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깃거리

몰리뉴 문제

이윽고 눈을 뜬 장님은 그것을 보자마자 알 수 있을까?

적다보니 당장 내 심리상태가 요동을 치고 있어 배배꼬인 심보를 도무지 숨기질 못하게 됐는데, 돈 버는 일도 아니고... 알아서 해주면 고맙겠다. 어차피 잡다한 가십 아닌고. 재밌는 점 하나를 굳이 꼽자면 여기도 어김없이 고양이가 등장한다는 점이겠지…

추천하는 사전지식

• 경험주의

• 신경/시냅스 가소성(본문에서도 일부 설명)

• 인체에서 시각 정보의 수용 및 전달 구조

몰라도 대충 아는척 끄덕끄덕하는 예습-안-한-학생의-용기가 있다면 렛츠고.


1689년 영국에서 발행된 철학자 존 로크의 저서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한국어 번안명은 인간 지성론)에는 후일 그의 친우였던 과학자이자 변호사인 윌리엄 몰리뉴의 이름을 따 ‘몰리뉴의 문제’로 불리우게 되는 질의가 한가지 인용되어 있다. 이 문제를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의 내용이 된다.

“출생시부터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으며 촉각으로 구체와 입방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가 어떠한 이유로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즉시 촉각이 아닌 시각만으로 구체와 입방체를 구분해낼 수 있을까?”

저서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로크는 몰리뉴의 이같은 질의에 대하여, 경험주의로 정의되는 로크 본인의 철학적 시각에 입각해 ‘그가 맹인으로써 경험을 축적해 온 촉각과 새로이 얻은 능력인 시각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험이므로 촉각으로 얻은 경험은 시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따라서 그가 구체와 입방체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내 날림 번역이며, 해당 파트의 전문(영어)은

https://en.m.wikipedia.org/wiki/Molyneux's_problem

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원문을 보길 바란다. 물론 귀찮은 사람에겐 충분한 번역이다.)

몰리뉴의 문제가 제시하는 철학적 쟁점은 “인간은 기하학적 개념을 선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가, 혹은 경험적으로 획득하는가”라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 이는 기술적인 후천적 시력 회복의 가능성이 부정되던 17세기 후기의 환경 하에서 몰리뉴의 문제에 대해 불가능을 말하는 경험주의와 가능을 말하는 합리주의의 대립 구도를 빚어내는 철학적 사고실험으로 시작하여, 종래에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철학적인 사유를 넘어 실재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근본 지성에 대한 다분히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인 검증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21세기 초인 2010년대까지, 그러니까 2024년인 현재로부터도 그다지 머지 않은 과거 시기까지도 절찬리에 통용되던 신경과학계의 대세론은 두 가지 가정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첫번째는 “감각계가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 감각 자극이 필요한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두번째는 “결정적 시기의 뇌는 몹시 유연하고 가소성이 있다”로써, 그 두 가지를 종합하면 “결정적 시기를 지나 고정된 신경의 연결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설이 된다.

지금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는 공부를 수행한 이들이라면 곧장 파하하 웃고도 남을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설에 의하면 시각피질 역시 감각계에 속하는 만큼 생애 초기의 결정적인 시기를 맹인인 상태로 보낸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은 감각계 발달에 중요한 시기를 시각 자극이 부족한 채로 보내게 되므로, 경험주의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결정적인 시기에 쌓았어야 할 시각적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후일 어떠한 이유로 시력에 관한 기능이 회복되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상시력의 범위로는 회복될 수 없으며 따라서 영구히 장님 또는 약시로 살아가게 된다는 가정이 엄연히 다수설로 성립하는 상황이었다.

아무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1981년으로 무대를 옮겨, 당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미국의 신경생리학자 데이비드 H.허블, 그리고 스웨덴의 신경생리학자 토르스텐 N. 비셀 두 사람의 공동연구성과에 수여되었다. 연구윤리 문제로 인간을 대신해 3~5주령의 어린 고양이들의 한쪽 눈을 꿰메어 인공적으로 시력 상실의 상황을 조성한 뒤, 6개월령에 이를 풀고 고양이들의 뇌를 관찰하여 망막을 통해 시신경으로 전달된 시각정보가 뇌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한 기전을 밝힌 해당 논문(

