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브리엘
순간,
온 몸이,
응직됐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들어서 이 사람의 형체를 바라볼 자신이 없다, 이건 빚을 져서, 호의를 얻어서, 부끄러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또,
또 죽을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공포감에서 나오는 반응이였다.
이 사람은 지금 무슨 표정일까, 내가 기억하고 있던 친근한 마을 사람의 표정이 아직 남아있을까? 표정을 볼 용기가 나지않았다. 게다가 아까 나한테 잘 가리고 다니라고 말을 한 걸 보면… 이 사람은, 이미, 내 얼굴을 확인한걸까?
“어쨌든.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클링턴으로 오렴, 얘야.”
“아, …네.”
나를 클링턴이라는 장소로 부르게 해놓고 죽이려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호의일까?
이 곳, 상점가로 오기 전 낡은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니 누군가 내 머리를 꽈악, 세게 쥐고있는거 마냥 지끈거려왔다.
하지만 죽는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면 당연히 그 낡은 집에서 일어났던 기억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몇십분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던 장소에, 내가 처음 죽었던 장소고, 내가 처음… 마을 사람과 말을 걸어본 상대인데다…, 내가 그, 아이를….
아, 울렁거리다. 생각만해도 울렁거리다. 떠올리고 싶지않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운 것 마냥 숨이 턱, 막히는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늑대탈을 쓴 사람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나쁜 의도로 말하는 건 아니니까 겁은 먹지 말고. 단순 호의야.”
그러더니 나를 지나치는 듯 반대편으로 걸어가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늑대탈을 쓴 사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내렸다. 호의, 라는 단어가 나는 듣고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저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멀어졌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던 것일까. 방금까지 족쇄로 조여지는 기분 나쁜 느낌이 순식간에 파르르, 단번에 풀린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 같은 목이 막힌 느낌도 사라졌다.
나는 잠깐 심호흡을 하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쉈다가를 두번 반복했다. 나 살아있는거겠지?
-야, 너. 설마 바로 클링턴으로 갈 건 아니지?
“음… 글쎄?”
상황은 어느정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흘러간거 같고, 일단 배는 고프니, 이제 샌드위치 좀 먹자. 이러다 흐지부지 되겠어! 하고 나는 두 손으로 꽉 떨어지지 않게 잡고있던 샌드위치를 그제야 마음 편하게 한 입 베어물을 수 있었다. 베어먹었는데……
“마, 맛없어…!!”
이런게 진짜 샌드위치라고?! 샌드위치라고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한 입 베어먹어본 맛은 아무 음식이나 마구잡이로 넣어서 닥치는데로 끓인 스튜 같았다. 왜 샌드위치인데 스튜로 비유하냐, 라고 한다면 그만큼 샌드위치가 샌드위치 같지 않다! 라는 것이다. 이건 샌드위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샌드위치가 아니야…! 게다가 왜 샌드위치? 에서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는 물 비린내에, 식감도 되게 아삭아삭하잖아! 샌드위치라면 좀 더 말랑말랑 해야되는거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만든거지?!
“…리네!”
-왜.
“이거 먹어볼래?”
-너는 이제 하다하다 유령이 음식도 먹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왜? 아까는 물건도 잘만 들던데?”
-드는거랑 먹는거랑 같냐?
리네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리네를 보며 나는 그런가…하고 아쉬워하며 샌드위치를 가장한 이 정체불명의 음식을 이제 어떻게 해야될까 고민했다. 쓰레기통에 갖다버릴까? 아. 아니, 아니야. 그건 너무 나쁜 짓이잖아. 그래도 손님을 위해서 정성껏 만들어 준 음식을 쓰레기통에 갖다버릴 생각을 하다니!
그럼 누구한테 줄까? …아무도 안 먹을거 같은 맛인데. 아! 아니지. 아까 그 가게 안 손님들은 샌드위치를 잘만 먹던데? 그럼 그 사람들에게 주면 되지않을까? 아. 아니,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양심이란게 있어야지, 맛없다고 다른 손님한테 주는 걸 만든 사람 앞에서 대놓고 그래버리면 만든 사람 마음 상하잖아. 기껏 정성껏 만들어줬는데. 그럼… 어떡하지? 그냥 내가 먹을까? 한번 꾹 참고 먹어봐?
