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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溫할 용기에 관하여

에스마일>힐데가르트

트리거/소재 주의: 사망, 폭력, 고문 등의 서술. 미성년자의 살해 언급. 정신적 불안정함. 압박감이 들 수 있는 발화. 상대에 대한 자신 위주의 단정?


1.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죠.

당신은 기사단에 소속되기를 거부합니다. 그 자체는 사실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기사단이 그렇게 마법 세계의 모두가 당연히 지지할 만한 집단인가요? 완벽하게 이상적인가요? 저는 이상은커녕 솔직히 중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창립자 아투르 아스테르부터가 생전 그가 일하는 방식에 관해 무수한 비판을 들었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제자들을 이용한다는 것이었고요. 저는 그 비난 중 다수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금은, 기사단이 그저 오러국의 하위 조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수군거림이 있습니다. 이 또한…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이 다른,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더 나은 방식으로 싸우는 다른 사람들을 만들거나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까? 혹은 이도 저도 아니어도 좋으니 눈앞의 저에게 당신의 투쟁을 함께하자고, 저의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손을 내밀고 있나요?

(말해 두자면 저는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세상에 기여하고 대의에 투신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제 동료”가 되기 위해서는, 저에게는 그것이 마땅하다고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물으셨으니까, 저는 대답해 드릴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그중 어느 것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외람된 말씀이겠으나, 힐데, 당신은 근본적으로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몇 년간 그 논문을 썼고, 그것을 공개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보호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누구도 그 논문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당신의 집 위에 어둠의 표식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지만(내가 수백 번 그것을 상상하며 악몽을 꿨듯이) 그건 당신이 6학년 때 당한 “사고”처럼 운에 가까웠어요. 만약 당신이 싸우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철저히 혼자 싸웁니다. …만약 당신이 동료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싸우는 당신을, 당신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들이 취해졌겠죠. 늘 성공하지는 않지만, 사실 실패할 때가 잦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지키려고 애써요. 수년 간 쌓인 암호와 주문과 안전가옥 같은 것으로…. 하지만 당신은 그걸 원하지 않죠. 안 그래요?

2.

왜일까요? 당신은 왜 혼자를 원할까요. 왜일지 제가 한번 먼저 추측해 보겠습니다. (저는 늘 주제넘었죠.) 왜냐하면, 혼자가 아니게 되는 건 아주 불온하고도 정치적인 행위잖아요. 어떤 신념에 소속된다는 것은 곧 또다른 신념을 배척한다는 것이고, 그 신념을 현세에 이뤄내고 있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 개인들입니다. 당신이 기사단원이 될 경우, 당신은 단지 그 얄팍하면서도 함축적인 사실만으로 누군가의 적이 되겠죠. 누군가 당신의 상냥함을 경계할 것이고, 당신의 경청을 불신하겠죠. 그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헨 홉킨스와, 쥘 린드버그와, 핀갈 모레이와 그리고 아주 무수한 이들과 이전과 같은 친밀함을 가지기는 어렵겠죠….

실은 당신은 그것이 가장 두렵지 않습니까?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이요. 모두를 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저는 언젠가 당신에게 한 번이라도 저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 줄 수 없냐고 투정부렸고 그건 제 동생이 죽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의 책임일지,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헤아려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이 누르를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그 아이가 그저 불운한 사고로 죽은 것은 아니었잖아요….

이 시대가, 이 전쟁이 우리 모두에게 잔인하다는 말은 분명 어떠한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죽음을 먹는 자가, 그리고 거기에 소속된 우리의 친구이자 어쩌면 소중한 이였던 사람들이(줄리아 라이네케가 핀갈 모레이가 카일 클락이 —— ——가) 저주를 쏘았고 그것이 잔인했다는 말을 잊어버리기 위해 쓰인다면 그저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일 뿐입니다.

연대라는 건, 동지라는 건, 무언가 다른 거에요. 모든 이들의 죽음이 같은 무게의 슬픔을 가지더라도 그것을 애도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친구가 죽는다면 우리는 그를 추억하며 슬퍼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동료라는 건… 너무 많이 죽잖아요. 너무 많이, 너무 많이 고통받고. 너무 많이… …. 그래서 동료가 죽으면 저는 울지 않습니다. (거짓말이다. 그는 지금도 울고 있다.)

…저에게 동료가 된다는 건, 제가 배운 것은, 아무리 세실 브라이언트가 저한테 크루시오를 쏘고,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가 로신을… 로신 오하라를 죽이고 재판정에 서도, 그래도 저 하염없이 멍청한 얼간이들이 내 동료고 동료였다. 저렇게 비참하게 매달리고 피를 흘리고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고 짓밟히고 애걸하고 엉엉 울다가 기절하고 산산조각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그 모든 와중에 서로 반목하기까지 해대는 오합지졸이 내 한패다. 내가 아이작 윈필드고 댄 브라이언트고 베서니 스트릭랜드고 기디언 맥스웰이고 데보라 사라 펠로시고 로신 오하라고 제인 머레리아고 미스 버트랜드고 심지어는 아투르 아스테르다. 그러니 나를 마저 쏠 때까지 그들은 죽지 않는다. 그렇게 악을 쓸 수 있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불사조 기사단입니다. 저는 모든 죽음을 먹는 자들의 적이고. 저는……. (고개를 떨어트린다.)

3.

…그러니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사랑으로 산다고 답하는 자들이 있고, 신념으로 산다고 답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내 사랑이 내 신념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그들이 죽었을 때 우리가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은 결국 애틋했던 친구가 아니고, 사랑스러웠던 자식이 아니며, 다정했던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건 대체될 수 없는 개인의 영역이니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저 또 하나의 투사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었던 신념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당신은 에스마일 이브라힘 시프로 살아갈 자신이 있습니까? 정말로? 저는 힐데가르트 에버그린 마치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세상이 나와 같았으리라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걷는 길에 확신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에 그만큼의 확신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힐데. 저의 벗. 저의 자매. 저를 지켜주던 사람…. 저는 당신을 아주 아끼고,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을 더는 원망하지도 질투하지도 않아요. 다만 당신의 죽음이 두렵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을 슬퍼해야 할 테니까. 이제 더 슬퍼할 마음이, 묻을 공간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당신이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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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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