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카나] 포식자 - 3(完)
우리들은 인간이다
환생(幻生)
그래서, 어떻게 됐어? 흥미롭다는 듯 물어오는 카나에게 아쿠아는 애꿎은 머리칼만 몇 번이고 쓸어넘겼다. 손바닥을 덮은 붕대가 쓸릴 때마다 거칠게 헝클어지기를 반복했다.
“……별 말 없었는데.”
“평소에도 어지간히 사고 치고 다니나 봐? 이렇게 다쳐 가도 그러신다니.”
“그런 거 아니거든.”
볼멘소리에도 장난스럽게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반박의 여지 없이 싱거웠다. 뭘 기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턱을 괸 채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살며시 흘리는 카나였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힘들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타인의 삶까지 망가뜨릴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 잠깐 상처를 감싼 붕대를 바라보던 아쿠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동생은 좀 걱정하긴 했는데.”
“흐—응. 동생이 있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는 카나를 그가 곁눈질로 바라본다. 핀잔 아닌 핀잔을 늘어놓는 루비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나갔다 돌아오기만 하면 다쳐 오냐던 모습을.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잖아—라던 아쿠아에게 루비는 입을 댓 발씩 내밀어 보였다.
“그래도. 안 아프고 건강한 게 얼마나 행운인데.”
“그건 그렇지…….”
“하여튼간에, 오빠는 자기 몸 아낄 줄은 모른다니까.”
달리 반박할 여지도 없는 말에 아쿠아가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고 있자 루비가 의아하다는 어투로 재차 물었다. 근데, 밖에서 다친 거지?
“어떻게 처치까지 하고 돌아왔어?”
“아, 이거.”
무심히 떨어뜨린 눈길이 꼼꼼하게 싸맨 붕대 위에 가서 머물렀다. 잠깐의 뜸 후에 입을 열었다.
“……좀 특이한 애를 만났거든.”
특이하다는 게 맞을까. 어떻게 표현했어야 좋았을지.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즐거워 죽겠다는 듯 헤실거리는 카나를 보면서 한 생각이었다. 어째서인지 어떤 말도 눈앞에 선 작은 체구의 아이를 온전히 그려내기에는 역부족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이 웃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언뜻 보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는.
아쿠아는 무얼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하고 싶었던 건 이거야. 역시, 수긍하기는 어려웠으나. 카나는 인내심 있게 그런 그와 어울려주었다. 산길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아쿠아를 이끌어주면서.
“그러고 보니까, 언제 돌아가?”
“글쎄…….”
문득 던진 그 질문에도 그는 눈을 피해 내리깔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뒤면 헤어질 거라고 매정하게 구는 것일지도. 그런 거라면 좀, 반대로 굴어주는 편이 좋으련만. 언제까지고 오지 않을 밤을 기다리기는 싫었기 때문에.
“헛걸음하기 싫으니까 웬만하면 얘기 좀 하지.”
볼멘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어 중얼거림을 내뱉는 아쿠아.
“헛걸음?”
“그래! 널 기다리는 게 일과…….”
일과처럼. 널 기다리는 게 일과처럼 됐는데. 쏘아붙이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 일과. 그 짧은 며칠 사이에 둘 사이에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자연스레 생겨나 있었다. 밤을 데리고 찾아올 너를 기다리고, 할 일도 없이 잎이 떨어지며 뼈마디가 드러나기 시작한 삼림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고, 그렇게 의미도 보람도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낸 너를 다시 새벽으로 배웅하고. 그래. 그런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시간 낭비로만 보이는 일상을 나는 기다리게 됐다. 지극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그 시간 위에 타인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하루의 일과.
“날 기다리게 됐구나.”
“뭐야, 그 반응은.”
“아니……그냥.”
아쿠아가 되뇐, 어째서인지 웃음기가 살짝 섞인 말에 이번에는 카나 쪽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버린 건 왜일까.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 아래 조금은 즐겁다는 얼굴을 한 네가 좋아서, 겨우 반쪽 정도 찬 달빛으로는 전혀 빛나지도 반짝이지도 않는 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으면, 그런 욕심에.
왜 그때의 너는 또 다시, 울 것만 같은 웃음을 지었는지.
안 될 것을 바란 벌은 언제나처럼 늦지 않게 도달했다. 선물처럼.
