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과 붉은 양귀비
에스마일>루드비크
트리거/소재 주의: 고문, 폭력 등의 간접적 묘사, 살해, 전쟁, 폭력 등에 대한 언급, 자살사고 및 정신적 불안정함
전반적으로 무거운 소재의 로그입니다. 열람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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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er allows no choice
To the citizen or the police:
We must love another or die
-W. H. Auden, <September, 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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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love is six feet under
I can‘t help but wonder
If our grave was watered by the rain
Would roses bloom
Could roses bloom
Again
-Bilie Eilish, <Six Feet Under>
출처: Unsplash, Marten Bj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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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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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라고 한 거지?…. (전쟁이 민간인과 방관자와 변절자들의 눈에도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한 첫날 밤. 런던 구석의 어두운 골목 안, 당신은 얼굴에 역광이 진 채 무릎을 꿇는다. 손과 마법에 붙들려 바닥에 짓눌린 그의 눈에는 여전히 당신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너는 죽음이 두렵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아까 왜 고개를 저었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 저 사람들은 뭘 얻고자 널 죽이려고 하지? 너는 왜 아직 기사단에 있지? 에스마일, 무엇을 위해 칼을 들고 목숨을 바쳐? 파니 로즈워드를 죽이겠다고 했을 땐 동행하자던 너는, 내가 로신을… 그 앨 죽였을 땐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었어?… (그리고 결국엔 개인적인.) 날 그렇게나 괴롭게 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자로 살았으면서 지금은 왜 남자 모습인 거야… ….
대답해… 에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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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끊임없이 묻는다. 아마도 당신 스스로가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즈카반이 당신의 이유를 앗아갔거나, 혹은 그 한참 전부터 당신이 이미 그것을 잊어가고 있었으며 다만 아즈카반은 그것을 깨닫게 했기 때문에. 에스마일이 몇 년 전 힐데가르트에게 말했듯, 사람은 풀꽃과 달라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오래 살지 못한다. 힐데가르트는 그것이 부조리하다고, 왜 그냥 살 수는 없는 거냐고 답변했으나 당신은 사실 그보다는 에스마일과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닌가. 세상에 불합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그것은 때로 쥘 린드버그의 용납과 닮았으나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당당히 무지갯빛 끈을 손목에 감고 세상에게 덤빌 테면 덤비라고 외치는 대신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 그러므로 그는 깨닫는다: 이 질문은 익사하는 이의 마지막 허우적거림 같은 것이다. 그러니 그에 마땅한 무게를 갖고 답하려 한다.
답하려 했으나,
“…질문이 좀 기네요, 그렇죠? 우선 당신에게 가라고 한 건, 당연히도 여기 이 친구들이 저만큼은 아니지만 당신도 가만히 둘 것 같지 않아서-”
“이 친구들”이라고 빈정거리며 칭한 것이 문제였는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저 유희를 위해서인지, 그의 말이 비명으로 끊긴다. 그 후에는 기만적인 사과와 함께 계속 말해 보라고 종용한다. 더듬거리며 답변의 끊어졌던 곳을 찾아 이으려 하다 질문조차 잊은 채 숨을 헐떡이는 것이 몇 번 반복되고, 에스마일 시프는 눈을 짧게 감았다 뜬다.
“아, xx.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그는 지팡이를 쥐었다. 결론적으로 당신은 그날 답변을 듣지 못했다. 에스마일의 분노는 그가 드물게 욕설을 내뱉게 하고 사실상 홀로 네 명을 처리하게 해 주는 데까지는 조력하나 그러면서 당신의 안위에 더해 본인의 안위까지 보전할 수 있게 해 주지는 않아서, 한쪽이 과다출혈로 쓰러지기 직전인 채로 대화를 잇는 건 두 사람 다 (아마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변절자여서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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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실 브라이언트는 말했다. 살인으로 나는 처형을 집행한다. 죽음은 용서가 아닌 징벌이다. 멜로디 실버하트는 답했다. 하지만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카일 클라크는 대꾸했다. 그러나 권태보다는 나은 고통이었다. 줄리아 라이네케는 답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답했고, 엔야 헤이즈는 다만 당신을 동정했으며, 핀갈 모레이인면어는 내뱉었다. 싸움은 그저 존재의 양식이다. 승패가 나뉘는 것은 순리이다. 살아내야 하는 것을 설명하려 들지 말라고 했다. 그웬돌린 네버랜드는 이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반문했다.
