 꼽힌다. 어릴 때야 리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병원을 다녀서 친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리스는 살짝 겉도는 편이고, 루네타가 친구관계를 유지하려 해도 리스 쪽에서 뒷걸음질 친다. 일방적인 관계는 지친다. 그러니 끊어야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루네타는 도움이 필요했다. 사고 친 것을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집에 빨리 돌아가는 애는 아니니까 분명 아직 학교에 있을 텐데 왜 안 보이지. 한참 학교를 헤매며 기어이 성질이 올라 괜히 벽까지 걷어찬 후에야,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복도 끝에서 다른 애와 시시덕거리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이 루네타의 눈에 들어왔다.
“리스!”
뒤에서 훅 들어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리스가 움찔하며 뒤를 돌았다. 교사가 아니라 루네타인걸 확인하고 안도한 듯 숨을 골랐지만, 이내 루네타라는 사실에 다시 당황한 시선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나 불렀어? 정말로? 갈색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너 말고 누구 있니?”
하긴 그렇네… 성큼 다가와 쏘아붙이는 루네타의 말에 리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루네타의 눈짓에 리스는 순순히 옆에 있던 애한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돌려보냈다. 루네타는 그대로 리스의 손목을 잡고 가까이 있는 잘 쓰지 않는 과학실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루네타가 안 좋아한다는 걸 기억해낸 리스가 먼지 쌓인 책상을 대충 한번 쓸어내고 폴짝 올라앉아 높이를 맞췄다. 맑은 연녹색 눈동자가 매서워 곧장 시선을 떨구긴 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말을 고르는가 싶던 루네타가 말했다.
“…오늘 교장실 엎은 거 나야.”
“뭐?”
“내가 교장실 엎었어.”
리스는 멍청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아침의 소란이 기억난다. 누군가 교장실에서 상을 전부 깨트리고 노란색 페인트를 들이부운 탓에 난리가 났지. 교장은 범인을 잡아서 퇴학시킬 거라고 불같이 화를 냈고. 전적이 있다 보니 교장이 의심하는 리스트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올라있는 걸 리스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누가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는 색이 아니다. 루네타의 손톱 끝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미친 거 아냐?!”
“미쳤지! 너도 알잖아!”
흥분한 리스의 목소리에 루네타가 맞받아치듯 목소리를 올렸다.
“다 나은 거 아니었어?”
“빌어먹을 우리 오빠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자신이 말하고도 뭔가 아니었는지 루네타가 빠르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그 놈이랑 네가 닮았다는 뜻은 아니야. 알지?”
“알지….”
별 생각 없던 것에 루네타가 저렇게 덧붙이니 그게 오히려 더 기분이 이상했지만, 리스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더는 의뢰를…”
“선금은 얼마야? 전보다 올랐어?”
루네타는 망설이지 않고 클러치에서 지갑을 꺼냈다. 200달러면 충분해? 벤저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절로 시선을 끈다. 내가 우리 엄마 아들이긴 하구나. 리스는 이럴 때마다 느낀다. 의심이 하도 많이 닿아서 한동안 의뢰를 안 받는다고 말하려던 것이 프랭클린의 얼굴 앞에 무너진다. 왜 돈은 있어도 있어도 더 갖고 싶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선금만으로 200을 받은 적은 없지만, 주는 돈에 아니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루네타한테 저 정도 돈은 별것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떨리는 손끝으로 잡은 두 장을 주머니 속으로 말아 넣고 물었다.
“되짚기는 언제 할래?”
“오늘. 괜히 시간 끌어봤자 좋을 거 없잖아?”
“그렇긴 한데…”
루네타의 말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 조금만 어긋나도 어디서부터 무너질지 모르는 게 최면이다. 그래도 기억이 선명할 때 빠르게 되짚어서 고쳐야 하는 부분을 찾는 게 좋다. 교내 대부분에게 키워드가 있으니 최면을 거는 데에도 시간이 별로 안 걸린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무뎌지는 게 기억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뚫기 어렵다. 이미 바닥을 치는 학교 평판을 여기서 더 떨어트리지 않고 싶어서인지 켕기는 게 있는 건지, 교장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유일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경찰이 오면 못 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리스 하그리브스는 양심이란 게 있다.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면 그 순간 더는 손이 못 움직인다.
