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스는 불화의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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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마리아나에요.
전 어제부로 열한 번째 생일을 맞이했어요. 지금은 유일한 가족인 오빠, 알레한드로와 함께 살고 있지요. 이번엔 오랜만에 고향인 시우다드후아레스로 왔어요.
사실 저는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어요. 일단 시우다드후아레스가 마음에 안 들어요. 그곳에선 너무 끔찍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부모님도 거기서 참혹하게 돌아가셨으니까요. 하지만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오빠가 제 생일을 건성으로 챙기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번주에 오빠는 엄청 바빠 보였어요. 중요한 계약이 있댔거든요.
아참, 오빠는 커피 회사의 사장님이에요. 엄청 좋은 커피를 판대요. 그러니까 커피가 수확되어서 사람들이 마시기까지의 과정에서 누구도 다치지 않는 커피를 만든대요. 엄청 큰 회사는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오빠가 자랑스러워요. 그러니 중요한 계약은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렇지만, 어제는 제 생일이었는데 아침에 축하해주고는 바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게 좀 서운해요. 사장님이면 그냥 제 옆에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제 생일을 항상 성대하게 챙겨줬으면서.
게다가 오늘은 아침 인사도 안 하고 새벽에 나가서 쪽지만 덜렁 남겨놨어요! 그리고 지금 자정인데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어요. 미워. 진짜 미워요. 졸려 죽겠는데 기다리게 만들고. 제가 먼저 잠들어 버리지 않고 오빠가 들어올 때까지 깨어 있는데 성공하면, 서운한 티 팍팍 낼 거예요.
그렇게 다짐한 순간,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요. 저는 서운한 걸 어느새 잊어버린 채 마중하러 현관으로 나갔어요. 문은 곧 열렸고 오빠가 들어왔지요.
이상하게 오빠는 코를 찌르는 기묘한 냄새를 묻히고 들어왔어요. 먼 훗날 저는 그게 화약 냄새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오빠가 놀란 눈으로 저를 보았어요.
“기다린 거니? 먼저 자지 그랬어.”
저는 삐진 척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오빠가 너무 늦었잖아! 졸려 죽겠는데.”
저는 오빠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제 머리를 툭툭 치거나 아니면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날 오빠는 아주 이상했어요. 눈빛이 너무 이상했어요. 굳이 따지자면 약을 한 사람처럼 이상야릇한 광기를 띠고 있었지요. 저는 저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섰고, 오빠는 늦은 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변명하거나 모른척하는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저를 꽉 껴안았어요.
“마리아나. 내가 죽였어. 그놈들을.”
저는 오빠가 뭐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죽여요? 뭘? 오빠는 집에 들어온 벌레도 살려서 내보내는 사람인데. 오빠에게 안기니까 그 ‘이상한 냄새’가 더 강해졌어요. 그리고 대체 ‘그놈들’은 누구지요?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렸어요.
“부모님의 원수를 죽였어. 엄마랑 아빠를 잔인하게 죽인 놈들에게 오빠가 복수했어. 이제 부모님도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거야.”
“카, 카르텔, 사람을, 주, 죽였다고? 오빠가?”
엄마와 아빠가 마약 카르텔에게 습격당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전 지금 오빠가 살인을 했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 그런데, 만약 오빠가 미친 게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죽였다면 마약 카르텔 조직원을 죽인 거잖아요. 저는 그 순간부터 너무너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와들와들 떨자 오빠가 제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괜찮아, 마리아나. 다 괜찮아.”
오빠가 포옹을 풀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어요. 약에 취한 것 같은 이상야릇한 환희가 온 얼굴을 내달리고 있었어요. 오빠는 너무나도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에게 복수할 놈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어. 단 하나도.”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요?
오빠는 곧 그가 어떻게 복수를 했는지 이야기해 주었어요. 오빠가 많은 것을 생략한 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오빠는 엄청나게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았어요. 아까는 못 믿었지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오빠가 살인자라는 걸, 죄를 지었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너무 즐거워하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오빠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야겠죠? 엄마 아빠의 복수를 해왔다는데, 저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죠?