그렇다면 에스마일 이브라힘 시프는? 그는 왜, 죽음의 외곽도 아닌 가장 한가운데를 걸으며 뒤돌지 않는가.
그리고 당신은 왜, 그 공간을 벗어났으면서 여전히 죽음을 검지손가락에 걸고 사는가.
1. 에스마일: 수용
그거 아세요, 루드비크?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어느 머글 학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죽음을 맞닥뜨리고 보이는 반응에는 다섯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수용이라고요. 저는… 제가 지난 가을부터 뭘 하고 다녔는지 아십니까? 사람을 죽였어요. 처음으로.
…….1980년 11월 5일. 영국 전역에서 국회의사당의 폭파 시도를 기념하며 폭죽이 울려퍼질 때. 성 뭉고 병원에서 퇴원한 지도 어느덧 몇 달이 지난 그는 저주가 걸린 장신구가 수신인에게 잘 배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 죽은 이는 베아트리스 클레마티스, 프러드 허니컷의 멀지 않은 친척이었고, 그 죄목은 누르 시프가 죽을 때 그 공간에 존재해 지켜보았다는 이유로(생각보다 공간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현실의 모든 일은 결국 물리적 시공간을 바탕으로 일어나므로. 이 말을 기억해 두어도 좋겠다.), 그가 조카와 동갑인 에스마일과 수많은 그 또래들을 창문틀에 낀 벌레보다 못하게 취급했고 아마도 조카에게도 비슷하게 굴었다는 것은 부수적 사유에 불과했다. 그 일은 완벽하게 사고로 보였다. 그리고 에스마일은 이해했다. 사람이 어찌하여 살인자가 되는지. 그리고 또한 이해했다. 목록의 모든 이름을 처리하고 나면, 그의 마지막 살인은 스스로가 될 것이라고.
1. 루드비크: 부정
첫 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바버라- 파니 로즈워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당신은 단 한 명의 폴란드 소년의 부서진 유년 시절에 대한 복수를 위해 지팡이를 든다. 그리고 그것을 인민의 정당한 복수라고 말한다. 내가 당신 최악의 과오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소리나게 간다. 에스마일은 로즈워드 교수에게… 아무런 사감이 없다. 그가 기억할 죽은 제자들의 이름에 에스마일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었고, 그에게 로즈워드는 스승이나 은사보다는 그에게 총을 겨누었던 정착민 또는 홉킨스 교수를 닮아 있었으므로. 에스마일은 변신술 시간에 의도적으로 “과분한” 능력을 과시하며 사고를 치고 로즈워드는 조금 편파적인 징계와 성적표만으로 답한다. 처음부터 신뢰가 없었으니 무너질 것도 없는 하나의 관계에 대한 사례이다. 실망도 증오도 배신감도 없는. 그러나 그는 당신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 살업이 (가능하다면 양측에게) 조금 덜 잔인했으면 하는 마음이고, 그는 당신을 실은 자신만큼이나 연약하다 여겼기 때문이며, 어찌되었든 그는 당신을 동료로 여긴다. 당신은 그것을 거부한다.
2. 에스마일: 우울
끝에서 두 번째 단계는 깊은 우울로, 두 번째 살인은 조력자가 있어 첫 번째보다 원활했으나 더 쉽지는 않았다. 클라이드 로즈웰. 유진과 모르간 로즈웰의 자상한 아버지이자 (비록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였으나) 마거릿 로즈웰의 금슬 좋은 남편. 모르가나 가민의 부하는 아닌 협력자. 열한 살, 급행열차에서 유진을 만났을 때 유진 클라이드 로즈웰은 에스마일 이브라힘 시프의 이름이 조상을 중요시하는 좋은 풍습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머글 이브라힘이 마법사 클라이드를 만난다면 마땅한 예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의심 없이 답했다. 에스마일은 그 순진함이 순간 고통스러웠고, 유진의 멱을 틀어쥐었고 당황하는 그에게 왜 웃지 않느냐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 또한 웃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저택에는 아직 트리가 세워져 있고 선물 포장지가 몇 개 널려 있었다. 드물게 조금이나마 흐트러진 모습으로, 클라이드 로즈웰은 잠옷을 입은 채로, 고통이 거의 없이 생을 마감했으나 고용인의 모습을 한 에스마일을 보며 자신의 가족에 대해 자꾸만 이야기했고, 에스마일은 자신의 아버지를-어머니와 누르와 그리고 높은 확률로 곧 자신까지 잃고 다니아를 기숙 학교에 보낸 채 혼자 남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의 손을 잡았듯 그는 눈물을 떨어트렸으나 결국 늙은 왕의 머리는 신전의 문간에서 깨어졌다. 에스마일은 프러드의 곁에서 새해가 올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뺨이 헬쓱한 채로 명부의 첫 줄을 지웠다. (당신의 돈을 후원받아 퀴디치 빗자루를 샀고 당신의 지하실에서 죽은 여동생을 생각했다.)