“네 집이 학교에서 멀던가.”
“우리 집?”
“응. 달리 있어?”
“너희 집으로 가면 안 되지?”
“오빠가 네 얼굴 또 보이면 죽인다고 한 거 아직 유효할 텐데.”
“그치, 그렇겠지, 그렇지.”
루네타보다 이성적일 뿐이지 성격은 한참 전에 지옥불에 떨어지고도 남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단 한 번도 집으로 누굴 데려간 적이 없다. 미루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이미 주머니 속에 들어간 돈을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가격을 알면서 200을 던지는 것만 봐도 뭔가 더 사고 친 게 있는 거다.
오늘… 오늘 집에 누가 있던가. 리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디 내놓아서 부끄러운 가족은 아닌데 그렇다고 보이고 싶은 가족도 아니다. 일단 설명하기가 귀찮다. 하나도 안 닮은 8명을 두고 그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면서도 머리들을 굴리는 게 뻔히 보인다. 귀찮기 짝이 없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대해 파고들면 더 귀찮아지는데, 그건 뭐 그래도 지금 세대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괜찮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러고 다니는 걸 집에서 알아봤자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화는 안 낼 거다. 다만 비꼬겠지. 뻔하다.
“그래, 뭐 별 일 있겠어.”
“당연히 별 일 없겠지. 집에 괴물이라도 숨겨둔 것처럼 말하네.”
루네타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리스가 떨떠름하게 웃었다. 괴물이라면 괴물이지.
“몇 시에 올 거야?”
“지금 갈 건데?”
루네타가 오토바이 키를 꺼내 흔들었다. 리스가 그것에 사색이 되든 말든, 루네타는 조금도 상관없는 태도였다.
멈추자마자 토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다. 메슥거리는 속을 붙잡느라 고생했다. 분명 타는 동안은 괜찮았는데 내리니까 세상이 흔들린다. 면허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처음이야?”
“…우리집에선 오토바이 타면 죽어.”
루네타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듣고 웃었지만 농담이 아니다. 클라우스 삼촌이 어디서 얻어온 건지 모를 오토바이를 엄마가 깨부수는 걸 똑똑하게 본 적이 있다. 아마 뒤에 얻어 탄 것도 걸리면 혼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좋았지?”
“…조금.”
다행히도 집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왔는지 몰라서 안 내려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안 보이니까 된 거다. 뭔가 싸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너네집 되게 크다.”
“방만 40개가 넘거든.”
“그건 좀 이상하네.”
“할아버지 취향이야.”
“멋진 취향이시네.”
두리번거리는 루네타의 손목을 익숙하게 잡고 저택을 걸어 올라갔다. 가끔 꼭 가만히 따라오지 못하고 다른 데로 새는 애들이 있어서 생긴 버릇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도 손길이 닿지 못해 먼지가 남았거나 빛이 안 들어오는 곳이 보여, 루네타도 더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방은 아침에 나갔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책꽂이도 책상도 침대도 전부 제자리에 있고, 아침에 늦어서 닫지 못하고 나간 창문도 그대로 열려있다.
“잠깐만 있어. 주스라도 가져올게.”
“없어도 괜찮아.”
“내가 안 돼.”
“그럼 나는 핫초코로 줘.”
“그래. 마시멜로도 넣어서 가져다줄게.”
역시 그럼 그렇지. 집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보인 모습에 리스는 절로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뭔가 싸한 게 착각일 수 없다. 그래도 한 명만 있는 게 어디야? 그 한 명이 엄마라는 게 좀 문제지만. 어디 약속이라도 있는지 일하던 때와 비슷하게 단정한 모양새였다.
“여자친구?”
“아뇨, 그냥 같이 과제할 게 있어서요.”
키아라가 커피를 홀짝이며 묻는 것에 리스는 태연한 척 답했다. 딱히 믿는 눈치가 아니지만, 리스는 어물쩍 웃으면서 넘기려 했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핫초코 믹스에 초콜릿, 우유까지 머그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도 계속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평소라면 뭐라고 더 물어볼 엄마가 저러고 있으니 괜히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 설마 기억하고 있나? 아니지, 그럴 리가. 억측이다. 그런 리스를 쳐다보다가 키아라가 입을 열었다. 그마저도 리스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질문이다.
