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Ep. 2; 언니랑 언니 친구랑 잤대서 개 빡쳐서 나도 같이 잠 (2)

"나 이번에 그래도 기숙사 신청하는 게 좋겠지?"

1월쯤이었나, 해가 바뀐 뒤였던 것 같다. 언니가 다음 학년도 기숙사 신청을 앞두고 내게 물은 것이다. 같이 산 지는 한 달 남짓 된 시기였다.

"원래 우리 이제 같이 살기로 했잖아."

'진작에 끝난 얘기 아니었나?'

동거를 하기 위해 기숙사를 나오기로 결정했던 언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어차피 여기서도 학교 가까운데 그냥 여기서 다니지 그래?"

언니네 학교와 내 자췻방은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였다. 지하철은 없지만 상당히 가까운 편인데. 갑자기 번복하는 이유가 의문스러웠다.

"흠 그런가... 근데 그래도 기숙사가 학교 안에 있으니까...."

"룸메 있는 거 불편하지 않아?"

"아 룸메? 아.... 1인실도 있어."

"그래?"

"응. 과제하는 것도 그렇고.... 편하긴 하니까. 흠...."

언니는 내가 들으라는 듯이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이내 미리 정해뒀던 건지 모를 결론을 지었다.

"일단 신청해보고 붙으면 생각해봐야겠다."

'같이 살기로 했는데 다시 나가려는 이유가 뭐지....'

그땐 회사 일이 한창 바쁜 시즌이라 내가 야근이 잦았다. 같이 살아도 혼자 남는 시간이 많아서 별로였던 걸까?

"수원 씨, 나 먼저 가볼게요."

"앗 넵. 들어가십쇼."

'언니한테 곧 퇴근한다고 말해야겠다.'

- 9시쯤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카톡을 남기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데 언니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자나?'

나는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론 카톡 알림이 언제 올지 신경을 쓰면서 퇴근을 앞당기고 있었다.

예상보다 30분 빨리 일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집에 가까워질 때까지 언니가 연락이 없자 의아함과 걱정스러움을 안고 문을 열었다.

"나 왔어-."

집에 언니가 없었다. 전화를 걸자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만 들려왔다.

- 어디야?

- 누구랑 전화 해?

- 나 집 도착했어

- 기숙사 갔어?

카톡을 우르르 보내고 언니와의 문자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아까 집에 온다는 카톡부터 읽지 않아 있었다. 요즘 내가 야근이 잦아서 심심해서 나간 건가? 몰려오는 피곤함에 나는 소파에서 깜빡 잠들고 말았다.

"수원아. 수원아."

언니의 목소리였다.

"어? 응-. 왔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온기가 느껴졌다. 

"눈 떠봐. 얼른."

"와앗! 이게 뭐야?"

눈 앞에서는 초에 불을 붙인 작은 레터링 케이크가 언니의 손에 들려있었다.

"우리 100일 됐어. 몰랐지."

"아 그게 오늘이구나."

"응. 12시 넘어서 이제 오늘."

케이크 위에는 귀여운 글씨로 '100일 축하해'라고 쓰여져 있었다.

"초 끄기 전에 소원 빌까?"

"그래."

"너도 빌어."

"언니는 뭐 빌거야?"

"그냥. 오래오래 사귀게 해주세요- 같은 거."

"그럼 나도 그거 할래."

우리는 각자 소원을 빌고 하나 둘 셋 한 다음 불을 껐다.

"나랑 사귀어줘서 고마워, 언니."

언니가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사랑해."

내가 말했다.

100일 파티를 끝내고 잠에 들기 위해 준비하는데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어두운 표정으로 핸드폰만 열심히 하는데 그마저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언니를 쳐다보자 갑자기 언니가 눈물을 터뜨렸다. 언니에게 휴지를 건네주러 일어서려는데 언니가 나를 붙잡았다.

"미안해."

그리고 대뜸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언니를 보니 나도 마음이 약해져서 더는 묻지 못하고 잠들기 전에 휴대폰을 잠깐 확인하는데,

- 사진을 보냈습니다

인스타 디엠이 와 있었다.

'뭐지? 스팸인가?'

확인해보니 언니가 찍힌 사진이었다. 언니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사진....

그리고 언니가 자고 있는 걸 배경으로 한 누군가의 셀카도 함께였다. 봤던 것 같기도 한데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 누구세요?

답장을 보내놓고 화면을 끄려다가 혹시나 싶어 프로필을 눌러보자 단번에 기억이 났다. 학기 중에 언니의 인스타 스토리로 종종 태그되던 사람. 변혜림.

변혜림이 올린 스토리와 게시글을 염탐하고 있자 디엠 알림이 왔다.

- 엇 ㅋㅋㅋㅋ

- 가람이한테 사진 잘못보냈다고 전해주세요

- 죄송합니다 🙂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말투였다.

"언니 이거 언니 룸메인 것 같은데?"

"뭐?"

"사진을 나한테 잘못 보냈대."

'근데 그게 말이 되나? 친구도 아닌데 굳이 내 인스타로 넘어와서 디엠을 보냈다고?'

"봤어?"

미묘한 반응이었다. 최대한 태연한 척 하지만 두려움을 숨기는 말투.

"응. 왜?"

"아.... 무슨 사진이야?"

대답하려는 사이 언니가 내 폰을 가져가 디엠창을 열었다. 사진이 한 번 보기로 설정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같이 내 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그 때,

- 사진을 보냈습니다

또다시 디엠이 온 것이다.

- 이건 둘이 같이 보세요 ㅋㅋ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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