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군에서 중요한 것

주자와 양명의 병법에 대한 대화를 보고싶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써본 주자와 양명의 짤막한 대화입니다!


“자네의 시대나 나의 시대나, 나라 안팎으로 전란이 요란했던 건 분명한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저는 후세에 다소 잔혹한 장수로도 알려진 듯하지만…….”

발할라의 주자와 양명은 수시로 함께 차를 나누었다. 유학의 흐름 중에서도 신유학이라 불리는 시류를 만들어낸 두 사람은 꽤 친밀하게 지냈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논쟁이었지만. 오늘의 화제는 생전 경험한 전쟁들의 이야기였다.

“에잉, 참, 그때 장수들이 전법만 제대로 구사했어도 무력하게 금에 굴복하진 않았을 터인데.”

“그래도 오래 버텼지 않습니까. 전법은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는 전략이지,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장수들의 대처능력과 엄중한 군령이지요.”

“그래도 무경칠서(*주: 송나라 대에 편찬되어 후세까지 전해내려온 병서. 조선에서도 무과의 기본으로 삼았다.)에 있는 진법들이라도 제대로 구사했으면 훨씬 낫지 않았겠는가. 전선 보고를 들을 때마다, 전면에서 전투를 나서서 진영을 흩뜨리기보다는, 후충이 먼저 나와서 적을 오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생각을 했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적이 후면으로 침투하면 후충이 빠지면 안 될 텐데, 어찌할까요? 게다가 전형과 후충의 사이에는 중위와 전위까지도 있습니다. 부대 셋을 지나가야 하는건데, 후충이 그정도로 빠른 기동력을 가지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그건 다르지, 자네. 후충으로 공격하는 건 정면에 적을 두고 말하는 경우고, 다른 곳에서 말할 때는 다른 전법을 써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정찰대가 봐주고 있으니 후충이 나간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이건 가장 기초적인 본법을 지적한건데 말이야. 옛 사람들이 만든 병법은 믿고 따르는게 낫지 않겠나.”

“주자님께서 옛사람들의 권위를 그정도로 인정하셨군요. 비판한 선인들이 그리 많다고 아는데…….”

“그것도 이치에 맞지 않아 지적한 것이지, 병법의 영역은 다르지 않은가?”

“병법도 마찬가지로 실전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영역이 많습니다.”

“하지만 병법도 실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잖나. 예를 들어 사람은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서로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왼쪽을 노리게 되고, 그에 따라 대열은 반시계방향으로 자연스레 회전하게 되지. 팔진도와 오위진법 또한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법 아닌가? 옛사람들이 만들어둔 오위와 음양오행에 따른 진법은 믿을 만 하다고 보네.”

“그러나 그것도 군 전체에 명령이 원활히 전달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죠. 제가 실제로 경험한 군에서의 중요한 것들은 이것들입니다. 빠르고 정확한 통신체계, 무기 숙련도, 제식과 절차, 군법과 상벌제도, 그리고 끝없이 강조해도 부족한 훈련.”

“그건 맞는 말이군. 그리 생각하니……. 전법보단, 자네가 말한 실전에서의 중요한 요소들의 부족으로 나라가 그리 흘러간 것인가.” 주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 주자님의 시대 사람들 중 주화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주자님같이 주전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소수였으니까요.” 양명은 나지막히 말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그리 많은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훈련과 제식과 군법에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탈영이나 안 하면 다행입니다.”

“이건 그저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데,” 주자가 갑작스레 눈을 빛냈다. “맞는 쪽이 먼저 싸우든 뒤쪽이 먼저 싸우든 너무 치우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 중앙이 나가면 안 되는가?”

“……. 일단 주자님의 입장대로 옛사람들의 말을 봤을 때에는 양쪽 다 병법에 있는 전법이긴 한데, 중앙을 내보내는 건 써본 적 없는 전략이군요. 그 발상도 어딘가에선 도움이 되겠지요.”

“하하, 나는 군 경험이 없어서 낼 수 있는 의견이었던 것 같은데, 자네는 받아들여 주는군?”

“장수의 덕목중엔, 책사의 기상천외한 전술에 대해 고민하고 과감히 적용하는 것도 포함이라 생각합니다.”

“하하하! 맞는 말이군.” 주자는 쾌활하게 웃었다. “날 책사 격으로 대해주는 건가, 감사하구만.”

“의견은 달리하나 어쨌든 선학이시고, 송에서 실제로 전략전술로 상소를 올리신 적도 있지 않습니까. 의견을 구할 자격은 충분하시지요.”

“그나저나 자네는 자네가 아까 말한 군에서 중요하다는 요소들을, 충실히 실천했군그래.”

“특히나 군법만큼은 삼엄하게 유지했습니다. 군사의 기강이 빠지면 전략은커녕 군 집단의 유지조차 힘들어지니까요.”

“그렇지, 맞는 말이야. 어쨌든, 참, 내 시대를 생각하면 한스럽네, 한스러워…….”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는 주자를 양명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유독 생전 송나라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마다 심란해 보이신다. 그럴 만도 하지만. 지나간 일에 가정은 의미없으나, 만약 내가 송에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나 자신이 제법 능력이 있는 장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유학의 흐름은 어찌될지 잘 모르겠다만…….’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던 것이 나름 아쉬울 때도 있군.

양명은 심란해하는 주자를 앞에 두고, 답지 않게 역사에 가정을 더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연성을 둘이나 하게 됐네요.

주자양명으로 뭔가 써보겠단 생각을 하다가… 야밤에 갑자기 소재가 떠올라서요. 일부 차용한 진설문답은 세종 시대의 변계량이 조선 초기의 병법에 대해 문답의 형식으로 군사사상을 제시한 문헌입니다. 무경칠서를 찾고 싶었으나 지금의 제게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만한 문헌이 아니어서, 부득이하게 이전에 알았던 조선 문헌을 끌어왔네요.

일전에 두 사람이 병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말한 적이 있던 게 떠올라 늦은 시간에 써 봤습니다! 이론에 강한 주자, 실전파인 양명이 병법을 놓고 나눌 대담을 써보고 싶었어요.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병법 관련 본문의 참고문헌: 변계량, <진설문답>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