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모모] 문을 열어보니, 그곳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트친 생일선물로 줬던 연성!! 제목은 오O고교 패러디입니다...(죄송)

나나계 by 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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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주 다니는 방송국에는, 으레 다른 건물들이 그렇듯이 출입구가 여러 개 있다. 가장 앞에 있는 정문 출입구 이외에도,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출입구까지. 지금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 방들이 잔뜩 모여있는 창고 주변의 출입구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 중 하나다. 단순히 엘리베이터가 가까워서, 라는 이유였지만. 다들 바쁘게 계단이나 긴 복도를 열심히 걸어서 대기실로 가지만 이쪽은 움직이는 게 귀찮으니까. 주로 짐을 옮기는 엘리베이터에도 가끔 껴서 타곤 한다. 요지는 그 문을 자주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은, 그쪽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이쪽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 방송국을 간신히 드나들었을 우리가 데뷔할 무렵에 생겼다고 하던데. 즉 설치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오늘은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곳이 막혀 있고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중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어보았다.

“저기, 엘리베이터 공사를 또 하는 건가요?”

“또…? 지금까지는 없었던 엘리베이터가 새로 생기는 거예요. 다른 곳도 있지만, 아무래도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재 옮기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조잘조잘 얘기하는 걸 듣고 있었지만, 결론은 엘리베이터를 처음으로 설치하는 공사라는 얘기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 사람이 무언가 잘못 알고 있나 보다 싶어 넘겼다. 그러니까, Re:vale의 대기실 문패에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라. 예전에 해체한 구 유명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분명히 멤버 사이에 불화가 있어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지. …복귀 방송인가?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 해체한 지 꽤 되었지만 선배들이기도 하니 인사라도 해야 하나 싶어 기웃거리고 있는데, 매니저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쫓겨났다. 너무해. 우리 대기실 뺏겼는데 내 얼굴도 모르고. 입을 삐쭉거리며 아무나 찾아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딱히 눈에 익은 사람도 없다. 그나저나 뭐지, 어쩐지 건물이 리모델링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자존심 상하게 이쪽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서, 시간이 좀 남았으니 방송국 밖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정문 쪽에 있는 카페에나 들렀다 와야지. 모모랑 오카링한테 엄청 서운했다고 다 이를 거야. 그런 생각으로 입을 삐쭉거렸지만, 카페는 온데간데없고 재작년에 사라졌던 음식점이 다시 생겨 있었다. 뭐지? 이 묘하게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은.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혹시나 내가 과거로 돌아와 버린 걸지도 몰라. 아이돌 매니저가 Re:vale를 모르다니, 그런 세계 너무하잖아. 언뜻 농담처럼 확인한 날짜는, 확실하게 4년 전이었다.

기계가 고장 났나.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오늘 날짜는 4년 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사람들을 붙잡아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다. …뭔가, 깜짝 카메라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모모랑 오카링한테 전화도 안 돼서 조금씩 초조해졌다. 곧 있으면 스케줄 시간이라고. 주변을 돌아다녀도 온통 옛날 흔적뿐. 아니, 그맘때는 여기에 자주 다니지도 않았으니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구두로 바닥을 탁탁 치며 다시 출입증으로 방송국 안에 들어갔다. 거봐, 이건 되잖아.

그건 그렇고 이 바보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을 펑크내면 안 되니까. 이런 상황이 무엇을 계기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어서 위화감을 느끼기 전에 했던 것들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쭉 가서… 저쪽 출입구로 들어왔지. 물론 진짜 깜짝 카메라라면 이런 멍청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이상한 거겠지만, Re:vale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으니 일단 진지하게 상황을 바꿀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 시절이면 이 휴대폰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인터넷은 작동되는 것도 신기하고… 검색 페이지 디자인은 구식으로 바뀌어 있지만. 괜히 억울할 휴대폰을 쳐다보며 뒤쪽 출입구로 나가는 순간 휴대폰의 날짜 설정이 바뀌었다. …어라. 다시 한 발짝 뒤로 들어가면 또 바뀌고, 나오면 원래대로 돌아오고. …건물에 뭔가 전파 같은 게 있나? 일단 이 수상한 출입구 말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까랑 똑같은지, 아니면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봐야지. 시간은 촉박했지만 카페는 영업 중이었고, 정문으로 들어오니 Re:vale의 대기실 역시 건재했다.

