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less choice 1루프

(8) 가브리엘

리네를 먼저 찾으러 가야할까? 아니면 예정대로 마을부터 둘러볼까? 나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하였다.

일단, 리네를 먼저 찾으러 간다고 한다면 아까 말했듯이 마을을 샅샅히 꼼꼼히 살펴 찾아다녀야한다.

더군나다 공중에 있을거라는 가능성도 배제할수가 없어 정확히 찾아낼 수 있을거라는 확신 또한 없다. 그렇다면 역시 마을을 둘러보는게 낫지 않을까? 내가 둘러보고 있는 동안 쥐도새도 모르게 리네는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물론 둘러보는 동안 다시 나타날거라는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파트너를 두고 줄행랑 튀진 않겠지….

나는 결국 리네를 찾는 것을 뒤로하고 지금 내가 있는 가브리엘 이라는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하였다.

나는 왼쪽으로 뻗어져 있는 인도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하나씩 옮길때마다 들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하얀색 주택가가 위치해 있는 끝자락까지 걸어갔다.

지금 이 가브리엘이라는 마을에 나와있는 사람은 꽤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마을 내부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보였고, 상점가에서 장을 보고 온 사람들, 그리고 자택 창틀에 빨래를 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겉모습만 다를 뿐,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있었던 세계와 같은 행동, 같은 일상, 같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외관으로만 모든 걸 판단하면 안돼! 리네도 참, 왜 그렇게 이 사람들을 싫어하는 질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생각해보니, 들키지만 않으면 나도 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갈수도 있지 않을….

나는 아차,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돌렸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되는데.

나는 하얀색 주택가로 들어서는 인도를 따라 발걸음을 움직이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남의 마을의 주택가를 이렇게 파고들어도 되는걸까? 이거 실례되는 행동 아니야?!

나는 한 두발짝, 하얀색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기 거의 한 발짝 차이 정도가 날 때 뒷걸음질을 하였다.

-마을 둘러본다고 하지않았냐?

“우와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갑자기 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그만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리네는 그런 내 입을 급하게 꾹 세게 눌러 소리가 더 이상 새어나오지않게 막았다.

-야!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이 새끼야!

불투명한 손을 막고있던 입으로부터 떼어내더니, 그 손으로 내 정수리에 박 터지는 소리가 나게 할 정도로 세게 때렸다. 유령이라매! 유령이라면 원래 통과되어야 되는거 아니야?! 매운 손맛에 눈물이 찔끔, 나와버렸다. 그리고 맞은 정수리를 제 두 손으로 감싸쥐어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정수리를 때린 옆에 있는 유령한테 말을 꺼냈다.

“갑자기 나타나면 당연히 놀라서 소리 지르지!!”

나는 제 머리를 감싸쥐던 두 손을 치우며, 억울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리네에게 호소하였다.

-목소리 크잖아, 좀 닥쳐봐라!

그리고 한번 더 내 정수리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까보다는 조곤조곤해진 톤으로 정수리를 두 손으로 감싸쥔 채 웅크리며 리네에게 말했다.

“…가, 갑자기 나타나면 당연히 놀라서 소리 지르지…!”

-뭔 소리야? 몇분 전부터 계속 있었는데. 너가 기척을 못 느낀거겠지, 쯧.

“너무해…! 너는 유령이잖아!”

-아아, 진짜 시끄럽네. 됐고, 둘러볼꺼야, 안 둘러볼꺼야? 빨리 결정해.

끄으응…, 솔직히, 깊숙히 생각을 해보자면 내가 이 곳에 마을은 전부 둘러본다고 해서 얻는 정보나, 그런건 딱히 없을거 같다. 굳이 있다고 하면 한 두 개 정도?

그렇게 내가 이 마을을 둘러볼까, 고민하던 와중에 한 꼬마 아이가 쭈뻣쭈뻣 나에게로 다가오는 듯 보였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아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크게 미소 지으며 비닐로 감싸져있는 무언가를 한 손으로 내게 건넸다.