2. 루드비크: 분노
두 번째 단계는 분노이다. (하지만 어떤 분노는 슬픔에서 온다.) 로신 오하라의 죽음은 무엇보다 그 허망함으로 인해 충격적이었다. 어찌됐든 불사조 기사단이든, 죽음을 먹는 자든, 아주 미약하게나마, 상대에게 죽는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이미 합의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80년 4월 일어난 것은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이었으나, 그곳에 “민간인”은 없었기에 당사자들조차도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할 뿐 그것이 사감이 아닌 신념의 충돌이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아마도 그래서, 레아 윈필드는 수많은 제물을 태웠으나 그 향으로 허기를 채우지 못했다. 죽음과 고통이 일어나지만 레아 윈필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부조리를 느끼지 못하는 현상現狀은 그대로였다. 다만 그 일이 대규모로 일어났다는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었으므로.)
하지만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는 깨달아 버린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그것이 이데아의 차원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제까지 다른 이와 웃고 떠들고 대화하던 사람이 눈에 빛이 꺼지고 영원히 침묵하게 되는 것은 모두 손끝에서 일어난다. 확신과 신념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그것이 살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며, 본인이 부여하던 의미를 잃었고 분노 외에는 어떤 동기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그 이전의 모든 살인조차 더는 자랑스럽지 못했다. 피는 그냥 피. 흙은 그냥 흙. 죽음은 그냥 죽음…. 에스마일은 루드비크를 과소평가(혹은 과대평가)했고, 잘못된 조언을 했고 그래서 로신 오하라는 죽음을-자신과 상대의 죽음 모두를-결의하지 않은 채 결투에 임했다. 그래서 그것은 단순히 말하면 살해조차도 되지 못한 비극적인 사고였다. 통제하지 못한 분노와 현명하지 못한 판단으로 일어난.
3. 타협
결국 타협해야 할 때가 있다. 거울이 우리의 모습을 좌우로 반전해 비춘다면, 어쩌면 중앙에는 온전히 진실만을 담는 아주 얇은 선이 있을 것이다. 순진함과 구제불능함 사이에는 가는 선이 있고, 그 선 위에 균형을 잡고 서서 나는 당신을 동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은 전부 불완전하니까, 우리가 둘 다 영국을 증오할 이유가 있다는 것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으나.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이들을 두려워하며 숨쉬듯이 자주 죽음을 생각하고, 붙잡고 버틸 것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당신을 나는 멋대로 동류라고 여겼다. 화장실에서 구토하다 울고 있는 당신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 한참 전부터 그랬다. 마음속이 이미 폐허라서 전쟁이 아닌 평화가 더 불안했던 당신을, 당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냥 지켜보지 말 걸 그랬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조금 더 안전할 것이라고, 순응하고 타협하지 말 걸 그랬다. 당신이 에스마일 시프의 가장 큰 과오는 아닐지 모르나 그 순간에는, 그 비슷한 것은 된다.
4. 에스마일: 분노
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번째 단계는 분노이다. 하지만 어떤 분노는 슬픔에서 온다. 위글 딜루티가 말했든 마음의 약함은 미움이 될 가능성을 가지며, 사실 어느 한구석이 약하지 않다면,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지 않다면 누군가와 싸울 이유도 그다지 없을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무언가, 뭔가라도 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버티지 못하게 하는 슬픔이 있다. 복수는 애도의 피비린내나는 서자이고, 그래서 장송곡처럼 죽은 이에게는 닿지 않으나 산 자를 계속 살게 할 때가 있다.
