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門

별을 따라 기우는 시선

by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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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는 매번 너의 부재와 함께한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시간은 그대로인데, 엇비슷한 이별만이 반복되었다. 넓지도 않은 건물에 괴담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누구는 어딘가에 갇혔고, 누구는 괴담의 일부가 되었고. 대강 위치가 짐작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신지해는 명백히 후자였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해 찾아갈 방도조차 없다. 딱히 찾으러 나선 적도 없긴 하다. 부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더라도, 그걸 직접 확인받는 건 다른 문제라. 어차피 남겨진 사람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전부였다. 부정할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명여휘는 그 사이 어딘가를 택했다. 이 역시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이상하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네가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게. 보이진 않아도 어딘가에서 존재할 것만 같아…….

대신 다른 상상을 해 본 적은 있다. 탈출 직전에 너덜너덜한 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이나, 먼저 바깥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는 해맑은 얼굴이라든지. 늦었네. 하고 건네는 단조로운 인삿말, 말을 하고 갔어야지. 하고 걱정했다며 투덜거리는 타박 따위를……. 바랄려면 얼마든지 바랄 수 있었다. 눈이 기적적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것보다야 현실적인 공상이다. 어차피 여긴 현실 세계가 아니니까, 기이한 일 한둘쯤 더 일어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명여휘는 그러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들 하던데. 명여휘는 한 번도 그런 걸 겪어 보지 못했다. 소망은 허상에 불과하다. 단순한 소망만으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못한다. 그게 아니라면 우린 진작 이곳을 빠져나갔겠지…….

 

네가 죽는 것보단 낫지.

 

대신 죽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리 행동했는지는 알겠으나, 삐딱한 마음을 감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게 끝나 버린 시점에선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했다. 자신을 걱정했든, 다른 누군가를 걱정했든. 설령 모두를 뒤로한 채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명여휘는 이곳에 있고, 신지해는 없었다. 명여휘는 그 사실이 못내 거북했다. 삶은 오롯이 제 몫인데, 타인에게 자꾸만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왜 나는 너에게 미련이 남을까. 자신을 바라보던 불안정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채 종결짓지 못한 관계라? 아님 네가 내 편협한 선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서?

 

참고로 난 네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살아간다면 잊혀질 날이 오겠지. 영원한 건 없잖아. …그걸 기다릴게.

 

너도 참 바보 같다. 욕심 한번 내지 않는 게 배려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자신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명여휘를 이루는 근간은 무질서한 욕망이다. 소유욕 내지는 독점욕. 나쁘게 말하면 집착이고, 좋게 표현하자면 애착에 가까운 것. 어느 쪽이든 사람에게 품을 만한 욕심은 아니었다. 그런고로 명여휘는 또다시 몰이해의 영역에 부딪혔다. 사실 비정상은 자신인 주제에, 신지해가 답답하게 구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속내 뻔히 보이는 걸 외면하고 싶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좋잖아. 찌르면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거면서.

무슨 말인지는 알겠…. 잠깐만, ………………우리 친구야?!

 

내내 기운 못 차리더니 지나가는 말 하나에 반응이 격하다. 애초에 본인이 먼저 꺼내지 않았나? 친구. 친구란 게 뭐라고. 자신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수단조차 되지 못할 텐데. 감상은 여전하다. 우린 모르는 사이라기엔 친밀하고, 친구라기엔 기이하게 비틀려 있었다. 상대의 잘못이란 게 아니라, 명여휘라는 사람 자체가 그랬다. 가까워질수록 욕심이 생기고 만다. 그래서 일부러 붙잡지 않았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 나를 떠나게 될 것, 내가……. 취소한다는 거, 농담이었어. 누가 친구도 아닌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해? 너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난 아니야.

 

명여휘는 지금도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아플 때면 일부러 더 그렇게 했다. 별을 찾으려는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빛 한 점 들지 않는 공간에선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장막이 드리운 하늘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눈길을 끄는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습관처럼 새까만 허공을 선회하는 시선은 머지않아 궤도를 잃고 추락한다. 그러면 눈꺼풀은 느리게 감기고, 시야는 완연한 암흑으로 빠져든다. 어둠은 지겹도록 안온했다.

그러니 어느 날엔 괜찮고, 어느 날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낮엔 바다를 찾을 것이고, 어느 밤엔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 즈음 어딘가에서 시선이 마주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평생이란 단어의 무게만큼이나 한없이 가볍고, 또한 더없이 무거운 버릇으로 남아서.

죽음은 하나의 마침표다. 동화로 따지자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의 문장이 될. 지우지 못할 온점.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곱씹을 수 있는 완결된 이야기.

 

이런 형태도 소유의 일부일까?

그렇다면 나, 기꺼이 널 기억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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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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