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들.

올빼미 엘리엇

들어 봐요, 난 봄 오기 전에 여기서 얼어 죽을 거요.

이름 : 엘리엇 에드워드 엘더스 (Eliot Edward Elders)

- 줄이면 E. E. E. 코믹스 캐릭터 같은 이름을 가지기 위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마치 웨이드 윈스턴 윌슨 -W. W. W.- 처럼. 솔트레이크 시티에 머물 때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장로님(Elder)같다고 하는 말을 주워 듣고서, 성으로 엘더스(Elders)를 붙였다. 남의 집 문을 두들기거나 초인종 누르기 좋아하는 자기 성질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성을 자랑스러워 한다. 나머지 이름은 맞추어 끼워 넣은 것이다. 

- 한국 이름도 있다. 지묵紙墨이, 혹은 지묵知默이. 길을 잃어 한반도 어느 산자락 절에서 시간을 보낼 적에 그 절 비구니 스님께서 하얀 깃털이 점점이 까만 것을 보고 종이 위에 먹 뿌린 것 같다며 지어주신 것. 나중에는 그 입 좀 다물고 있으라며 알 지知 자에 잠잠할 묵默 자로 바꾸셨지만. 어쨌든 엘리엇은 그 이름을 좋아한다. 게다가 말을 튼 것은 그 스님이 처음이었다. 본인도 그렇게 말이 많은 줄 몰랐다는 것이다.

출생지 : 미국, 와이오밍, 올빼미 계곡 산맥. / USA, WY, Owl creek mountains.

- 당시에는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니었던 곳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메리카 원주민인 샤이엔 족이 살던 곳이었지만. 미국이 프랑스에게서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고 나서는 미국 땅이 되었다. 물론 엘리엇은 상관하지 않는다. 엘리엇은 현재의 윈드 리버 구역에서 자랐으며 돌아가 본 적은 거의 없다. 딱 한번, 빅혼 협곡으로 날아갔다가 채광 때문에 파헤쳐진 것을 보고 미련을 접고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사는 세상이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곳 저곳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과 차원을 넘어서 나는 날개를 가졌고 그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잘 써먹는 중. 보통 올빼미보다 더 오래 살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아차리고 신나게 세상 나들이를 다녔다. 가끔 미래와 아주 오랜 옛날에 대한 말들, 시간에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하는 것 또한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 예를 들면 18세기 프랑스에서 호머 심슨의 캐치프레이즈 - d'oh! - 를 외친다던지, 유명한 흰올빼미 밈을 따라하고 - O RLY? - 다닌다던지. 심지어 자기 이름을 헤드위그라고 소개하는 짓도 한다. 

언어 :???

- 사람들의 언어는 대강 알아 듣는다. 알아 듣는 만큼 말을 한다. 대신 말투가 좀 걸진 편. 비속어나 상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쓰는 편이다. 예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나오는 습관. 무엇보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었던 스님이 전라도 출신의 상욕쟁이셨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생몰년월일 : ???~1833.02.16.

- 하늘 높으신 곳에서 엘리엇을 지었고 태어난 날은 알지 못한다. 태어난 날짜에 대해서는 헛소리를 꽤 해대는데 어느 날은 10세기 샤이엔 족 마을에서 추장의 첫째 아이가 죽을 때 함께 태어났다고 말하고, 어느 날은 프랑스인이 실수로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지고 온 부활절 달걀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사실 엘리엇 본인도 잊어버린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다. 

- 사망 장소는 프랑스 파리 방돔 광장. 발견 당시 깨끗했던 깃털과 이상 없는 몸 상태로 봐서는 사망 원인은 추정 불가.

신체적 사항 : 올빼미목 올빼미과 수리부엉이속 흰올빼미종, 암컷.

- 몸 길이 70cm, 익장 약 150cm, 몸무게 3kg로 같은 흰올빼미들 사이에서도 큰 축에 속한다. 노란 눈에 검은 얼룩이 점점이 있는 하얀 깃털을 가졌다.

성격: 

- 올빼미인데 머릿속에는 개가 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활달하고 그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냉소적인 면도 있어서 부정적일 때는 한없이 부정적으로 구는 편. 호불호 표현이 확실하고 맺고 끊음도 명확하다. 가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끊어낼 때가 있다. 그중 한 순간은 함께 지내던 비구니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인데, 당시 엘리엇은 49재가 지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절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지묵이라는 이름을 누군가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 배우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학구적이고 사색적인 활동들을 가장 좋아한다. 누군가 자기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환장을 하고 자기 지식을 자랑할 수 있는 순간들을 좋아하지만. 늘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스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입은 열지 않는다.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 더 훌륭한 누군가에게 당연히 열등감을 느낀다. 

