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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커미션 샘플_키워드 오마카세_3천자

'상실' 키워드만으로 모두 오마카세해서 작업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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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진 글 커미션
D님께 드림
공백 포함 3,117자
2024.08.15

 

상실

나는 추워서 깼다. 이전보다 특별히 더 추워진 것도 아닌데 왜 잠에서 깼을까. 무심코 옆으로 손을 뻗어 더듬다가 빈 허공을 만지고 이유를 알았다. ‘그’가 없었다. 늘 옆에서 같이 자던 한 사람분의 체온이 사라져서 나는 이전보다 더 추웠다. 그 체온은 영영 사라졌다. 나는 숨이 멈춘 ‘그’를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는데. 앞으로 끝없이 이어진 삶도 같이 가자 약속했는데, 그는 중간에 내렸다. 나는 추워서 울었다. 그래, 추워서.

그렇게 다 울고 나선 짐을 정리했다. 슬픔은 내 어깨를 눌러 주저앉히려 하지만 나는 다리에 힘을 줬다. 어쨌든 식량을 찾아야 했다. 나는 걸을 채비를 마쳤다. 그 일이 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자전거 같은 것들도 전부 망가져서, 무언가를 찾으려면 걸어야 했다. 나는 흙탕물을 가라앉힌 뒤 세수했다. 아득바득.

걷기는 끝이 없다. 10년 넘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 위에서 걷는 특별한 걸음걸이를 익혔다. 모든 게 괜찮았을 때처럼 걸으면 바닥에 놓인 재가 피어올라 호흡기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걸었다. 북서쪽 산 중턱에 저장고가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기 때문에, 나는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등산은 숨이 찼다. 저장고로 가는 길은 험준하진 않았지만 복잡했다.

“에일린?”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내 이름이어서 화들짝 놀랐다. 휙 뒤돌아보니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군인처럼 짧게 민 머리였는데 이곳에선 평범한 스타일이다. 그는 다른 생존자들보다 상태도 좋고 옷도 튼튼해 보였다. 수완이 좋든가 보호받는 무리가 있든가 기술이 있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의 눈은 나처럼 녹색이었는데 이 근방에선 그렇게 흔하진 않다.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가 조금 슬퍼진 얼굴로 말했다.

“나 노아야. 네 오빠.”

잠깐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10년 전 그 일이 벌어졌을 때 헤어졌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던 오빠가 내 앞에 서 있다고? 나는 그가 낯설었다. 그의 얼굴 윤곽에서 10년 전의 흔적을 찾아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오빠구나.”

그는 내가 드디어 알아봐서 기뻤는지 활짝 웃었다.

그는 나보다 저장고를 먼저 알아냈고, 거기서 잠시 지낸다고 했다. 그는 나를 저장고로 안내했다. 그는 기뻐 보였다. 당연히 기쁘겠지. 이제 내가 기쁠 차례다. 하지만 왠지 잘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예전과 달랐다. 10년 전 그는 소심하고 침울했고 목소리가 조용했다. 하지만 지금 노아는 활기차고 밝았는데, 평상시에도 그럴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보폭도 커졌고 목소리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자질들은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특히 드물었다. 인상도 완전히 바뀌었다. 도저히 10년 전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마치 누가 그의 육신을 바꿔치기한 것 같았다.

하지만 10년은 길다. 나는 납득하기로 했다. 10년간 그리워했던 가족과 재회했다는 생각을 하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를 따라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며 말했다.

“외과의사인 게 천운이었지. 살아남기는 어렵지 않았어. 그래도 5년 전쯤엔 이런 일도 있었는데―”

우리는 곧 쉬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10년의 공백은 길다. 우리는 할 말이 참 많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오빠가 아니라 새로 만난 낯선 사람과 옛날이야기를 교환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지만.

새벽이 될 즈음 우리는 잘 채비를 했다. 저장고 안은 따뜻했고 내 옆에는 재회한 가족이 한 사람분의 체온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익숙한 환경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는 스르르 잠들었다. 10년 전의 오빠를 생각하며.

‘너무 달라.’

그래서 사실은, 나에게는, 낯선 사람이 옆에서 자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니 당연히 수면은 얕다. 나는 비몽사몽인 채로 누워 있었다. 그런 내 눈앞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숨을 쉬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와 웃고 떠들고 날 다정히 끌어안던 ‘그’가. 그래서 꿈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죽었으니까. 꿈에서라도 더 만나고 싶었으나 ‘그’는 갑자기 사라졌고,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깼다. 직후 우당탕 소리가 났다.

오빠가 내 팔에 몰래 주사를 놓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약 1초가량이 소요되었다. 오빠는 품속에서 총을 꺼내 나를 겨누었고 나는 오빠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이 나는 총을 주워서 오빠를 겨눴다. 사실, 지금의 노아는 너무 나에게 낯설어서 가족이 아니라 타인에게 총을 겨누는 것 같았다.

“무슨 짓이야? 설명해. 쏴버리기 전에.”

“……너도 많이 변했구나.”

나는 오빠의 목 옆쪽을 쐈고 옷깃이 찢어졌다. 그제야 노아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10년 동안 만나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다녔다. 그 일이 벌어지고 그는 모든 희망을 잃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0년 전에도 너무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의사였기 때문에 세상이 잿빛이 되자 이번엔 다른 사명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내 앞에 선 미치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했다. 그는 완벽히 절망했기 때문에 그런 사명을 가져서라도 살아가고 싶었겠지. 10년 동안 얼마나 죽였을까? 모른다. 죽인 사람의 수만큼 내 10년 전의 가족과 동떨어졌을 것이다. 그동안 맴돌던 위화감.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와 같은 녹색 눈. 이제 그는 광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그는 ‘다른 사람’이 맞았다. 10년이나 살인을 계속한 사람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할 수밖에. 노아가 덧붙였다.

“넌 내 동생이니까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주고 싶었어. 우린 가족이잖니…….”

그는 진심이었다. 10년의 세월이 그에게서 바꿔놓지 못한 단 한 가지, 사랑. 그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울고 싶었다. 정말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안 났다.

나는 멀리 도망쳤다.

나는 겨우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나는 ‘그’를 잃었고 이젠 노아도 잃었다. 내가 아는 노아를 잃었다. 저건 다른 사람이었다. 너무 흉측하게 뒤틀리고 망가져서 원형을 찾을 수가 없는. 연속성이라고는 사랑밖에 없는. 바람은 쌀쌀하고 내 옆에는 한 사람분의 체온이 없다. 영영 없어졌다. 나는 이제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지는 행동인데도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그치자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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