그러나 저는 오빠가 저를 다시 안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서리치며 뒤로 몸을 뺐어요. 그러다가 넘어졌어요. 오빠가 놀라서 절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저는 황급히 앉은 채로 뒤로 기어가 도망쳤어요. 저건 오빠가 맞아요. 하지만…….
대체 내 오빠 알레한드로는 어딜 간 거죠? 어딜 가고 저 괴물이 우리 집에 들어온 거죠? 저 앞으로 괴물과 같이 살아야 하나요? 전 너무 무서워요. 오빠, 나 좀 살려줘, 구해줘. 그냥 전부 거짓말이라고 해줘. 아주 질나쁜 장난이었다고 해줘.
제발…….
***
알레한드로라고 불러.
복수를 끝내고 마리아나에게는 전혀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당연한 일이었다. 커피 회사 사장이 어떻게 마약 카르텔 조직원을 죽인단 말인가? 그것도 보복의 염려 없이 싹 청소할 만큼? 복수를 했다는 말 하나로도 설명할 게 너무 많아졌고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아야 했다. 게다가 슬픔을 딛고 잘 일어서고 있는 마리아나에게 굳이 부모님 일을 상기시킬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정 말한다면 마리아나가 완전히 어른이 되고 나서 궁금해할 때 말해주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집까지 가는 나는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한 상태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혹시나 내 얼굴이나 몸에 피가 튀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수에 좋은 일자가 마리아나의 생일 주간과 겹쳐서 마리아나를 많이 보지 못했다. 서운해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일이 있는 주를 생일 주간이라고 부르며 계속 축제처럼 축하해줬다. 그러니 남은 생일 주간은 성대하게 보내야지.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갑자기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고양감이 나를 덮쳤다. 복수에 성공한 직후보다도 더한 고양감이. 살면서 이렇게 들뜬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붕 뜬 기분에 취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마리아나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가 살인자이고 그것도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너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방금 그게 뭐지? 내 의지가 아닌데. 나는 분명 마리아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
상념은 마리아나가 날 보고 공포에 질린 뒤 도망가려는 순간 깨졌다. 마리아나는 도망쳤다. 도망치더니 방문을 잠갔다. 잠시 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닫힌 방문 앞으로 다가가자 딸꾹질 소리와 함께 울음이 그쳤다. 나는 방문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마리아나를 더 겁에 질리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식탁 위에 황금 사과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식탁으로 달려갔더니, 황금 사과에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가장 정의로운 사람에게’
그렇게, 나를 조롱하면서, 에리스가.
전에 농담하듯 말한 적이 있다. ‘베가 베르데’를 설립하면서, 아무리 방해하고 싶어도 에리스의 권능으로는 커피 농사를 망칠 수는 없을 거라고. 그건 맞는 말이다. 좀 더 치졸하게 방해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나와 마리아나의 사이를 망치기에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양감도, 흥분해서 다 떠들어 버린 것도, 웃으면서 이야기한 것도, 전부 에리스의 저주였다.
그것만이 에리스의 저주일까? 부모님이 참혹하게 돌아가신 것도, 내가 한 비참한 실패도, 내가 마침내 부서진 것도, 그래서 살인자가 된 것도, 전부 어머니의 소행인가? 마리아나의 건까지 포함해 이 세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전부 갈등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황금 사과를 집어든 보이지 않는 손이 사과를 박살냈다. 진짜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사과는 손으로 주무른 것처럼 우그러졌다.
에리스는 불화의 여신이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갑자기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다. 마리아나의 안전을 늘 걱정하는 것도, 에리스의 저주를 언제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도, 그리고 두려워하든 말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했다. 나는 며칠 전 받고 쓰레기통에 던진 편지를 쓰레기 사이를 뒤져서 다시 꺼냈다. 신을 죽이자는 미친 놈들의 제안.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머니. 난 이제 불살을 떠들며 쉬운 길을 힘들게 돌아가던 멍청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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