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카나 글

[아쿠카나] 사랑의 자기연소

사랑을 하는 너는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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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뭘 좋아하지.

이런 것 하나 못 고르고 고민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혼자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 이유도 없었겠지. 그러니까 지금 카나는, 혼자가 아니란 뜻이다. 간단한 취향조차도 모르다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잔뜩 미간만 좁힌 채 차려진 간이 부스 앞을 서성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마.”

“아, 아쿠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붐비는 인파 틈을 뚫고 다가온 아쿠아가 물었다. 분명 별 의미 없이 꺼낸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오늘만큼이나 야속하게 들리긴 또 처음이었다. 네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내가 누구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는데.

“마실 거 사 온다더니 기다려도 오질 않잖아. 직접 만들어서 내오기라도 하냐.”

“어떻게 아셨대? 방금 막 저—기서 물 길어 오는 길이었는데.”

“네, 네.”

어딘가 비꼬는 듯한 대꾸에도 익숙한지 언제나처럼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한숨을 내쉰 카나가 그제서야 조그맣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치만.

“네가 뭘 좋아하는지 난 잘 모르겠어서…….”

“…….”

그런 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쿠아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부스의 매대에 다가가 주문했다.

“라무네 두 병 주세요.”

***

학교의 축제 기간이었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곳곳에서 축제가 준비되고 한창인 더위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늘 그렇게 떠밀리는 대로, 어쩌다 보니 참여하게 됐다—는 반전 없는 이야기였다. 스케줄을 비워서라도 꼭 참여하고 말겠다는 루비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였지만. 아마도 카나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학창 시절의 문화제가 될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이렇게,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누군가와 나란히 벤치에 걸터앉아서, 이런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학교는 이른 저녁 시간까지 문화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과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카나가 반쯤 마신 라무네 병을 흔들자 울린 경쾌한 종소리가 살짝은 들뜬 기분을 건드리고 앞장서 퍼졌다.

“그보다, 루비 찾으러 안 가봐도 되겠어?”

동행하고 있던 루비는 프릴과 미나미를 만나더니 신이 나서 달려가 떨어져 버린 지 오래고, 남은 것은 같이 왔던 카나와 아쿠아뿐이었다. 아쿠아도 마시다 만 라무네 병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대답했다. 괜찮겠지.

“아무리 그래도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밌을 테니까.”

“뭔가, 그건 그것대로 기분 나쁜 반응인데…….”

하는 짓만 보면 시스콘 정도가 아니라 부모 수준이라니까. 카나의 툴툴대는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아쿠아가 대꾸했다.

“그래서, 뭐 할래? 그냥 앉아만 있게?”

으음, 하고 고민하는 신음을 짤막하게 뱉은 카나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꺼냈다. 조금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벌써 다시 만난 지 3년이 되어가는데 난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까 그거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래도 나름 어릴 때 본 소꿉친구 같은 건데.”

소꿉친구.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그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까지 비례하는 기묘한 관계였다. 친구래도 말야,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건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그냥……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약간은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둘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여름의 열기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

한 손에는 얼마 남지 않은 라무네 병을 달랑거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아쿠아가 어디선가 사 와 건넨 솜사탕을 들었다. 이미 인기 많은 부스는 거의 다 나가고 없다나 뭐라나. 이런 불량 식품밖에 안 판다고. 아쿠아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말을 꺼낸 건 카나였으니 이견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걸 사 오다니, 의외로 평범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캐치볼을 하고 싶어 하질 않나. 도무지 네 감성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해가 지는 시간이 되어도 무더위는 쉽사리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손수 만들어 꾸민 장식품과 조형물 사이를 눈으로 짚어가며 거닐었다. 초저녁의 한껏 고조된 축제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설렘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순순히 아쿠아가 이끄는 대로 뒤를 따르던 카나가 불쑥, 그가 쥐여줬던 솜사탕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자, 너도 같이 먹어.”

“……난 별로…….”

