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스승의 날 [비철현]

비철현 하이에크, 케인즈의 스승의 날에 나눈 담소.

비철현으로 뭔가 쓰고싶은데 동시에 하옠이랑 케읹 얘기 해보고싶어서, 간단하게 썼어요.

케인즈는 비철현 이름이 아직 합의되지 않은 것 같아서… 마또님 트윗에서 조민규라고 대강 정하셨단 내용을 보고 그걸로 일단 써봤습니다… 일단 예경이는 여캐, 민규는 남캐로 상정하고 썼어요.


비철현고는 스승의 날에 재량휴업일을 운영해왔다.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졸업한 학교의 은사님을 찾아뵐 수 있게 하여 그 날의 취지를 기리자는 의미도 있고, 졸업하지 않은 현 학생들이 현직 교사에게 선물을 주면 난감해질 수 있다는 어른의 사정 역시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생님들을 찾아가는 학생은 소수일 뿐, 그냥 놀아버리는 학생들이 태반이었지만, 휴일이니 그 날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자의 재량이었다. 그렇게 모처럼 쉬는 날에, 하예경과 조민규는 중학교 은사님을 함께 찾아뵈었다. 무슨 일인지 둘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연속으로 함께 다니고 있었고, 초등학교 6학년때와 중학교 3학년때는 아예 같은 반이었다. 하도 만나서 부모님들끼리도 친할 정도였다. 중학교 은사님께 음료수 하나 사들고 가서 한참 담소를 나눈 뒤에, 은사님께서 한아름 챙겨주신 먹을거리 가방을 들고, 둘은 중학교 근처 단골 카페에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하신 카페 사장님은 둘을 바로 알아보았다.

“아~ 여기 졸업했던 학생들이지? 이게 얼마만이야! 어서 와라. 그러니까… 예경이였나 너는 커피 좋아했고. 민준이였나 너는 요거트 스무디였지?”

“아하하, 전 민규예요. 그래도 얼추 맞히셨는데요? 예경이가 커피 좋아하는 것도 맞고요. 사장님 기억력 진짜 좋으신데~”

“맞아요. 저 여기서 맨날 아메리카노 샷추가 마셨는데 그걸 기억하시네요. 오늘도 아메리카노 샷추가요.”

“저도 요거트 스무디요.”

“가루 좀 더 넣어서 진하게?”사장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것까지 기억하세요? 대박이다.”

“너희가 특별한 옵션을 늘 주문하니 그렇지. 단 것에 강해서 스무디에 당추가하는 학생, 중학생인데 벌써 아메리카노 샷추가에 맛 들인 학생.”

“여기 커피가 맛있어서 그래요, 사장님.” 하예경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내가 얼마나 좋은 원두를 갖다쓰는데. 오늘은 내가 사주마. 스승의 날이라 온거지? 선생님들 찾아뵙는 졸업생들중에 온 사람이 너희밖에 없어서 섭섭하다. 마침 와줬으니 이정도는 내가 사줄게.”

“와, 진짜요? 그래도 돼요?” 조민규는 환하게 웃었다. 하예경은 놀란 토끼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갖다줄게~”

“아니, 저희가 뭐라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초코바라도 좀 드실래요? 너무 죄송한데…….” 놀란 채 멈춰있던 하예경이 품에서 초콜릿을 꺼내 내밀었다. 사장님은 손사래치며 대답했다. “딱 봐도 너희들 선생님이 주신 거잖아. 내가 어떻게 받아, 그냥 편히 받아먹으렴. 여기서 계속 실랑이하면 음료 늦게 나온다?”

“그래도…….”

“너희가 중학생때 부모님까지 모셔와서 여기서 써준 돈이 얼마냐. 그거라도 갚는 걸로 쳐.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그냥 맛있게 마셔주라. 사장님 부탁이야.”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감사합니다!” 둘은 꾸벅 인사하곤 싱긋 웃는 사장님을 뒤로 하고, 카페 자리에 마주보고 착석했다. 늘 앉던 자리가 남아있었다. 카페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로 학교 오는 김에 여기 들르는 학생이 적었나보네……. 조민규는 생각했다. 초등학교도 언제 한 번 찾아가야 하는데.

“야, 예경아. 그러고보니 우리 초등학교 때 했던 교실 프로그램, 엄청 특이한 거였더라?” 문득 생각난 이야깃거리를, 민규는 예경이에게 말했다. “그거 했었잖아. 4반 국가 프로젝트.”

“아, 그거. 반에서 화폐 정하고 대통령 정하고 정책 입안하고 경제활동하고 근로활동하고 근로소득받고 투자하고…….”

“교실경제활동이라고 이제는 꽤 퍼진 것 같던데, 우리 때는 진짜로 별로 없었다더라. 그땐 별 생각없이 재밌게 참여했는데, 지금 경제랑 윤사 좀 배우고 나서 떠올리니까 되게 체계적이었네.”

“그러게. 기억하기로는 아마 직업 배분부터 시작했었지? 우리 막 이력서 내고 면접보고 그랬지. 시장에서 경쟁도 하고, 소득도 세금 떼고 받고, 투자도 해보고. 근데, 내가 그 위치의 선생님이 된다면, 좀 다르게 할 것 같아. 그건 너무 큰 국가 체제였어.” 하예경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맘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어? 왜, 그래도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충분히 경쟁하도록 두었다고 보는데.”