나는 깊이 고민했다. 먹을까, 말까? 하지만 이런 마구잡이로 넣어서 만든 것 같은 괴이한 맛의 샌드위치라고 주장하는 음식을 과연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도저히 샌드위치라고 볼 수 없는 아삭아삭한 식감도…….
그래! 꾹 참고 먹어보자! 만들어준 정성이라도 생각해서 손님으로써 먹는게 예의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먹어 우물우물거렸다. 한 입 크게 베어먹으니 3번 정도만 먹으면 샌드위치를 다 먹을 수 있을 양만큼 줄어든 것 같았다. 아삭아삭. 도대체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거야? 싶어 샌드위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샌드위치 안에는…….
“왜 단무지가 들어있지?”
단무지뿐만이 아니였다. 물고기에, 초콜릿에, 그리고 토마토……. 진짜로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넣어서 만든거 같은데. 이거 먹어도 괜찮은거 맞을까?
“…”
나는 샌드위치를 두 손으로 꾸깃, 꾸깃. 최대한 작게 동그란 모형으로 쑤셔넣어 말았다. 하하! 이렇게하면 먹기 쉽지 않는 음식들도 한 번에 먹을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동그랗게 쑤셔 말은 샌드위치를 크게 제 입으로 한 입에 넣어먹었다. 음식이 씹혀지는 순간 나는 마구잡이로 넣은 괴이한 맛을 꾹 참고 몇번이고 계속 씹어서, 꿀꺽. 빠르게 음식을 삼켰다. … 뭔가 내 입안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나는 내 입 안에서 날 것만 같은 꺼림칙한 느낌을 뒤로하고, 이제 어디로 이동해야할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클링턴으로 가는건 우선 나중에… 가는 걸로 할까.
왜냐면 리네는 내가 그 곳으로 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아까, 그 늑대탈을 쓴 사람이 나에게 클링턴이라는 곳으로 오라고 했을 때 내 뒤에서 알 수 없는 차갑고 꺼림칙한 느낌이 내 등 뒤를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내 등 뒤에는 분명 리네가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리네는 클링턴이라는 곳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것 같고.
그렇다면 이 마을을 좀 더 둘러볼까? 이런 큼지막한 동굴 속에 있는 마을을 아직 다 둘러보지도 못했고, 게다가 여기서 나와 같은 처지에 사람과 만날수도 있으니까. 나는 여기서 번뜩 궁금증이 생겼다. 이 세계에 끌려오는 사람들은 나잇대와 상관없이 정말 ‘랜덤'으로 끌려오는 걸까? 내가 오기 전에도 여기에 끌려온 사람은 많았을까? 아니면 적었을까?
나는 방금 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작은 소망을 빌었다. 부디 후자이기를, 이라고. 희생되는건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지만, 그래도 그 숫자가 많은 것보단 낫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다짐을 하였다. 그래! 이제부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행동해보는거야! 부정적으로 행동한다해서 나한테 좋은 영향이 오진 않을거라고 믿으니까.
일단 현재 내 위치는 상점가 거리다. 먹을거 말고도 다른 잡다한 물건도 파는 것 같고…, 꽤 유용한 정보도 많이 흘러오는것 같다. 물론 그만큼 정보 전달 속도가 아주 빠른 모양이기도 하고.
이 상점가 거리를 쭉 직진해서 가다보면 큰 마을처럼 보이는 비스무리한 건물들이 보인다. 상점가에서 보았을 때는 고층 건물이라곤 고작 2~3층 정도의 건물 몇몇개가 전부인걸로 보였고, 대부분의 건물은 단색으로 칠해진 1층 주택가로 보였다.
그리고 아까 내가 아이와 있었던 낡은 집. 거기는 뭐였을까? 그렇게 너덜너덜해질 정도의 집이면 빨리 철거하는게 나을거 같은데.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집에 가구도 별로 없었고. 그 집은 누군가가 살았던 집이 맞을까?
