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교육은
동서철 크로스 3 - 로크와 이이의 부모교육에 대한 관점
오랜만에 동서철 크로스를 쓰네요!
다만 고등학교 윤리의 내용보다는 교육학적 내용이 주가 되는 크로스오버입니다.
로크와 이이의 교육사상에 공유하는 점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뭐, 이 글에서 제시하는 공통점은 현대까지 이어져내려오는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이 공유하는 관점이지만, 특별히 이 두 명을 예시로 들어봤습니다.
카페 에티카의 하루는 서양 사회계약론자들과 동양 한국유학자들의 배치로 돌아갔다. 그날따라 근처 소극장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 연극을 진행하여, 카페는 하루종일 어린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당연히, 카페 에티카는 소위 ‘웰컴키즈존’이었고, 덕분인지 모든 철학사상들은 공연을 보고 흥분한 아이들의 영향으로 귀가 먹먹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대체 관리자가 이 인선을 무슨 생각으로 배치한건가 싶고 어색하고 그랬으나 그것도 잠시뿐, 뛰어다니지 마세요ㅠㅠ 소리 지르지 마세요 어린이여러분ㅠㅠ 하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다른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며 동시에 카페 업무를 처리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정신없는 점심 전후 러쉬 시간을 거친 뒤,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 마지막 아이까지 카페를 나갔을 때 모든 철학사상들은 각자에게 가장 가까운 의자에 털썩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고……. 아이들은 시끄러운 게 당연한거긴 하지만 오늘은 좀 힘들었다.” 사회계약론자들 중 하나인 로크가 중얼거렸다. 테이블에 남겨져 있던, 스무디가 든 플라스틱 컵을 나르던 율곡 이이가, 그 곁을 지나가다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예절 교육은 부모님들이 해야 할 텐데.”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여서 지배를 받을 필요는 딱히 없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 관계는 간섭과 통제가 어느정도 필요하죠. 아까는 부모들이 너무 놓아두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동의해요. 인간의 마음은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음에도, 자녀의 나이가 어리면 그가 타고난 가능성을 활용하지 못하니까요. 저러면 부모가 욕 먹을텐데.” 율곡은 혀를 찼다. 혼이 반쯤 빠져 있던 로크는 율곡의 말에 눈빛이 돌아왔다. 무슨 말이시죠? 말하며.
“부모도 욕 먹겠지만, 무지한 상태로 성장하면 부모보다는 자식 본인의 책임이 더 크리라 봅니다.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재산이나 명예를 실축시킬 수는 없죠. 뭐, 자식이 본인 인성교육 잘못했다며 부모를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글쎄요, 저는 부모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자녀를 잘못 교육했을 때 부형에게는 도덕적 비난과 물질적 손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자연히 가문에 대한 비난까지 이어질 수 있고요. 부모와 자녀는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측면도 있지만, 함께 도를 실천해나가는 학우이기도 하니까요. 부모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잘 교육해봐야죠…….”
“전 부모가 부족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우는 양육에서 고려하지 않은 편입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여야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아까 계신 고객분들 중 자식보다 본인들이 훨씬 크게 떠드는 사람들이 성별, 나이 불문하고 계시더군요. 대놓고 말은 안했습니다만 그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이, 라고 하셨죠? 이이 님도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니 놀랐습니다.”
이이는 그제서야 아! 하며 손뼉을 마주쳤다. 우리 아까부터 얼굴맞대고 일했으면서 제대로 대화를 안 해 봤네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느새 아까 가져오다 만 플라스틱 컵은 탁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로크는 주변을 슬 둘러보았다. 얼추 이 컵만 아니면 정리 다 끝났고, 홉스 선배나 루소도 쉬는 중. 이황 님이나 정약용 님 역시 휴게실에 들어가 계시고. 그렇다면, 좀 더 이야기해도 되려나. 이이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건지, 잠깐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동시에 둘은 눈을 마주쳤고, 로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대화를 이어나가자는 신호였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교육에 대해 전혀 건드리지 않은 사람은 드물 거라 생각해요. 경세론도, 수양론도 교육을 전제하고 있으니. 서양에서는 루소 씨가 이런저런 교육의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언뜻 듣긴 했지만, 로크 씨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군요?”
“그렇습니다. 아까 저는 저희가 전제한 인간상이 비슷해서 꽤 흥미로웠는데요. 저는 그 미성숙한 아이는 신이 부모에게 임시로 맡긴 것이라 생각하는데…… 유교, 라는 사상에서는 신을 전제하지 않으시죠?”
“네, 전제하지 않습니다. 인과 천리는 있을 수 있어도 서양처럼 인격신을 전제하지는 않지요.”
“역시 그렇군요. 이어나가자면, 신이 임시로 부모에게 맡긴 자녀는 성년이 되면 원래 자연 상태가 그러하듯 부모와 동등하게 독립하여 더 이상 부모의 교육권은 행해질 이유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자식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에게 책임을 지우고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겁니다.”
“저는 생각이 다른데요.” 이이는 눈을 빛냈다. 이게 얼마만의 서양철학자와의 대담인가. 또 이런 흥미로운 대화가 얼마만인가. “저는 성년이 된 자녀에게도 부모의 교육권을 어느정도는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자녀의 몸과 마음은 부모의 것이기에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몸을 부모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이상적 삶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정 연령에 이른다고 바로 뚝딱 성숙해지는 건 아니죠. 여기 대한민국의 성년의제연령은 만 19세이나 만 19세 되는 1월 1일에 딱 나는 성숙하다! 라고 생각이 역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미성숙함은 일평생 따라다닐 수밖에 없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욕망은 마음을 미혹하니까요.”
