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없는 청춘과 로맨스 없는 로맨스와
유페디바, 근사한 New-짤을 받아서... 현대인지 뭔지 모호한 AU
디바 달턴은 모래 사장을 걸었다.
비좁고 외로웠으며 그리 근사하지도 않았다. 그와 동기들이 탄 버스가 멈춘 곳은 여느 관광지가 아니라 봉사 활동을 위한 여름 캠프였으니까.
그래도 아직 잠 안 자는 말썽쟁이들이 있을 법도 한데, 해변가는 텅 비어 있었다. 낮에 한 봉사 활동이 워낙에 힘들었던 탓일까.
디바는 잠들지 않았다. 그는 정신에 우울이 깊게 스민 청소년이라, 야밤에 산책이라도 하며 마음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참 공교롭게도, 볼품은 없어도 평화로운 바다 앞에서 디바는 아주 불편한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아니, 말을 고쳐야겠다. 감히 마주치면 안될 사람을 만나버렸다.
그건 물론 유페니아 보너였다.
“… …”
“… …”
실로 때가 적당하지 않았다.
애들답지 않은 작당은 낮에 이미 다 해버렸다. 애들처럼 머리채 잡고 싸우기엔 너무 어두웠다. 모래 사장 바로 뒤에 동기들이 잠든 펜션이 있었다.
뭐라 말을 붙이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디바는 유페니아의 손에 들린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발견했다.
디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오늘도 죽지 않기 위해 야밤에 밖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유페니아는 내일도 살아가기 위해 밤산책을 나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유페니아는 디바보다 영특하고 또 영악했다. 병들어 시름에 잠긴 청소년 티를 온 몸으로 내는 대신, 밤에도 봉사 활동을 하는 열혈 모범생처럼 굴 줄 아니까.
가족이 물려준 원수이자 자신이 고른 공범자의 처세술이 디바의 마음에 들었다. 남몰래 흡족해진 디바가 유페니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
같이 하자던가, 내가 하겠다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페니아는 당연한 듯 짐을 건넸다. 쓰레기 집게는 내주지 않았다. 딱히 두 청소년이 자연을 청소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겠단 의도는 아니었다.
봉투를 들고서 디바는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유페니아는 오던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둘의 관계라는 게 늘 그런 식이었다.
오직 유페니아만이 디바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춥지 않나?”
공연한 참견인 걸 알면서도 디바는 그런 것에 신경썼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로 인한 상대의 불쾌함이 조금은 덜해질 것마냥.
“아니.”
물론 평소처럼 차가운 대답. 말하며 유페니아는 집게로 작은 공병을 주웠다. 주운 병 속에 무언가 꽂혀 있었다.
유페니아는 무심코 그게 뭔지 확인했다. 가늘고 길고, 까칠한 촉감의 막대기였다. 물건을 알아본 유페니아의 눈빛이 조금 반짝였다.
“아, 이거.”
“그게 뭐지?”
“…몰라? 불꽃놀이에 쓰는 거?”
“…아.”
디바는 유페니아보다 늦게 알아챘다. 막대폭죽 ‘따위’를 알아보시기엔 너무 대단한 부잣집 아가씨라.
졸부의 딸을 유페니아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유페니아 보너가 디바 달턴을 보는 시선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한심해하기, 불쾌해하기, 경멸하기. 그러므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다음에 유페니아는 조금 난처해졌다.
그는 아직 십대였다. 그리고 그런 류의 놀이 도구를 마음대로 사본 적이 없었다. 이름 모를 외국인 가족의 사진이나, 거대 자본이 투입된 광고 클립 같은 데서만 간간히 봤다. 그래서 ‘고작’ 놀이용 폭죽 따위에 약간의 동경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유치한 속내를 디바 달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디바는 이미 봐버렸다. 유페니아의 눈이 그런 빛을 띠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디바는 형편 좋은 핑계를 찾아내 중얼거렸다.
“완제품을 쓰레기 봉투에 넣기도 조금 그런가.”
그러더니 채 갈아입지 않은 유니폼 앞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라이터였다.
“그게 왜 여기서 나와?”
“학생 선도 담당이 나라서.”
선도 담당이래봤자 화기나 알코올을 압수하는 역이었다. 애들 사이에서 평판이 망가지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인솔자가 시킨대로만 할 벽창호를 참 잘도 골랐다고 유페니아는 생각했다.
“잠시 쉬는 김에 태우고 가지.”
“…나 참, 누가 들으면 떨 하는 줄 알겠네…”
“그건 뭐지?”
“그것도 몰라? …아니, 됐어.”
디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유페니아의 손에서 까슬한 막대기를 빼내갔다. 유페니아는 어이가 없어졌다. 디바는 유페니아가 나서기엔 짜치고 민망스러운 타이밍에만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평소에 아껴둔 눈치를 이럴 때만 쓰는 것처럼.
유페니아가 어이없어 하는 동안, 디바는 라이터로 막대 끝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았다. 더 뭐라 할 말을 잃은 유페니아도 그냥 앉아버렸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 …”
“… …”
다시 말하지만, 둘이 있는 곳은 가족과 연인끼리 오기 좋은 바닷가가 아니었다.
가느다란 빛을 튀기는 막대는 쓰레기 청소를 하다가 주운 물건이었다.
서로의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하필 디바 달턴과 유페니아 보너.
그래서 청춘도 로맨스도 없는 해변을 배경으로, 불꽃 놀이를 하는 두 십대의 얼굴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디바는 여느 때처럼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성격대로면 이 따위 상황을 만든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책할 법 했음에도.
폭죽의 빛에 번진 낯, 웃음기 하나 없이 굳은 그 얼굴이, 유페니아의 가장 진실된 모습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페니아 역시 알고 있었다. 구태여 버려진 폭죽에 불을 붙인 그 묘한 배려심이, 디바의 가장 진실된 본성이란 걸.
막대가 타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둘은 서로의 본성을 용인해주기로 했다. 딱히 말로 합의된 것은 아니었다. 둘은 언어 없이 합의를 보는 데 도가 튼 사이였다.
그럼에도 거기에 로맨스는 없었다. 폭력과 원한, 의무감과 죄책감이 쌓아올린 절묘한 밸런스일 뿐.
다만 두 사람이 간과한 것은, 둘이서 이 상황을 얼마나 가소롭게 여기건 간에…
아무튼 그곳은 바닷가고, 두 사람은 청춘이며, 폭죽은 반짝이고 달은 부드러웠다는 사실이다.
짧은 불꽃 놀이가 끝날 무렵, 저쪽에서 누군가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여태 자지 않은 학생 중 하나가 커플의 한밤 중 밀회를 목격한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뭐야? …젠장, 그런 거 아냐!”
한 박자 늦게 오해를 깨달은 유페니아가 소스라치듯 일어섰다. 그리고 후다닥 멀어지는 인영이 조그만 걸 보고 냅다 잡으러 쫓아갔다. 무슨 외도라도 들킨 사람처럼 굴면 역효과란 걸 잊고서.
미처 반응할 새가 없던 디바만 모래 사장 위에 남았다.
잠시 앉아 있던 디바는 명분만 남은 봉사 활동이나 마저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불 꺼진 막대를 쥔 채 일어나, 혼자 긴 밤길을 걸기 시작했다.
아직 유페니아를 따라갈 생각을 못 하던 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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