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전력] 물 밖에서

주제 : 인어

물 밖에서

청우문대

“아빠, 인어 아빠도 저렇게 수영 잘 해?”

명랑한 아이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대형 수조 안에서 방금까지 쇼를 이끌던 진행자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돌고래는 회색의 매끄러운 피부를 빛내며 물고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공연을 잘 마친 대가인 듯 했다. 주변에선 사람들이 하나둘 아이의 손을 잡고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가득했던 인파가 벌써 많이 빠져나갔는지 관객석은 텅 비어있었다. 출구 쪽에 한 남자는 수아만한 아이를 어깨 위에다 얹어놓고 있었다. 그 옆의 여자는 유모차를 끌며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눈을 맞추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여기 아쿠아리움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무릎 위에 앉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수아는 이제 내 목에 팔을 감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 대답, 대답해야지. 

“응, 인어 아빠는 훨씬 수영 잘 해. 그래서 아빠가 처음 보자마자 반했어.”

“진짜? 그래서 수아도 생긴 거고?”

눈을 빛내는 수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욱신거렸다. 秀雅. 빼어날 수에 맑을 아를 쓰는 수아는 몇 년 전 문대와 함께 입양한 아이이다. 사람을 냉동시킬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동성 생식 기술까지 나오지는 않아 문대와 나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다. 대신 입양은 할 수 있었다. 수아는 문대의 사망한 동료의 아이였다.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으며 수아를 입양하자고 하는 문대를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 기뻤다. 아이가 생겨 좋았던 게 아니라, 아이가 생기면 문대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안도감이 들어 좋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고 나를 아빠라 부르며 손을 뻗는 수아를 볼 때면 괜한 미안함에 속이 쓰렸다.

“이제 우리도 일어날까? 수아야, 아빠가 안아줄게. 꽉 잡아.”

“이렇게?”

“응, 잘한다. 돌고래 봤으니까 다른 물고기도 많이 보자.”

 

 

*

 

 

내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아이는 한참동안 물고기 떼를 감상했다. 전기뱀장어, 피라냐, 가오리, 상어 등등.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말미잘 틈에 고개를 빼꼼 내민 흰동가리를 보고서는 가까이서 보겠다며 내려달라고 했다. 물고기들이 물을 가르며 헤엄치는 걸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인어 아빠는 바다에서 물고기 친구들 노는 거야? 좋겠다! 나도 매일 물고기 보고 싶어.”

화려한 시클리드들이 헤엄치는 걸 보며 수아가 말했다. 문대가 직접 낳은 것도 아닌데 어쩜 이리 닮았는지. 웃음이 나왔다.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아야, 여기 있는 물고기들은 바다 아니고 호수에서 사는 친구들. 그래서 인어 아빠는 여기 애들이랑은 못 놀 걸? 수아랑 아빠만 본 거야.”

저희 둘만 본 거란 말에 수아는 기뻐하는 듯 하다가 시무룩해졌다. 아이의 반응을 알 수 없어 말랑한 뺨을 쓰다듬으며 이유를 물었다.

“그럼 인어 아빠도 같이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인어 아빠는 못 봐서 아쉽겠다.”

그러게, 문대도 같이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아이의 말에 심장이 바닥까지 쳐박혔다.

“아빠아, 우리 인어 아빠 보러 가면 안 돼? 여기도 바다 있잖아요.”

수아가 내 눈치를 보며 졸랐다. 다시금 아이를 안아들었다.

“인어 아빠 보고 싶어? 인어 아빠는 지금 저어기 멀리 바다에 있어서 만날 수 없어. 대신에 집에 가는 길에 인어 아빠 이야기 많이 얘기해줄게. 그리고 아빠 보고 싶다고 편지 쓰자. 아빠가 물고기한테 부탁해서 보내달라고 할게.”

아이의 뺨이 잔뜩 부풀어있다. 삐진 게 분명했다. 이러면 한동안 풀리지 않을 텐데…. 문대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떤 얘기를 해줘야 기분이 풀릴까.

 

 

*

 

 

“아빠가 인어 아빠는 무슨 일을 한다고 말해줬지?”

“응! 바다에서 물고기 지킨다고 그랬어.”

“맞아, 그래서 아빠가 처음에 인어 아빠를 본 건 배 위에서였어.”

예전에 아빠가 친구들이랑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본 거야. 인어 아빠는 이 사람들이 물고기 괴롭히는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감시하려고 몰래 배에 탔어. 아빠랑 친구들은 다행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같이 수영도 하고….

아이는 하루 종일 수족관을 돌아다녀서인지 금새 잠에 들었다. 덕분에 나는 문대와의 이야기에 잠겨있을 수 있게 되었다.