아쿠아가 찾지 않는 밤을 내버려 둔 채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외부인, 언제 발길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당연한 사실이었건만. 그 며칠 사이 너를 기다리는 것이 더 당연하게 되어버린 지금에는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인기척 하나 묻지 않은 채 실려 온 바람 소리가, 발자취의 흔적을 담지 않은 낙엽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허공을 향해 실낱같은 웃음이 섞인 한숨을 뿌렸다. 나, 네가 있어서 즐거웠던 거구나. 찾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간만에 찾은 먼지 쌓인 작은 기쁨에 나는 미소지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서.
쓸쓸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혼자 짓는 삶이란 그런 거니까. 다시 무뎌지려면 또 수개월, 수년이 지나야겠지. 초조한 것처럼 탁, 탁, 애꿎은 테이블만 손가락 끝에 힘을 실어 두드리고 있던 카나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쪽 벽면 위로 장식처럼 가지런히 걸어두었던 로브를 낚아채듯 그러쥐었다. 역시 이건, 이건 아니다. 이대로 영원히 기다리고 싶지 않다. 밤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너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어.
결국 그 아이는 끝까지 오지 않았다. 그날 돌아가는 길 위에서 내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떴다. 반쪽으로 어그러진 달 조각이 하늘 위로, 밤을 비추는 눈물 속에 맺혔다.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
한참을 그냥 쳐다봤다. 목격한 것이 기괴한 탓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시선. 그뿐이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웃는 것도, 멋쩍게 손이라도 흔들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능청스럽게 굴지도 못했다. 그날 모든 걸 그렇게 정리했다고, 다시 마주치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일까.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지 알 방도가 없다. 그저 지금 카나의 머릿속을 터지도록 채운 의문은 하나였다. 왜,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렇게 지친 모습으로.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났다. 카나는 아쿠아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몇 번인가 두 사람이 만났던 곳을 찾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쿠아는 그의 앞에 서 있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태도에서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헤맸구나. 나를 찾아서?
“……용케도 찾았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닌 것만 같은.
“…….”
혼잣말처럼 내뱉은 짤막한 인사가 줄곧 아쿠아를 향했던 눈길을 거둬들였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허락이라도 되는 양 아쿠아가 여전히 입을 꼭 다문 채로 그에게 다가왔다. 다녀왔어. 아쿠아가 꺼낸 첫마디.
“……흐—응, 의외네. 다녀왔다고?”
“…….”
“난 다시는 안 올 줄 알았지 뭐야.”
가볍게 건네는 듯했지만 찌르는 구석이 분명했다. 아랑곳하지 않는 새파란 눈동자가 내리깐 채 카나를 비췄다. 반쪽짜리 달빛에 섞여 일렁이는 붉은빛을.
“오늘 돌아가.”
“……아, 그러셔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행차하신 거야? 그 말 하려고? 턱 밑까지 치민 울화통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처음으로 그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빌었던 바람이 얼마나 위선적인 것에 불과했는지 떠올리게 됐다. 당장 눈앞에 서 있는 너를 상처입히고 싶다. 상처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네게 받은 만큼, 너도 나로 인해 슬퍼했으면. 그런 유치하고 추한 심정을 맞닥뜨리게 된 지금.
“……네가 말해달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오늘 헤매면서까지 날 찾았다고?”
“…….”
“그동안은 입도 뻥긋 안 해놓고?”
아쿠아는 그에 화답하듯 어느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뼈 있는 말에 자신을 방어하지도, 마주 날 선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다. 피곤한 얼굴에 한층 더 그늘이 내렸다. 전부 네 말대로였으니.
그랬다. 그 아이가 더는 산을 찾는 불청객을 기다리지 않길 바랐다. 이 이상 겹겹이 싸인 숲속을, 진실을 감춘 어둠을 헤집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느 날 불현듯 사라져도 괜찮은 사람. 우리 관계는 서로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여기에 다시, 있는 거야. 너를 이 자리에서 찾기까지 수십 번 되물은 질문.
카나가 한 발짝, 아쿠아에게로 다가섰다. 곧장 올려다보는 섬뜩한 붉은빛이 닿은 푸른색 눈동자를 금방이라도 뚫어버릴 것만 같이 예리했다. 마주 내려다본 시선이 흔들렸다. 그런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끔히 감정을 감춘 무결한 얼굴이었음에도.
“왜 돌아왔어?”
“…….”