1962년에 게재된 논문이라 자유열람, 이용 가능하다)의 실험은 한쪽 눈을 꿰멘 고양이의 시각 피질이 6개월째에 눈을 틔워주었음에도 활성이 억제되어 있었고, 꿰멘 눈의 시각정보를 담당했어야 할 피질 영역이 아무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점차 반대쪽 열린 눈으로부터 들어온 신호를 처리하도록 자율적으로 재배선되었으며, 한쪽 눈을 실험으로 감긴 고양이들은 열린 눈의 시각 피질 영역이 대조군보다 면적이 넓었다는 결과를 세간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연구의 결론으로 도출된 것이 바로 위의 시냅스 가소성과 학습에 관한 고전적인 속설인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간에 권위에 의한 오류나 다름없지만, 당시에는 저 사람들이 가장 최신예의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니 끄덕여야지 뭐 어쩌겠는가? 늙은이들이 반드시 멍청해서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몹쓸 소리를 항간에 지껄인 것은 아니라는 부득이한 해명을 위해 에둘러 써내려갔으나, 중요한 이야기는 어쨌거나 해당 속설은 점진적인 예외 사례의 발견과 반박하는 결과를 보이는 연구들을 통해 완전히는 아니어도 얼추 폐기되었고, 또한 장장 300년 가까이 되는 세월 속에서 몰리뉴의 문제 역시 직, 간접적으로 등장해 해소되어갔다는 점이다.

고개를 2004년의 메사추세츠 공대로 돌려보도록 하겠다. 현재도 MIT 뇌 및 인지과학과의 시각 및 연산 신경과학 교수로 재직하며 MIT 산하의 신하 랩에 연구소장으로 근무중인 파완 신하 교수는 04년 당시에도 이미 MIT에 재직중이었다. 당시의 그는 후일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꽤 여러가지 목적이 뒤섞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이 맥락에서는 당연하게도, 그의 목표 중 하나는 어린 시각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뇌가 어떻게 시각을 학습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목표로, 주된 목적은 예방 및 치료가 가능한 질환자들임에도 시골의 답습되는 가난과 무지, 열악한 의료 인프라로 인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경, 그리고 원체 많은 인구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 실명환자를 보유한 인도의 가난한 어린이 실명 환자들의 고통을 긍휼하고자하는 칭송받아 마땅한 인도주의의 실천이었다.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 전문은 여기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feature-giving-blind-people-sight-illuminates-brain-s-secrets

를 보면 된다. vpn을 켜고 읽는 게 좋을 것이다. 미구독자 아티클 무료 열람 가능 수 제한이 있으니까.

이 실천을 위해 신하 교수는 지금보다 20년 더 젊은 열정으로 02년과 03년 두 해 동안을 인도 전역을 돌며 각종 실명 환자들의 증세와 원인을 조사했다. 근거는 당시로부터 수십년 전에 발표된 논문 두 편으로, 요는 선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성인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고 미약하게나마 시력을 회복했더라는 부분이었다. 다행히도 불타는 열정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신하 교수는 인도 전역에서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일부 되찾은 환자 네 명을 만날 수 있었고, 이로부터 확신을 얻어 인도의 수도인 뉴 델리에서 자선안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소라지 P. 시로프 박사를 설득해내는 데 성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병원에 대한 위키피디아 문서는

여기로. 꽤나 대형인지 병원 공식 홈페이지도 존재한다. 하여간에 우여곡절과 갖은 노고 끝에 신하 교수 개인의 선량함과 학구열, 열정을 바탕으로 사람과 돈과 인프라와 학문을 이어, 프로젝트 프라카시가 시작되었다.

프라카시는 산스크리트어 단어 prakāśa에서 유래한 힌디어 단어로, ‘빛나는’이라는 의미이다. 힌두어권 국가에서 평범하게 이름으로 사용되는 단어라고도 한다. 이해를 돕고자 로컬라이징을 구태여 해보자면 ‘빛나 프로젝트’ 정도면 될까. 관련 문서는

이 쪽. 성립과 함께 NIH(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 프라카시는 안과 전문의 및 보건의료진으로 구성된 연구진과 시골 마을 각개를 돌아가며 방문해 세운 간이검사소 일체를 동원해 환자들을 비수술 치료 환자와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로 분류하여 치료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15년도 기준으로는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가 약 500명, 비수술 치료를 받은 환자는 약 1400명이라고 하니, 개인 후원도 받고 있는만큼 현재는 이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에게 이름 그대로 빛을 찾아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프로젝트 홈페이지는

여기.

NIH의 후원을 받았다는 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신하 교수는 미국인이니까 말이다. 명예 말고는 남는 거 없는 자선사업으로 정부 프로젝트를 땄는데 성과 없이 먹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프라카시의 연구진은 수술적 치료를 통해 시력을 회복한 아동 환자 중 출생 직후 실명했던 것으로 확인되는 환자 150명을 선별했다. 그리고 진행된 실험의 첫 화두는 ‘착시’였다. 착시라는 것은 익히들 알고 있듯 인간이 시각정보를 실제와 다르게 인지하는 현상이다. 저 뒤에 선 사람이 태산만해보이는 거나 가만히 있는데 빙글빙글 도는 원이나 멋대로 다그닥다그닥 뛰는 말은 예사요, 길이가 같은 선분이 장식적 요소에 의해 전혀 다른 길이의 선분으로 보이는 황당한 일도 있다. 마지막의 선분 길이 착시가 바로 고전 착시 중 하나인 폰조 착시인데, 프라카시의 연구진은 이 폰조 착시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다.

