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알캐스구다] 날개들의 소리
* 알트리아 캐스터 X 후지마루 리츠카(女)를 상정한 CP 글이지만, 논컾으로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 날조와 추측 범벅인 글.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 LB6과 칼데아 스크랩 아르토리아 캐스터 편의 스포일러가 있으며, 해당 만화의 설정을 따른 글입니다. 클리어 이전이신 분들과 해당 만화 열람 이전이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추천합니다.
https://youtu.be/PLAHsB7EJpA?si=BW_PdfdmulcR_5Yp
BGM_翼をください
후지마루 리츠카에게 날개가 생겼다.
성경 속 천사들이, 구태여 멀리 갈 것까지 없이 당장 칼데아에 소환된 아무르 신처럼 희고 위로 쭉 뻗은 깃털 달린 진짜 날개가 생겼다. 환상인가 싶어 스스로의 뺨을 꼬집었다 놓아보고, 눈을 한 번 비벼봐도 사라지지 않는 리츠카의 날개에 아르토리아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에요?!”
너무 놀라 펄쩍 뛰다가 머리 위에 얹어둔 모자까지 땅에 떨어뜨린 아르토리아 캐스터를 보고 난감하게 웃던 후지마루 리츠카는 머리를 배배 꼬면서 입을 열었다.
“음, 그게 그러니까... 사고?”
그렇게 시작된 리츠카의 이야기는 꽤나 길었지만, 축약하자면 처음 문장 그대로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칼데아에서 이상하게 자주 일어나는 빈번한 사고가 일어나서 날개가 달리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레이시프트로 자원회수를 하던 도중 특이한 자원이 나왔는데, 그 자원에서 추출된 마력 리소스가 굉장히 귀중해서 호기심이 돋은 다 빈치 쨩이 시작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 우연히 주위를 지나가던 캐스터 둘, 파라켈수스와 셰익스피어가 합세해서 동화 속의 무언가를 현실로 꺼내보자는 소규모*캐스터*통합*대작전을 펼쳤다나 뭐라나. 그리고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보고할 게 생겨서 다 빈치 공방에 들렸던 후지마루 리츠카가 언제나와 같이 실패한 실험 결과를 그대로 뒤집어 썼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날개가 불쑥 돋았다는 것이다. 놀란 다 빈치쨩에 의해 붙잡혀 바로 의료실로 향해 신체 검사를 받았으나 다행히 몸이나 정신에 큰 변화는 없고, 정말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한 순간에 날개가 돋은 것뿐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후지마루 리츠카의 미약한 마력 덕분인지 때문인지, 9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소소한 어드밴티지였다.
“칼데아네요...”
“그치~?”
전말을 다 듣고나니 그렇게 놀랐던 아르토리아도 허탈하게 한 마디만 말할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의도치 않은 소소한 사고였다. 리츠카의 신체에 소소한 변화가 있을 뿐, 위험은 없다하니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다. 실험을 진행한 세 명은 이야기를 들은 로마니에 의해 벌금형에 처해졌다고는 하나 그 벌금마저도 5만 QP였으니 작은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다들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날개가 돋아있나요...?”
“왜, 이런 나는 싫어?”
“네?! 아니 절대로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날개 달린 마스터가 어색해서 그랬어요... 하하.”
“알아, 알아. 미안해, 아르토리아 반응이 궁금해서!”
“리~츠~카~!”
입이 톱니 모양이 된 아르토리아를 보고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웃는 리츠카를 앞에 두고, 아르토리아는 괜스레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날개 달린 리츠카는 어쩐지 너무 어색해서, 눈을 못 마주칠... 정도는 아니지만 어딘가가 불안해보였기에 나온 말이었다.
“아까 아침에 그 일이 일어났으니까 앞으로 4시간 정도 남았을려나? 지금이 세 시니까.”
“정확히는 3시 30분이네요!”
