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브리엘
지금 설마, 나 의심 당하고 있는건가? 설마 내가 그 동굴에서 나올 때 아이랑 같이 있으셨던거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여기서 잘못말하면…… 또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유는 특정 지을 순 없지만, 그냥 말실수 한번 까딱하면 죽을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 도대체 또 무슨 말실수를 한건데?!
-하하. 진짜 등신X끼.
응?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대화를 계속 들고있던 리네가 혀를 차더니 불만과 어이없음이 섞인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여행객이라는 분은 또 뭔 X소리야? 설마, 너 이름이 ‘여행객’ 이라는 걸 물어본거냐?
나는 어이없어하는 투로 툭툭 내뱉은 유령의 말에 잠시 곰곰히 내가 무심코 뱉은 지난 질문들은 곱씹으며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저기, 혹시 이 마을은 여행객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는 건가요?”
…… 그러네, 나 말실수 했네. 그래서 의심받았네.
나 어떡하냐. 어떻게 이…… 망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거지.
게다가 나보고 커다란 구멍에서 나왔냐고 물어봤고……. 아니 잠만, 내가 거기서 나온 애라는 걸 어떻게 단번에 알아차린거야…?!
“저기, 대답… 언제 해주실건지……?”
망했다! 나 또 실수했다! 망했다! 망했어! 나 또 죽고싶지 않다고! 저 그냥 대답 안하면 안될까요, 어머님~?!
그런데,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꼭 내 앞에 있는 아이의 어머니가 나를 죽일거라고 생각하는거지?
혹시 모르잖아, 만약 내가 여기서 ‘와!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저 저기있는 커다란 구멍에서 나왔어요!’ 라고 말해도 오히려 마음 씨가 깊으셔갖고 나를 숨겨주실지도 모르잖아! 그래…… 혹시 모른다. 이번에는 혹시나 모를,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아주 세게, 쥐어터질 정도로 꽈아아악, 부여잡았다. 나는 여기서 직감적으로 누군인지 대충 알아챘다.
- …야. 니 설마 저 괴물X끼한테 “네! 맞아요!” 같은 자살 행위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리네는 내 어깨를 꽈아아악, 뼈가 부서질 정도로 아프게 붙잡았다. 씨, 무슨 유령이 이래도 되나?! 심지어 파트너한테 협박? 하는거 아니야 지금 이거?!
하지만 너무 아팠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다, 라고 답하는 순간 내 어깨 한 쪽이 더 이상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작게,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도리도리도리.
- …너 진짜 맞다고 말하기만 해봐. 죽는다 너.
끄덕끄덕끄덕.
내 혼신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고 휘젓은 덕분에 내 어깨를 꽉 잡아 터질것 같이 누르고 있던 아픈 느낌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하…… 진짜 너무 아팠다, 진심.
나는 부러질 정도로 세게 눌린것 같은 감각에 잡혀졌던 어깨를 제 손으로 주물러 근육을 풀어주며 대답을 이었다.
후우…….
“네! 맞아요!”
와! 나 이 정도면 연기에 재능있는거 같은데. 리네에겐 아쉽게 됐지만, 애당초 난 처음부터 말할 생각이였걸랑!!
동시에, 나는 내 옆에서 진짜 여기에 누가 있어도 바로 느껴질만큼의 살의를 풍긴 채 누군가가 나를 쏘아보는 기분이 아주, 아주 많이, 느껴졌다.
미안, 진짜로 미안하다. 말하질 말걸 그랬나.
-X발… 진짜…….
리네는 짜증 섞인 투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제대로 화난 모양이였다.
-난 모른다. 니 뒤지든 말든, 너 알아서 해.
…… 침 꼴깍.
…… 미안해!!
나는 그런 리네의 반응에 괜히 설마 나 죽나? 같은 생각이 들어, 아까 어찌저찌 자기합리화로 풀렸던 긴장감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래요?”