“이~보~세요. 네가 좋아하는 거 하기로 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거, 더워서 금방 녹아버려. 아쿠아는 변명할 말을 찾는 것처럼 눈동자를 굴렸다. 한참 만에 의기소침한 답이 돌아온다. 싫어.

“손에 묻으면 녹아서 끈적거리잖아.”

그렇게 오래 고민한 것 치고 참 같잖다, 하는 생각을 했다. 딱히 대고 거절할 만한 핑곗거리도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카나가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까.

“거참 말 많네~. 그냥 좀 먹지?”

이렇게 하면 먹게? 코앞까지 들이밀자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한 움큼 입에 넣는 아쿠아를 보며 카나가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내 재미있다는 듯 그의 반대편에서 그대로 한 입, 솜사탕을 베어 물어 보이는 카나.

“아니면, 이런 게 하고 싶었던 거야?”

눈이 마주쳤다. 맞댄 시선에 장난스럽게 이지러진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만 살짝 드러나 아쿠아를 향하고 있었다. 분홍빛 뭉게구름 모양으로 자리한 두근거림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시선을 따라가면 끝에는 분명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있었다. 닿은 눈동자도 입술도 떼지 않은 채로 카나가 짓궂게 던졌다. 아—아.

“얼굴 빨개졌다.”

“…….”

“부끄러워? 부끄러워 하는 중이야?”

말없이 시선을 피한 아쿠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냥 즐겁다는 얼굴을 한 카나에게 항의를 담은 웅얼거림이 돌아왔다.

“거짓말. 보이지도 않았잖아.”

“맞아~. 사실 눈밖에 안 보이거든.”

근데 너, 거짓말 잘 못하는 거 알아? 가로막았던 것을 옆으로 치워버리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입꼬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좀 즐거운 얼굴을 하지 않으려나 싶어서.”

“…….”

“네 취향 같은 건 잘 몰라도 기분 정도는 척하면 척이지. 18년 차 배우를 얕보지 말라고?”

“아니, 딱히 얕본 적 없어…….”

“그래서, 뭐 할 거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가볍게 넘겨버리는 그의 뒷모습이 황혼의 빛깔을 덧입고 땅거미를 드리웠다. 달다. 닿는 순간 눈 깜짝할 새 형체도 없이 녹아버린 솜사탕의 달콤한 맛이 카나가 새로운 놀거리를 찾을 때까지도 남아 혀 끝을 맴돌았다.

“아, 저거나 해 볼까.”

지나는 사람들 틈에서 그의 눈에 띈 것은 풍선 다트였다. 그마저도 남은 상품은 거의 없는……우리 너무 늦게 왔나 봐. 약간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카나를 옆에 두고 아쿠아는 말없이 다트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발, 불발. 두 번째 발도 풍선을 터뜨리지 못하고 튕겨 나오자 카나가 김이 빠진 투로 입을 연다.

“아쿠아, 운동 못 하는구나.”

“……정신 사나워. 감 좀 잡자.”

약이 올라 던진 세 번째 발, 명중. 눈을 동그랗게 뜬 카나의 얼굴 위로 금세 활짝 미소가 피었다.

“방금 그 말은 취소해줄게.”

“선심 쓰긴.”

그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듯 픽 웃어버리는 아쿠아에게 타낸 상이 쥐어졌다. 아쿠아가 덩그러니 든 손전등에 애매한 눈길을 주던 카나가 먼저 내뱉었다.

“……있잖아. 상품 치고 좀 의미를 모르겠는데.”

“그게, 사실 B동 쪽에 귀신의 집 있죠~. 거기 갈 때 쓰기 괜찮겠다 싶어서 넣은 거였어요.”

상품을 전달한 학생이 멋쩍게 답했다. 아—그렇군요. 짧은 감탄사만 남긴 채 더는 의문을 갖지 않는 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쿠아가 척척, 망설임 없이 귀신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 뒤를 카나가 다급히 따랐다.

