告別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끔찍한 일이 뭐라고 생각해?
여러 답변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개 악의를 가진 자들이 할 법한 행동이었고, 일부만이 그렇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개중에 사랑은 없었다.
명여휘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오래전에 증명된 명제였다. 부모님에게 받는 사랑, 친구들과 주고받는 사랑,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사랑. 사랑, 사랑, 사랑……. 그 무수한 애정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생김새만 같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므로 명여휘는 사람을 좋아했다. 욕심의 근간도 결국은 사랑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애정의 크기만큼 남들도 자신을 받아들이길 바랐다. 다만 그의 안에 자리잡은 사랑은 좁고도 깊은 물웅덩이와 같아서. 끊임없이 퍼 올릴 순 있어도 그걸 많은 사람과 나누는 건 불가능했다. 박애가 되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제야 알겠다. 왜 너의 부재에 그토록 미련이 생겼는지. 그래. 단순히 표현하자면 이건 정이었다. 우정, 애정, 다정. 그럴 때 쓰이는 단어. 처음에는 친절이었고, 언제인가는 연민이었다. 그 감정들이 한데 섞여 풀지 못한 매듭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자신을 떠나는 일은 처음이라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차라리 살아서 떠났더라면 미련이 남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네가 날 다른 사람과 겹쳐 보아도 상관없어. 그 마음은 여전해. 사람들은 이런 걸 친구라고 일컫지 않겠지. 명여휘는 비로소 인정했다. 하긴. 내가 언제 그렇게 타인을 생각했다고…….
그래, 그럼. 친구로 하자.
그럼에도 명여휘는 수긍했다. 네 말마따나 지나치게 소중하지도 않고,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관계로. 또 한 번의 덧없는 명명이 오간다. 속 어딘가에서 엉킨 문장들은 실낱같은 웃음과 함께 흩어졌다. 아쉬움이 옅게 남았다. 마침내 미련은 덜었지만, 서운함은 또 다른 문제였다. 무엇도 마주보고 전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쓸쓸한 일이구나, 싶었다. 나가기 전에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어차피 그런 걸로 마음 약해질 일도 없으니까.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끝없는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우리는 절망의 연쇄 끝에 열쇠를 찾았고, 조금 뒤면 바깥으로 향할 것이다. 지난하게 이어진 이야기의 종장이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나가면 그곳은 낮일까, 밤일까. 실제로 시간이 흐르기는 했을까? 추측은 부질없는 행위다. 명여휘는 애써 상념을 떨쳐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치게 들뜨지도 않고, 저 아래로 침잠하지도 않도록. 하나 남은 시선이 빛에 익숙해지게끔 플래시를 켰다가 끄는 걸 반복하기도 했다. 나갈 것이다. 욱신거리는 눈가 찌푸리며 다짐했다. 비일상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굳건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곳은 자신이 머무를 자리가 아니었다. 제자리에 멀거니 서 있는 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아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따라서.
그리하여 누군가가 후회한 과거를 딛고, 바라 마지않던 미래를 좇아…….
*
먼 훗날, 우주에서 말미암은 연락이 나에게로 닿게 되면.
그땐 아마 지금보다 더 자주 웃고 있겠지.
난 잘 지내.
푸르른 하늘을 따라 낙조가 번지고 있어. 곧 밤이 되겠지. 그래도 괜찮아. 내일이면 다시 해가 뜰 테니까…….
추신. 너에게도 그런 빛이 있길 바랄게. 광활한 우주라 할지라도, 영원히 멈춰 있는 곳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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