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Ep. 2; 언니랑 언니 친구랑 잤대서 개 빡쳐서 나도 같이 잠 (3)

판도라의 상자. 그걸 눌러보기 전까지는 이 사진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심코 눌러본 사진 안에는 즉석 카메라로 찍은 것 같아 보이는 폴라로이드 사진 두 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안 돼!"

언니가 폰 화면을 뒤로 덮었다. 부들부들 떠는 손과 함께였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여자의 가슴 두 쪽을 한껏 모아 가슴골을 만든 모습과, 음모로 덮여진 외음부 근처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수원아 이건 내가 아니라, 아니 그러니까... 얘가 장난 치는 거야. 원래 이런 숭한 짤 보내주는 애야."

"언니라고 한 적 없어."

"어어? 어. 그렇지."

언니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도 상황을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레즈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나도 어안이 벙벙해서 헛소리가 나왔다.

"이거 언니야?"

그러고 보니 닮은 것도 같았다. 언니의 맨몸이... 그 사진 속 몸과 같았다. 

'그런데 여자 몸은 다 똑같이 생긴 거 아닌가?'

그렇지만 여전히 그 사진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나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언니의 룸메이트가 보낸 여성의 나체 사진. 그리고 아까 그 디엠. 가람이한테 사진 잘못 보냈다고 전해주세요....

"언니 맞구나?"

"안 돼!"

언니의 모든 반응이 사진 속 주인공이 제 자신이란 걸 말하고 있었다. 언니였다. 언니가 맞았다.

"언니 맞아?"

"수원아, 수원아아.... 정말 아니야...."

"그래서 아까 미안하다고 한 거야?"

그동안 쎄하게 생각했던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숨기는 것 같던 룸메이트와, 갑자기 번복한 동거 약속, 그리고 이상한 100일 기념 소원과 그동안 뜸했던 우리의 잠자리까지. 모든 게...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란 말만 하지 말고 말을 좀 해봐."

"... 수원아."

"언니."

울먹울먹하는 언니에게 나는 가장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의심을 말하게 된다.

"혜림 님이랑 잤어?"

더 이상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바보 같은 언니. 거짓말이라도 잘 할 것이지. 아니 애초에 왜 잤을까? 잔 것부터가 잘못이다. 사정이 있었을까? 있었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언니와 함께 소파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룸메랑... 잤다는 거지?'

나는 긴 침묵을 깨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하나씩 던졌다.

"왜... 잤어?"

여전히 눈물만 흘리는 언니였다.

"왜 잤냐고. 말을 해봐."

"걔가 먼저 꼬셨어. 난, 난 진짜..."

"그딴 말 말고 왜 잤는지 말을 해 보라고!"

잔뜩 겁 먹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나는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지금 이유를 듣지 않으면 영원히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언제부터, 아니 언제. 시작된 거야, 관계가?"

묻는 말은 많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이였는데 내가 낀 건가?"

"아니야...."

"그럼 뭔데?"

룸메이트를 한 기간은 재작년 1학기 때부터. 만 2년이 되어간다. 최근에 관계가 시작된 걸까. 갑자기 사진을 보낸 변혜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어져야 한다. 이런 관계를 가진 사람과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끊어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언니를 사랑하는데. 울음이 밀려왔다. 내 사랑은 처참히 짓밟혀 깨져버린 접시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쓰라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억지로 버려야 하는 이 현실이 억울했다.

"좋았냐?"

나랑 했던 잠자리도 전부 변혜림과 비교했겠지. 나와의 연애도 전부 변혜림한테 얘기했겠지.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아득해졌다.

"좋았냐고. 대답해."

"수원아...."

"누가 더, 아니. 큭. 나랑 할 때 만족은 했었어?"

"당연하지 수원아. 그런 말 하지 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그럼 변혜림이랑은 왜 잔 건데. 당장이라도 차도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절망, 우울, 무력감, 박탈감 같은 것들이 나를 감쌌다.

"그냥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기숙사에 계속 있지 그랬어. 계속 혜림 님이랑 자게."

"나는 그냥 너가 좋으니깐..."

'어쩜 헤어지자는 말도 없냐.'

뻔뻔한 건지 간절한 건지 자기 잘못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 없는 언니였다. 이런 언니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도 답답함을 느꼈다. 미련하기는.

"좋았어? 얼마나 좋았어?"

최대한 비참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말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셋이 하지 그래? 그럼 언니도 누가 더 좋은지 왔다 갔다 하면서 헷갈릴 일도 없을 것 아냐. 좋겠다, 언니는 깁 해줄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

"너 진심이야?"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언니가 날 쳐다봤다. 간절한 눈빛이 날아왔지만 나는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내 집에서 나가. 짐 챙겨서. 첫 차 타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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