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죽기로 결심하다.
엘리엇 에드워드 엘더스
그대 없는 파리의 거리는 슬픔뿐이네, 나는 이 구슬픈 노래를 요람 속에서부터 들었다네.
엘리엇 엘더스는 죽기로 결심했다. 아주 가기로 마음먹었다. 죽는 것에는 날개가 필요 없을 것이었다. 문득 새는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코를 훌쩍였다. - 말 그대로, 코를 훌쩍였다. - 새는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검푸르고 깊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괜시리 코가 시린 것 같아, 엘리엇은 부리를 두어 번 부딪혀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고서 날개를 폈다.
내내 새는 마지막으로 날개를 쓸 날을 꼽아 보고 있었다. 작지 않은 깃털 덩어리 몸뚱이를 이끌고서 축축하고 차가운 구덩이에 숨어 있었다. 구덩이에 덮여 있는 흙덩이 작은 틈으로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를 보며, 바람에 흔들려 앙상한 가지와 몸을 서로 부딪히는 나무들의 겨울잠꼬대를 들으며, 엘리엇은 눈을 또록또록 뜨고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도록 생각을 했다. 겨울 내내 생각을 했다. 고향 생각을 하고, 파리 생각을 하고, 제 스승이었던 왕을 생각하고, 스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가 배운 것을 하나 하나 꼽아 보았다. 나는 법, 사냥하는 법, 눈 뜨고 밤을 지키는 법, 사람의 말을 하는 법,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 옳은 일을 하는 법, 기꺼이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법. 그리고서는 또 늘상 그랬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줄줄 늘어놓아 세 보았다. 달, 나무 구멍, 보살, 중생, 백성, 말, 소리, 들꽃, 혁명, 공화주의, 신, 진보, 별, 이상, 꿈, 조국, 민중, 사람, 역사. 그러다가, 그러다가. 문득 새는 별을 보던 눈을 땅으로 내렸다. 발톱이 길게 자란 발 밑으로 차디찬 흙이 버석버석 밟혔다. 당신네들이 어째 이래 많은지 나는 모르겠네. 엘리엇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버석버석, 버석버석. 그리고 또 중얼거렸다. 추울 터인데. 새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날개를 폈다.
커다란 날개를 펴고, 엘리엇을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흰 몸뚱이가 바람에 스쳐 앙상한 소리를 냈다. 내내 무얼 안 먹었지. 엘리엇은 눈을 깜빡이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뒤쥐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날개를 접지는 않았다. 둥근 날개로 활공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귀로는 다른 소리를 좇았다. 무덤지기들이 나올 시간이었다. 엘리엇은 달빛 아래서 파리 근처의 묘지기들이 속삭이며 성호를 긋고 진저리를 치다가 혀를 차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속닥속닥, 죄라도 짓는 것처럼 이미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내뱉어 대지. 엘리엇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제가 갈 곳을 정했다.
흙은 다 식어 있었다. 엊저녁 덮었던 흙이 아니라 고작 반 년 되어 들뜬 흙이었다. 막 파낸 깊은 땅의 생명이 아니라 공기 중에 떠도는 죽음의 향기를 품은 공동 묘지의 흙이었다. 엘리엇은, 길고 긴 곡소리를 떠올렸다. 피로 젖은 거리를 떠올렸다. 이것은 뼛속에 새겨진 저항의 역사에 따른 수순이리니, 슬퍼 말아라. 누군가 제 귀에 그렇게 속삭였지만 엘리엇을 고개를 휙휙 털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엇은 종종 걸음을 놀려 묘비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 왔수.
엘리엇은 까마귀가 울던 날 하루를 콩브페르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콩브페르가 가르쳐 준 것들을 되뇌이며 나 아직 잘 외우고 있수, 하고 웃었다. 웃어야 할 것 같아 그랬다. 백과전서의 내용을 줄줄 외우며 이것과 이것을 비교했다. 수상록을 읊으며 나는 이 부분이 좋수, 하고 떠들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콩브페르가 듣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두고 간 바구니 안에서 책을 펼쳐 발톱 자국을 내어 가며 콩브페르의 묘지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그렇게 했다.
엘리엇은 바람이 불던 하루를 바오렐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바오렐이 제게 가르쳐 주었던 춤을 추었다. 신나게 추었다. 날개를 죽 펼치고, 멋들어진 꼴은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꼴로 추었다. 작은 발로 부스러지는 흙을 밟으며 춤을 추었다. 바오렐이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서는 바오렐에게 물었다. 나 안 잊었다구 말해주려구 왔수, 이 양반아. 내 발을 좀 보아 주라구 왔다구. 그리고 자신이 아끼던 푸른 돌멩이 하나를 바오렐의 묘지 앞에 두었다.
또, 달 뜨는 날 하루는 즈앙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제 머리가 기억하는 라틴어 시 귀절을 읊었다. 제가 지은 시도 들려 주었다. 괴상망측한 시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죄다 꺼내어 들려 주었다. 즈앙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기와지붕에 대해 속속들이 말해 주며 즈앙더러 그렇게 일렀다. 나중에 가거든 실수 말구 스님께 절 잘 하시우. 그리고 어디서 들꽃을 한 묶음 꺾어다가 즈앙의 묘지 위에 올려 두었다. 예쁘지요. 내가 골랐수. 잘 들구 가오. 그렇게 인사했다.