“아들, 오늘 너희아빠랑 밖에서 저녁 먹을 건데 같이 나갈래?”
눈을 안 마주쳐도 엄마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목소리부터 신난 게 티 났다. 당연하지만 자기 남편과 데이트할 예정이라 신난 목소리가 아니다. 저건 새로 재밌는 게 생겨서 신난 거다. 아빠라면 몰라도 엄마는 셋이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이러는 것 정도는 익숙해서 리스는 이대로 계속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괜찮아요. 좀 늦게 끝날 거 같아서, 두 분만 다녀오세요.”
전자레인지에서 나온 핫초코를 빠르게 휘젓고, 찬장에서 조금 씁쓸하게 구워졌던 월넛쿠키도 꺼내 접시에 올렸다. 딱 키아라가 상담에 보통 가져다놓는 구성과 비슷했다. 리스도 그걸 눈치 챘는지 잠깐 손이 멈췄다가 이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접시를 들고 나가려 했다. 접시를 빤히 보던 키아라가 의자를 돌려 앉았다.
“…리스 하그리브스.”
순식간에 가라앉은 목소리에 리스가 놀라 뒤를 돌았다. 키아라가 의문과 불안이 잔뜩 담긴 리스의 갈색 눈에 맞춰 웃었다. 또 속니? 자신과 너무할 정도로 닮은 갈색 눈이 리스에게 말했다. 머릿속을 헤집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이제 사생활을 지켜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가져가는 구성이 꼭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잖니. 엉엉 울 때는 언제고 벌써 능력을 그렇게 써?”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리스가 볼멘소리를 냈다. 통제가 안 되는 걸 감당 못해서 울 때도 있긴 했다. 벌써 5년은 더 된 얘기다. 지금은 아무런 문제없다. 특정 키워드만으로 딱 1회성으로 이용하는 데에 익숙하다. 책장 사이 앨범들이 그 증거가 되어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단해진 것도 아니라서 엄마처럼 남의 생각을 멋대로 읽는 건 못하지만. 그거까지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왜? 여자친구가 널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
“…여자친구 아니라고요.”
“그래, 아직은 아니라고 하자.”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요.”
마치 뭔가 본 사람처럼 웃는 것에 리스가 단언했다.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빨랐다. 키아라는 더 뭐라 하려던 걸 그만뒀다. 화났나? 확실히 사생활이란 게 필요할 나이긴 한가. 그런 게 없이 자라서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여간 정말 우리의 아버지 레지널드 경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그레이스가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디에고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남았다. 이 저택은 북적거릴 때는 한없이 북적거리면서, 조용할 때는 한없이 조용하다. 버릇처럼 벤의 이름을 불러보려던 입이 멈췄다. 아니지, 안 돼. 이건 그만두기로 했지. 키아라는 커피를 한 잔 더 내렸다. 진동 소리와 함께 컵에 쏟아지는 커피를 보며 다시 되짚는다. 걔는 어떻게 제 아빠랑 저런 거까지 똑같지.
“글쎄. 리스는 널 닮았지.”
갑자기 떠올랐는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키아라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자, 운전을 하면서도 제대로 듣고 있던 디에고가 그런 답을 했다.
“생긴 거야 날 닮았지. 모르는 사람도 리스를 보면 내 아들인 걸 한 번에 알아챌 걸.”
진저헤어에 갈색 눈을 제외하더라도 척 보면 모자구나 할 수 있게 닮았다. 모종의 이유로 능력까지도 똑같은 걸 갖고 있고. 그래서 한참 피할 때도 있었다. 리스와 친한 사람을 말하라면 둘 중엔 디에고였고, 다른 형제들까지 합하자면 클라우스였다. 기른 사람과 친한 게 당연하니까, 딱히 그런 거에 불만이 있진 않았다.
“그런데 하는 짓은 널 닮았다니까.”
“걔가 저번 달에 학교에서 정학 받았는데도?”
“너는 경찰학교에서 쫓겨났잖아.”