수아에게 했던 말처럼 문대와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에 갔다가 처음 만났다. 바다까지 왔는데 스노쿨링은 하고 가야 한다고 했으나 나나 친구들이나 다들 돈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배에 올라탄 사람은 총 8명. 문대는 그 중 한 명이었다. 바다를 좋아해서 혼자서도 자주 온다던 그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헤엄쳤다. 외국인 가이드는 익숙하게 장비를 착용하는 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 내 친구들도 문대가 하는 걸 보고 장비를 착용했을 정도다. 배에 가이드가 몇 명 붙긴 했으나 워낙 인원이 많은 터라 무리 중 제일 건장한 내게까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에 바다에 익숙한 문대가 나를 옆에 붙어서 도와주었다. 저 쪽에 거북이가 지나간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에게, 바닷물을 잔뜩 먹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물고기가 많은 곳을 안다며 내 팔을 잡고 바닷물을 가르는 그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게 싫었다. 그를 더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여행 온 친구들을 버리고 해외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그와 함께 보냈다.

공교롭게 한국에 돌아오는 날도 같았다. 비행기 시간은 달랐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작별 인사를 하며 고백했다. 여행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걸 보면 모를 수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문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처음 본 바다에서 잡은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첫 눈에 반했다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내게 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대답했다.

친한 친구랑 가서도 싸우고 돌아온다는 해외여행에서 눈이 맞아서일까? 문대와 나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처럼 잘 맞았다. 입맛도 취향도 하나부터 열까지 잘 맞았다. 과일은 뭐든 좋아하지만 특히 여름 과일을 잘 먹고, 밥 먹고 영화 보고 남들 다 하는 데이트보다는 액티비티 류를 선호하는 것도 비슷했다. 화를 내기보단 참는 편이지만 한 번 터지면 배로 무서워진다는 것도 그랬다.

…그 때 화내지 말 걸. 

“문대야….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비좁은 공간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어둡고 서늘한 공간에 한기가 돌았다.

“다신 화 안 낼게. 다시 눈 좀 떠주면 안 될까.”

눈물이 고였다. 기다란 원통 모양의 수조 안에 문대가 떠 있었다. 문대는 그곳에서 살고 있다. 배에서 사고를 당해 심장이 멎은 후로부터 줄곧 비좁은 수조 안에서. 영양을 공급하는 액체가 가득 찬 수조 속에서. 마치 인어 같지 않은가?

“문대야…. 오늘은 수아랑 아쿠아리움 다녀왔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평소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쿠아리움이라고 하면 너는 싫어하겠지만, 한 번만 봐주라. 하하, 수아한테 네 얘기를 했더니, 궁금해 해서. 저번에도 편지 읽어줬잖아. 수아한테는 네가 인어라고 했어. 나쁘지 않은 변명이지? 그러니까, 나중에 일어나면 수아한테 말 잘 해줘야해? 아무튼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그럼 아빠는 왕자님이녜. 그래서 오늘 아쿠아리움 다녀왔어. 네가 좋아하는 시클리드도 봤고, 파란 물고기도 봤고. 너 싫어하는 돌고래 쇼도 봤어. 너 여기 자고 있는 거 미워서 그냥 아무 수족관이나 가버릴까 하다가, 그럼 네가 진짜 눈 안 뜰까봐 일부러 동물 보호하는 곳으로 갔어. 돌고래도 다친 애들 잠깐 보호했다가 풀어준대. 수아한테 알려주니까 엄청 좋아했다? 정말 귀엽지. …. 문대야, 수아는 널 닮았어. 귀엽고, 호기심도 많고, 물고기도 좋아해, 꼭 너처럼. 사실 수아가 너 따라서 일한다고 할까봐 좀 겁나. 나 네가 그 일 하는 게 정말 싫었어. 너 원래 하던 일 말고 배 타는 거. 너 이렇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거든. 너도 알고 있었지? 수아네 부모님, 그러니까 네 직장 동료들 돌아가시고 나서 너 사무실에서 앉아 있기 싫다고, 배타겠다고 했을 때 나랑 많이 싸웠으니까. …그냥 반대하지 말 걸. 너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얘기한 게 화낸 기억이라서 미안해. 문대야, 나 미워도, 한 번만 봐주라. 응? 나 보기 싫어도, 애는 봐야지.”

제발.

문대가 사고를 당한 후부턴 미친 사람처럼 수조 앞에서 살았다. 아이도 부모님께 맡겨두고, 매일 문대만 찾았다. 식물인간들도 눈을 감고 있어 앞은 보이지 않아도 귀는 열려 있어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잊었던 현실 감각도 떠올랐다. 부모님으로부터 수아도 데려오고 잠시 쉬었던 회사도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하루 종일 수조 앞에서 울던 것도 그만두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찾아왔다.

그러나 문대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수조 안에 두둥실 떠올라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아니, 눈은 감고 있으니 보는 것은 아닐 거다.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눈앞이 자꾸만 흐려졌다. 커튼이라도 친 것처럼 문대를 가렸다.

눈은 꼭 감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의 그는 침대에서 함께 자던 때 뿐이었는데. 온기를 나눌 그가 수조 밖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버겁게 만들었다. 대체 언제 너는 물 밖으로, 내 곁으로 다가와줄까.

카테고리
#기타
  • ..+ 1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