“기다릴 땐 모른 척 해놓고. 더 나랑 엮이기 싫은 거 아니었니?”
떠나는 날도 알리기 싫을 만큼.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문자 틈새로 자리한 잔잔한 분노가 흘렀다.
“……그러게.”
헛웃음이 날 정도로 대화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답이 스스로에게도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이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네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날 밤, 아무렇지 않은 척 달을 등지고 돌아갔을 네 뒷모습을, 이 거대한 숲 아래에 선 아이의 한없이 작고 초라한 상심을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알리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관계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는 걸 피한 이유가 뭐야? 그 쪽이 옳은 편이라는 변명을 이용하려던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사실은 네가 나를 기다리길 바랐다고, 나를 필요로 하길 바랐다고 하지 않을 수 있어?
너를 이 어둡고 시린 숲에 묶어둘 단 하나의 방법을. 나도 이기적으로 굴고 있기는 마찬가진데.
더 이상 그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고집스럽게 피하던 아쿠아로부터 가까스로 쥐어짜낸 듯한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사정이 있었어.
“……잖아…….”
“아리마…….”
“싫다고 했잖아…….”
기다리기 싫다고, 했잖아. 아랑곳않고 쏘아붙이는 날 선 음성이 파고들었다. 잘 다듬어진 심장 밖으로 보기 싫게 툭 튀어나온 모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그 눈을. 이런 모습을 보인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나는 여기에 있기 싫은데! 여기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한 채로……!”
“…….”
“갑자기 왜, 뭐 같잖은 동정심이라도 생겼어? 그렇게 매달린 내가 불쌍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디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 셈이야? 꾹 눌러담은 목소리가 흔들렸다. 쏟아지는 비난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는 아쿠아의 얼굴을 비추는 핏빛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산산이 깨질 것처럼 달빛을 부수며 빛나고 있었다. 조각난 붉은빛의 파편이 구차히 덧붙이지 않은 망가진 심정을 대변했다. 다시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기약조차 없는 기다림이 싫다고 했는데. 끝까지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구나. 이런 식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너에게는.
결국은 멋대로 바란 나의 잘못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너에게. 그래. 내 탓.
“……그럼 어떻게 해야 했는데.”
네가 알려줘 봐. 격앙된 감정을 누르기라도 하듯 차분한 아쿠아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부터 주변을 덮었다. 유치한 심술이었다. 어차피 아무런 답도 없을 이야기.
“애처럼 굴지 말라고.”
“하, 네. 애처럼 굴어서 진짜 미안하네요.”
나 때문이라는 거, 다 핑계잖아, 다른 이유가 있는 거면서. 투정에 지나지 않는 불평에 아쿠아가 처음으로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래, 사실 거짓말이야.
“아쉬워.”
“……뭐?”
“좀 더 비참한 꼴이 되길 바랐는데. 이런 걸 바라기라도 했어?”
이렇게 말했어야 네 직성이—. 문장이 채 끝맺기도 전에 카나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아쿠아의 시선이 턱밑까지 다가온 분해 죽을 것만 같은 눈빛과 교차했다. 숨결이 간단히 끼쳐온다. 어디서 묻어왔는지 모를 풀 냄새, 밤과 물, 흙을 한데 뒤섞어 놓은 듯한 그런 향기. 목 뒤편을 죄는 팽팽한 긴장감에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짜 열 받아서 못 봐주겠네.”
“갑자기 이게 무슨 짓…….”
“너 말이야.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렇게 미움받으면 속이 좀 시원해?”
카나가 던진 물음에 물빛 눈동자 위로 잠깐 파장이 일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면은 의문을 집어삼키고 곧 평상시처럼, 어느 것에도 흥미 따위 없는 양 잠잠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유. 이유라. 그런 거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너도 똑같잖아.”
“뭐?”
“네가 제일 잘 알면서.”
네가 그랬듯이. 씹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달빛을 붉게 물들여 떨어뜨리고 있는 눈동자가 차츰 커졌다. 미움을 받거나 사랑을 받거나,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 뿐이다. 그런 일에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살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 이미 죽었다. 허옇게 드러난 뼈의 형체마저 부서진 채 온전치 못한 사자(死者)를 앞에 두고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아마미야 고로는 죽었다. 돌이킬 수 없는 진실. 나는 17년 전 그날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알려달라고.”
“…….”
“잘 아는 네가. 이게 나빠?”