“아, 유키! 어디 갔다 왔어? 이맘때쯤이면 왔을 줄 알았는데, 연락도 안 돼서 한참 찾았는걸.”

“…출입구 저쪽으로 오느라.”

“중간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났어?”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이렇게 당황스럽진 않았을 텐데. 어쨌든 스케줄은 무사히 진행됐고, 일을 빼먹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남는 날 다시 그 진기한 체험을 해보려고 했다. 별 건 아니고, 정말 과거 체험이 가능하다면 모모도 있나 싶어서 궁금했으니까. 스케줄이 일찍 끝난 날에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인 장소를 지나서, 정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폐업했던 음식점 그대로. 그럴듯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문을 지난 걸로 과거가 되는 걸까 싶어 다짜고짜 버스를 탔다. 평소라면 타는 것만으로도 팬들이 알아봐서 한참을 대답했을 텐데, 번호를 묻는 사람 말고는 없었다.

이맘때쯤 살고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분명히 모모랑 같이 살고 있었지. 물론 모모는 아르바이트하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닫힌 문 앞에 섰지만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열쇠가 없네… 아쉬움에 창문을 기웃거렸다. 낡은 커튼이 쳐져 있긴 했지만, 틈새로 작곡에 난항을 겪는 듯한 단발 오리카사 유키토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금 무서워서 금방 도망쳐 나왔다.

어디로 갈까… 모모는 아르바이트하고 있으니까. 타카나시 사무소에 있을 반을 보러 가고 싶긴 했는데 역시 그건 안 되겠지. 실제 미래로 이어진다면 아무래도 곤란해질 테니까.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가는 한량이 된 기분이었다. 집도 파트너도 실종이라니. 물론 다시 돌아갈 수 있긴 한데. …모모 구경 갈까? 옷차림도 그렇고, 머리 길이도 차이 나니까 의심을 사겠지만. 아이돌이니 이런 걸로 머리를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앞에 바로 나가는 건 역시 힘들겠지. 맛있는 거 잔뜩 사주고 싶은데 이런 거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과거로 와도 별로 소용없지 않나? 나 할 수 있는 거 없고. 구경만 좀 하고 가야겠다 싶어졌다.

 

모모가 아르바이트하던 곳이 워낙 많아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라서, 몇 군데를 돌고 한참 찾았다. 그러니까 벌써 저녁이 됐다. 홀에서 열심히 음식을 나르는 모모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칠 뻔해서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가게에서 나오는 손님에게 수고비를 주고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에게 피로 회복제와 파스, 간단한 간식이 담긴 봉투를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받고 어리둥절한 모습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시 나온 손님이 잘 건네주었다고 얘기해줬다. 과거로 오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부탁하게 되네.

돌아와서 모모에게 그 시절 어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런 걸 왜 궁금해하냐고 한참 물어봤지만 딱히 대답할 말이 없긴 했다. 그냥, 궁금해서. 나중에 한 번 팔러 가줄까 하고. 모모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웃으면서도 아르바이트했던 곳을 잔뜩 알려주었다.

 

 

그 녀석들의 이번 달 월세를 미리 지급했다. 너무 많이 도와주면 안 되겠지만, 지갑에 있는 돈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집에서 나오지도 않을 오리카사 유키토의 명의를 조금 빌리는 게 뭐가 나빠. 선행하는 중이라고.

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을 안고 오늘도 모모를 구경하기로 했다. 건너편 가게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알바생을 지켜보는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좀 기분 나빴지만, 뭐 어때. 난 모모랑 사귀는 사이라고. 이 시절은 아니지만 어쨌든 모모가 이런 걸로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으음, 모모 기준에서 바람의 범주에 드는 건 아니겠지. 모모 군도 좋지만, 파트너인 모모가 더 좋은 건 당연한 거니까. 가끔 시간 날 때 놀러 오는 것뿐이라고.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가끔은 오카자키 사무소에 조공을 빌미로 채소나 고기를 보내기도 했다. 사무소에서 보내는 걸로 말해달라는 편지와 함께 보냈지만, 오카링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어. 너무 솔직한 품목들에 자신도 센스가 없다는 자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월세를 내준 것 이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것도 이어지면 경찰에 신고당할 것 같아서, 그래도 올 수 있을 때 모모 군한테 맛있는 거 먹여주고 싶었는걸.

