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알캐스구다] 가시관

000 레이드 페이즈 2에 출진한 AA

* FGO 2부 6장과 7장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듬어야 할 부분도 설정도 많습니다. 엉성한 전투씬은 기본옵션입니다. 정말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추후 퇴고 및 수정가능성 200%


 

 그런 칼데아의 순간들이 꿈만 같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미래가 있는 현재의 칼데아에서 리츠카가 해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성검에 관한 모든 기록은 이미 그녀 안에 축적되었기에, 그 부분만큼은 자신이 리츠카에게 당당히 여러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시뮬레이터실을 통해서 단 둘이 피크닉을 간 것도 좋았다. 달콤한 포도를 입에 집어넣으며 그보다 더 달콤한 대화를 하던 나날들이 좋았다.

 

 기실 그녀의 꿈만 같던 순간들에는 악몽도 있었다. 후지마루 리츠카가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탈진했을 때는 싫었다. 리츠카가 새벽에 홀로 칼데아 복도에서 울 듯이 중얼거리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순간들도 싫었다. 후지마루 리츠카의 가장 오래된 겨울 속에는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곳은 꿈이 아닌 현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영령이 되었기에 이만큼 도달할 수 있었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인간이 그런 모습을 할 때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점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함께 있는 순간들은 아르토리아 아발론에게 너무나 소중했다.

 

 애초에 그 애가 좋아하던 사람이 아닌가. 기록을 인챈트하여 완벽히 변신한 아발론은 칼데아의 마이룸에 비치된 거울을 보며 푸른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제 변신을 점검하였다. 그 와중에 언제 보아도 특별히 여겨지는 옷이다. 그러니 넘겨받은 기록에 이 모습이 포함될 수 있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후지마루 리츠카를 대해야할 태도를 정확히 정의내리지는 못했다. 애초에 감정이란 혼동되는 것이라서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변명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 때의 그 애는 좋아한다고 확실히 자신의 감정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영령이 되어 그 애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또다시 후지마루 리츠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할 수 없었다.

 

 브리튼 이전의 후지마루 리츠카는 편안한 사령관이자 단순한 친구라고 여겼을 거라 생각해 아발론도 비교적 편안하게 행동했지만, 브리튼을 다녀온 후지마루 리츠카는 아르토리아 캐스터 뿐만이 아니라 아르토리아 아발론에게도 무게감이 다른 존재였다.

 

 천천히 되짚는 시간이 필요해진 시점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드는 생각으로는 단순하게 목숨같은 존재지만, 이걸 그대로 말해도 될려나. 그치만 진심인 걸... 난처하게 웃으면서도 거울을 바라보며 마지막 단장을 마친 아르토리아 캐스터는 룸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리츠카와 무려 단둘이 미세특이점을 수복하러 가는 날이였다. 얼마 없는 귀한 편성 기회에 아르토리아는 내심 마음이 들떠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특별한 날에만 꺼내입는 이 푸른 옷의 2재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설레이는 순간들이었다. 특이점도 그렇게 위험한 특이점이 아닌, 그저 간단한 체크와 자원회수만 하면 된다고 들었기에 그 부분에서도 아르토리아는 걱정을 덜었다.

 

 멀리서 후지마루 리츠카가 손을 흔들어주는 게 보였다. 아르토리아는 단박에 미소를 띄우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웃음끼와 함께 간단한 대화가 오고가고, 곧 작전을 위해 레이시프트를 하였다.

 

 역시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제 주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칼데아의 나날들이 좋았다.

 

 설령 영령으로써 후지마루 리츠카와 마주보고 있는 순간들 자체가 어쩌면 지금 제 눈 앞에서 웃고있는 리츠카에게는 가시관을 쓰는 고난일 수 있다 하더라도, 조금쯤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

 

 “아르토리아! 혼자서 출진해줘야할 것 같아!”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차라리 정말 꿈이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행복한 꿈이든 나쁜 악몽이든 그 종류는 상관없다. 그저 후지마루 리츠카가 한 번 자각하면 물거품이 되어버릴 그런 무의식의 활동이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긴박한 순간에 맞지 않는 생각들을 했다. 차라리 저쪽이 아닌 이쪽이 한낱 꿈에 불과한 세계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편애만이 가득한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걱정되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 아르토리아는 스톰 보더 속에 있을 그 이를 위해 뒤를 살짝 돌아보며 웃음기도, 울음기도 하나 없는 검의 단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힘이 필요하다면, 전력으로 응답하죠.”