보라고, 너도 어차피 이렇게 살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적나라하게 타인을 비방하는 말소리가 갈라지고, 심장에 금이 가고, 믿고 있던 정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겨우 기워놓은 조각들로 위태롭게나마 형태를 유지할 정도였던 ‘나’의 존재는 무너졌다. 시체를 찾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의 끝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그렇게나 헤맨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는데도. 죽음에 다음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생을 부정당하고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감각.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그래서 돌아왔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다른 것’의 인생을 살아 본 너라면 정답을 알고 있을까. 애초에 그렇게 ‘살아간다’는 거,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미 죽었는데.
답을 찾고 싶었다.
“당장 눈앞의 사람이 사람이 아니면?”
“갑자기 그건 또 무슨…….”
그래도 살아갈 수 있어, 라고, 그런 헛된 희망으로 점철된 망상이라도 좋으니.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미 죽었다면 어떡할 건데.”
딱히 정말로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든 물어봤자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무서워하며 피하거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거나. 그냥 조금 겁을 주면 그걸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너랑 다르지 않게.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전부 포기하고 싶어졌으니까. 죽은 목숨에 어떤 가치가 있지.
목 언저리를 속박하던 힘이 점차 약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한참을 자리에 붙박인 듯 옷깃을 그러쥐고 서 있던 카나가 끝내 손을 떨어뜨렸다. 그러니까 이건, 역시 어떻게 되어도 좋을 이야기.
“그딴 거…….”
그런 이야기.
“……알 게 뭐야.”
칫, 하고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손을 있는 힘껏 낚아챈다.
“네 몸에 난 상처 말인데. 누가 만든 건지 잊었어?”
카나는 제 손보다 한참 큰 아쿠아의 손을 살짝 비틀어 쥐어 보인다. 여전히 분을 못 이겨 울 것만 같은 눈을 한 채. 미처 아물지 못한 상흔을 감춘 붕대가 달그림자 아래 창백히 드러났다. 칼로 새긴 상처와 흘러내린 피와 온기. 어떤 의미인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것. 아쿠아가 불만스러운 듯 재차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자 그제야 잡았던 손을 놓아주는 카나였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경쾌한 몸짓으로 돌아서며 덧붙였다. 게다가.
“그런 거라면 말이지. 더더욱 사람이겠네? 나도 사람이니까.”
“…….”
“네 말대로, 내가 그랬듯이.”
대답 대신 어깨 너머로 돌아온 얕은 한숨에도 카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보란듯 한층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제일 잘 알 거라고 했지.
“그래, 제일 잘 알아. 미움받기 위해 살아가는 거, 힘들었어. 죽을 만큼 힘들었어.”
“…….”
“그러면서도 기대를 못 버리는 내가, 너무 싫어서…….”
흐릿한 은빛 아래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카나의 모습이 번지듯 흔들렸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흩어져 자취를 감출 것만 같은 물안개처럼. 기약도 없는 약속이 싫어.
“혼자 남겨지는 건 무서우니까.”
지나쳐 온 수많은 밤을 떠올렸다. 떠난 엄마를 기다리고, 오지 않을 손님에 부서진 기대를 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내놓았던 시간을.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유령 같은 형체 위로 선명한 붉은빛이 어둠 속에서 나부꼈다. 고개를 돌려 아쿠아를 향한 물기 어린 시선이 떨어졌다. 상처를 들추는 입만은 짧은 호를 그렸다. 잘못 끼워 넣은 퍼즐 조각을 연상시킬 만큼. 그래서, 아쿠아.
“난……그냥 이 바보 같은 기다림을 끝내고 싶었을 뿐이야.”
멍청한 짝사랑 같은 이야기.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너는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쿠아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딱 한 마디.
“미안.”
그뿐이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거절의 의미일까, 사과의 의미일까. 둘 다였나. 그래도 지금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돌아왔고, 다시 한번 혼자가 된 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위선이든 타산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이걸로 제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기다려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
돌아가자, 눈가에 어린 눈물을 훔친 카나가 대꾸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잖아.”
삶의 경계
숲길을 걸었다. 11월의 밤이 길었다. 길고 길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리가 부러지고 발이 부르트도록 끝없이 걸어도 해는 뜨지 않고 숲의 끝에 도달하지도 못할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산기슭에 이미 다다라 있었다. 아쿠아는 쉬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달이 꽤나 올라와 있었으니까. 결국 쉴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나쁘지 않아 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히 숨만 들이쉬고 있는 그에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로브를 털고 돌아온 카나가 곁에 자리를 잡으며 넌지시 일렀다.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그래.