내 대답을 아이의 어머니를 주변에 사람이 많은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작은 소리로 “… 얼굴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여기서 내 얼굴을 확인하겠다는건가? 이건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는 얼굴을 까면 안될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절대 안돼!
도리도리도리.
나의 거절 의사에 아이의 엄마는 살짝 당황한 듯 몇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다시 작은 목소리로 “…저희 집이라도 가실래요? 거기는 괜찮아요?” 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흠…… 집 안이라면 얼굴 볼 사람도 별로 없고, 괜찮은거 같은데. 근데 내 얼굴 볼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내가 큰 동굴 구멍에서 나왔다는 걸 제대로 확인하려고? 뭐, 죽…이기까지야 하겠어?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의 의사표현을 확인한 아이의 어머니는 제 손이 아이의 손을 맞잡은 상태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되옮겼다.
“여행객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차 한 잔이라도 드시고 가는게 어떠실까요?”
여행객이 날 말하는거였구나. …… 돌아가면 책 좀 많이 읽어야겠다.
“우와, 진짜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나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권유를 수락했다. 아이는 그런 나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었는 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정말요? 정말요?! 우리 집 놀러오시는거에요?!”
한껏 기분이 달아오른듯 목소리 톤이 한 층 더 올라갔다.
“응! 정말이야~!”
그런 아이의 기분에 맞게 나도 같이 말을 맞춰주었다.
어머님은 한 손은 장바구니를 든 채 나머지 한 손은 아이의 손을 꼬옥 맞잡아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쪽으로 오시면 되세요~.” 라며 길을 안내해주려는 듯 앞장서갔다.
따라가면 되겠지? 나는 어머님 뒤를 졸졸졸 병아리처럼 따라들어가 하얀 주택가 거리에 내 발을 놓았다.
아이의 어머님 뒤를 계속 쫓아가다보니, 어느새 한 하얀 건물 앞까지 도착하여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집인가?
건물은 2층정도로 보였고, 외관도 말끔하게 달려있는 네모난 창문들과 하얗게 벽에 칠해져있는 단색말고는 건물에 다른 색이 칠해져있거나 다른 무언가가 달려있지는 않았다.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저희 집은 2층에 있어서 계단이 조금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당연하죠! 거뜬히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1층에는 다른 누군가가 사는건가?
“혹시 1층에는 다른 분이 사시는건가요?”
“네네, 맞아요. 이 건물에는 2세대가 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희에요. 그리고 말해주셨듯이 다른 한 분은 1층에서 지내시고요.”
오… 그렇구나! 내가 있던 세계에선 1인 1집이여서 한 집에 같이 살거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층이 있으면 같이 나누어서 살 수도 있었구나~!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자를 뒤따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리네는 …여기 있나? 후드 모자를 옆으로 살짝 들어올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서 슬쩍 확인해보았다.
-뭘 봐.
“안 봤어. 벽 봤어.”
있네. 그것도 팔짱 낀 채 공중부양으로 다니면서…. 아, 눈치보인다.
계단을 따라 건물 층을 올라갔다. 그리고 현관문 앞까지 도착하고 어머님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자.
삐리링~!
현관문이 열렸다.
내 앞에 있는 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나도 따라 남의 집 안을 들어갔다. 집 안의 사이즈는 살짝 담소한 정도였고, 인테리어도 뭔가 미니어쳐에서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집 안이 메워져있었다.
나는 신던 신발을 벗어 집 안 바닥 위에 뒤따라 올라갔다.
어머님은 아이를 잡던 손을 놓고, 주방 쪽으로 가 싱크대 바로 옆에 장바구니를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는 “집이다~!!”라며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옷이라도 갈아입으려는 모양인가보네.
어머님은 내 쪽을 확인하더니 식탁으로 몸을 돌려 식탁에 있는 의자를 손바닥으로 가리키셨다.
“앉아계시면 금방 차 내어드릴게요~. 여기 앉아계세요.”
“아,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식탁에 있는 의자 위에 조신히 앉았다. 그래도 남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인데 예의는 차려야지. ……진짜 망토 벗어야되나.
