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람] 썰_if 원작
운명은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
네가 그 길을 가지를 않길 바랐다. 그 길로 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세계를,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좀 더 큰 대가를 내놓았어야 했다. 최초의 기억을 아니, 하다못해 다른 중요한 기억을 내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것도 다 자신이 욕심쟁이인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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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을 시도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너를 거둔 것은 나였는데 내가 도망을 택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자신은 그래야 했다. 쐐기인 너를 두고 나와 운명을 비틀어야 했다.
허나 이 또한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혼자였던, 혼자인 네가 눈에 밟혀 자꾸만 걸음이 느려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네게 잡혔다. 그때의 그 상처받은 눈빛이란.
그렇게 몇 번의 설득, 몇 번의 도망. 그러니 그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너는 운명에 강하게 묶였기에, 그런 너를 차마 두고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저 때문에. 그래서 모두 실패했다. 그쯤 가니 너는 결심하더라. 힘줄이 끊겼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자주 시선이 닿았던 발목, 때때로 깊게 침착하는 너의 눈빛을 본다면 누구라도 예상했을 테지. 마지막 도망, 그리고 다시 한 번의 붙잡힘. 어쩌면 그것은 필연이었으리라.
나는 그때 완전히 확신하고 말았다.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말이다. 이미 확정된 운명을 비트는 것은 보통 무리이며 되더라도 크나큰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분명 저는 이 세계에서 튕겨 나가고 말겠지. 그것에 무기력해지고 만다.
제대로 된 결단조차 하지 못하는 저는 과연 너의 선생일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 되묻고 만다. 그럼 너는 답하겠지. 그럼에도 제 선생님이라고.
아, 아가.
네가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상처를 입힌 주제에 말이다.
정해진 운명대로 나아가는 네가 안쓰럽다. 그런 너를 막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저를 두고 너는 다른 이들과 싸우러 간다. 하지만 안다. 제가 있는 방에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는 것쯤은. 부수고 싶어도 저는 하지 못한다. 네가 그것을 원했으며, 의식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쐐기로서 의지를 심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저는 인형처럼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아마 너도 그것을 바라는 거겠지.
...그러나 아가. 세상은 그리 쉽지 않단다.
보렴, 꼭꼭 숨겨뒀던 저를 찾아온 이들을.
견고하던 결계가 깨지고 결계 탓에 희미하게만 보이던 실이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거래.
세계가 멈추고 대가를 바친다. 이번에는 막겠노라. 설령, 대가가 크다고 한들. 제가 제대로 된, 큰 애정을 가진 것은 너이나, 작지만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너뿐만이 아니기에... 너는 질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리 애정을 갖게 된 것은 결국 너로 비롯된 것임을 알면 너는 어찌 반응할지... 그것은 조금 궁금해진다.
천칭이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계의 격동.
거래는 제대로 성사됨을 느낌과 동시에 제 발밑으로 균열이 인다.
이어지는 추락.
그 끝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아이의 운명을 끝내기 위해 칼을 드는 너.
칼은 끝내 휘둘러지지 않는다. 그 앞에 제가 있기 때문에. 한 팔로 기어 네게 다가간다. 그리고 입맞춤. 너라면 이 뜻을 알 것이다. 제가 네게 완전히 종속됨을. 그 대가는 제 뒤에 있는 아이의 목숨임을. 이제 너는 무슨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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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칼이 바닥을 향한다.
그에 살풋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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