 

 말도 안 되는 얼굴을 한 채로 아르토리아 아발론 너머의 거대한 원반체를 노려보던 마스터가 찰나에 웃은 것이 보였다. 또 당신은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리는구나. 푸른빛을 넘어서 이젠 보랏빛마저 비춰지는 얼굴로도 아르토리아에게 웃어주는 얼굴이 보이니 절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차라리 이것이 그 정원 속 영상이였다면 간단하게 회로를 끊어버리면 될텐데. 지금의 아르토리아는 언제든지 마력으로 회로를 끊어 후지마루 리츠카에게 보여지는 고통을 차단시킬 수가 없었다. 관위의 자리에 올라서는 경우가 있어도, 주인의 검이 되겠다 맹세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듯이 제 눈 앞의 것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 아르토리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마침 그것이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표정을 굳힌 아르토리아는 마력량을 바닥까지 긁어모았다. 

 정신을 고쳐먹게 해준 것만큼은 저것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벽을 느끼고 말고는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저것은 시뮬레이터실의 단순한 에너미도 아니고, 언제든 퇴거하거나 동료들이 추가로 와줄 수 있는 국소특이점의 수복 중 등장하는 에너미도 아니다. 

 진짜 “적”이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지금 해야할 것은 쓸데없는 기록보관용 고찰이 아닌 눈 앞의 저것을 물리치는 것. 물리치는 것까진 못하더라도 최대한 전력이라도 깍아놔야한다. 속으로 자조하며 다짐하고서 아발론은 다시 스스로에게 단단히 일렀다.

 

 어차피 별의 외적을 물리치는 일 정도라면 ‘성검’의 수많은 기록 속에 남아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저것은 그 이야기 속 그것에 비하면 아종일 뿐이다.

 

 “제2, 제3보구 전개. 아르토리아 아발론, 간다.”

 

 그렇다면 못해줄 것도 없다. 심지어 이건 별과 반짝이는 드레스, 둘 모두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다. 통상의 상황이었다면 저를 불러냈을 억지력 탓에 인리 수호 장치로서도 출전해야할 싸움이었을 것이다. 왜 그 장치로 소환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진실은.... 본체로부터 전해오는 새로운 기록에 따르면 짐작 가는 것들이 있다.

 쯧.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무의식적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쩌겠는가. 후지마루 리츠카의 편을 들고, 후지마루 리츠카가 속한 세계의 편을 드는 것은 기록에까지 새겨진 마음이다. 세계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값진 살아남고 싶다는 그 욕구로 앞으로 나아가는 제 주인을 위해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기꺼이 제 보검들을 휘두르고 또 검으로써 휘둘러질 마음이 있었다.

 그 애에게 경애란, 그녀에게 편애란 그런 것이니까. 

 쓸데없는 상념을 또 했다는 것을 자각한 아발론은 입술을 깨물며 공격을 피했다. 공격대상으로 인식한 것에 자동으로 쏘아지는 마르미어드워즈의 방향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절하고, 카른웨난으로 저것이 뻗어오는 기괴한 촉수같은 집게 달린 가지들을 쳐내며 아르토리아는 영창을 외울 준비를 했다.

 

 “대종말 대숙정방어, 개시.”

 

 전개하고자 하는 것은 낙원의 요정의 보구, 라운드 오브 아발론. 범위는 넓게, 마스터가 있는 장소까지 대숙정방어의 보구의 영역에 들게끔 전개하였다. 혹시라도 앞뒤 구분없이 심장으로 돌격하는 ‘저것’의 불똥이 날아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서 한 행동이었다. 기실 그녀의 보구는 아르토리아 아발론 자신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기에, 오로지 후지마루 리츠카와 칼데아만을 위하여 펄친 보구였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펼쳐지던 고유 영역이 오늘만큼은 체감상으로 너무나 긴 시간 이후에 펼쳐졌다. 완전히 영역이 펼쳐진 때는 이미 뻗어오는 집게들 중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것들이 아르토리아의 얼굴과 갑주를 스치며 상처를 낸 후였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며, 영역 속 아발론의 성 위에 선 아르토리아는 해독할 수 없는 잡음을 내면서 스스로에게 강화를 거는 원반체를 똑바로 노려보고 혼잣말을 하며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 평소와 달리 오롯이 혼자인 공간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하는거야. 할 수 있어, 아르토리아.

 

 “이방의 나라, 시간의 끝. 그럼에도 검은 그녀의 손에. 장벽은 단단히 쌓아올려지고, 승기는 만인에게로 이어지는. 냉엄한 승리를 생겨라! 라운드 오브 아발론!”