“가게?”

“기왕 얻었으니까 쓰지 뭐.”

그러나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곳은 지옥이었다. 정확히는 사람 지옥이었다. 기다리려면 큰 결심이 필요할 것만 같은.

“이런 덴 인기 많지 아무래도……난 이해하기 힘들어도 말이야…….”

저기, 그냥 시원해서 인기 많은 거 아냐? 이제 비어버린 라무네 병을 괜히 흔들어 보이며 카나가 중얼거렸다.

“어떡할래?”

학을 떼는 표정을 한 카나를 아쿠아가 내리 깐 시선으로 응시했다. 사람은 너무 많고, 선 채로 오래 기다려야 하고, 덥고. 완전 최악인데. 때마침 교내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 문화제 특별 행사 안내가 아쿠아의 결심을 돌렸다. 카나를 바라보니 그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보였다. 마주친 눈빛만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그 위로 포개진다.

“보물찾기……할까.”

“보물찾기 하자!”

***

“여긴 없는 것 같지?”

“응.”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보물찾기를 핑계로 교정을 빠져나오고, 햇살의 상흔이 거의 남지 않은 하늘 아래를 거닐고, 인파를 가로질러 내달리고,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장소들을 기웃거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실은 1등상이라던가, 특상이라던가 보물찾기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 놀이에 관심을 가질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고. 이제 와선 문화제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해야 할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 건 그러지 않고는 함께 있을 방법을 알지 못해서였을지도. 무언가 빌미로 삼을 것이 필요할 뿐이다. 서로의 곁에 즐거운 채로 남아있기 위해. 빛이 스러지고 땅거미가 늘어지는 학교 밖의 풍경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떠올렸다. 교복을 입고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건, 지금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아쿠아와 감행했던 첫 일탈 덕이었을 거라고.

이미 학교 인근의 부지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산림 공원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은 둘 중 누구도 없었다. 무언의 합의라도 이루어진 것처럼. 멀리서부터 불어온 밤바람이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어느새 아쿠아는 확연히 어두워진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좀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려버리고 말았어.

“그걸 굳이 쓸만한 장소를 찾아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닌데.”

늘어선 나무 사이로 트인 야트막한 경사길을 오르며 카나가 덧붙였다. 아쿠아는 슬쩍 곁눈질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를 마주 지켜보던 카나가 문득 생각한다. 이런 거, 이상하지.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 확실히 이상하지. 거리감은 멀지 않은데도 그런 애매한 관계이기에.

언제쯤이면 내가 나라는 이유로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같은 소속사, 같은 학교,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동료 배우 같은 연결고리가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런 역할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땐—….

“어, 아리마.”

지금처럼 함께 있을 구실조차 애써 찾아야만 하는 친구, 인 걸로 된 걸까.

“뒤에.”

아쿠아가 말을 꺼낸 것과 동시에 카나도 그의 어깨 언저리에서 날갯짓하는 형광빛을 발견했다. 반딧불.

“이런 데 반딧불이가 살아?”

“흔하진 않지만 드물게 보이기는 하는 모양인데.”

“몰랐어.”

드문드문 빛이 그들 주위를 희미하게 밝혔다. 처음 보는 광경에서 카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연신 신기하다는 얼굴을 한 그를 아쿠아가 가만히 바라본다.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거두어졌고, 이어 들고 있던 손전등의 스위치를 끄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볼 수 있을 줄은.

“보고 싶으면 구경 잠깐 하고 갈래?”

“그래도 돼?”

“너만 괜찮다면.”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나가 먼저 근처에 있던 바위에 대충 걸터앉아 보였다. 그리고서 앉은 자리 옆을 손으로 두드렸다. 별다른 내색 없이 그가 이끈 대로 아쿠아도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갖고 있던 손전등을 끄고 나자 흐릿했던 반딧불의 빛이 조금이나마 또렷하게 드러났다. 손전등 빛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반짝임이 몇 조각 늘어나 있었다. 작은 개울이 흐르는 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아마 이 반딧불들은 저기서 살고 있는 거겠지. 도심에 위치한 개천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정도의 실개울. 아쿠아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에 섞인 옅은 물소리와 여름밤 공기를 가르며 깜빡이는 불빛 사이에서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장소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쯤, 카나가 먼저 침묵을 깼다.

