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전야 1장

1-4. 꼬마 탐정

1. 동쪽 구역의 비밀

사라

보시다시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일껏 수용하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이래서는 구빈원도 얼마 가지 못할 거예요… 저…… 아!

아이지스

사, 사라 언니는 매일 엄청 고생해요. 구빈원을 살리려고 제일 아끼던 물건도 팔았어요. 저, 저희를 도와주시면……

가만히 두 사람이—주로 사라가—점점 과장된 연극을 펼치는 걸 보고 있다 보면, 당신은 어떤 무력감마저 느낀다.

바로 그 때, 작은 종이 뭉치가 당신의 머리를 때린다.

사라

어떤 놈이——

사라를 진정시키고 종이 뭉치를 펼쳐보니,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써 있다.

“지갑을 돌려받고 싶다면, 혼자 뒤뜰로 와라.”

……


종이에 찍혀 있는 점을 따라 뒤뜰로 나온 당신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담장 밑에서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젠킨

명심해, 만약 그 후원자라는 사람들이 우리를 배신하면, 네가 가서 알려.

그 여자는 반드시 아이지스를 시켜서 병든 미치광이한테 보낼 거니까, 그냥 네가 데리고 와.

키퍼

병든 미치광이가 누구지?

젠킨

앗!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그리고, 내가 혼자 오라고 했잖아!

작은 쥐는 후드를 쓴 아이의 어깨 위로 뛰어 올라, 긴장한 듯 수염을 곤두세운다.

키퍼

그건 내 지갑이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젠킨

시치미 떼지 마, 이 쥐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백발의 언니는 집사로 위장했고, 노란머리는 길을 물어보는 일을 맡았고, 당신만 손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젠킨

당신이 책임자라는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도련님이라는 걸 증명할 수도 없잖아.

젠킨의 손에는 어느새, 어디선가 꺼낸 가죽 지갑이 들려 있다. 익숙한 질감과 모양의 그것은, 윗면에는 미사그 대학의 교표가 새겨져 있다. 확실히 오기에르의 지갑이다.

젠킨

맞지, 브라운?

브라운

찍, 찍찍!

오기에르

아! 내 지갑!

오기에르가 급히 지갑을 잡으려고 손을 뻗자, 젠킨은 옆으로 비켜서고, 지갑은 또 마술처럼 사라진다.

젠킨

너무 무례하잖아, 금발. 너네 미사그 대학 사람은 모두 이렇게 빈민가의 소녀를 얕보나?

키퍼

너…… 여자였어?

젠킨

눈에 문제 있는 거 아냐!? 당연히 여자지, 여자!

젠킨

됐어, 이런 얘긴 그만 하고, 너네 내 말 잘 듣는 게 좋을걸? 안 그러면——

라모나

알겠습니다, 약속하죠. 교환 조건으로써, 당신이 이야기한 그 병든 미치광이에게 저희를 데려가 주세요.

젠킨

……어?

라모나

구빈원을 조사할 사람으로 저희가 필요한 거 아니었나요? 이야기해 주세요, 누구를 찾고 있죠?

젠킨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라모나

얘기할 거잖아요. 그렇다면 불필요한 탐색은 건너뛰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낫죠.

라모나

구빈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에 대해 조사하려는 거죠?

저희도요. 조사를 도와드리는 것은 작은 호의일 뿐이에요.

젠킨

어…… 어떻게 알았어?

라모나

간단합니다. 당신에게는 빠른 손과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 안정적이지만 불법적인 수입이 있죠.

라모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습관적으로 구빈원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라모나

여러분에게는 잘 갖추어진 여러분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당신이 주요한 일을 맡고, 그들은 당신을 엄호하면서 당신이 순조롭게 달아날 수 있는 길을 확보합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보수로 한 잔의 수프를 제공하죠.

라모나

그럼 당신은 길거리에서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고, 구빈원에서 생활할 필요도 아예 없어요.

더군다나, 허락 없이 구빈원에 들어가면 크게 난처해질 수 있습니다.

