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크에게.
엘리엇 에드워드 엘더스의 편지.
안젤리크.
나를 사랑하지요?
오랫동안 당신의 친구로 살았던 새가 묻는 질문 치고는 아주 이상한 것을 압니다. 그래도 나는 물어야만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지요? 당신의 마음 속 세상 그 어딘가에, 나같이 기괴한 새가 늘 자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왜냐구 묻는다면요. 지금 내가 쓰는 편지가 당신에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과 함께 악다구니 치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늘 나의 날갯짓 소리보다도 훨씬, 훨씬 커다랬어요. 나는 그 커다람에 파묻혀 사랑스러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악다구니가 무엇이 그리 사랑스러웠냐면요. 당신과 함께 할 때면 꼭,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거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습게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할 때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골목을 뛰고, 나는 당신의 얼굴 가까이 날며 그 멋진 웃음을 보곤 했습니다. 늘 당신의 얼굴에는 냉소와 경계가 가득했는데, 그 순간만큼, 안젤리크, 당신이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 알려 주려구 해요. 숨이 차올라서 가파르게 호흡하면서도 손에 쥔 전단과 깃발을 놓지 않았지요. 내가 부리로 전단을 물고서 날아 오를 준비를 하면, 옆에서 힘차게 발을 구르고 박수를 쳐 주었지요. 엘리엇, 날아! 파리를 위해서 날아!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웃었습니다. 나는 그럼 땅을 박차고 날아 올라서, 우리가 만난 그 도시의 창공을 휘돌아치며 당신들이 밤새 써 내린 전단을 뿌렸습니다. 종이가 팔랑거리며 하강할 때. 나는 내 심장이 마구 간질거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과 마리가 쓴 글을 세상에 전해 주던 때를 기억합니다. 나는 그 때가 참 좋았어요.
아마도 당신은 그 순간을 사랑했나봅니다. 친구와 함께 내 가장 익숙한 거리를, 아주 다른 마음으로 뛰어가는 것. 내 날개를 통해 세상에 말을 하는 것을 사랑해 줘서 나는 너무도 고마웠답니다.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아주 많이 사랑했지요? 그래서 그 얼굴을 보는 나 또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안젤리크. 당신이 웃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런데요, 안젤리크.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다름을 나는 이제 압니다. 이마저도 그저 알기만 하는 것이지요. 당신이 그랬듯 세상을 알고 나서 사랑하는 일을, 나는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의 목숨과, 나의 세상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우습지요?
나는 당신의 날카로움을 사랑했습니다. 안젤리크. 엄중한 천사의 눈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게는 없는 것이 당신에게는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냉소와 죽음에 대한 경계는 당신의 슬픈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던 본능적인 행동이었겠지요. 그런데도 말입니다. 당신이 늘상 하던 말처럼, 우스운 새인 나는 죽음이 얼마나 무거운 지 몰랐답니다. 수없이 많은 죽음들을 스쳐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무거이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였을까요. 당신이 그것을 내게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구 자신했던 것은 하잘것없는 오만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경계하고, 사랑을 쥐고자 하는 천사였지요. 그리고 나는 그저 작은 새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 날개는 그저 날기 위함이었을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만일 날개가 있다면, 그것은 저 높은 존재가 내린 축복 같은 상징일 겁니다. 세상을 알고 또 사랑하라고 내려 준 상징 말입니다.
달이 떴을 때, 우리 같이 하늘을 보던 일을 기억하나요? 당신이 내게 물었지요. 별들이 참 예쁘다구요. 저 별까지 날아 가 본 적이 있느냐구요. 직접 별을 보러 가게 되거든 당신에게 꼭 그 감상을 전해 달라구, 그렇게 말했지요. 나는 당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압니다. 안젤리크. 당신은 별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무어라고 했는지 기억하나요? 별에 가게 되면, 부케를 만들어 오겠다구. 그런 농담을 했었습니다. 별에도 분명 들꽃이 있을 거라구요.
당신은 별에도 꽃이 핀다는 말을 좋아했던 것 같어요.
나는 아마도, 아마도. 별에 꽃이 피는지, 그것으로 장난 비슷하게라도 꽃다발을 만들 수 있을지 영영 알 수 없을 겁니다. 알 수 없어도 괜찮을 거에요. 나 대신 당신이 하늘에 뜬 별들을 사랑해 줄 터이니. 그들이 꽃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당신은 그 별을 사랑할 터이니까요. 내가 날개를 펴서 어설픈 춤을 춰 대었어도, 하등 쓸데없는 말들만 해대었어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 주었으니까요. 그럴 거지요?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했던 새가 있었다구, 그렇게 알아 주어요. 내가 당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의견을 강요하게 된 것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구요.
나는 이제 멀리 갑니다. 안젤리크. 당신에게 든든한 누군가가 있어서, 조금 더 가볍게 날아 오를 수 있을 것 같어요. 마리에게도 미안하다 전해 주세요. 마리를 많이 사랑했다구요. 당신에게서 이해를 배웠다구요. 앞으로도 내 친구들이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서, 나는 내 마지막 비행을 하려 합니다. 나폴레옹 동상 밑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춥지도, 외롭지도 않게 떠납니다. 나는 행복할 겁니다.
늘 고맙습니다.
당신의 친구, 엘리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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