“……있잖아.”

반짝.

“예쁘지?”

반짝.

“뭐가.”

“반딧불.”

불규칙하게 번지는 빛을 한참 눈으로 좇던 그가 말했다. 아마 카나도 자신과 비슷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으니까.

“사람은 왜 빛나는 걸 바라보면 마음이 떨리는 걸까.”

별도, 반딧불이도.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면서도 시선은 작은 반딧불이 내뿜는 반짝임에서 줄곧 떼지 않았다. 무심한 대꾸가 돌아왔다.

“화재라면 다른 의미로 떨리긴 하겠네.”

“진지하게 말을 하면 좀…….”

부아가 치민 얼굴로 잔소리에 시동을 걸던 네가 금방 포기한 듯 작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무안하게시리.

“아무튼. 이런 어둠 속에서 빛이 나는 걸 보면 뭐랄까,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기분이 되는 건 왜일까…….”

“…….”

“나도 모르게 문득 아름답다, 하고 생각해 버리고.”

그런 게 사람이겠지, 하는 영 성의 없이 들리는 답변에 카나가 재차 볼멘소리를 냈다. 사람의 본질 참 얕네.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잠깐 뜸을 들인 목소리가 한층 차분히 두 사람을 둘러싼 수풀 위로 내려앉았다. 왜냐면 나도 기뻤으니까.

“네가 흔들어 준 형광봉, 예뻤어. 반짝반짝하고.”

“지금 그게 왜…….”

“뭐 어때? 새삼스럽게~.”

아쿠아는 민망한 듯 괜히 카나를 피해 눈동자만 굴려댈 뿐이었지만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치는 것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개구지게 웃던 카나는 다시 턱을 괴고 어둠을 가로질러 흔들리는 빛 조각을 망막 위로 새겼다.

“그냥, 보고 있으니까 생각이 나서.”

“…….”

“비슷하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길을 밝히듯 반짝이는 하얀 빛 하나. 그것이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아이돌’ 아리마 카나로서의 꿈.

“눈부시고, 다정하고.”

“…….”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얼마나 눈에 띄던지. 너밖에 안 보였다니까.”

심장이 두근거려서 부풀어 터질 것만 같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그 빛나던 순간을, 네가 내게 비춘 빛을 아마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거야. 끝내 말로 다 꺼내지 않은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채로 카나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겠어?”

—네가 준 용기를 돌려줄 때가 된 것 같아. 이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카나가 다시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말로 지금이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는 듯 환하게. 그 모습을 마주하자 아쿠아는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가 던지는 시선을 피했다.

“……몰라.”

“치, 재미 없네.”

그새 김이 샌 표정으로 카나가 돌아섰다. 모를 리가 없잖아, 하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어. 전혀 다른 답을 해 놓고서는. 사랑을 하는 너는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네가 딛고 선 세상마저 불태울 빛으로 반짝이니까. 눈부심에 마음을 빼앗긴 건 너 뿐만이 아니야. 의기소침하게 앞장선 카나의 어깨 너머로 아쿠아가 말을 걸어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담담한 목소리에, 그렇지 못한 이야기.

“너도야.”

“응?”

영문을 몰라 되물으면 푸른빛의 별이 마주 보는 카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반딧불이가 내뿜는 미미한 불꽃도 함께 그의 눈망울 속에서 비친 채 헤엄쳤다.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너도 빛난다고.

“네가 말한 것들보다 더.”