 

 영창의 끝과 함께 마력이 한 순간에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머릿속에 마스터의 지시가 울려퍼졌다. 보구의 전개는 독단이었으니 지금부터는 그녀의 지휘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도리다. 똑같이 전음으로 대답하며, 후지마루 리츠카가 가까이 붙어서 공격하는 방안이 나을 것이라며 내린 지시에 맞춰 몸을 순간적으로 입자화하여 오르트에게 붙은 다음 검으로 쳤다.

 방해에 강제로 멈추게 된 오르트는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그저 개미를 밟고 죽여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인지 아르토리아 아발론에게 본격적으로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단순해보이는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타를 남기는 기분이였다. 칼데아의 분석에 의거하면 지금의 저것은 분명 어쌔신 클래스라서 캐스터인 제 영기로 상대하기에 상성이 좋을텐데도, 상성의 유불리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아르토리아의 영기에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물러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싸움이기에 후지마루 리츠카는 아르토리아 아발론을 믿고 내보낸 것이다.

 그 후부터는 사사롭게 기록을 남기지도 못할 만큼 치열함의 연속이였다. 쉼 없이 날아다님과 동시에 보검들을 남발하며 쏘아댔던 아르토리아는 잠시 숨을 골랐다. 서번트의 육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라, 명색이 영령인데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시야는 이미 절반이 핏빛이었다. 그러나 저것은 아주 잠깐의 숨돌림도 허하지 않으려는지, 그 사이에 또 거대한 집게가 날라왔다. 멍하던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정신을 깨운 것은 머릿 속을 뒤흔드는 거대한 외침이었다.

 

 [아르토리아, 피해!]

 

 “큿... 크윽!”

 

 간신히 마르미어드워즈의 날을 세워 공격을 튕겨낸 아르토리아는 조금 전보다도 더 강해진 압박에 인상을 찌푸렸다. 신을 동력 삼은 것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기어이 저것도 보구를 쓰려는 모양인지, 가벼운 공기의 떨림과 함께 날카롭게 대기 중을 떠다니던 마력이 원반체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구를 쓸 작정이야, 저거.]

 

 아, 다행히 이미 겪어본 서번트가 있었군. 

 아르토리아가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것을 후지마루 리츠카가 텔레파시로 확신시켜주며 이런저런 정보를 전달했다. 이것도 제 이전에 불려나와 싸웠던 누군가가 저 보구를 맞고 사라졌기에 축적될 수 있었던 데이터겠지. 지금의 저와 마찬가지로 온 영기를 불태우며 치열하게 싸웠을 누군가에게 속으로 경의를 표하며,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입술을 한 번 꺠물었다. 

 머릿속으로 후지마루 리츠카가 이 상황의 타파를 위해 고민하는 소리가 마구잡이로 들렸다. 본인조차도 숨길 수 없는 온갖 감정의 소리들. 전음으로 전달해오는 것이 아닌, 요정안의 역할이었다. 어떻게 가능한건지 그 구조원리는 파악되지 않는다. 파악하기 싫어서 안 한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참혹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당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구나. 요정안이 지금만큼은 그리 반가웠다. 후지마루 리츠카가 그렇게 숨기려 하고 망설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으니 되려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무엇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제 영기 상태로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쯤 영기의 92%정도가 망가졌을려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평가를 내리고, 나온 결과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눈 앞의 저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외감이 바람 앞의 깃털처럼 하늘하늘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아직.

 

 [괜찮아요, 리츠카.]

 [...?]

 [다음 소환을 준비해주십시오. 보구의 전개까지는 버티겠습니다.]

 [읏.... 알았어, 아르토리아.]

 

 상황이 상황이다. 후지마루 리츠카는 그 결심어린 발언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아르토리아의 독단적인 행동을 믿고 지금은 조금이나마 앉아 체력을 보충할 때라는 것이 이성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성과 마음은 다른 문제였다. 리츠카는 시야가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아르토리아의 굳건한 등만큼은 눈에 뺴곡히 담으려 애써 눈꺼풀을 뜨려 노력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도 없어 의자를 붙잡고 간신히 서있었다. 그럼에도 눈만큼은 그 애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굳이 뒤돌아 확인하지 않아도 후지마루 리츠카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기쁘게 마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약 30초 후면 저것의 보구가 발동될 것이다. 30초라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최후의 일격을 날리는 것쯤은 가능하다.

