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시지프스.
시지프스 보엠.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살아낸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모든 것은 어긋난다.
모든 것은 일방적이며, 무관심하고, 차가우며, 동시에 어긋난다. 단 한번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시지프스 보엠에게 삶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앞의 모든 것들은 단 한번도, 내가 뻗은 손에 와 닿지 아니하였으며 동시에 그들이 뻗은 손 또한 내게 와 닿지 아니하였노라고. 모든 것은 그저 어긋날 뿐이었다. 착오錯汚의 나날들. 시간 여행을 하는 존재는 어긋남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나갔다. 늘 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에 있었으며,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벌였다. 작가는 그를 붙잡아 이끌었던 모든 중력들에 저항했다. 예술, 사랑, 혁명, 역사, 시대의 부름, 그리고 글과 벗들. 모든 것들은 그 작가를 이끌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 모든 끌림에 저항하였다. 내 안의 활기를 되살리려 하지 말라! 온 몸으로, 온 몸으로. 그는 저항하고 반항했다. 무력하게 살고자 했다. 본디 생명을 타고났으나 죽고자 하였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영리한 시지프스였으며, 그에 대한 죗값을 치루기 위해 삶이라는 저승에 살았다. 온 몸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도 닿을 수 없었다.
작가의 어긋남은 영원하지 않을 사랑에서 왔다. 첫 번째로, 그 시지프스는 열정이 담긴 손길을 자신의 평생의 사랑을 향해 뻗었다. 젊은 작가, 알제리의 햇볕 아래 자란 사람인 알베르 카뮈를 향해. 보엠은 무감한 것들 사이에 따갑게 느껴지는 햇살을 묘사할 줄 알았던 이를 사랑했다. 자신의 마비를 일깨워 준 번개. 번쩍이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그의 글이 시지프스를 생명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 번개를 일으켜 생명을 창조해낸 창조주가 되었다. 보엠은 그의 피조물로서,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바쳤다.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의 작가이며, 시지프스 보엠의 문학적 창조주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듯이. 피조물은 창조주를 잃는다. 잃어야만 성장한다. 남프랑스의 햇살 아래. 작가는 자신의 창조주이자, 평생의 사랑을 잃었다. 카뮈는 그가 창조해낸 부조리와 함께 죽었다. 자동차 사고. 위대한 작가의 죽음은 고작 브레이크의 고장으로 촉발되었지 않은가? 보엠은 그 불행을 목격했다. 그렇게 본디 닿고자 했던 손은 녹아 사라졌으며, 허무가 작가의 손이자 머리가 되었다.
작가의 저항은 또한 영원하지 않을 혁명에서 왔다. 두 번째로, 시지프스는 형별 속에 놓인 자신을 늘어뜨린 채 삶이라는 바위가 자신을 짓누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무감했다. 마비되어버린 삶이라는 슬픔을 상상해보라! 그는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슬퍼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울 일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웃을 일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허무가 그의 손이 되어 그 자신을 '싸구려 작가'로 칭하게 만들었다. 글로써 삶의 부조리를 견뎌 내게 만들리라는 예술의 다짐은 잊혀졌다. 빛을 향해 오르려던 의지는 짓눌리고, 어둠에 잠겨 있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쓰고, 쓰고, 또 썼으며, 그 자신이 쓴 글을 싸구려 음식들처럼 집어삼켰다. 하루를 쓰면 하루를 살았다. 쓰지 않는 날에는 포도주를 마셨다. 온전한 창작이란. 그가 꿈꾸던 모든 것들이란 그저 구름 위의 성처럼, 찰나에 붙잡혔다 흩어져 버린 것이다. 그 흩어짐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오만하지 않는 자들은 침묵하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의 삶에는 침묵하지 않을 만큼 오만한 자들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머리들! 거리를 뛰어 다니던 젊은 혈기들! 그리고 마음 깊이, 슬픔으로 벼려진 의지를 쥔 채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던 벗들. 시지프스가 그 스스로의 바위에 짓눌려 정말로 죽기 전에, 그 손들이 작가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카페 뮈쟁의 뒷방에 모이던 아베쎄의 벗들이, 그들의 친구들이, 말 많던 한 새가, 작은 새앙쥐 친구가. 작가는 그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줄도 모를 만큼 무감각했다. 온전한 마비 속에서, 그는 한 없이 부유하다가 문득 숨이 막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작가를 향해 한껏 손을 뻗어 순수한 감정을 내밀었다. 의지, 꿈, 이상! 그리고 이 얼마나 활기 넘치는 단어들인가! 오랫동안 곁에 두어보지 않았던 것들 아닌가! 작가는 자신에게로 뻗어져 온 손들이, 자신이 지어야만 할 바위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에 저항했다. 몸부림을 치며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라고 외쳤다. 그는 그 손길들과 어긋나 더 깊은 구덩이로, 죽음으로 빠져들고자 했다. 이 시지프스는 너무나 오만했던 것이다. 동시에 너무나 나약했다. 숭고한 의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동시에, 작가는 그 숭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동경했으며 또한 한 켠으로는 의지했다. 그 스스로 내내 부정하였던 사실은 그가 벗들과 영영 이별하게 된 날 밤에서야 명확해졌다.