“그건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성년이라는 것은 본인이 본인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부모와 동화하는 것은 조금…….”
“동서양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철학으로 싸울 순 없잖아요? 저희 근무중인데.”
브레이크 타임이지만. 이이는 말을 더했다. 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다시 이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녀가 아까처럼 그렇게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잘못된 습관에 길들여지면 정말 큰일이잖아요. 가급적 어릴 때부터 습관 지도를 해야 할 터인데……. 물론 이 나라의 교육사조는 어린이를 자유롭게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옛사람으로서 조금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녀가 자율적으로 이성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욕망에 굴복당하지 않도록 습관을 지도해야죠. 신체, 정신, 학습,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 습관을 모두 포함해서.”
“마음은 쉽게 욕망에 흔들려 사심이 나오기 때문에, 잘못된 구습은 과감히 버리고 예를 따르는 방향으로 습관을 교육해야 하고…….”
“저는 그 습관의 좋고 나쁨을 다방면의 생활 지식과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라고 하긴 하지만, 이건 또 공통점이군요?”
“사실 아까 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서는 의견이 갈렸지만, 부모가 갖춰야 할 자질로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단 걸 느꼈어요. 부모는 자애롭고, 모범이 되어야 하며,”
“현명하고, 지식을 갖춰야 하고요. 합리적인 이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죠.”
“또한 수신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하, 비슷하네요!” 율곡은 크게 웃었다. 점점 열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 평소 잘 짓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항상 딱딱하게 웃더니, 이렇게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군. 이이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까 오신 손님들에 대해 이렇게 계속 왈가왈부해도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친구의 자녀들도 지도하지 않는 것은 조금 신기하다 느꼈네요. 제게는 형제의 자녀와 친밀한 친우의 자녀도 내 자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대체로 제가 살던 조선에선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서구화가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서양인이긴 하지만. 부모 교육권은 부부 사이의 자녀들로 한정하며 그 외의 경우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 대체적인 서양교육의 흐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죄송합니다만, 저 컵에 지금 스무디가 말라붙어가고 있어요. 제가 치워드릴까요?”
이이는 신나게 대화에 집중하다 갑자기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철학자의 본능이,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대답을 하게 했다. “제가 이따 설거지 박박 하죠, 뭐.”
로크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어차피 여기서 맨날 하는게 그런 일인데요, 상관없어요. 웃음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톤으로, 로크가 말했다.
“어쨌든 저희는 부모의 교육권이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권한이라고 생각했단 점, 그것은 자식이 부모의 보살핌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습관으로 길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 점은 확실한 공통점이네요. 부모가 자애롭고 현명하며 자식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과 언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도 공유했고요.”
“에이, 그런데,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부모가 부모다워야 자식이 제대로 크지. 한 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지는데 그럼.”
“그렇죠, 동의하는 바입니다. 자식이라는 존재의 소유 주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만.”
“그래도 저희, 여태 얘기 자체를 별로 못 해봤던 것 같은데, 관리자가 이럴 작정이었던 걸까요? 의외의 곳에서 공유하는 점을 알게 되었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루소와도 공유하실 여부가 있을 듯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이야기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즐거우실 거예요.”
“그쪽은 다산이랑 이야기해보시고요. 다산도 교육의제에 대해 말을 했으니.”
“하하, 역시 교육은 전 인류적 문제였나봅니다. 부모가 자식 보고 이놈을 어떻게 사람으로 키우나…… 고민하는 것이요.”
“이제 브레이크 타임 지나고 나면 어린아이들이 또 오려나요? 손님으로 와주시는 분들께는 모두 감사하지만, 그냥 이리 교육에 대한 생각도 해봤네요, 덕분에. 그럼~ 슬슬 설거지를 하러가보실까…….”
그새 컵 속 스무디는 다 녹아서 찰랑이고 있었다. 업무를 하러 가는 그 짧은 길에서, 이이는 콧노래를 불렀다. 로크는 테이블에서 멀어지는 이이를 지켜보며, 나만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여겼다. 아무래도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내는 일과 자녀를 잘 길러냄의 결이 다르지 않다 여긴 것은 동서양 공통인 듯했다. 이곳에서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 손님들께 눈치주는 일이 될 터이니 대놓고 말을 할 생각은 없어도, 생각만 하던 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 그리고 거기에 공감하고 때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 또한 철학자였으니 당연했다. 정말로 관리자가 이것도 계산한 것인지, 약간 꺼림칙함이 따라오긴 했지만.
싱크대의 물소리가 들렸고, 로크는 다음 영업시간에는 어린이들이 소리라도 덜 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귀가 먹먹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에 동서철 크로스를 쓰니까 재밌네요…☺️
교육학적인 내용이라고 서두에 써놨지만 아주 깊은 내용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런 내용을 소설로 옮길 정도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해 잘 아는것도 아니었고요.
다만 이런식으로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비교/대조하는 것은 언제 써도 즐거운 것 같네요. 오늘도 재미있게 썼습니다.
간만에 쓴 동서철 크로스 글, 즐겁게 읽어주셨다면 기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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