(폰조 착시 사진)

당시 신경과학계는 착시에 대해 두 가지 설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착시가 뇌의 선천적인 배선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상향 이론, 다른 하나는 착시가 경험의 산물로서 시각정보의 후천적인 학습의 축적에 의해 발생한다는 하향 이론인데, 기시감이 든다면 정답이다. 몰리뉴의 문제처럼 사실상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심지어 과거 300여년 전에도 그랬지만 실험을 하자니 실험 조건을 구성할 수 없다는 점마저도 동일했다. 학습의 영향을 배제하고 착시의 발생 여부를 물어야 하는데, 사람이 느낀 것을 남이 뺏어 느껴다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습을 배제하자니 진술을 할 수 없는 신생아만이 유일하게 실험 조건에 부합하는 피험자가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젝트 프라카시는 실로 적합한 실험장이었다. 프라카시의 연구진은 10년도와 11년도 두 해에 걸쳐 부모와 시로프 자선병원의 증언을 토대로 출생 직후 시력을 잃었다는 수술 대기상태의 아동 9명을,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은 아마도 부모의 동의를 얻어서, 연구 대상으로 골라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붕대를 막 푼 아동 개인에게 폰조 착시 그림을 제시했다. 폰조 착시의 원인에 대한 주류 해설은 뇌가 두 선분이 있는 그림을 2D가 아닌 3D, 즉 입체로 해석하며 한쪽 선분이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것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만약 착시가 학습의 결과라면 난생처음으로 방금 눈을 뜬 9명의 아동들은 절대 착시를 일으킬리가 없고, 로크와 몰리뉴는 30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저승에서 경험주의의 과학적인 완전 승리를 만끽할 수 있을 터였다. 연구진이야 결과가 어떻든 논문 한 편 내는 거고.

그렇게 밝혀진 결과는 완벽하게 깔끔한, 착시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결론이었다. 9명의 아동 모두가 일관되게 착시를 겪고 있음이 명백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폰조 착시에 이어 제시된 뮐러-라이어 착시에도 9명의 아동이 모두 일률적으로 착시를 겪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착시는 학습의 산물이 아닌 선험적으로 내재된 요소라는 사실이, 즉 결정적인 시기에 시각 자극이 주어지지 않은 인간에게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자극을 수용하여 성숙한 감각계를 지닌 인간과 다르지 않은 시각정보 해석 기능이 뇌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 실험은 15년도 Currunt Biology 5월호에 게재되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로 몰리뉴의 문제에 대한 답을 댈 수는 없다. 연구진을 비롯해 많은 연구자들이 프라카시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의 실험 외에도 인간의 시각에 대해 그간 쌓인 궁금증을 풀고자 했으니까 말이다. MIT에 재직중이던, 신하 교수와 동과 재직중이었던 리처드 M. 헬드 교수는 신뢰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시각과 촉각의 독립적인 감각을 보유했다는 조건을 만족한 8~17세 프라카시 환자 5명의 협조를 얻어 이들이 수술적 조치로 약시 수준의 시력을 회복한 뒤 몰리뉴 문제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는 3차원 입체물 20쌍을 준비하여 쌍의 한 쪽을 만져보게 한 뒤, 만진 것과 동일한 입체물을 눈으로 보고 선택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술 후 이틀 이내에 진행된 검사에서, 환자들은 사실상 두 감각을 연결짓지 못하는 수준의 정답률을 보였으나, 처음 검사를 진행했던 다섯 명 중 세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수 일주일 이내로 다시 진행된 검사에서는 정답률이 대폭 오름에 따라, 몰리뉴의 질문은 처음 사고실험이 제시된 당대의 철학적 관점으로는 명확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몰리뉴 검사 실험에 대해서는

를 교차 참조하기 바란다. 기사 링크는 제대로 열리질 않더라.

결과를 해석해보자. 헬드 교수의 첫 검사 결과는 몰리뉴의 문제에 대한 답은 명백히 로크가 옳았음—촉각 경험은 시각 경험과 독립적이며 갓 눈을 뜬 장님은 촉각으로 구분하던 물체를 시각으로 구분치 못한다—을 시사한다. 하지만 착시 실험은 그 반대로 시각 해석에 경험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 근본적인 지성에 해당하는 영역이 있음을 보여 합리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부터 결국 시각은 선험적 요소로만 구성된 것도, 경험적 요소로만 구성된 것도 아닌 두 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며, 기나긴 타이핑과 스크롤 끝에 시각이 경험인지 혹은 선험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 하나를 매듭짓게 된다.