“저! 이거 엄마가 환영 선물이래요! 이거 드세요!”

환영 선물?

“… 나, 나한테?”

“네! 엄마가 여행객 같다고 저보고 갖다주고 오라고 했어요!”

나 지금 누가봐도 수상해보이는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지않나?! 나는 주변을 급하게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아이의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지 확인했다. 아! 저 사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내 시선은 바로 내 앞에 하얀색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는 인도에 장이라도 보고 온 모양이였는지, 한 손에는 형형색색의 과일처럼 보이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계신 아이의 어머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서있으셨다. 아이의 어머님은 이쪽을 빤히 바라보시더니,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챈 모양인지 나와 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곤 아이의 어깨 위를 한 손으로 가볍게 올리더니, 망토로 얼굴을 가린 나에게 따스한 어머니의 미소를 지어보여주셨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라렸다. 그리고 나는 쓰라림의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이것이 쓰라림의 이유였다.

정말, 갑작스럽게, 웬 낯선 곳으로 떨어져버렸는데, 본래 있던 세계에서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알게 된 엄마는 무슨 행동을 할까. 나는 그런 엄마가 걱정이 됐고,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 분명 걱정 많이 하시고 계실텐데.

나는 얼른 이 세계를 탈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한 채, 나의 앞에 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어, 환영 선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방금 드린 건 저희 마을의 특산품이에요, 부담갖지 말고 받아주시면 되세요.”

그리고 온화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아이의 어머니를 본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마을 특산품이면 오히려 부담 좀 받아야 되는거잖아요!!??’

나는 얼떨결에 받은 마을 특산품을 손에 꼬옥 쥐어 망토 안 쪽 큰 주머니에 있는 빈 공간에 살포시 넣었다. 감사히 받아야지…… 뭐 어떡해~….

“근데, 근데!”

“응?”

“얼굴은 왜 안 보이게 가리셨어요?! 모자 한 번 벗겨봐도 돼요?!”

나를 계속 유심히 바라본 모양이였던 아이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후드모자로 가려진 내 얼굴을 향해 가리키며 궁금증이 가득한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삿대질에 “어머나! 얘 봐라! 삿대질은 안된단다, 펠레우스! 죄송해요, 얘가 아직 철부지여서 말을 잘 안 들어서요~.”라며 나에게 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시며 사과를 하셨다. 나는 나에게 사과를 하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크게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에요! 전혀 기분 안 나빴는데요, 뭘! 헤헤.” 라고 말하여 가볍게 넘겼다. 후후훗……, 나 조금 어른스러워 보일지도!

나는 궁금증이 가득해보이는 아이에게 후드모자를 푸욱, 눌러쓴 채 정면을 향하여 쭈그려 앉아보았다. 어차피 이래도 내 얼굴은 안 보인단 말씀이시라!

후드모자에 달려있는 커다란 고양이 귀를 제 두 손으로 파닥파닥, 흔들여보며 장난끼 있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헤헤, 이 귀, 보이지? 이 귀는 말이야, 무지막지하게 튼튼하고! 강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귀란 말씀!”

“우와아아아, 진짜요?! 그럼 무지막지하게 강하시다는 거네요?!”

“후후후……, 맞아! 난 엄청 강해! 으으음~ 아, 그래! 내가 왜 얼굴을 가리는 지에 대해서 궁금하지?”

아이는 내 말에 눈이 동글동글, 번뜩!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끄덕 흔들며 눈에서 빛이 나올 정도의 기세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 아이와 맞장구를 쳐주는 나의 모습에 아이의 어머니는 “그러게~ 왜 얼굴을 가릴까? 여행객 씨~, 알려주실래요~?” 라며 장난스러운 어투로 질문을 덧붙여주어, 상황을 아이가 재밌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맞추어주었다.