작가의 어긋남은 다시, 영원하지 않을 사랑에서 왔다. 세 번째로, 시지프스는 스승을 만난다. 자베르 부인을. 놀랍도록 작가와 닮은 무감함과, 동시에 그보다 훨씬 큰 심장을 지니고 있던 이를. 작가에게 물으라.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느냐고. 그러면 이 시지프스는 잠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일을 멈추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펜에게 묻는다면, 그 펜은 스스로 그녀의 이름을 써 내려 갈 겁니다. 나의 기억이 영원하지 않아도 나의 글은 영원히 그녀를 기억할 겁니다.
마리-모르간.
작가는 자신과 꼭 같은 이를 만났다고 여겼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 옳지 않은 장소와 알맞지 않은 일에 연루되는 자.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의 오만함이 다시 발목을 잡았을 줄을. 비슷함과 똑같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체성을 이룬 한 부분이 같다고 하여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스스로의 오만함이라는 발뒤꿈치에 화살이 박혀 절룩대게 되었다. 작가가 어긋났을 때, 그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작가와는 다르게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 저항하고자 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진실로 살고자 하는 이에게, 삶이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을지를. 생명이라는 아주 각별한 잉크로 써낸 것이다. 그리고 그 종이는 시지프스 보엠, 작가 그 자신이었다. 작가는 부인의 생명으로 기록된 한 기억을 가진 종이가 되었다. 마리-모르간이 그에게 손을 뻗었을 때, 보엠은 저항했다. 기어이 내게 미련과 의지를 동시에 안겨 주려 하느냐는 말과 함께. 그러나 후에 시지프스가 부인에게 손을 뻗었을 때, 그가 만질 수 있는 것은 허공이었다. 무無, 존재의 사라짐. 시지프스가 벗들에게 손을 뻗었을 때, 그곳에는 불쾌하게 들러붙어 오는 죽음의 향기만이 있었다. 그는 다시 어긋난 것이다. 1832년 6월 6일이 지나고 나서야, 작가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든 것에서 어긋난 삶을 살았구나.
모든 작가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시지프스 보엠에게 물으라, 죽음이란 어떤 것이냐고. 진정으로 바랄 때에는 오지 않으며, 진정으로 바라지 않을 때에는 늘 눈 앞에 서 있는 것이라고. 그는 답할 것이다. 1832년 6월 6일, 그는 바라지 않던 죽음을 맞았다. 그것은 단지 생명의 죽음이 아니다. 작가가 가졌던 자아의 죽음이다. 육체의 죽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견디어 내기 어려워 때로 육체의 죽음까지 촉발하는 죽음이다. 비극의 이야기들처럼, 작가에게 뻗어졌던 손들은 제때 붙잡아지지 못해 허공으로 사라졌고, 그들이 택한 온당한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시지프스 또한 정신적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마지막인가? 그는 자신의 끝을 맺을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작가는 어긋난다. 벗과, 스승과, 대화를 나누던 가까운 이들을 모두 잃은 후에서야. 가장 죽음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순간에. 정신이 그를 마지막 타르타로스의 고독한 구석으로 끌고가기 직전에. 그는 자신의 바위를 굴려 올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삶에 둘러싸인 죽은 자는 마침내 죽음에 둘러싸여 산 자가 되었다. 펜을 놀리던 자는 스스로 종이가 되어 모든 기억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어긋난다. 자발적 시지프스가 되어. 기꺼이 그 형벌을 떠안은 자가 되어. 모든 의지와, 활기를 흡수한 이의 책임감을 지고. 죽음을 피해 도망다닐만큼 영리한 머리에 대한 형벌을 짊어진다. 삶이라는 바위를 굴려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시간은 더 이상 새처럼 날지 않고, 바위처럼 무거워지며, 흘러가는 삶들은 문자와 언어가 되어 발자국처럼 남는다. 그는 그렇게 어긋난다. 죽음으로부터 반항하며, 삶을 향해 온 몸으로 달려간다. 삶의 의미를 향해, 자신에게 영원히 의미를 주지 않을 세계를 향해 부딪힌다. 그는 반항한다. 그러니 삶을 생각해 보라.
모든 것은 일방적이며, 무관심하고, 차가우며, 동시에 어긋난다. 단 한번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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