장난스럽게 웃는 디에고에게 키아라가 쏘아붙였다. 성질머리를 못 참는 게 어디 자기 혼자인가. 물론 한 번씩 전부 그만두는 건 자신을 닮은 것 같지만, 불같은 건 디에고를 닮은 거다. 아니 어쩌면 눈도 디에고를 닮은 걸 수도 있다. 갈색 눈을 가진 건 디에고도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리스가 나랑 어디가 닮았어?”
주차하고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디에고가 키아라를 보며 물었다. 디에고가 아는 리스는 꼭 키아라와 닮아서 남의 머리 위에 서는 걸 좋아하고, 키아라처럼 보석은 아니지만 지폐에 눈을 빛낸다. 가끔 생각도 못한 짓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보다는 확실히 키아라를 닮은 애였다. 질문에 키아라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핸들에서 떨어진 디에고의 손을 잡았다.
“손을 이렇게 잡더라고.”
아니, 정확히는 손목을 잡았다.
“이게 왜?”
“너도 처음에 이랬잖아. 내가 자꾸 헤매니까 와서 손목을 잡았지.”
열세 살 때를 떠올리며 키아라가 말을 이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은 눈치의 디에고 때문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집이 뭐이렇게 크냐고 말하니까 쓸데없이 화장실만 10개가 넘는다는 소리를 하던 디에고를 기억한다.
“왜 그렇게 잡는 건가 싶어서 내가 고쳐 잡으니까 놀라서 화냈지.”
“이렇게?”
“그래, 그렇게.”
키아라가 손가락을 옮기기 전에 그 말에 따라 디에고가 자연스레 손을 움직여 맞잡았다. 반사적으로 손끝이 움찔거렸다. 여전히 이놈의 다정함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걸 알아챘는지 더 단단하게 잡아오는 손을 찰싹 때릴까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싫은 건 아니니까.
“그 여자애를 위해서 사고 칠 계획까지 하고 있더라고. 해봤자 우리보다 더하겠냐 싶지만, 조만간 학교에 갈 일이 생길 것 같고… 왜 그렇게 봐?”
내가 지금 잘못 말한 게 있나? 조용해진 디에고 때문에 키아라가 버릇처럼 눈을 굴렸다. 시끄러워질 얘기는 뺐는데.
“너 또 애 생각 읽었어?”
“…일부러 읽은 거 아니야.”
키아라가 변명했다. 이런 문제엔 따지면 피해자 입장에 있는 리스보다도 디에고가 더 예민했다. 뭐가 이유인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렵다. 자기한테만 안 쓰면 된 거 아니야? 제대로 된 해명을 하자면 리스가 학교에서 사고치는 것 말고 다른 짓도 하는 거 같다는 얘기까지 꺼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최악이네. 평소라면 걔도 별 말 안 하는데 왜 네가 그러냐고, 역으로 성질내겠지만 그럴 기분도 아니다. 적당히 말 돌릴 것 없나. 뭐라고 하는 디에고를 앞에 두고 듣고 있는 척 움직이던 시선이 자동차 창 너머 저택 앞에 닿았다.
“리스?”
저택 앞에 서있는 자신과 꼭 닮은 아들의 이름이 입 밖에 나왔다. 디에고도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성공이다. 키아라는 디에고 어깨 가까이 고개를 붙였다. 오토바이? 키아라가 중얼거리는 게 디에고의 귀에도 들렸다. 디에고는 저도 모르게 잡고 있던 키아라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뛰쳐나가서 소리 지르지 않게. 제발. 일주일에 몇 건씩 도착하는 오토바이 사고 환자에 키아라가 얼마나 진저리나있는지 잘 안다.
“잠깐, 키아라, 진정하고… 그 친구거일 수도 있잖아.”
골목 쪽에 세워뒀던 건지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 쪽은 리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디에고는 달래려는 듯 말했다. 봐, 아니잖아. 그렇네. 잘가라는 인사를 하는듯한 모습에 키아라도 자기가 타는 건 아닌가 안도할 뻔했다. 할 뻔했다. 직후 뒤에 타는 모습만 안 봤으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하는 건 누굴 닮은 거지. 둘 다겠지… 막연해진 와중에 디에고의 머릿속에서 그런 결론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저 엄마와 포고에게만 조금 미안해졌다. 그것보단 지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게 싸늘해진 키아라의 눈치를 보는 게 먼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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