 

 “요정로, 접속.”

 

 몸 안의 회로가 가열차게 돌아갔다. 정말로 마지막의 마지막 힘이다. 이 공격 이후의 날아올 보구의 방어를 위하여 쓸 힘도 전부 넣은 공격이다. 일격 이후에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저것의 보구를 맞고 그대로 영자 변환될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세요. 대연회는, 승리 이후에 합시다. 약속이에요?]

 

 할 수 있는 최대의 작별 인사를 했다. 이 인사는 불필요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괜한 바람을 넣는 행위도 아니다. ‘아르토리아‘가 너무 싫어하는 후지마루 리츠카의 허세를 넘어서까지 닿을, 어쩌면 그 허세를 무너뜨릴 만큼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좋아하는 ‘나’의, ‘우리’의 마스터가 결국 쟁취해낼 승리를 누구보다도 믿고 있다고. 아르토리아 아발론으로써는 지켜보는 것조차 너무 괴롭고 슬프지만, 결국 모든 실의를 또다시 홀로 일어설 당신을 믿고 있다고.

 

 그렇게 전한 한 마디 이후에 후지마루 리츠카의 대답을 듣지 않고 아르토리아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단단한 원반에 갑주와 검이 마구잡이로 부딪쳤다. 원반체가 빙빙 무수히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의 보구가 전개되었다. 새삼, 이것도 귀중한 기록이겠군. 단상과 함께 전개된 보구에 그대로 몸이 굳어갔다. 

 에메랄드빛으로 변한 마지막 시야. 

 무의식 중에 고개가 돌아간 것인지,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의 아주 짧은 찰나에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후지마루 리츠카와 문득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잠깐동안만 안녕이에요, 리츠카. 꼭 다시....

 

 요정안도, 미래시도 없는 평범한 인간에게 전해지지 못한 말은 그 에테르체와 함께 에메랄드빛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리고선 그대로 오르트에게 흡수되었다. 스톰보더 내에서 그 모습을 간신히 눈을 떠 지켜보던 후지마루 리츠카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나서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다음 서번트의 소환을 위해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후지마루 리츠카는 긴 숨을 내뱉었다.

앞선 전투의 여파로 회복에 전념 중이던 마슈가 단박에 달려와 비오듯 흘러내리는 리츠카의 땀을 닦아주었다. 단단히 어깨를 붙잡아오며 얼굴을 스치는 수건 너머로 전해져오는 마슈의 온기를 느끼고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위안을 얻은 리츠카는 그제서야 나지막히 중얼거릴 수 있었다.

“잠깐만 그 안에서 버텨줘, 아르토리아....”

 작게 속삭이듯이 내뱉은 말은 들은 카독 젬루푸스는 후지마루 본인에게 안 들리도록 작게 혀를 찼다. 상황이 나빴다. 여차하면 최후의 수단이라도 써야할까, 내심 생각하던 카독이 무색하게끔 후지마루는 돌연 자신의 뺨을 한 번 치더니 놀라는 주변은 돌아보지도 않고 단단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다음 클래스는 뭐야?”

 

 하여간 이 녀석도 만만치가 않은 녀석이다. 카독은 그리 생각하는 것은 숨기고 보더로부터의 통신을 읽었다.

 

 “아쳐네. 사용하는 스킬도 필요해?”

 “아니, 그건 이미 외워서 괜찮아. 마슈.”

 “네, 선배.”

 “가레스를 소환해줘. 여기서는 프리텐더나 버서커보다 랜서가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홀로 구상하는 작전이 먹힐지는 다른 문제다. 속으로 자조한 리츠카는 다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야할 때다. 보더로부터 넘겨받은 데이터에 따르면 수치상으로 저것의 브레이크는 이제 세 번 남았다. 일단 세 번의 브레이크를 넘기고 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연회, 승리 이후에 하자고 또 약속했으니까. 승리가 필요한 때다.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한 손으로 뒤로 넘기며,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소환된 가레스에게 후지마루 리츠카가 외쳤다.

 

 “가레스, 혼자 출진해줘야 할 것 같아! 미안!”

 

 괜찮다며 씩씩하게 답변해오는 가레스에게 텔레파시로 고마움을 전하며, 후지마루 리츠카도 전투에 돌입했다. 3류, 아니 2류 마스터의 지휘라도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천금같은 자원이다. 여러사람에게 이미 칭찬받았던 자신의 특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이번에도 하는거야. 할 수 있어, 후지마루 리츠카.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