“쉬는 동안 봐 줄 테니까.”
쪼그려앉은 채 신발에 붙은 낙엽을 손짓 몇번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지켜보던 아쿠아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 위로 아무렇게나 팔을 얹고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그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쓰러져있던 그날 그 장소.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되는구나. 네 옆자리를 지키러.
“……넌 안 피곤해?”
“낮밤 바뀐 지 오래야. 별걱정을 다 하네.”
잠깐 이어지나 싶던 두 사람의 대화도 그걸로 끝이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이 정적을 뚫고 들려올 뿐이었다. 잠들었을까. 하릴없이 바람을 좇으며 유영하던 눈동자가 옆에 기대 누운 사람을 향했다. 미동도 없이 가만가만 호흡만 이어가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끝이라. 아쉽다는 생각 같은 건 별로 하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는 왔어야 하는 일이고. 그건 아쿠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충 팔을 얹어 가린 눈 밑으로 음영에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다. 그동안 많이 지쳐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하는 수 없이 다시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때도 쓰러져 있는 너를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어 꽤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이따금씩 죽은 듯이 고요한 그를 담은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쳤다.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불현듯 갑자기 숨을 멈춰버리면. 살아가기 지쳤다는 이유로, 혹은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이어가던 숨을 포기한다면. 네가 들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하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그런 걱정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해. 죽음을 보여주기로 결정했을 때의 네 얼굴을 봤으니까. 나를 멈추겠다고,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 네가 가진 진심까지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 듯한 연기를.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조차,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카나는 내뱉은 숨결이 지나고 있을 뺨을, 아래로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을 피부 위를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아쿠아가 죽지 않았다는 증명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랬다. 나는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았어. 필사적으로.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어……?”
눈길도 주지 않는 아쿠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상치 않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당황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잠든 줄 알았는데. 다시 낮게 깔린 음성이 어둠을 타고 닿았다. 가까워. 그제야 숨이 끼칠 만큼 다가가 있음을 깨달은 카나가 일순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 그냥 좀, 걱정이 돼서……!”
“…….”
“바, 바보 같은 짓을 했네.”
황급히 아쿠아 쪽으로 기울었던 상체를 뒤로 빼는 카나로부터 민망함을 가득 담은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짜 멍청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습관처럼 입술을 세게, 아주 세게 깨물었다. 걱정이 됐다는 말에 내내 눈을 감췄던 팔이 움직여 떨어졌다. 물빛을 닮은 눈동자가 카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한참을 멀찍이 떨어진 채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쿠아가 나른하게 대꾸했다. 본다는 게 날 본다는 말인 줄은 몰랐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 열 받아…….”
“걱정 안 해도 돼.”
“…….”
살아 있으니까. 반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 말이 어째서인지 가슴 한켠을 더 아리게 만들었다. 여전히 너는 모르니까, 그때 네가 어떤 얼굴을 했는지 너는 볼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쉽게 거짓말을,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 보이곤 해.
“난, 난 그냥…….”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몰라 어렵사리 꺼낸 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뻗어온 팔이 단호한 힘으로 카나를 끌어당겼다. 균형을 잃은 몸이 그의 위로 무너졌다.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살아 있으니까.”
“…….”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아쿠아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머리칼을 담담히 쓰다듬었다. 쓰러져 기댄 곳에서 규칙적인 고동이 전해졌다. 심장 소리. 선명히 들려오는 맥박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심장을 맞대고 살아있다. 살아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울림이 마구 떨리는 심장을 끌어안았다. 몇 번이고 숨죽여 내뱉는 호흡의 흔들림이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너는 나의 곁에 살아있고 그 사실이 피부에 닿는다. 고작 이런 것에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이는 이유는 뭘까.
“아까 한 말은 그냥 잊어버려.”
쓸데없는 소리 탓에 겹친 쓸데없는 불안. 아쿠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무서워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걱정이 아닌데……. 허공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깊은 자국을 남겼다. 여전히 아쿠아에게 맡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로 카나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움직여 보인다. 가슴께를 누르는 묵직한 감정을 삼켜 버리려 노력하면서.
