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자발라른

[샼발라] 야간 근무

* 샤크스 x 자발라

* 5700여자

* 소재: 맹공격/용사의 전당

샤크스가 예고한 대로 근 한달 가량 시련의 장 경기 횟수가 반 정도로 줄었다. 자발라는 이행에 문제가 없다는 간단한 요약이 전부인, 쪽지에 가까운 샤크스의 보고서를 확인하고 내려놓았다. 그러다 아쉬움에 종이 위를 두어 번 검지로 매만졌다. 손을 떼고 네오무나의 기갑단과 벡스의 대립 상황에 대해 정리한 화력팀의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펜듈럼보다 조금 더 빠르게 눈만 굴려 확인을 끝내고 이어지는 두통에 결국 책상 끝에 다시 올려놓았다. 조금 고개를 젖혔다. 사무실에 들어오던 햇빛은 저물어가고 사무실 곳곳에 조명 아래 늘어진 잎은 퍽 푸르다. 크게 숨을 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고 눈을 조금 오래 감았다가 떴다. 조금 기대어 눌려 있던 의자 등받이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패드를 집어들었다.

원래도 바쁜 둘이었다. 하물며 더 바빠지니 이젠 얼굴 보기도 힘들다. 자발라는 요즘 자신도 잘 들어가지 못 하는 쿼터에 샤크스가 방문한 지 꽤 되었다는 걸 자각할 때마다 공기가 더 차가워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고 일 열심히 하는 수호자를 피곤할 밤에 불러내기도 곤란하다. 헬멧을 벗기면 이 번에는 수 세기만에 눈 밑의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미확인 보고서들을 전부 다 확인하고 정리한 뒤 조사 내용이 필요했던 안건들에 전부 메모를 덧붙이고 담당자들에게 전한 뒤 내일까진 갱신해야 하는 보상 목록에 미리 손을 댔다. 칼과 활, 핸드 캐논, 정찰 소총, 전기, 태양, 수류탄……. 마지막 하나까지 추가를 완료하고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도록 설정한 직후, 통신기가 반짝였다. 개인 채널로 들어온 연락을 수신으로 돌린 자발라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샤크스.”

이어지는 대답은 기기를 거친 특유의 기계음이 섞여있음에도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나치게 컸다.

- 바쁜가?

“오늘 일과는 끝났네.”

- 그러면 전당에 잠깐 와주겠나? 내일 열기 전 한 번 최종 점검을 해야겠어.

“문제 없다고 하지 않았나. 무어라 하면 잔소리 듣기 싫다고 앵돌아진 척 할 생각이면서.”

- 자발라,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건 어디에서 옮은 버릇인가? 살라딘이나 나나 자네한테 그런 걸 알려준 적은 없는데.

“내가 마주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잊지 말게.”

둘은 잠시 소리를 낮춰 웃었다. 뻑뻑한 눈으로 확인을 마친 서류들을 전부 정리하면서 이어질 말을 기다리던 자발라는 편안하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바스락 소리가 멎은 뒤에 대답이 넘어왔다.

- 보고 싶어.

“…….”

- 제대로 얼굴 본 게 언제였지?

“한 달은 넘었지. 한 달 반 정도? 그대가 탑에서도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건 한 달 정도 되었고.”

- 쿼터에도 못 들어갔고. 아, 자발라. 정녕 내가 이 이상 애걸하며 무릎을 꿇는 걸 원하나?

“그런 취향 없다니까.”

발끈한 대답에 이번에야말로 호탕한 웃음 소리가 귀와 사무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조금 열이 올라 따듯해진 귀를 양손으로 감쌌다. 좀 더 깊이 숨을 내쉬고 보는 이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겠네.”

- 잠금을 풀어두지. 다른 이의 침입이 두려우면 얼른 오라고.

자발라는 가볍고 짧은 웃음 소리로 대답을 대신하고 연락을 끊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돌아섰다. 태양이 사라진 하늘에 푸른 빛이 짙어진다. 아마 조금 뒤면 조명으로 밝아진 사무실 안과 갑옷으로 무장한 자발라의 모습이 유리에 비칠 것이다.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볍게 풀었다. 그리고 사무실의 모든 불을 끄고 나오며 문까지 확실하게 닫았다. 오늘은 샤크스를 만난 뒤 잠깐이라도 쿼터에 돌아가 쉴 생각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샤크스도 같이. 타르지가 얼굴 옆에 떠올라 가볍게 한 바퀴 돈다. 조금씩 밝아지는 불빛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원래 샤크스의 금고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자발라는 샤크스가 자신마저 들어오지 못 하게 으르렁대기 이전 시기 들어왔던 기억을 되살렸다. 암흑기 시절부터 모아온 갖가지 무기들과 방어구,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기기의 부품들과 샤크스가 아니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을 조잡한 조각들. 양 벽에 늘어선 홀로그램 투사용 프로젝터와 수호자들의 클래스를 따라 놓인 열다섯 개의 상자는 확실히 없었다. 소리없이 걸어가다 멈춘 타이탄은 자신이 온 걸 알텐데도 여전히 아카이트에게 지시를 내리는 데에 여념이 없는 이를 바라보았다. 웅장할 만큼 높아진 층고가 어색하다. 자발라는 조용히 기다렸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샤크스가 거의 동시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몇 시간 안 남았는데, 아직도 지시할 게 남았나?”