”으응. 그럼 아르토리아, 부탁이 하나 있어.“
”부탁이요?“
”같이 밖에 나갔다 오지 않을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아르토리아에게 리츠카는 천천히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인 즉슨 이런 것이다. 3 재림인 아르토리아는 자유롭게 나는 것이 가능해보였으니, 후지마루 리츠카가 새로 생긴 날개(임시)로 나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원래 리츠카의 계획은 이왕 날개가 생긴 김에 평소 레이시프트 때의 착지 보답으로 마슈를 안고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였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닥터 로마니가 반대해서 실패했다고 했다. 마슈는 오늘 검진 날이기도 하고, 리츠카의 날개가 어느 중량을 버틸 수 있는지도 몰라서 마슈의 동행은 안 된다고 반박당했던 모양이다. 로마니 아키만은 아예 후지마루 리츠카가 칼데아스의 방어막 반경까지만 날아 다녀보겠다고 약속하며 잠깐만 나가게 해달라는 요청 자체를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다 빈치쨩의 꼬드김과 리츠카의 애처로운 눈빛에 마지못해 허락하며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조건은 갑자기 생긴 날개라는 건 수상쩍고 애초에 난다는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니, 날 수 있는 서번트와 함께 나가는 것. 그렇게 조건을 들은 리츠카도 로마니에게 역으로 설득당해서 날 수 있는 서번트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이후로 의료실을 나와 복도를 걷다 보니 문득 생각난 게 3재림의 아르토리아가 전투하던 모습이라 당장에 달려온 것이라 했다.
”그치만 아르토리아, 공격할 때는 황금빛으로 슝슝 날아다녔잖아!“
”날아다닌 건 맞지만요...“
”응응, 그러니까 잘 부탁해?“
제 주인이 천진난만하게 해오는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아르토리아는 편의상 1재림 상태로 고정시켜둔 영기 제한을 풀고 3재림으로 모습을 변화시켰다. 눈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지마루 리츠카가 친구가 한 순간에 멋진 기사님이 된 기분이라고 히히 웃는 것에, 아발론은 굳이 맞장구 치는 대신 미소를 띄우며 어서 밖에 나가자고 하는 리츠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가기 전에, 보온 마술을 걸어드리죠. 칼데아 바깥은 남극의 고산이니 예장의 체온 보정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우와, 아르토리아 진짜 대단해! 갑자기 확 따뜻해졌어.”
“곧 더워질지도 몰라요. 그 전에 어서 나가죠.”
알았다며 힘차게 앞장서는 후지마루 리츠카의 뒤를 따라붙으며, 결국 아르토리아 아발론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치만 제 주인이 저렇게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미래에도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은 아니였으니, 아발론의 마음이 주인을 따라 같이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복도를 걷길 5분여, 아르토리아와 리츠카는 인리소각 사태 이후로 졸곧 굳게 잠겨져 있던 칼데아 뒷문에 다다렀다. 내심 떨리는 속마음을 진정시키던 리츠카는 닥터 로마니가 준 카드키를 판에 갖다댔다. 곧 아나운스가 들리더니, 허가됐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번도 칼데아 바깥에 나와본 적 없던 아르토리아는 제 눈 앞에 하얗게 펼쳐진 진짜 눈 밭에 넋을 놓았다. 이 영기에서 이런 광경을 두 눈으로 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라 그 정도가 더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리츠카의 말 덕분이였다.
“우와... 진짜 춥다!”
그 말에 놀라 옆을 돌아본 아발론은 뺨을 붉게 물들이고 웃고 있는 제 마스터의 등에서 얌전히 누그러뜨려진 날개를 슬쩍 체크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보온 마술을 강화해드릴까요?”
“으응, 아니. 딱 좋은 것 같아.”
그 말을 하고 후지마루 리츠카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후지마루 리츠카로서도 남극의 대지를 밟는 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칼데아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리츠카는 남극이 꼭 언젠가 가족여행으로 갔던 오타와 같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어릴 적 만났던 고요한 눈의 세계가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도움닫기를 해야겠지. 아르토리아가 뒤에서 자기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한 후지마루 리츠카는 힘차게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예장 신발은 튼튼해서, 내리막인 눈길에서도 평범한 흙길을 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갑작스러운 리츠카의 행동에 놀란 아발론은 얼떨결에 리츠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리츠카, 넘어져요!”
애써 그런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힘껏 뛰던 리츠카는 빠르게 쫓아온 아르토리아에게 옷깃이 잡히기 직전에 씩 웃으면서 폴짝 뛰었다. 그저 앞으로 힘껏 뛴 것 뿐인데, 등의 날개가 펄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점점 땅이 멀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날았다.
“아하하!”