당신은 그에게 왜 계속 불사조 기사단을 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당신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물었다. (어떻게 그 꼴을 당하고 이딴 곳에 또 기어들어오냐고) 그는 무르고, 나약하고, 겁이 많고,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순혈주의와 죽음을 먹는 자에 맞서 투쟁하고 싶다면 사실 또다른 방법을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며. 그곳은 이상과 거리가 멀고 심지어는 최선과도 거리가 있으며 그에게는 최악의 기억들을 상기시키는데도… 하지만 에스마일 시프는 불사조 기사단 활동의 일환으로, 동생을 죽인 이들의 입을 벌리고 그들이 토할 때까지 죽음을 먹이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일환으로 기사단을 계속 하는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것은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닌 목숨을 잇는 것이며, 의식의 한 부분에서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곳에만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겪었던 생존자들이 존재하며, 그리하여 모든 질식할 것 같은 트라우마와 강박적인 버릇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이 숨쉬듯 자연스러운 수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주객이 전도되듯 그는 더 이상 남은 명단을 찾아내 죽일 여력도 자신도 없다. 사실 어차피 전투하다 보면 남은 후보 셋 중 하나 정도는 우연찮게 죽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최근 깨달은 것은 그는 살인에 조금 지쳤고, 당신이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
4. 루드비크: 우울
죽음을 받아들이는 네 번째 단계는… …. 어떤 우울은 분노가 되지만 어떤 우울은 그러지 못한다. 당신이 아즈카반에서 보내고 있을 일 년을 그는 이따금 생각했다. 사형과 무죄 방면의 타협점이라기엔 아즈카반은 완전히 그 축을 벗어나는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다. 디멘터와 축축한 폭풍과 끝없는 고독은 말그대로 모든 삶의 의미를 앗아간다. 사람이 사랑으로 살든 신념으로 살든, 인간이라면 결국 신념을 실현하며 기쁨과 충족감을 느낄 것이고 그것이 지워진다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당신이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결국 끝까지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지 못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생긴다면, 그것이 당신을 동시에 두렵게 하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 당신이 믿음을 찾는다면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을 믿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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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은 전부 죽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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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스마일: 부정
“…… 그러니까, 싫지 않아요. 당신이 돌아다니는 것 말이에요. 오히려 당신이 더 돌아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가 본 곳이 많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 영국 마법 세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사실 오래 전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 당신이 살고 싶어지는 이유를 계속 찾으세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사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것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냥 낮에는 식사를 하고, 밤에는 잠을 자고, 어쩌면 생각이 맞는 마법사나 머글 친구를 사귀고, 그리고 아주 어쩌면 좋은 남자를 만나서 이번에는 그렇게 두렵거나 슬프지 않은 사랑을 하고-저는 헬렌을 조금 편파적으로 좋아하지만 역시 당신의 동반자로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의문을 멈추지 말되, 새로이 얻은 답변으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완벽하지 못했다고 해도 후회하지는 마세요.
저는…. 저는 당신이 살기를 바랐습니다. 천천히 죽어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당신의 미래에 제가 얼마나 간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 당신이 살고 싶어지는 이유를 찾으면, 제게 말하러 와주실 수 있나요? 그게 무엇이든.
…그리고 만약, 오늘밤이 지나고 저희가 승리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당신이 그걸 지켜본다면, 내일 다른 이들을 만난다면 똑같이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신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저는 당신이 변절자라서 이 말을 부탁하는 거에요. 전에는 저와 생사를 함께했지만, 결국 전사하지 않았고 이제는 전사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지금 제게는 위안이 된다고 하면 너무할까요.) 그러니까 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꼭.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당신의 옆에 더 있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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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별로 유의미하지 않아서 하지는 않았던 말: 붉은 양귀비는 당신의 고향의 상징인 동시에 에스마일의 고향의 상징이기도 하다. 꽃말은 위안. 특히 죽은 이들의 영혼을 향한 위안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 인생의 가장 큰 변절자이며 부역자일 스스로를 이미 총살해 버렸다면, 제가 영웅이 아닌 당신의 무덤에 피어나 위안이 될 수 있다면….
하지만 저는 결국 당신들의 슬픔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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