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카나] Merry Happy Christmas

너는 항상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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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주의 날조주의

※개인적인 해석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으, 추워."

 촬영장을 나선 카나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덧댄 층층의 옷가지 사이로 조금의 틈이 보이는 대로 비집고 들어왔다.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종종걸음으로 인파를 빠져나오던 카나가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길가의 그리 높지 않은 펜스에 기댄 채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아쿠아의 푸른 별과 눈이 마주쳤다. 한달음에 다가가 그를 올려다보는 카나.

 "추운데 여기서 기다렸어?"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으—음."

 불만스러운 듯한 소리를 내더니 주머니 속 아쿠아의 손을 잡아보던 카나는 짐짓 화가 난 척 얼굴을 찌푸려 보였다. 손이 이렇게 차가운데. 못 말리는 애라니까. 카나는 잡은 손을 그대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환하게 웃었다.

 "갈까?"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거리는 더 활기로 넘쳤다. 현란한 불빛들이 점멸하며 반짝였다. 기록적인 한파를 갱신한다나 뭐라나, 늘 호들갑이었지만 이번 해도 여느 겨울 못지않게 추웠다. 바쁜 와중에도 그를 불러낸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당장 내일이니까. 그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카나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연인이라면 당연히 꼭 챙겨야 할 특별한 기념일 중 하나 아닌가. 바쁜 와중에도 그런 작다면 작은 것들이 챙기고 싶어 카나는 오늘따라 먼저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저기, 아쿠아……."

 "응?"

 "손에 그거……뭐야?"

 별다른 말없이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의 정적을 카나가 먼저 깼다. 아쿠아는 카나가 잡지 않은 반대쪽 손에 꽃다발을 든 채였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너무 대놓고 선물하는 거 아냐?! 대답 대신 짓궂게 웃으며 되묻는 아쿠아. 글쎄, 뭘까?

 "맞춰봐."

 내 선물이지, 라는 대답을 직접 하게 하려는 건지. 카나는 숨을 크게 삼켰다. 아쿠아는 이럴 때 보면 지나치게 능청스러웠다. 어찌 됐든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그를 좋아해, 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선물?"

 "오, 정확해. 대단한데?"

 "그야, 그렇게 나 봐주세요~ 하고 들고 다니는데!!"

 "내가 그랬나~."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는 아쿠아의 모습에 카나는 괜스레 아는 척 했던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짜증 나, 짜증 나!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모습.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는.

 "자. 네 거야."

 장난기 어린 미소를 거두고 아쿠아가 카나에게 꽃다발을 건넨다. 고마워, 라고 중얼거리며 상기된 얼굴로 꽃다발을 건네받는 카나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거리의 조명 때문일지도 모른다. 밤이 더 짙게 내려앉는다. 행복해. 행복하긴 한데……. 어딘지 모를 그림자가 어린 미소가 내려앉는 밤.

 "아리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인데."

 그걸 또 정말 귀신같이 알아채 주는 아쿠아. 그는 아주 예전부터 이상하리만치 카나의 속마음을 읽어내는데 재주가 있었다. 오늘달콤 때도, 도블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그리고 오늘까지.

 "나 그래도 이제 성인이라고? 조금 특별한 선물 기대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흐음……."

 "아, 물, 물론 꽃다발이 맘에 안 든다는 건 아냐! 진짜로, 진짜 아냐……."

 저질렀다. 저질러버렸다. 쓸데없는 이벤트나 좋아하고, 밝히는 여자로 보였으려나. 아~ 정말 최악. 하지만 숨겨봤자 소용이 없을 것은 뻔했다. 이런 속마음까지 전부, 전부 읽고 있는 게 아쿠아니까. 언제나 그랬으니까.

 "미안……가자……."

 나 같은 연인 벌써 질렸을 거야…….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끔찍했다. 하늘이시여, 저는 이러다 축복받은 크리스마스에 깨지게 생겼어요. 약간은 울상이 된 얼굴을 숨기고 싶었던 것인지, 저런 소리를 해놓고 도저히 아쿠아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카나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하고 걸었다. 곳곳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캐럴 같은 것들이 다 그를 비웃는 것처럼 들려와서 한층 더 괴로워질 참에, 아쿠아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아리마.

 "나 봐 봐."

 "시, 싫어……."

 "이쪽 보라니까?"

 "……."

 돌아서서 슬그머니 아쿠아를 올려다보면 언제나의 조금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맞닿는 것이다. 오늘따라 저 무표정이 더 시리도록 차가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뭐랄까, 무섭다. 내가 자초해놓고 웃기지.

 "눈 감아."

 "엥……?"

 "눈, 감아 봐."

 눈, 눈을 갑자기 왜? 화난 게 아니었어? 영 뜬금없는 아쿠아의 요구에 카나는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들이 유영하듯 자유분방이 떠다니는 것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카나는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설마, 설마? 여기서? 진심이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아쿠아는 제 앞에서 눈을 꼭 감은 채 선 카나를 보고 작게 미소지었다. 순순히 하란 대로 말을 듣는 것이 귀여웠는지, 그것도 아니면 뭔가 잔뜩 기대하는 그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는지.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 아쿠아의 입술이 가볍게 카나의 이마 위를 스쳤다.