그럼 철학에서 다시 과학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재시행된 몰리뉴 검사에서 수술 후 후천적인 시각적 경험을 더욱 쌓아올린 프라카시 환자들의 점수가 대폭 상승했다는 결과는 기존 고양이 연구가 내린 신경가소성이 결정적인 시기에 집중된다는 결론과는 정면 배치된다. 그렇다면 다른 연구를 추가로 봐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이미 기존 연구 중에, 비단 시각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콘솔게임을 반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는 성인들의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약병의 콩알만한 글씨 읽어내기, 군중 속을 헤치며 친구들 쫓아가기 등 난이도 있는 시각적 업무 수행에 보다 나은 수행능력을 보임을 제시한 연구가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해당 연구는 여기.

그렇다면 프라카시 환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공간심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제시어를 듣고 그에 대한 시각적 상상을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Psychological Science 14년 3월호에 게재된 프라카시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수술 전의 환자들에게는 부족했던 공간심상이 수술 후 향상되었으며, 시각은 공간심상 구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감각이고, 공간심상의 발달에 대해서 결정적인 시기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연구 링크.

별도의 연구로, 안면인식능력도 비슷하게 결정적인 시기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환자들은 수술 직후에는 딱히 얼굴과 얼굴 아닌 것도 잘 구분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이는 안면인식능력이 선천적이라는 속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초미의 관심사인 가소성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올리비에르 콜리뇬 박사 연구팀이 프라카시 환자 대상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독립적으로 시행한 연구 결과가 가히 충격적인데, 피험자는 한살 이전에 일찌감치 시력교정수술을 받은 환자임에도 20년이 지나서도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고, 3D 지각력과 동체시력도 미약했으며, 뇌의 배선 상태도 상당히 달라져 시각피질에서 보통과 다르게 청각 신호까지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currunt biology 15년 9월호에 게재되었다.

프라카시 환자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수술을 받은 최저연령이 8세인데 모두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는 사실로부터 각종 시각적 인지능력 외에 시력에도 결정적인 시기가 존재하며 적어도 8세 이전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하 박사의 프라카시 연구팀은 이에 보태 대조, 음영, 패턴을 감지하는 기본적인 시각 인지 능력인 대비 감도에 대해 프라카시 환자들을 대상으로 검사하여, 이들이 수술 후 대비 감도가 크게 회복되었음에도 보통 수준으로는 회복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보면 다시 가소성에는 때가 있다는 고전적인 주장이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04년 이스라엘의 신경과학자 우리 폴랏 박사는 선천적 약시 환자에게 크기와 대비도가 변하는 흐릿한 흑백 패턴인 가버 패치를 사용한 훈련을 시행해 시력과 대비감도를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가소성이 하락할 뿐 결정적인 시기가 종료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에 상당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 보태, 프라카시 연구진이 fMRI로 수술 후 환자의 시각피질의 변화를 관찰하니, 수술 이틀 후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반응하던 시각 피질이 수술 2달 후에는 분업이 이루어져 부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부터 시력회복의 영향과 시각 학습에 따라 분명히 재배선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기사에 있는 fMRI 사진)

결국 과학적인 검증면에서도 역시 결정적인 시기가 존재하여 시각 장애로 인해 시각 피질 발달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과 이를 후천적인 경험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마치 키는 유전자가 다 하지만 막 살아도 무조건 크지는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결론이 우리 손에 쥐여지는 것으로 몰리뉴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마칠 수 있겠다.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하지 않나 한다. 정말로 양쪽 주장이 다 맞는 문제라는 걸 말이다. 생명에 대해서는 기상만큼이나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점은 덤이다.

기타 참고문서

(사이언스지 기사 본문의 번역인데, 사실 몰리뉴의 문제보다는 프라카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다.)

(몰리뉴의 문제에 대한 일본어 번역문의 발췌인듯)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EB%AA%B0%EB%A6%AC%EB%89%B4%EC%9D%98-%EB%AC%B8%EC%A0%9C%EC%99%80-%EB%AE%90%EB%9F%AC-%EB%9D%BC%EC%9D%B4%EC%96%B4-%EC%B0%A9%EC%8B%9C-%ED%95%9C%EC%9A%B0%EC%A7%84/c8488376d0ec50b522583a82a92156be58b29123

(몰리뉴의 문제에 대한 거의 유일한 직접적인 한국어 문서인데 원본이 아닌듯해서 찾아보니

의 초록을 복사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읽을거리

프라카시 프로젝트를 선두에서 추진한 파완 신하 교수의 국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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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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