“우리 꼬마 친구! 영웅 알아? 영웅?”

“네! 알아요!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대단하고 그리고… 멋진 사람이잖아요!”

“오! 그렇지! 네 말대로 영웅은 아주 강하고, 대단하고, 무척 멋진 사람이야! 그리고 강하고, 튼튼한 내가 바로 그런 영웅이란 말씀!”

“네에에~?! 그렇지만, TV에서 본 영웅은 얼굴을 가리지 않았는걸요!?”

“후후후…. 그건 말이지! 나는 비밀리에 움직이는 영웅이거든! 그래서 내 정체가 들키면 안된다라는거지!”

아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을 제 손으로 매만지더니 이내 몇 초 안 지나서 이유를 알아냈다는 듯 “아하!” 큰 소리로 궁금증이 풀렸나는 목소리로 나에게 신나게 정답을 말했다.

“우리를 위해서 정체가 들키면 안된다는거죠?! 왜냐면 악당이 영웅을 괴롭히게 되면~, 영웅이 더 이상 우리를 구해줄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 맞나?

“맞아! 악당에게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거야! 그래야지 사람들을 멋지게! 구해줄 수 있으니까! 이제 알겠지?!”

“네! 근데 전 악당이 아닌데, 조금만 보여주시면 안돼요?!”

진짜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다! 이정도면 더 이상 보여달라는 말은 안할거 같았는데!

“영웅은 정체를 들키면 안된다고 했잖니?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영웅을 존중해줘야지, 펠레우스~.”

“으으응, 하지만……”

여전히 내 얼굴이 궁금한 듯 알려줄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이는 입이 삐죽, 나와 시무룩하다는 걸 온 몸으로 표현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내 쪽을 쳐다보더니 “죄송해요~! 저희 애가 너무 호기심이 많죠?” 라며 두 손 모아 또 다시 허리를 굽혀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그런 아이의 어머니에게 크게 손사래를 쳤다.

나는 시무룩해진 아이에게 어떻게하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가 생각난 나는 주먹을 쥔 채로 약지 손가락만 펴서 아이 쪽으로 갖다대었다.

“나중에 이 영웅을 또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내 얼굴을 보여줄게! 어때?!”

그런 내 말에 살짝 기운이 생겼는지, 후드모자로 가려진 내 얼굴 쪽을 한참동안 빤히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여 “좋아요! 약속이에요!” 라고 말하더니 아기자기한 약지 손가락을 내 약지 손가락에 걸어 약속 했다. 물론, 내가 이 마을을 떠난다면 아무래도 거의 0.001% 불가능한 약속이지만…….

아이는 나와 약속을 한게 무척이나 신났는지 걸었던 약지 손가락을 풀곤 아까보다 아주 밝은 얼굴로 방방 뛰었다. 나는 그래도 뭐, 어때. 좋아하면 됐지! 라고 생각하며 쭈그렸던 자세에서 다시 일어나 다리를 폈다.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더니 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의 작디작은 손을 조심히 잡아주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아이의 어머니는 나를 여행객이라고 했던거 같았는 데, 이 마을에는 여행객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인걸까? 나는 아이의 손을 맞잡아주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조심히 질문을 드려보았다.

“저기, 혹시 이 마을은 여행객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는 건가요?”

“으음, 간혹가다가 다른 마을 주민분들이 배낭 여행으로 이 세계 전체를 돌아다니셔서 찾아오시는 여행객분들이 있으시거든요. 거의 대부분은 윗 동네에서 자주 찾아오세요.”

그러다가,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던 아이의 어머니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꺼풀을 꿈뻑거리며 의이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의문이 들었다. ‘여행객’이라는 이름이라고?

“…… 저, 혹시.”

“네?”

아이의 어머니는 망설이는 듯 잠깐 뜸을 들였다.

“몇 시간전에, 그쪽. 상점가 바로 뒷편에 있는 커다란 구멍에서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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