“국가의 직업창출부터 시작했잖아. 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 하에서 직업이 생기게 해야 한다고 봐. 뭐, 직업이고 경제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들 대상 프로그램이니 담임 선생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은 있었겠지만, 실제로 현대사회는 신자유주의 하에 돌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큰 국가의 시스템을 가르치면 경제의 실전 영역은 배우기 힘들 것 같거든.”

“글쎄다, 그래도 가격 경쟁에서 상한선을 둔 것이나 기본소득 제도를 만들어두신 것 덕에 학급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았던 것 같던데.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돈 문제로 싸우는 일도 발생했잖아. 빈익빈 부익부 문제도 있었고 말야. 그걸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선생님이라는 조정하는 손은 필요했지.”

“그건 맞지만, 적어도 투자와 직업 창출의 영역, 그리고 시장의 가격 형성의 영역은 학생들 자유로 맡겼어도 됐을 것 같아. 그래도 그때 우리 나름 6학년이라서 학교 바자회 같은 것도 많이 해봤고, 적정 가격 선을 알았잖아. 자영업자 위치였던 친구들이 가격 상한선때문에 품이 많이 든 수공예나 미술 작품들을 제 값에 못 판다며 한탄하기도 했었다고. 안 그래도 가정의 경제력이 학급 경제력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판매 품목을 제한하셨는데, 처음엔 친구들의 공예작품을 포함했던 다양했던 판매품목도 결국 점점 줄어들어서 학년 말엔 학용품과 생필품 정도밖에 안 남았었고.”

“맞긴 해. 나중엔 판매하는 물건 종류가 줄었는데 물가는 올라서…….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 아냐?”

“자유롭게 수요와 공급 곡선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그러니 시장 가격에 맡기면 도로 내려갈 수 있는 거라고.”

“지금 생각하니 학년 말의 상황이 일종의 경제위기였구나 싶네.”

“그렇지. 투자한 친구들 원금 회수가 안되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길게 교육받을 수 있었으면 시장경제의 조정과정도 체험해볼 수 있었으려나… 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쉬운 점도 있고 좋았던 점도 있고 그렇다. 이걸 왜 잊고 있었나 모르겠어.”

“졸업하고 잊어버린거지 뭐.” 하예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저녁시간이라 지금 와서 생각났다고 불쑥 초등학교 찾아가기는 선생님이 곤란하실 테니, 그냥 연락처 찾아서 연락드리긴 해야겠다. 그때 그 프로그램이 지금 생각하니 되게 좋았다고. 내 딴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는 게 우리가 그만큼 아는 게 늘어났단 소리 아닐까? 선생님이 뿌듯해하실지도 몰라.” 조민규가 말했다.

“어, 선생님께서 엄청 뿌듯해하시겠네.”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음료수를 트레이에 담아 들고오신 사장님이었다.

“아 사장님! 벌써 나왔어요?” 조민규는 음료와 사장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고, 하예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휴, 너희들 대화 들으니까 내가 다 뿌듯하다. 이렇게 잘 컸구나~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장님은 환히 웃고있었다. “너무 잘 컸네. 잘 배웠고. 대화 듣다가 기특해서 러스크 한조각씩 얹었어. 잘 먹고 가. 딸래미 아들래미같아서 기특해 죽겠네.”

“으아아, 저희 이렇게 뭘 많이 받아도 돼요?!” 하예경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나저나 들으셨어요?!”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보다시피 카페에 파리가 날려서. 어쩔 수 없었네. 그럼 난 이제부턴 말없는 NPC로 있을테니까, 잘 얘기하고 맛있게 먹으렴.”

“감사합니다…!!” 조민규와 하예경이 동시에 대답하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카운터로 돌아가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하예경이 말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이런 얘기 하면 되게 좋아하시더라…….”

“기특하신가보지. 우리는 그냥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건데, 다들 그런 반응이시더라고.”

“우리도 크면 이런 얘기 하는 고등학생들을 좋아하게 될까?”

“그건 어른 돼서 생각해도 될 것 같아. 아메리카노 식겠다.”

“응, 그렇네. 너도 스무디 마셔 얼른.”

초등학교 경제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둘의 추억을 잔뜩 늘어놓는 대화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달콤하고 바삭한 러스크와 함께 둘은 사장님이 사주신 음료를 마시며, 예전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이야기도 이렇게 즐거운데, 우리가 어른이 되면 이 고등학교 시절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까? 난 지금 고등학교 지긋지긋한데. 이런 이야기도 나누던 둘의 등 뒤 창문에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비철현 친구들이에요!

유O즈같은 프로그램에서 학급 경제교육을 실시하신 선생님이 나오시거나, 학급 경제 프로그램 관련해서 책을 내시는 초등학교 교사분들이 계시거나 한 사례들을 보며 만약 예경이와 민규가 이런 프로그램을 체험했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어요. 왠지 비철현 친구들이라면 각자의 사상가들을 따라간 견해를 얕게나마 가지고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이리 상상을 글로 옮겨봤어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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