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설경

발할라의 공자, 노자가 함께한 시간들.

발할라 공자와 노자로 보고싶은 짤막한 대화예요!


“무슨 일인가.”

불쑥 처소에 찾아온 공자에게, 인기척을 느끼고 방의 큰 창을 열어젖힌 노자가 말했다.

“그저, 문안인사이지요. 새삼 물어보시는군요.” 공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뭘 하고 계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선생님.”

“자네의 책을 읽었네.” 말하는 노자 앞의 책상에는 닳을대로 닳은 <논어>가 펴져 있었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책을 한눈에 알아보곤, 환히 웃어보였다.

“오, 그거 영광인데요. 무슨 연유로 갑자기 읽으셨습니까?”

“그저, 새삼스레 회상을 하고 있었다만.” 노자가 무심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왔을 때가 생각이 나서 말이네.”

“하하, 죽간을 부수려 했던 그 때 말씀이신가요?”

“그 이야기는 잊어달라고 부탁했을 터인데.” 노자는 눈을 흘겼다.

“농이었습니다. 날이 춥습니다, 창 닫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언제는 내 허락 받고 들어왔던가. 불쑥 들어오는 게 자네 주특기면서.”

“그래도 그정도로 막 드나들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하하.” 실례하겠습니다, 공자는 말하며 큰 창을 넘어 노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창은 곧 닫혔다.

-

“이 날씨에 창을 약간은 열어두셨더군요, 선생님. 설경을 보기 위함이신가요?” 공자가 노자를 마주보고 앉아 꺼낸 첫마디였다.

공자의 말대로 지금 발할라는 온통 설경이었다. 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노자의 처소 앞은 완연한 겨울 산중 풍경이었다. 노자는 굳이 앞마당의 눈을 치우지 않았기에, 오늘 공자가 찾아왔을 때 정적 속에서 들리는 뽀드득, 발소리를 듣고 공자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일찌감치 살짝 열어둔 창문을 위로 열어젖힌 것이었다. 건조하고 추우면서도 눈은 많이 오는 겨울. 두 사람은 어느덧 생전의 자신이 살던 환경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래, 맞다.” 짤막하게 노자가 대답했다. “겨울의 정취는 언제 봐도 아름답더구나.”

“그렇죠. 이곳의 겨울은 유독 더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숲을 잘 가꿔두셔서 더더욱요.”

“내가 가꿨다기엔, 내가 한 것은 나무 심기 정도밖에 없거늘.”

“자연이 무위로써 하였다고 말씀하시려고 하시는 건가요?”

“알면서 왜 물어보나.”

하하하. 공자는 조용히 웃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은 정적이 흘러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잠시 뒤,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과 말씀을 주고받다 보면, 이제는 서로 답을 대강 알고 대화하는 느낌이 듭니다.”

“함께 한 세월이 제 역할을 한 거겠지. 좋든 싫든 말이네.”

“적어도 저는 싫다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자네, 정말 문안인사만 하려 찾아온 것인가? 묘하게 오래 머무르고 있는데.” 노자는 말을 돌렸다.

“아하하, 그것이……. 설경을 보니 선생님이 떠올라서요. 새하얀 눈 속에 보이는 새카만 나뭇가지와 흙과 온갖 자연물… 딱 선생님 같지 않습니까. 백색 머리카락과 전체적으로 흰 외모 속에서 저를 응시하는 새카만 눈동자를 보는 듯합니다.”

“나를 참 감성적으로 보고 있군.”

“아까 제가 여기 올라왔을 때를 생각하였다 하셨죠. 마침 저도 선생님을 만나뵈었을 때가 생각나서 찾아왔습니다. 생전에도, 여기서도 말입니다.”

“자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더군. 한결같이 오만하고, 한결같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리 봐주셔서 영광입니다, 선생님.”

“또 그 소리.”

“언제나 진심으로 영광으로 여겨 말씀드리는 것인데도요. 하하, 전 아직도 선생님의 인정이 고픈가봅니다.”

“스스럼없이 그런 말을 하는군.”

“이 정도 솔직함은 괜찮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날 이리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자네뿐일걸세.”

“제가 선생님을 어려워하길 바라시나요?”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공자는 낮게 웃곤,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무엇이 말인가?”

“긍정하셨으면 섭섭할 뻔했습니다. 선생님께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니까요.”

“자네는 좀 과하게 다가오는 감이 있네.”

“그렇다면 덜 올까요, 선생님?”

노자는 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음대로 하게나. 쓸데없는 말은 더하고 싶지 않군.”

“저는 좀 듣고 싶은데요, 선생님의 쓸데없는 말씀.”

“됐네.”

공자는 미소지었다. 이젠 알 수 있다. 선생님은 내가 멀어지면, 티는 안 내셔도, 내심 섭섭해하시겠구나.

“하하, 알겠습니다. 더 자세히 여쭈지는 않지요.”

“자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아는 듯 대답하는데.”

“하하, 제가 뭐라 생각할지 선생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마음대로 해석하게.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말해줄 수 없지만.”

“이렇게 대화하다 보니, 마치 이심전심이군요.”

“불자의 말을 쓰는군.”

“이젠 싯다르타 님의 학파의 말로만 쓰이는 성어가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 여기엔 언제까지 머무를 생각인가.”

“허락하신다면, 산책이라도 한번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지.”

“어, 굉장히 빠르게 승낙해주시는군요.”

“안 그래도 서책을 읽느라 찌뿌둥했던 참이네. 나가서 산보라도 하지.”

“좋습니다, 선생님.” 공자는 환히 웃어보였다. “미끄러우니 조심하십시오.”

밖에 나가니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였지만 햇살만은 따스한 것이, 공자는 이것마저 선생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이란 계절은 여러모로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군. 겨울의 발할라는 감히 온 세상이 선생님과 같다 말해야 하는가, 공자는 생각하며 앞서가는 노자를 뒤따라 눈밭에 발을 내딛었다.

눈 밟는 소리가 고요한 자연에 울려퍼졌다.


함께한 세월이 길어서 거진 서로의 마음을 다 아는… 그런 모먼트의 공자와 노자가 보고싶었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것도 씨피여지가 있네요……. 편하신 대로 자유롭게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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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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