그 감상으로 머리가 가득 찬 리츠카는 소리내서 웃었다. 해방감이 그녀를 잠식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땅은 너무 넓고, 하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이라면 무얼 해도 될 것만 같았다. 칼데아도, 솔로몬도, 마신주라는 것도. 하여간에 복잡하기만 하던 것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8개월 동안 걱정하던 고민들이 한 순간에 날라갔다.
“이 드넓은 하늘에 날개를 펼쳐서 날아가고 싶어요. 슬픔이 없는 자유로운 하늘로, 날개짓을 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졸곧 들어왔던 가요가 머릿속을 거쳐 드문드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쁘진 않지만, 하도 합창대회에서 많이 부르고 애니메이션 주제가로도 여러 번 들어버려서 이제 질린 줄 알았던 노래가 어째 이 순간만큼은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심지어 노래방에서 잘 부르지도 않았었는데 기억 속에서 가사가 생생히 기억났다. 흥얼거리는 노래와 함께 날개가 퍼덕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릴수록, 후지마루 리츠카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추듯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마음 가는대로 등 뒤의 날개를 위 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던 와중,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던 리츠카는 돌연 제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 뒤를 타고 소름이 쭉 돋았다.
“어?”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드길 3초. 머리가 풍경을 따라 하얗게 물든 것인지 단말마 이후로 리츠카는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어있었다. 어떡하냐는 물음만 머리를 가득 채우던 그때, 단단한 갑주가 느껴지는 품 속으로 리츠카가 안겨 들어갔다. 얼떨결에 고개를 살짝 위로 젖힌 리츠카는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하얗게 질려 굳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아르토리아!”
“리츠카. 제발. 좀. 조심해주세요.”
“헤헤... 미안해, 너무 들떴네.”
눈치를 살살 보며 건네는 사과에, 아르토리아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좀 더 편안하게 바꿨다. 같이 자세를 바꿔가던 리츠카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거, 하울에 나오는 자세 같다.”
“하울이요?”
“응!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거 있어. 돌아가면 같이 보자.”
그렇게 말하며 후지마루 리츠카는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손을 꽉 잡아왔다. 한 번 추락할 뻔 하니 조금 진정되었는지, 아까까지의 표정은 이제 한 결 가라앉아버렸다. 본인은 딱히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아르토리아에게는 한 눈에 보이는 변화였다. 그런 아르토리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리츠카는 조금이라도 이 풍경을 시야에 더 담아가겠다는 듯이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띄우고, 뺨은 붉게 달아오른 채로.
이번만큼은 칼데아스에게 감사해야겠다고 아발론은 내심 생각했다. 적어도 후지마루 리츠카가 날아온 곳까지는 방어막이 잘 펼쳐져 있어서 소각된 인리가, 불타는 대지가 리츠카의 시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였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은 그녀가 즐거운 그대로 남아있길 바라고 있어서 그랬다.
...그렇게 즐거울까? 기록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감정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즐겁다는 감정은 많이 보였지만, 이건 그 이상의 감정 같았다. 후지마루 리츠카의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서 최고조를 찍고 있었다. 그녀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도 보이는 감정들은 오로지 들뜸, 즐거움, 해방감, 그리고... 기대감이였다. 그리 깨닫고 나면, 아르토리아는 어느새 입 밖으로 의문점을 뱉어내고 있었다.
“리츠카, 지금 무얼 기대하고 계세요?”
“우와, 부끄러워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 얼굴에 다 보였어?”
“... 네, 조금 보였어요.”
“그랬구나... 뭐, 별 건 아니야. 이제 집에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
“...”
“아까 들었는데, 곧 제 6특이점으로 향한대. 그럼 이제 두 특이점만 해결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거잖아. 사실 그 말을 듣고 날개가 생겨서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당장이라도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 있지. 그래서 그런거야. 음,.. 역시 조금 이른 설레발이였을까?”