 "자, 이제 집 가자~."

 "너, 너 진짜……!"

 나 놀리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달아오른 얼굴을 감출 길이 없어 허둥대며 그의 뒤를 따르는 카나를 보며 아쿠아는 또 한 번 장난스레 웃는다. 그 미소가 좋아서 또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이러면, 기대한 내가 너무 바보 같잖아.

 

***

 잠시만 기다려, 가지고 나올게. 카나는 현관에서 기다리는 아쿠아를 둔 채 집 안으로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집 안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안 됐다. 아쿠아, 밤부터 다음 촬영이 있다 했었나. 약간은 불만스러워도 별수 없었다. 인기 있는 연예인 남자친구를 둔 기분은 이런 거구나. 싱숭생숭했다. 연인이긴 해도 오롯이 나의 것만은 아닌 사람. 그래서인지 몇 번을 만나도 떨림은 여전했다. 이렇게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 선물."

 "고마워."

 "지금 뜯어봐."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그래도 최대한 평범하고 괜찮은 걸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카나는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며 그가 선물을 뜯는 것을 지켜본다. 알록달록한 포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흰색 머플러였다. 카나는 머플러를 손에 쥐고 직접 아쿠아 목에 둘렀다.

 "잘 어울린다!"

 "따뜻하겠네."

 "그치? 에헤헤."

 이거 할 때마다 나 생각하라구. 머플러를 두른 아쿠아를 바라보며 간지럽게 웃던 카나가 별안간 아쿠아의 뺨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다. 돌발적인 행동에 적잖이 놀란 얼굴로 그에게 시선을 던지는 아쿠아에게 짓궂게 찡긋, 윙크를 해 보인다. 이건 아까의 복수. 아쿠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렸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어쩐지 그런 모습에 또 약간 약이 올라서 카나는 그에게 보란 듯 혀를 쏙 내밀었다.

 "조심해서 가. 선물 잘 받았어!"

 한 손에는 아쿠아가 준 꽃다발을 들고서 빈 손을 살짝 흔들며 작별 인사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카나는 오랫동안 아쿠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현관문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 아쿠아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멀어져가다 금방 몸을 돌려 그에게 다가왔다. 그 움직임에 의아한 눈으로 아쿠아를 바라보는 카나. 왜 그래?

 "잊은 게 있어서."

 "잊다니 뭘……."

 카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카나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가 생생히 전해졌다. 꽃향기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체취가 뒤섞여 당황스러울 정도로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아버려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혹여 이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으로 얼어붙은 카나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아쿠아가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훑었다. 한 평 남짓한 크기의 공간이 두 사람의 엉키는 숨소리와 박동하는 심장 소리로 차곡히 채워져 나간다. 이대로면 심장마비든 호흡곤란이든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에야 아쿠아는 카나를 놓아주었다.

 "……."

 카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손등으로 가렸다. 그의 온기가 남은 입술이 따뜻하다.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라도 하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는데 애를 먹었다. 진짜 치사해, 치사하다고, 이런 건. 알고 있지만 이미 발갛게 물들 대로 물든 얼굴로 말해봤자 설득력도 진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저 많은 감정을 담은 시선을 아쿠아에게 향할 뿐이었다. 넘치기라도 할까 잔뜩, 꾹꾹 눌러 담은 그 수많은 감정들을. 입술을 가린 카나의 손을 그러쥐며 아쿠아가 속삭였다. 선물이야.

 "메리 크리스마스."

 따스한 숨결이 목소리가 되어 오랫동안 귓가에 선명히 남아 카나를 간지럽혔다. 카나는 아쿠아가 미소를 띈 채 사라질 때까지도 아무런 말도 못한 채로 그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분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이런 점까지 전부 그를 좋아하는 탓일까. 카나는 민망함과 열기로 잔뜩 달아오른 머리를 겨우 식히고 정신을 차린 후에야 눈치챘다. 아쿠아가 쥐었던 손 안에 작은 보석함이 들려 있었다. 잊었다니, 이러려고…….

 "이런 건 또 언제……."

 반지였다. 정말로, 이런 건 언제 맞춰왔는지. 아마 잊었다는 것도 거짓말이겠지. 작게 한숨을 폭 내쉬는 카나였다. 너무 능숙하다고, 너. 정교하게 조각된 링 위에서 연한 푸른빛의 아쿠아마린이 빛을 발한다. 반지를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끼워보던 카나가 살포시 미소를 띠며 아쿠아가 그에게 남겨두고 간 마음을 바라본다. 앞으로 한동안은 또 제대로 못 보겠구나. 그래도 너를 떠올릴 수 있는 이 선물이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떨림이 번져서 요동칠 만큼이나, 너는 항상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아직도 피부 위로 남은 듯한, 닿았던 그의 감촉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흩뜨려놓았다. 아까 너무 놀란 탓에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카나는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괜스레 만지작거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는 언제나처럼 알았겠지만. 미처 보내지 못한 대답이, 담아 묶어두지 못한 마음이 형태를 만들어 고요한 밤을 장식한다. 소중한 마음을 언어로 엮어 자아낼수록 눈부시게, 더 눈부시게.

 "메리 크리스마스, 너도."

 이건,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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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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