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門

Wintering

by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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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는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될까.

십 년? 백 년?

아니면 인간으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일까?

 

 

우리는 우주에서 비롯되어, 우주에서 종장을 맞이한다. 한 편의 이야기처럼.

명여휘는 검푸른 하늘을 주시했다. 너른 자리를 가득 메운 천체들이 일제히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밤이라기엔 환했고, 낮이라기엔 어두운 공간. 저 멀리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별이 하릴없이 저물고, 다시 피어나길 반복했다. 일평생 빛을 발하는 것이 목적인 양.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던데. 살면서 그런 속설을 믿어 본 적은 없건만, 곁에 있는 이를 생각하면 꼭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아는 이들 중에서 가장 별을 닮았고, 이제는 별과 비슷한 존재가 된 사람. 지해야. 너도 별이 되고 싶었어? 미지의 것을 탐구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자꾸만 늘어난다. 그것도 해소하기 어려운 종류로만.

 

여휘야. 나는 너를 여기서 내보내고 싶지 않아. 네가 영영 이곳에 갇혀 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들었을 땐 우습게도 마음이 놓였다. 네가 벌린 거리를 좁힐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어떤 대답을 의도한 건지는 대충 짐작이 되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따라 줄 이유는 없다.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멀어지길 바랐다면,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많았으니까.

 

나는 너의 현재와 함께하고 싶은 거야. 너한테서 과거를 찾고 싶은 게 아니라.

 

그래서 명여휘는 손을 내밀었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대신 상대가 돌아오기를 유도했다. 자신이 그어 둔 선을 넘어서, 기어코 그만큼 다시 가까워지기를. 상대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속셈과도 같았다. 네가 선택한 거야. 나는 줄곧 너에게 기회를 줬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걸 거절한 건 상대였고, 명여휘는 그 사실이 못내 기꺼웠다. 어그러진 애정이래도 상관없었다. 단정하게 얽힌 온기가 현재를 의미했으므로.

 

우리는 영원을 함께할 수 없고, 곁에 있는 순간에도 하염없이 이별을 가정해야 할 테지만.

그렇지만 나, 너를 떠나지는 않을 거야.

 

우리의 이야기를 엮어 한 편의 책으로 구성한다면 몇 페이지로 마무리될까.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명여휘의 다짐은 모순적이었고, 우주에서의 영원은 금세 시들어 버릴 개념이었다. 말뿐인 약속에는 효력이 없다. 그래도……. 네가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난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 적어도 네가 겨울에 홀로 남아 있지 않았으면 하거든.

 

“그렇다기엔 포기하지 않는 것 같던데.”

고요한 웃음을 흘린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야. 내가 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게. 말하고 보니 횟수가 제법 되었다. 집요한 구석이 있는 건 이쪽이 아니라 상대측인 모양이다. 마침내 원하던 대답을 들었으니 만족하려나. 질문하는 대신 상대를 따라하듯 똑같이 하늘로 손 뻗는다. 그대로 주먹을 쥐고, 팔을 내렸다. 가볍게 오므린 손 펴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별을 움켜쥔 것처럼.

 


 

“지레짐작해서 대답하는 일엔 지쳤거든.”

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심술인가. 단조로운 사고가 이어졌다. 일부러 상대를 골리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장난을 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타인을 곤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실없는 성격은 아니다. 이건 일종의 습관이었다. 필요한 반응만을 내보이는 것. 사람들은 꼭 내가 뭐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더라. 그런 기분 알아? 난 그저 눈에 보이는 걸 말했을 뿐인데, 상대가 모종의 기대감을 내보일 때. 넌 알고 있지? 저번에도 그랬잖아, 하고. 그 알량한 기대를 매번 충족시켜 주는 것도 질리는 일이다. 처음에나 너그럽게 봐줄 수 있지,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될 일을, 괜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래서 솔직한 게 좋았다. 애써 읽어내지 않아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그건 모르는 일이지. 누구 하나가 양보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이미 상대의 것이라 건드릴 수 없든지.”

아니다, 타인의 것이라서 더욱 차지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던가. 자신과는 방향성이 다른 욕심이라 상기하는 것이 늦어졌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가 욕심부리는 건 영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장 지금만 해도 하고 싶은 말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빙빙 돌아가기만 하는데. 반신반의하며 신지해와 라이벌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욕심내고, 그걸 가지기 위해 다투는…… 아. 역시 모르겠다. 떠올리려 할수록 떨떠름한 기분만 가득하다. 내가 얘를 너무 착하게만 보는 건가?

 

천유성의 쌍둥이였어.

명여휘는 단정한 미소를 지웠다. 이런 때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웃고만 있기에는 상대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고, 놀란 표정은 거짓으로 꾸며내는 수밖에 없다. 드물게도 고심하다 결국 무덤덤한 낯을 택한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서 누구를 보았고, 그 아이가 누구의 동생이고,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대략적인 정보는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한테 전해 들은 상태였다. 정말 전부 지난 일이라고 생각해?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삼킨다. 상대를 끊임없이 시험해 과거에 얽매이게 하고 싶다가도,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심술이란 건 이런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무른 행동이 아니라.

신지해가 그러하듯이, 명여휘도 신지해를 좋아했다. 곁에 있어 달라고 하면 제 일부를 깎아서라도 곁에 머물러 줄 테고, 이토록 외로운 우주에도 몇 번이고 방문해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신뢰는 달랐다. 신지해라는 개인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보이는 애정은 믿지 않는다. 애당초 타인을 투영하는 일로 시작한 관계에 얼마나 많은 신뢰가 쌓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상대가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를 겹쳐 보고 있다면. 명여휘는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하지 않았다. 짚어내지 않고 넘어갔을 뿐이지. 실망은 아니었다. 다만 기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없는 애정을 가지고서도.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나 보네.”

다정한 목소리가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미련이란 건 대개 그럴 때 생기는 거잖아. 과거에 남겨둔 것을 내내 그리워하면서. 네가 소유를 두려워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이미 놓쳐 버린 것이 있어서, 손에 닿기도 전에 잃어버린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서……. 고작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나한테 정을 준 것도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명여휘와 신지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명여휘는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실을 마냥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불안하게 여기는 일은 없다. 떠날 사람을 붙잡지 않는 이유조차 순전히 비좁은 애정 탓이었다. 그러니 매번 욕심내는 것이다. 거머쥐고, 놓치고, 멀어지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찾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 내 것, 내 사람, 내 사랑…….

 

 

“……노을.”

약간의 정적 끝에 입술이 달싹였다. 노을을 좋아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좋고, 비 오는 날에 창 바깥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 차분하게 읊조리는 단어들은 죄 소유할 수 없는 부류였다. 물질이 아닌, 어떠한 ‘순간’들. 기억에 남기는 행위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구태여 소유하지 않아도 애정이 생기는 건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점도 모순적이라서 어렵다고 하려나. 하지만 좋아하는 걸 고르라고 하면 그런 것들인걸.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들도 언급해야 돼? 그럼 많이 길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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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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