볼을 긁으며 혼자 지녀왔던 간절한 소망을 조곤조곤 전해오는 제 품 속의 소녀를 보며 아르토리아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감히 무슨 말을 전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존재 자체가 후지마루 리츠카의 모든 기대를 한 순간에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인데, 그렇게 태어난 자신이 어찌 말을 꺼낼 수 있겠는가. 내심 들떠있던 아발론의 기분은 순식간에 수직하락했다. ‘나’의 탄생 이래로 이렇게까지 끔찍한 기분은 처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없이 웃는 아르토리아를 보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싶어, 다시 깊은 숨을 들이쉬며 활짝 웃는 후지마루 리츠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린 아르토리아 아발론도 그녀를 따라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리츠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아발론에게도 지금 진정이 필요했다. 머리가 한 순간에 질퍽질퍽해졌다.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는 리츠카의 손을 꽉 붙잡았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장갑 너머로 전해져오는 리츠카의 온도가 너무 희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발론은 스스로가 리츠카의 날개를 본 순간부터 느끼던 불안감의 원인을 찾았다.
당신이 한 순간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랬던거구나. 집에 가고 싶다는 당연하고 소박한 소망을 품은 당신이...
그러나 완벽한 범인류사에서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소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칼데아가 브리튼 이문대를 통과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탄생은 후지마루 리츠카가 친애하는 그녀의 소녀와 함께 순례의 여행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일인 것은 확정된 과거이자 미래였다. 에인셀의 예언에서도 전해지는 미래였으며, 아발론이 에뮬레이트하는 기록 속에 확연히 남은 어느 봄날의 기록이였다. 그 모든 순간에 후지마루 리츠카가 빠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 존재감만큼 아르토리아 아발론은 후지마루 리츠카가 소중했다. 소중하고 소중해서, 언제나 리츠카가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그러니 제가 그 소원에 대체 무슨 말로 당신한테 화답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홀로 되뇌인 아르토리아는 점점 식어가는 후지마루 리츠카의 체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리츠카, 이제 돌아가요.”
“엑, 벌써?”
“벌써라뇨? 나온 지 1시간이 넘었는걸요. 봐요, 이제 슬슬 몸도 추워지고 있죠? 멀린 마술도 무적이 아니니까요!”
“우왓. 그러고 보니 그렇네.”
“게다가 더 늦으면 마슈는 물론이고 닥터 로마니까지 잔소리를 할지도 몰라요.”
“그건 좀 별로인 걸. 좋아. 그럼 이제 돌아가자, 아르토리아!”
사진기를 들고 올 걸 그랬다며, 후지마루 리츠카는 아르토리아의 품을 벗어나 스스로 날개를 팔랑거리며 툴툴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서 커다란 고리와 눈이 마주친 리츠카는 그 생각을 취소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마슈에게는 역시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깨끗한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리수복을 하고 나면 저 고리도 없어질테니까, 그 날이 오면 꼭 마슈와 함께 칼데아 밖을 나와서 이상한 고리 따위가 없는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리츠카는 소중한 후배한테 기왕이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옆에서 후지마루 리츠카가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 생각을 본 아르토리아는 우울해지던 기분이 거짓말이였던 마냥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자신은 희망을 보고 미래를 그리는 후지마루 리츠카라는 인간을 좋아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을 홀로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존재가 후지마루 리츠카였으니까. 잔인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 힘을 가지게 된 아르토리아는 적어도 그녀가 걷게 될 가시밭길 위에 솜을 가득 뿌려 조금이라도 편안한 길과 적은 상처의 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일을 위해서 아르토리아 아발론이 이 시점에서 소환된 걸지도 몰랐다. 자신을 모르는 리츠카에게, 하물며 공상수가 발아하기도 전에 인리가 표백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환될지는 상상도 못했어서 초반의 아르토리아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워했었던 기억도 있지만 이제와서 보니 전부 쓸모없는 고민들이였다.
일찍 소환되어버린 그 시간만큼 더 리츠카를 도와주면 되니까! 명쾌하고 간단하게 튀어나온 답이였다. 그리고 오히려 아르토리아 아발론의 근원에 있는 다짐을 실현 시키기에는 더 좋을지도 몰랐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러기 위해서 기껏 힘을 낸 소녀가 아닌가. 힘이 되기 위해서, 언제나 열심히 해야할 리츠카가 나를 설령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말을 걸어오는 리츠카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답을 해주며 아르토리아는 그렇게 다짐했다.
소소한 잡담과 함께 천천히 하강하는 두 사람 사이의 좁은 빈틈에는 고리 없이 푸른 하늘만이 존재하였다. 새하얀 눈밭 위로는 날개 달린 인간과 날개 없는 요정의 그림자가 오롯이 비춰졌다.
두 사람이 지금 함께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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