“다 끝났네.”

“다행이군.”

계단을 철컥 철컥 걸어 내려온 샤크스가 허리에 손을 짚고 섰다. 크게 벌어진 어깨에 매달린 털이 너덜너덜해진 걸 눈으로 훑고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리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려다보며 짐짓 힘 준 목소리로 물었다.

“샤크스, 용사의 전당 최종 점검에 대한 보고서는 준비 되었나?”

“아까 보냈는데 아직도 확인 안 했나?!”

“그건 끝났다는 쪽지잖나.”

아카이트의 소리가 웃음처럼 삐걱 삐걱 규칙적으로 울린다. 웃음을 꾹 참은 자발라가 조용히 시선을 유지하니 허리를 짚고 선 손 중 하나가 내려간다. 자발라가 부러 눈썹을 들어올려 인상을 험하게 굳혔다. 양손을 다 풀어버린 샤크스가 짐짓 보라는 듯 팔짱을 낀다. 근육과 갑주에 눌린 팔이 간신히 걸친 정도에 불과하다. 얼핏 팔을 감싸는 정도인 몸짓이 귀엽게 보여 괜히 헛기침을 두어 번 입 안으로 굴렸다. 저도 모르게 부드럽게 풀린 얼굴은 알아차리지 못 했다.

“그래, 좋아. 자네가 최종 점검을 하면 그에 대한 보고서를 차후에 제출하도록 하지.”

“내년에?”

“정확해!”

“샤크스.”

유독 심술이 가득 찬 뾰족한 반응에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팔짱이 풀리지 않는다. 양손을 같이 내밀었다. 그제야 성큼 다가오더니 팔짱을 풀고 양손을 뻗어 맞잡는다.

“나도 보고 싶었네. 그렇게 안 해도.”

당기는 손에 힘을 마주 주지 않고 그대로 끌려갔다. 갑옷끼리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도록 바싹 붙어 끌어안은 팔이 퍽 무겁고 두껍다. 간만에 느끼는 안정적인 무게에 흐트러질만큼 풀어진 한숨을 샤크스의 가슴께에 길게 흘렸다. 갑옷 위를 쥐고 있던 손이 부드럽고 느리게 토닥이기 시작한다. 쇠와 미늘, 화약 냄새, 두텁게 솟아오르는 태양, 거대한 망치, 그 중에서도 유독 자발라에게 닿을 때만은 미지근하게 식어 부드럽게 닿는 장갑. 간만이었다. 묵직하게 짓누르듯 끌어안은 가슴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입술에 걸었다.

손을 뻗어 헬멧에 가린 뺨을 가볍게 매만졌다. 아마 샤크스도 웃고 있을 것이다. 자발라보다 훨씬 더 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그 반짝이는 웃음. 잠깐 망설이다 헬멧을 매만지던 손을 뗐다. 샤크스가 쓰기로 마음 먹은 이상 그가 벗지 않을 곳에서 굳이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포옹을 푼 샤크스가 뺨을 떠나 미끄러지는 손을 한 번 꾹 쥐었다 놓아준다. 퍽 정중하고 우아한 손놀림이 시련의 장에서 흥분해 소리치거나 쿼터에서 자신에게 투덜거리는 그 모습과는 또 다르다. 그 또한 좋아하지만 지금 말하면 아카이트가 미끄러지는 척 요란한 소리를 낼 테니 삼킬 뿐.

패드를 두드리는 샤크스를 따라 몸을 돌려 몇 걸음 걸었다. 그리고 모든 프로젝터에서 샤크스의 홀로그램이 나타나는 데에 멈춰서서 입을 조금 벌렸다. 마치 쥐는 법을 보여주는 교본처럼 늠름하게 늘어선 모습에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다물고 조금 더 따라갔다. 그러다 새삼 커다랗게 보이는 수호자들의 동상에 입가를 조금 가렸다. 클래스에 따라 늘어선 상자들이 어디에 속한 건지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식이었다. 제각기 다른 무기를 든 샤크스의 모습들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기어이 이 무기들을 전부 다 복원했더군. 전시에, 이젠 배포까지 가능한 만큼 생산했고.”