맞닿은 눈동자가 뒤늦게 소리 없이 커다래지고, 그 위로 빛의 파편이 타오르며 흘렀다. 예기치 않게 불쑥 튀어나온 진심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심장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좀 더, 다가가고 싶어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잖아.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다. 갈 곳을 잃은 붉은빛 동공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애꿎게도 유영하는 반딧불을 따랐다. 한참 만에야 기어들어가는 음성이 돌아왔다.

“……뭐야, 갑자기.”

“글쎄. 아리마라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음기가 다분한 문장이었다. 곁눈질한 아쿠아의 입꼬리 끝에 옅은 미소가 걸쳐 있었다. 카나가 그랬던 것처럼. 즐겁구나. 즐거워하고 있구나. 눈에 새길 수 있는 기쁨에 어째서인지 다시 한번 마음이 울렁였다. 선물 같았던 그날처럼.

“……전혀, 하나도 모르겠거든.”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모르겠는데……. 너도 참 못됐다. 짓궂어. 달아오른 뺨이 드러날까 괜히 조바심이 났다. 빛이라고는 이따금 스치는 몇 없는 반딧불이 전부인데도. 얼른 돌아가기나 하자고 재촉하며 카나가 손전등 한 개분의 불빛에 의지해 앞장섰다. 말없이 뒤를 따르던 아쿠아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찾았네.”

“그러게.”

“……뭐, 별로 상관없지만.”

네가 있으니까 됐어, 하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나도 너랑 같아. 애초에 욕심은 없었다. 뭐든 같이 즐길 수 있는 게 있다면 기뻐해주려나—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한 번 궤도를 벗어나 나와 같이 도착한 장소에서 너는 다시 사랑할 기쁨을 찾은 것만 같았으니까. 정적도 잠시 들뜬 카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기.

“불꽃놀이 시작했다.”

꽤 떨어진 곳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카나는 기다린 것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꽃잎처럼 흩날리는 빛에 시선을 맡겼다. 언제 그렇게 숨기고 싶어했냐는 듯 상기된 뺨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그렇게 피어나는 불꽃에 넋을 빼앗긴 그를 한참 응시했다. 빛이 번지는 하늘 대신 네 눈에 비친 반짝임을 바라봤다. 불꽃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그려지는 반짝임을. 역시, 눈부시다.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에 마음을 쏟고 진심을 다하고, 자신을 불태워 사랑을 하는 네가 언제든 그 무엇보다 빛나고 있어서. 눈이 시릴 정도의 반짝임에 분명 모두 그렇게 제각각 눈이 멀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자신만의 사랑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발견한 각자의 빛을 품에 끌어안은 채.

“……응. 예쁘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카나는 시야에 그려지는 풍경만을 몇 번이고 다시 새기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듣지 못한 편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조금은 안심하고 있는 찰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또렷한 목소리가 여름밤의 열기를 통하고 전해져왔다. 아쿠아.

“오늘 좋아하는 것들로 제대로 채웠어?”

카나를 비추던 물빛 눈동자에 잔잔한 동요가 일었다. 아쿠아는 물음에 대답 대신 나지막이 혼잣말을 떨어트렸다.

“……지금, 행복해?”

들리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답변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에 잘못 흘려서 찾을 수 없게 된 속마음은 그런 거니까. 그러나 네가 내놓은 답은 제대로 나를 향했다. 돌아보며 미소짓는 카나의 모습 뒤로 노을색의 불꽃이 펑, 하고 터졌다.

“응. 행복해.”

산화하는 꽃잎의 파편이 밤하늘을 물들이고 흩어진다.

좋아하는 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언제나처럼, 특별하게.

“그럼 됐어.”

“뭐야, 그게! 기껏 낯간지러운 질문에 답해줬더니.”

마지막 하얀 불꽃이 하늘로 올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랑하는 것은 무엇 하나 멈추지 않는다. 투닥거리며 거리를 좁히는 발걸음부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반짝임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해도, 나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어.

+) 요정(@172x150_)님께서 글을 읽고 그려주신 그림도 함께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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