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주
영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던데.
그렇다면 영원한 이별이란 것도 없지 않을까?
명여휘는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고. 생경한 장소에서 덜컥 정신이 든 사람이라면 으레 떠올릴 법한 생각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쳤다. 가장 먼저 한 건 제 몸을 살피는 일이었고, 별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로는 전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고, 약속이 있어서 다녀왔다가…… 그대로 집에 돌아왔지, 아마.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의 한 축.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특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어젠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정신을 놓은 게 아닌 이상 이런 곳을 제 발로 찾아올 것 같진 않다. 따분하다는 이유로 내키지도 않는 장소에 방문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구교사에서 담력 시험을 마친 뒤로, 즉,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이후부터 명여휘는 어두운 장소를 피해 왔다.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 내내 갇혀 있었던 탓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제일 그럴듯했다. 덕분에 불쾌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억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 것도 껄끄러운데, 이상한 습관까지 얻어 버렸으니…….
……그래서 내가 왜 여기 있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사고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느리게 깜박이던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역시 보이는 건 없었다. 건물 내부인가? 그렇다기엔 공간이 드넓었다. 아니면 바깥? 그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외부라면 이렇게까지 빛 한 점 들지 않을 리 없다.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골몰하고 있을 때, 코끝에 어떠한 냄새가 스쳤다. 매캐하고, 텁텁한 탄내. 명여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별무리로 된 길이 생기고 있었다.
이럴 거면 진작 빛 좀 밝혀 주지. 명여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닥을 살피면서도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친절하게 길까지 만들어 주는데, 그걸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해결될 일도 아닐 것 같았고. 반신반의하며 바닥을 딛자 반짝이는 은하수가 발아래를 받쳤다. 허공을 걷는 기분. 혹은 물살을 타고 이동하는 기분. 꿈결을 거니는 듯했다. 한참을 걷는다 해도 도통 익숙해지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정말 이상한 곳이다. 현실이라기보다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너무 낯선 경험이라 그런 걸까? 이게 정말 꿈이라면 깨어난 이후에 무척 아쉽겠네…… 하는 감상을 떠올릴 즈음.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매캐한 탄내가 옅어지고.
별이, 쏟아진다.
주위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새까맣다고 여겼던 공간은 넓게 펼쳐진 하늘이었다. 광활한 우주였고, 누군가가 외로이 남아 있던 자리였다. 아. 명여휘는 반사적으로 탄사를 내뱉었다. 이어진 건 실낱같은 웃음이었다.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장소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젠 이곳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애였다. 자신이 잃은 기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속에서 엉망으로 엉켜 있던 매듭이 점차 풀어졌다.
“너무 늦었잖아.”
난 계속 노력했어. 알지? 타박에도 웃음기가 묻어난다. 이렇게 무르게 대하려던 건 아닌데……. 고민하면서도 달싹인 입술은 기어코 다정한 문장을 그려낸다.
잘 지냈어? 그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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