그리고 모모링 한 박스. 이건 별달리 명목도 없어서 그냥 택배로 부쳤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렇게 뻔질나게 다닌 것도 아니고, 매일 사다 나른 것도 아닌걸. 이쪽도 일이 있고, 연인이 있으니까. 별개로 정말 장 볼 때 말고는 집 밖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옛날의 자신은 좀 보기 힘들었다. 스케줄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정말 극히 드물었으니까.

 

“유키, 요즘 많이 피곤해? 쉴 때 계속 연락 안 되고…”

갑작스러운 물음에 깜짝 놀라 굳었다. 걱정이 담긴 목소리에 양심이 쿡쿡 찔렸다. 그래도 나름 잘 챙긴다고 했는데 역시 즉각적으로 전화가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가면 전화는 안 됐는걸. 모모한테 숨길 만한 일도 아니고, 모모도 관심 있지 않을까 싶어 사실대로 고백했다. 믿어주지는 않았지만. …뭐, 당연하긴 한데.

“말하기 싫으면 그렇게 얘기하면 되잖아!?”

진짠데.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힐 것 같아서 양손을 들고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도 사진 같은 건 제대로 저장되는 것 같았으니까 어떻게든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오해는 곤란해. 나중에 밝혀지면 모모가 서운해할 것 같아 얘기한 건데.

“다음에 기회 되면 동영상 찍어 올게.”

그러니까, 그 나이의 오리카사 유키토를. 모모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 듯했지만, 금세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화를 가라앉히고 “…진짜?” 얼굴을 붉혔다. 아니, 이거 바람 아니야?

도촬은 범죄지만 자기 자신을 찍는 건 그냥 자아도취증 환자로 끝나니까 괜찮겠지. 그런 이유로 찍는 건 아니지만, 보다 보니 꼬질꼬질하게 생긴 게 좀 불쌍한 면도 있는 것 같아 안쓰럽긴 했다. 모모 쪽이 훨씬 더 고생하고 있으니 동정은 안 할 거지만. 실제로 동영상으로 스스로를 촬영하고 있다가, 정해진 시간대에 장을 보러 나오는 젊은 오리카사 유키토에게 화면을 돌려 동영상을 찍어 가져다주었다. 최신형 휴대폰은 이만큼 떨어져 있어도 줌인이 잘 되네. 모모에게 증거물을 제출하니 자기도 직접 보고 싶다고 떼를 썼다. 불순한 의도에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모와 함께 들어가면 과거로 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난 또, 모모한테 말했다고 안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당당하게 반복적인 도촬을 요구하는 모모를 무시하기가 힘들다. 모모 군 사진도 안 찍고 있는데 어떻게 내 사진을 찍어 오라는 거야? 그 자식, 밖으로 나가지도 않잖아. 많이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기만 하려니 조금 지루해졌다. 모모랑 얘기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라면 좋을 텐데,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리니까. 그런 거, 당연히 알아챌 것 같고. 그래서 한동안 가지 않았다가, 모모의 생일 며칠 전에 잠깐 들렀다. 수중에 돈 없을 테니까. 지난번에 월세 내준 것 정도로 가계 형편이 나아질 수준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고. 모모가 좋아하는 거 만들어 먹으라고 해야지. 이미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면 안 될 거라는 긴장감 따위 없었다. 모모한테 들키면 변명하기 힘들겠지만, 이쪽은 워낙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니 큰일이 날 것 같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이겨. 아마도.

이쪽도 모모 생일에 맛있는 거 해줘야지. 옛날이라 그런지 물가가 싼 점도 괜찮았다. 부자가 돼도 절약은 중요하니까. 혼자서는 들기 어려울 만큼 시장을 잔뜩 누비고선 짐을 배분했다. 이건 나눠줘야지. 이맘때의 나는 모모의 생일에 뭐라도 해주기 위해, 깜짝 세일의 기회를 잡으려고 뻔질나게 시장가에 들렀다 허탕을 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냥 기둥서방 노릇밖에 한 게 없어서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모모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어서 노력하는 마음은 기특하니까.