남의 망토로 뒤집어쓰고 오해받아서 남한테 샌드위치 얻어먹고 또 남의 집에 들어와서 차 한 잔이나 얻어먹고. 물론 차 한 잔은 따로 이유가 있어서 받은거긴 하지만….
그렇게 한참 망토를 벗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하는 순간 내 앞에 찻잔이 내어졌다. 그리고는 찻잔 안에 주전자를 살짝 기울여 붉은 색 차가 절반정도 채워졌다.
그런데 아이는 안 나오는거겠지? 애한테는 안 보여주고 싶은데.
“펠레우스~, 잠깐만 방에서 나오지 말고 있어주겠니?”
그러자 방 안에서 “네에.”라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말은 잘 듣는 아이인가보네…….
어머님은 나와 식탁 맞은 편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으며 붉은 색이 절반 채워진 찻잔을 한 손으로 빙빙 돌렸다.
“아이한테는 잠깐동안 방 안에 있어달라고 했으니 안 나올거에요.”
“…아! 네, 네.”
““……””
정적이 흘렀다. 일단 얼굴 보여줄려고 차 한 잔도 얻어먹을 겸 왔는데. 먼저 후드부터 벗어야하나……?
나는 맞은 편에 있는 어머님을 흘긋 쳐다보았다. 차 한 잔을 홀짝, 마시며 내가 후드를 벗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였다.
침 꼴깍.
나는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 모자를 뒤로 젖혀 걷어내 얼굴을 드러냈다.
“…… 정말이였네요.”
“네, 네에…”
…………
“몇 살이에요?”
“어디보자… 1, 2, 3, 4…, 15살이요.”
“열, 열 다섯살…?! 세상에, 하기야 어려보이긴 했는데…….”
차 홀짝. 홍차인건가?
“…… 망토는, 어디서 구하셨어요?”
“돌아다니다보니 바닥에 내뒹굴어져 있던거 주워서 입었어요.”
거짓말이다.
“제가 돈이 없어서 살 돈이 없더라고요. 하하.”
“여기에는 망토를 팔지는 않아서… 어떻게 망토를 구했지 했네요.”
“아, 그래요?! 어쩐지. 음식점은 많은데 옷 가게는 하나도 없더라!”
“여기는 물품이랑 음식을 주요로 파는 상점가니까요. 의류 관련은 윗 마을 쪽에 있어요.”
“…… 그렇군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앗, 마키아에요! 마키아.”
“그래요, 마키아. 혹시 여기서 마키아랑 똑같은 망토를 두른 아이 한 명을 못 봤나요?”
“저랑 같은 망토를 두른 친구요? 으으음~… 아니요.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못 본거 같은데…….”
거짓말이다.
“…그렇군요.”
…… 하아, 나 진짜 나쁜 애 다 됐구나. 엄마가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옆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치네? 뭐, 좋아. 나랑 다니려면 그 정도는 디폴트로 가지고 있어야지.
아… 옆에 있는 유령 친구 때문에 죄책감 더 쌓이게 생겼다.
그런데, 아이 어머님이면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 않나? 왜 나한테 자꾸 존댓말을 써주는 걸까?
“저어, 그런데요.”
어머님은 찻잔에 담긴 홍차를 빙빙 돌리며 한 입 홀짝, 마셨다. 내 질문에 찻잔을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나머지 찻잔에 담긴 홍차를 쭈욱 들이켜 마셨다.
“저보다 나이 많으실거 같은데, 저한테 왜 계속 존댓말을 쓰시는거에요?”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서요.”
쿨럭.
“기본 예의이기도 하고.”
심장이 뭔가 조여오는거 같은데……
“안타까운 호의이기도 하죠.”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는 ……
뚝.
뭐지?
뚝.
뚝.
입에서,
따뜻한,
뭔가가,
흘…
…………
붉은 색 액체……?
“미안해요.”
그리고, 시야가 정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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