사령관의 언짢은 심기와 연인의 감탄이 섞인 말에 샤크스는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다들 나름 괜찮지. 자네가 들어도 부끄럽지 않아.”

“나를 내보낼 생각인가?”

“시련의 장도 좋고, 맹공격도 좋지. 난 자네가 내 시선 안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걸 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

“그러고보니 왜 맹공격이라고 이름지은 건가? 내용은 보호와 강화 위주던데.”

“수호자들이 뭘 할 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지 않나!”

단적이고, 호쾌하다. 이름마저 자신답게 지은 샤크스의 배포에 자발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홀로그램 좀 한 번 확인해보게.”

샤크스가 칼을 든 홀로그램을 가리킨다. 텅 빈 공간에 두 타이탄이 걸어가는 소리가 저벅 저벅 울린다. 홀로그램에 다가가자 띄워진 창에서 조율이라 적힌 부분을 가볍게 건드리고 손을 뗐다.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잠깐, 자발라. 다시 한 번 해보게.”

“음?”

갑자기 패드를 급하게 두드린 샤크스의 말에 자발라는 다시 창을 확인했다. 다시 한 번 선택하고, 손을 뗐다. 그리고 샤크스의 홀로그램이 움직여 빈 손의 두 손가락을 겹쳐 쭉 내미는 데에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저게, 얼마 전 복고풍이라면서 수호자들 사이에 이야기가 돌았던…….

“샤크스, 이거 다른 수호자들도 모두 보나?”

“아니, 오늘 자네한테만 보여주려고 넣은 거야. 삭제할 걸세. 내가 자네 말고 누구한테 하트를 보내겠다고?”

자랑스럽게 외친다. 쩌렁쩌렁하게 울린 목소리가 분명히 닿았을 텐데 이번엔 아카이트가 고의로 무시하는 건지 아무런 소리가 없다. 자발라는 한 번 더 손을 움직였다. 다시 한 번 손가락 하트를 보고, 한 번 더 누르고, 한 번 더 손가락 하트를 보고, 한 번 더 누르고……. 자발라가 여섯 번째 손가락 하트를 보려는 순간 샤크스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고 그런 얼굴로 너무 오래 보지는 말고!”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니 패드를 내던지듯 내려놓은 샤크스가 와락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친다.

“날 보고 웃어야지, 내가 한 건데.”

그제야 거의 당긴 듯 휘어진 입가가 느껴졌다.

“나한테 모션을 취하는 건 자네가 아니라 이 홀로그램이잖나.”

“안 돼, 반대야. 내 모습을 찍은 거란 말이네.”

다시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자발라는 또다시 심술을 부리려는 샤크스를 더 놀리지 않고 순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쳐다보곤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반 쯤 제 품에 든 자발라의 모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어깨를 감싼 손이 두어 번 토닥이곤 스르르 내려간다.

“또 해줄 건가?”

“당연히. 다만 다음에, 쿼터에서.”

“오늘은 안 들어갈 생각이군.”

“내일 들어가지. 자발라, 같이 살 생각 없나? 정말로?”

“정치적 파장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네는 분명히 불만 있으면 시련의 장에 오라고 대답할거지?”

“당연히!”

“그래서 안 되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자발라는 이미 자발라의 쿼터에 가득한 자신의 물건들로 살림을 합치는 게 이득이라는 설득을 진심 반 농담 반 섞어 시작한 샤크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금 웃었다. 자신 앞에서는 유독 칭얼거리는 시련의 장 관리인이라니, 아마 다들 이런 귀여운 모습은 모를 것이다. 어떻게든 귀를 막고 있을 아카이트는 제외하고.

“샤크스, 그만. 이제 조금이라도 쉬게. 내일 아침부터 수호자들을 맞이할 게 아닌가.”

“자네도 수호자잖나. 더 있다 가는 게 어때서.”

“수호자들이 왔다가 탑에 잘못 온 줄 알고 돌아가는 걸 보고 싶다면 여기에 있고.”

진심으로 한 말에 대답을 멈춘 샤크스가 어깨를 부들부들 떤다. 이번에는 왜 웃는지 모르겠다. 자발라는 웃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핑계로 아주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슬그머니 잡아오는 손가락에 장갑 너머로도 체온이 전해진다는 착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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