“거기 너.”

장바구니에 고기는커녕 값싼 콩나물이나 두부 따위를 담아 돌아가던 오리카사 유키토를 불러세웠다. 변장이라고는 해도 커다란 선글라스에 마스크 정도밖에 안 했지만, 이 녀석을 상대로 공들여서 치장하거나 변장하는 것도 일없다 싶어서. 갑작스레 불러세워진 녀석이 뒤돌아봤다. 기분도 저조한데 시비 걸지 말라고 얼굴에 쓰여있었지만, 딱히 시비 걸러 온 건 아니라서 양심에 찔리지는 않았다.

“이거 좀 가져가. 너무 많이 샀는데,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축 처진 장바구니를 힐끔 쳐다보면 싸구려 동정 같은 선의를 베풀려고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굴이 벌게진다. 그것도 잠시, 당혹스러움과 얼떨떨함이 얼굴에 드러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모모 군 생일 선물 주고 싶은걸. 모모 건 미리 준비했으니까. 고기도 잔뜩 샀고.

그 표정 그대로 봉투를 받아 열어보고선 놀라워하며 눈을 굴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수상한 사람 같기는 한데, 공짜 식재를 준다고 하니 거절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생일에 맛있는 거 먹여주고도 며칠 더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의심과 일말의 자존심, 여러 감정 때문에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듯한 자신을 어른스럽게 기다려주었다.

“그냥 받아. 잘생겨서 주는 거야. …라고 하라던데.”

모모의 생일에 모모 군한테도 맛있는 거 먹여 주고 싶다고, 그런 계획을 말하니까 모모가 추천해준 멘트였다. 장을 볼 때 시장에서도 종종 들었던 말이라 웃어버렸지만 자기 자신에게 말하기는 역시 좀 그렇지. 뭐가 예쁘다고 좋은 말 해주겠어. 모모의 생일에 맛있는 걸 사주지도 못하면서 얄랑한 자존심 때문에 받는 걸 고민하고 있는, 과거의 자신인데.

하지만 모모는 이 녀석을 좋아하고, 그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자기 자신인걸. 내가 더 어른이니까 챙겨줘야지.

“…월세랑 이것저것, 당신이 한 거지.”

뭐, 이렇게 대놓고 보여줬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지. 그래도 알아채다니 놀랐다. 목소리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것 같긴 하지만. 굳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침묵을 지켰다. 모모링은 확실히 내가 한 거 맞지만. 호의를 받아들일 생각인지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했다.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닌데. 모모가 알면 혼나겠는걸. 모모랑 둘이서 먹을 몫의 식재를 들고 있어서 팔이 아프다는 생각 따위를 했다.

“다음부터는 하지 마.”

간신히 꺼낸 한마디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성공해서, 다음부터는 자신이 한 사람 몫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 짧고 건방지긴 해도 기특하긴 하다. 내 눈에는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지만, 모모 눈에라도 예쁘게 보여서 다행이지.

“…그래도, 잘 받을게.”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뛰어가는 모습에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저렇게 귀염성 있는 성격이었던가? 야마토 군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 경우에는 야마토 군이 나를 닮은 거겠지만. 자기 자신 일이니까 알게 된단 말이지. 고맙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것만으로도 한참 자신을 굽히고, 엄청난 용기를 내서 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슬슬 나도 돌아가 볼까. 이쪽도 모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모모가 바라는 동영상은 못 찍었지만, 이 정도면 나도 최선을 다했다고 봐. 방송국을 통해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니 모모가 보낸 래빗챗이 와 있었다.

[어땠어? 잘 했어?]

래빗챗보다는 통화로 전하는 게 낫겠지. 스케줄 도중이지만, 시간대를 보니 휴식 시간쯤이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모모? 아, 응. 잔뜩 장 봤어. …그거 말고? 그러니까───”

 

 

 

 

(일대일대면해서 이뒤로 어디로든문은 막혔다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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