어느 겨울 비 오는 날 하루는 푀이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소박하고 작은 묘비에 이름이 없어 엘리엇은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새는 화강암 돌멩이를 주워다가, 발톱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묘비를 긁어 이름을 새겼다. 자신이 배운 글자로 꼭꼭 새기었다. 푀이. 노동자, 민중의 벗. 그렇게 새기었다. 엘리엇은 발톱 없이는 사냥을 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왜 그리 했을까. 푀이가 알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서는 말했다. 나는 당신 이름과 손을 절대 잊지 않을 거외다. 그리 다짐했다.
마른 잎이 굴러다니던 날은 졸리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깃털과 몸뚱아리를 깨끗히 하고서 다 닳은 발을 절뚝거리며 갔다. 의사 선생님, 무엇 하우. 그리고 조금 울었다. 졸리가 이 아픔을 느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엘리엇은 그 앞에 앉아 배운 대로 깨끗한 물로 제 발을 씻어내고 천을 감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언젠가 그 예민한 정신이 자신에게 생긴 상처에 기겁하던 날을 떠올리며 자랑했다. 나 잘 하지요? 그리고 묘지 앞에 앉아 다시 부리로 천을 감고 발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아야, 하는 소리 대신 즐거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길고 긴 곡처럼 내었다. 대신 즐거운 소리였다. 그렇게 했다.
뒤쥐 한 마리를 겨우 잡았다 놓친 날은 레에글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보물처럼 여기던 것들을 두던 구덩이에서 운에 관련된 것은 죄다 꺼내어 묘지를 장식했다가, 도로 떼어 내었다. 이제는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다시 예쁜 꽃을 가져오려 멀리까지 날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엘리엇은 그 날 나두 이제 당신을 이해하우. 하고 농담을 했다. 레에글이 웃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는 작고 오래된 금화 한 닢을 집어다 그 앞에 두었다. 날개로 닦아 반질반질해진 것을. 그렇게 선물을 했다.
엘리엇은 맑은 날을 쿠르페락의 묘지 앞에서 보냈다.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고 하루 종일 실없이 떠들었다. 쿠르페락이 맞장구를 쳐 주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이라고는 이런 것 밖에 없수. 하고 말해도 쿠르페락이 싱글싱글 웃으며 그것 참 좋은 재주다! 하고 말해 주리라고. 엘리엇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은 거기에 존재했다. 엘리엇은 묘비에 얼굴을 잠깐 부비고서 뒤로 물러났다. 차가운 돌덩이가 따뜻할 리는 없었다. 그렇게 대화를 했다.
흐린 날 하루는 그랑테르의 묘비 앞에서 보냈다. 파리 거리 제일의 술집에서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와 그 앞에 두고서 자신이 죄다 마셨다. 빙글거리는 세상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춤을 추었고, 헛소리를 했다. 하지만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그랑테르도 올곧은 정신으로 있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광대처럼 그랑테르를 웃기려 했던 헛소리들을 죄다 주워섬겼다. 어때, 나 좀 주정뱅이 같수? 그리고 엘리엇은 다시 조금 울었다. 그리 했다.
햇살이 따뜻한 날은 앙졸라스의 묘비 앞에서 보냈다. 붉은 천 한 자락을 물어다가 묘비에 놓았다. 그리고 천과 묘비를 그 큰 날개로 꼭 끌어안았다. 앙졸라스도 그리 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마침내, 새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아니, 이미 세상을 떠나 보낸 이가 만난 새로운 세상을 떠나보낸 마음으로 울었다. 자신을 쓰다듬은 다정하고 친절한 손길들과 사려 깊은 눈동자들을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새는 달이 다 지도록 울었다. 이제 모두들, 더는 없었다. 빵을 나누어 주고, 자신과 농담을 주고받고, 가르쳐 주고 서로 배우며 즐거이 떠들던 벗들이 없었다. 엘리엇은 아홉 날을 그렇게 보냈다. 없는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보고, 듣고, 이해하고, 알고, 아파하고, 웃고, 맞장구 치고, 올곧은 정신으로, 껴안으며, 그렇게 그네들을 보냈다. 이제 아무 것도 엘리엇을 위로할 수 없었다.
눈이 오는 날 엘리엇은 묘지를 영영 떠났다. 겨울 담요가 덮히고 있었다. 엘리엇은 방돔 광장 탑 아래서 자리를 잡았다. 허기진 속도 더는 보채지 않고, 다 닳은 발톱도 아프지 않았다. 꼬박, 꼬박,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검은 어둠 속 목소리가 물었다. 아이야, 이제 갈 준비가 되었느냐, 고. 엘리엇은 꿈 속을 헤메다 문득 물었다. 나를 지으신 분이시지요. 그 차분한 질문에 목소리는 따뜻히 대답했다. 예쁜 아가, 내가 너를 지었단다. 엘리엇은 꿈 속 어둠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예.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커다란 손길이 엘리엇의 머리를, 아주, 부드럽고, 차갑게. 쓰다듬었다. 네 죽을 자리를 고르거라. 엘리엇이 이미 알구 있습니다. 대답하자. 목소리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가야, 너는 네 할 일을 다했단다. 너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길을 찾아 떠난 것이었고, 드디어 네 집을 찾았구나. 죽음이 있는 곳에서 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배우는 법을 알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도왔느니라. 그러니 이제 쉬어라. 꿈에서 그네들을 만나거든 이미 용서했다고 전하렴, 네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는지도. 자, 자거라. 자장, 자장,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그렇게 엘리엇은 꿈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니, 삶에서 떠나, 영영 잠이 들었다. 방돔 광장 탑 아래 얼어 죽은 새 한마리는, 행복하게 웃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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