라모나

왜일까요? 무엇이 당신을 부추기고, 벌금을 내거나 심지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서까지 구빈원에 남게 만드는 걸까요?

라모나

여기에, 최근 인근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까지 합하면, 추측을 하나 할 수 있어요.

당신의 가족 혹은 친구가 실종되었고, 그들의 실종과 구빈원과의 관련성을 당신은 의심하고 있다.

여자아이는 멍하니 라모나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반응하지 않는다.

젠킨

우, 우리 서로 아직 열 마디도 안 한 것 같은데, 마치 열흘은 미행한 것처럼 말하네……

라모나

당신이 오기에르의 지갑을 가져갔을 때를 포함하면, 우리는 서로 총 열여섯 마디를 말했습니다.

현실적인 관찰을 더하면, 당신의 생애를 추리하기에는 충분한 대화였죠.

젠킨

……너희는 확실히 엄청 대단하네. 그렇다면, 브라운.

브라운

찍!

브라운이라 불린 쥐가 찍찍거리며 지갑을 물고 나무에서 뛰어내려, 오기에르의 품을 향해 지갑을 던진다.

젠킨

나는 너희를 데리고 병든 미치광이들에게 갈 거야. 알고 있는 것들도 전부 말해줄게. 대신——

젠킨

나를 도와 구빈원의 유령을 물리치고, 내 언니, 메이슨을 구해줘.

일행은 젠킨을 따라, 구빈원의 복도를 헤치고 나아간다.

젠킨

언니는 매주 네 번씩, 구빈원에서 옷을 받아다 집에 가져와서 풀을 먹였어. 그 옷들도 깨끗하진 않았던 건지, 언니는 최근 유행하는 이상한 병, “히스테리증”에 걸렸지.

젠킨

마침 구빈원에 의사가 와 있던 참이라, 언니는 내친김에 검사를 받으러 왔어.

얼마 전, 치료를 받으러 갔다 온다더니 집에 오지 않았고.

젠킨은 애타하는 듯이 보였다.

젠킨

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언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점점 생각이 나지 않아.

젠킨

가끔 언니가 남긴 것들을 보면 잠시 떠올릴 수 있다가도, 금세 잊어버려.

라모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는, 당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젠킨

왜 안 가? 병든 미치광이를 보러 가는 거 아니었어?

키퍼

네 언니에게 생긴 병에 대해서는…… 우리가 조금 짐작가는 게 있어.


……

통신을 통해 정보공개 요청을 하고 허락을 받은 뒤, 라모나는 천천히 젠킨을 향해 돌아서서 정보를 해설하기 시작한다.

라모나

젠킨, 당신의 언니는 융식이라고 이름붙여진 특수한 현상의 영향을 받았어요. 이 현상은, 한 사람의 존재를 천천히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죠.

라모나

육체, 신분, 이력, 사회관계…… 모두 소리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됩니다.

라모나

당신이 말한 그 병든 미치광이 이야기는 융식 초기의 증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당신의 언니는 존재가 지워지기 시작한 지경에 이르른 겁니다, 두려운 건 그가……

라모나

젠킨, 메이슨이…… 실종된지 오래됐나요?

젠킨

27일이 지났어. 그날 이후로 매일 날짜를 셌거든.

라모나는 난색을 표했고, 젠킨은 콧방귀를 뀌었다.

젠킨

알아, 당신들은 희망이 없을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생각에 언니는 아직 살아 있어…… 거리에서 사는 아이의 직감은 정확하거든.

젠킨

그러니까… 빨리 언니를 찾아야 해. 안 그러면 언니를 직접 만나고도 못 알아볼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릴 테니까.

오기에르

슬퍼하지 마세요, 저희가 당신을 도와 언니를 찾을 테니까. 얼굴을 한 번 볼 수만이라도 있다면,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

라모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가 약간 우울한 얼굴을 내비치는 걸 보면서, 돌이 교실에서 말해주었던 내용을 떠올린다.

“존재가 사라지는 건 융식의 말기 증상이야. 그리고 융식이 진행되는 걸 되돌릴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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