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아포 01

창용인아 by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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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골분같이 흩날리는 눈발을 동경했다. 새카만 하늘에서 추락하는 것들은 결국 부서져 사라진다.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었다. 차라리 저 짐승 같은 집단에 뛰어들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핏발 선 눈으로 아우성 지르는 내 모습을 자주 상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깡과 용기가 없었고, 네가 있었다. 그 말간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새까만 눈동자에 비친 내가 흐려지다가도 선명해졌다. 나는 이제 지쳤는데. 자꾸만 네가 그렇게 나를 살리니까. 그래서 만나고 싶지 않은 다음 계절을, 봄과 여름을 꿈꾸게 되어서. 너는 아마 모르겠지. 내가 매일 밤 유서를 고쳐 썼다는 걸. 하루하루 죽어야 하는 이유와 죽고 싶은 이유, 그리고 살고 싶은 이유가 추가된 탓이다. 그래. 내 마지막 고백이자 고해는 결국 변명이다. 살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잔뜩 적혀 있는. 그것이 또한 너마저 죽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매일 밤 달빛 비쳐 희멀게진 네 낯을 눈에 담았다.

가만히 얼굴 쓸어봤을 때, 다시는 만지지 못할 테니 숨죽여 운 적도 있었다.

너는 내 유서를 보며 그렇게 울까.

나는 죽어서야 감히 뜨끈했던 네 체온을 그리워할 거다.

2024. 01. 01

유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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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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