나는 낡은 집에 대한 의문만을 남긴 채 후드모자를 꾹눌러쓴쓰고 앞으로 직진하여 그 큰 마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저기로 가게?
“응! 마을 구경 할려고!”
-거 참, 여유롭게 그지없네, 쯧….
일단 리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 입구까지 도착해있었다. 마을 입구 앞에는 [WELCOME TO GABRIEL VILLAGE!] 라고 적혀있는 큰 간판이 땅에 박혀있었다.
“거, 게에…?, 거븨…게브리일…?”
-가브리엘.
리네는 마을 간판에 적혀있는 문구를 뚫어져라 얼굴을 찌푸린 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잡아먹을 기세로 간판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마을 이름을 대천사의 이름으로 걸고있다니. 겉속 안 맞는 X끼들….
“대천사?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대천사의 이름이야. 이 세계의 신의 대리인.
“뭐하는 사람인데?”
-……아까 신의 대리인라고 말했잖아, 빡대가리야.
“대리인이 뭐하는 사람이야?”
리네의 한쪽 눈썹이 꿈틀, 거리더니 “너… 단어량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라고 말하며 또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숨 많이 쉬면 수명 줄어든다고 했… 는데 생각해보니 리네는 유령이였지, 맞다 참!
리네는 한참동안 고민하는듯 눈꺼풀을 꿈뻑꿈뻑, 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환영 문구가 적혀져있는 간판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너가 알 필요는 없어.
나는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은 왜? 라고 묻고싶었지만, 후드모자 너머로 보인 리네의 무서운 얼굴을 보니 괜히 여기서 더 말했다가는 머리를 또 얻어맞을거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에 질문은 하지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알려주겠지?
나는 다시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게 맞을까? 다시 고민을 했지만, 아까 이곳을 전부 돌아보기로 했었으니 우선은 들어가보는게 맞겠지. 나는 고양이 후드모자를 얼굴 아래로 꾸욱, 안 보이게 덮어쓴 채 두 발 걸음을 옮겨 입구 안으로 걸어들어가 푸른 잔디를 푸석, 푸석 밟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의 규모는 상점가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을 때 보았던 규모보다 더욱 컸었다. 차례대로 주택가의 색깔이 네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맨 왼쪽부터 하얀색, 짙은 갈색, 짙은 붉은색, 짙은 회색으로 주택 외벽이 칠해져있었다.
지금 내가 위치했는 마을 입구를 중심으로 정면을 보면 크게 뻗어있는 흰색 인도가 있었고, 왼쪽, 오른쪽으로도 크게 뻗어있는 인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좌우로 뻗어있는 인도는 각각 주택가가 색깔별로 분류되어있는 두 곳 사이로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바로 내 앞, 정면에 있는 인도를 걸어가면 그 끝에는 또 다른 큼지막한 구멍이 있었었다. 저건 어떤 구멍일까, 혹시, 이 곳을 나갈 수 있는 출구일까?
우선은 맨 왼쪽부터 차례대로 돌아보고 올까, 아닌가 시간이 너무 오래걸릴려나? 이 곳을 다 둘러보는게 목적이긴 했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내가 본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돌아가는데까지 시간을 너무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나는 이런 내 고민을 바로 옆에 있는 리네에게 조언을 얻는게 나을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작은 소리로 내 옆에 있는 유령에게 말을 걸었다.
“리네, 리네.”
왜 말이 없지?
“……리네?”
나는 급하게 후드 모자를 주변 시야를 넓히기 위해 살짝 위로 들어올린 채로 내 주변을 황급히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같이 옆에 있었던거 같은 리네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리네부터 찾으러 가야하나?
하지만 직접 찾으러 간다기에는 리네는 유령이여서 잘 안 보이는 탓에 찾기도 까다롭고, 게다가 ……공중부양도 하니까. 어, 잠만, 공중부양!?
나는 동공을 크게 확창시킨 채 후드를 더 들어올려 위로 고개를 급하게 들어올렸다. 어느정도 그래도 기대는 했지만, 리네는 위 허공에도 있지 않았다.
…… 도대체 어딜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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