“……그냥, 가끔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야.”
눈에 보이는 것과 네 말, 어느 쪽을 믿는 게 좋을지. 밤하늘과 시야를 덮은 녹음을 올려다보던 아쿠아가 카나가 멈춘 말소리를 이었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쿠아가 건넨 물음을 곱씹으며 차근히 되뇌는 목소리가 푹 숙인 고개 아래로 위태로이 떨어진다. 물기 어린 대답을 꼭 눌러 담은 속삭임이 작은 떨림을 만들어내어 흔들리며 퍼졌다. 자신을 달래듯. 있잖아, 아쿠아.
“너도 똑같지 않냐고 물었지.”
“……그랬지.”
“……그래. 나도 똑같아. 난 여기서 살아온 삶 자체가 그랬어.”
“…….”
“매일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묻고, 답도 없는 그 물음에 상처받고, 미움받는 일상에 짓눌려서.”
몇 차례 심호흡. 잠긴 목소리가 떨리는 숨의 뒤를 이어 실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그게 나빴던 건지는 모르겠어.
“결국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런 발악에 지나지 않는 연기였는데. 완전히 실패했지?”
난 그리 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카나가 작게 한숨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부채감 비슷한 것이 들어 약간은 곤란한 눈빛을 띤 아쿠아가 중얼거렸다.
“아니,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끝까지 괴물 같은 건 못 됐는 걸. 어중간하게, 미움받을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제대로 남을 해칠 줄도 모르고 말야.”
처음으로 기댔던 고개를 들어 아쿠아와 눈을 맞췄다.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닐까. 약한 인간인 채로 사는 것도.”
나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으니까. 그런 말을 하며 멋쩍은 듯, 살며시 이지러지는 눈동자와 휘어지는 눈꼬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정말로, 미소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애처로울 만큼이나.
“그러니까, 그게 나빴던 건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아쿠아, 네가 나를 사람이라고 해준 게 기쁘다고 생각했어.”
“…….”
“다시 한번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겠다고.”
잔잔하게 퍼지는 음성의 울림이 닿은 피부를 타고 흘렀다. 더는 떨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말만은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말하면.
“난 네가 하는 말 들어도 이해 못 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이미 죽었다느니, 사람이 아니라느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의지를 불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너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간으로 있는 거.”
“…….”
“나도, 이제 포기하지 않기로 정했으니까. 그런 희망을 준 건 너였으니까.”
주제넘은 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카나가 기대었던 몸을 일으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이 드리워진 나무 그늘을 벗어나 달빛 아래를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감정이 선명하게 형태를 잡아나간다. 분명 그리워질 터였다. 네 품에 기대고 싶었던 밤도, 네 목소리도, 어딘가 곤란한 듯 살짝 미소짓는 지금 그 얼굴도. 빠짐없이 전부 다. 보고 싶을 거야. 반쪽짜리 달이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을 뿌렸다. 산에는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어, 라고 중얼거리는 아쿠아에게 카나가 또 웃어 보였다.
“괜찮지 않아? 좀 더 살고 싶어 해도.”
분명 괜찮을 거야. 마지막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 건넨 말이었다. 어떠한 것도 정답은 될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어리석었다 해도.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이건 내가 정한 삶의 형태니까.
우리들은 인간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 어두운 숲을 떠날 시간이었다.
***
탑승 준비로 한창인 공항에서 잠깐 스친 사람들 틈새로 아쿠아, 하고 꿈결에 들릴 법한 목소리가 실려왔다. 돌아보면 머리 하나 크기는 족히 작은 아이가, 소심한 손짓으로 인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붉은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캡 모자를 눌러쓴 채. 짙은 색안경 너머의 핏빛 눈동자가 아쿠아를 비췄다. 시선이 닿자 카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놀란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던 아쿠아의 시야에서 그는 금세 사라졌다. 인파에 섞여. 어느샌가 혼자 남아버렸음에도 자리에 붙박인 듯 꼼짝하지 않았다. 약간은 긴장에 찬 얼굴을 한, 신기루처럼 왔다 간 소녀를 생각했다. 약하지 않았다. 카나는 강한 사람이었다. 상상한 것보다 더. 제 발로 숲을 걸어 나와 이곳에 설 수 있을 만큼,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을 만큼.
그가 또렷한 입 모양으로 맺은 마지막 인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 가. 다음에 또 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