- 조금 무딘 편이다. 가끔 눈치없이 굴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아둔하지는 않다. 신경을 조금 안 쓰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때는 가장 먼저 나서서 움직인다. 자신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고 손도 대지 않는다. 

-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뭐든 지어 내서 허황된 소리를 조금 넣은 말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물론 철학적 이야기가 섞였다면 더더욱 좋아한다. 본인이 지어내는 것도 좋아한다. 반은 장난 식으로 자기가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를 합친 구전기담집을 쓴다면 아마 그림 형제는 이름도 못 날렸을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엘리엇의 노래

1832년 겨울. 

엘리엇은 파리의 꿈을 꾸는가? 파리 창공을 날던 새는 어디로 가 앉았는가? 빵조각을 먹기 위해 열은 입인가, 아니면 논하기 위해 열은 입인가, 엘리엇 엘더스는 저주받은 새인가 아니면 축복받은 새인가, 엘더스라는 성에 걸맞게 행동하는가? 엘리엇 엘더스는 맹금류의 날개를 가졌으나 인간의 이성을 지닌 기괴한 생명체이며 동시에 쥐 대신 파이를 먹을 줄 아는 이상한 식성의 소유자기도 했다. 그러니 파이 냄새와 쥐가 가득한 파리에 내려 앉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리라. 그러나 파리에 내려 앉은 이 새는 무엇을 했는가? 세상의 반을 돌아 자신이 태어난 곳은 영영 잊은 채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이름은 스스로 지었고 사람의 말도 스스로 배웠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팽개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온전한 자신의 의사만이 엘리엇 엘더스의 삶을 좌우했다. 내가 바라는 일은 늘 할 수 있고 바라지 않으면 언제든 눈 앞에서 치울 수 있다. 나는 날개를 가진 새이고 사람의 지혜를 훔쳐 내었으니 이것만 있으면 평생 재미나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던 새는 어느 날 대리석 묘비 앞에 앉아 죽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은 지붕 위에 올라 앉은 새에게 그 분이 나즈막히 물으셨다. 달을 묘사해 보아라, 그 때 새는 그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고독해요, 그러자 그 분은 너 꼭 저 달 같다, 하셨다. 엘리엇은 그 말을 떠올리고 오랜만에 그 분을 생각했다. 잊은지 아주 오래 된 줄 알았더니. 죄다 버리고 떠나 온 길만이 엘리엇의 뒤에 남아 있다. 엘리엇은 문득 이제 더는 알고 싶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아서 무얼 하지? 

그 날, 그러니까 엘리엇이 깃털에 튄 붉은 색을 지우려 애를 쓰던 날. 우스갯소리로 애늙은 새에게 장로님이라 불러 대던 입은 꽃다발로 막혔고. 무기 한 번 잡아본 적 없어 부드러웠던 손은 천으로 둘러싸였다. 엘리엇 엘더스는 그 날 새의 날개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네들이 붉은 담요를 덮고 돌바닥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엘리엇은 날개를 펴고 도망쳤다. 제 깃털을 쓰다듬고 긁어 주고, 없는 빵을 나누어 건네던 손들이 죄다 힘 없이 늘어져 있는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겨울이 시작되었을 즈음에 그네들이 흙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묘지로 찾아갔다. 대리석 묘비 앞에 앉아서, 봄이 오기 전까지 한 겨울 내내 말을 걸었다. 어느 날은 그렇게 말했다. 나 이제 사는 재미가 없어 어쩔 지를 모르겠는데 왜 대답이 없수?  어느 날은 그렇게 말했다. 이럴 거면 나한테 재미난 이야기 해준답시고 노래를 불러주지를 말던지, 내가 궁금해서 쏴댄 질문에 답을 해주지를 말던지. 어느 날은 그렇게 말했다. 당신네들이 하얀 담요 덮이는 것만 보고 갈 거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웬 시뻘건 것에 뒤덮여 있었잖수, 깨끗하고 곱고 포근한 담요 덮는 것만 보고 가게 해 주쇼, 내가 손이 없는 게 아닌데 무서워서 당신네들 얼굴도 못 쓰다듬고 말았어. 내가 못 덮어 준 담요 하늘이 덮어 준대니까. 그거 덮는 것만 보고 가게 해 줘요. 나 정말 깃털 하나도 안 남기고 갈 테니까 편히 쉬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양반들아. 나 오늘은 오래오래 울다 잘 거요. 어느 날은 그렇게 말했다. 여기 내 자리는 없다는 거 잘 알아요. 나중에 또 봅시다.

어느 날은 그랬다. 방돔 광장의 청동 탑 아래 새하얀 새 한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채로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 새를 거둬 천에 잘 싸서 제 집 뒷마당에 묻었다. 그 자리에서는 딱총나무 싹이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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