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五夜

전야

커뮤 by 커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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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져온 의문이었다. 운 좋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제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새롭게 필요한 것은 모두 주어졌으며, 가업을 이어갈 만한 재능, 지성, 성적…, 모두가 빼어나다 입을 모아 칭찬했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집안의 유일한 자식이자 자랑거리였으니 부모며 조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왔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삶, 그것은 달리 말하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라기도 전에 주어지는데 구태여 갈망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가지는 존재. 살아가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욕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꿈이나 희망이었으며, 또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그런 것이 없는 이자요이는 그저 의무적으로 생존 활동을 이어가는 기계와도 같았다. 악기는 가르쳐주는 대로 금방 배우니 악기 연주를 계속하자, 너라면 이 대회의 입상도 노려볼 수 있겠다, 다음은 이런 건 어떻겠니. 기대를 담아 말하는 상냥한 조언은 기계에 입력하는 명령어였다. 입력받은 대로 출력하면 그만인, 버튼과 모니터에 불과한 사람.

그런 와중 만난 친구인 비너스는 자신과는 달리 스스로 행동하고 움직일 줄 아는, 그래. 기계인 나와 다른 훌륭한 ‘사람’이었다. 역시 이상한 것은 나고, 세상 사람들은 비너스와 같이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지고 행동할 줄 아는 생물들이다. 그 무렵의 나는 모두가 비너스처럼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고 스스로 빛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너스를 참고해서 사람을 연기했다. 갈망을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야 나도 사람으로 보일있을 테니까. 아, 여기라면 나도 스스로 움직이게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살아갈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콩쿠르에 처음 나갈 때에는 그런 작은 기대를 안았다. 누군가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갈고 닦는 법을 배우고, 나도, 나도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어. 기대가 무색하게 실패해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생각처럼 강하게 빛나지 않았다. 모두가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없어, 재미없다…. 무슨 대회에 나가서 뭘 하든 내가 조금 더 잘 한다는 이유로 지레 겁먹고 도망치길 반복하는 아이들에게 질려버려, 연주하는 의미조차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걸 해야 그나마 내가 사람 같은데, 이걸 할수록 사람들에게서 고립되는 기분이었다. 목적지 없이 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것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한 아이.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하자는 결심을 하고 나간 대회였다. 여전히 아이들은 저를 보자마자 겁을 먹거나 가진 것을 빼앗길까 경계하기 일쑤였지만 그 아이는 달랐다. 저를 보자마자 지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는 아이가 퍽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느새 관심은 식었고, 흥미 없이 연주를 흘려들은 탓에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콩쿠르는 이자요 이의이자요이의 우승이었으므로 또다시 누군가를 무너뜨리겠구나, 하는 별것 아닌 감상만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은 달랐다. 지금까지는 우승해도 그러면 그렇지. 라는 차가운 시선 외에는 받지 못했으나…, 2위의 자리에 서 있던 그 아이는 제게 건강하게 웃어 보였다. 감흥 없이 돌아보다가 네 웃는 얼굴을 마주한 순간 시간이 멈춘 기분이었다. 어째서 웃는 거지? 방금 나에게 지지 않았나?

“다음에는 지지 않을 거야! 꼭 널 넘어설 테니 기다려! 내 목표는 세계 최고니까!”

어쩌면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할 수 있는 선전포고. 하지만 그것은 이자요이가 지금껏 받아본 적 없던 충격이었다. 졌는데도 무너지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아, 눈부시다. 어째서, 어째서 이 아이는 이렇게 눈부신 거지?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빛나게 만드는 거지? 아아, 알았다. 목표를 향한 강한 갈망, 의지, 소망, 확신…나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모든 것이었구나. 모두가 비너스처럼 굴 수 없던 것은, 이런 것이 부족해서였던 거야. 이자요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관심사가 싹트기 시작했다. 좀 더 지켜보고 싶다. 누군가가 반짝이는 순간을 바라보고 싶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한 발돋움을, 두 눈에 담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이자요이가 변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 즈음이었다. 모든 것에 덤덤하던 아이는 조금 더 사람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웃음, 상냥한 행동, 내 격려가 좋은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신뢰가 가는 분위기, 생김새. 모든 것을 바꾸어가며 주변에 사람을 늘려갔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좋은 사례를 마주할 가능성이 올라가니까. 누군가의 반짝임을 먹고 사람으로 의태 하여 지내게 된 것이다.

이자요이가 이 학원에 온 것은 필연과도 같았다. 이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도 경쟁이 강한 학교. 그 말은 스스로 갈망하여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도 같았다. 이자요이에게는 천국과도 다르지 않겠지. 경쟁의 과정에서 생기는 낙오자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낙오자가 생기면 좋지, 바닥을 기어야만 위로 올라올 수 있는 타입의 인간도 있으니까. 전 회장의 체제는 이자요이에게 정말 잘 맞는 물이었다. 제 친구가 그 체제의 피해자가 되어 바닥을 나뒹구는 것도 좋은 케이스일 뿐. 그조차도 이자요이가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자, 그럼… 다음 무대를 시작할 때가 되었네요. 이번에는 얼마나 멋진 무대를 보여줄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물론 체제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체제를 지키려 할 수록 반발하려는 세력의 빛이 거세어 진다는 사실. 보고싶다, 보고싶어.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어. 너희가 더 발버둥 칠 수 있도록 체제를 견고하게 지키기로 했다. 최상급 요리를 내기 위해서는 밑작업이 중요하니, 반발하는 아이들이 더욱 힘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 이번에는 직접 막아설 테니, 부디 나를 무너뜨리려 노력해 주시길. 그러면 나는 당신들의 갈망을 한 조각도 남김없이 먹어 치울게요.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한 끼와 같으니.

오늘의 달은 보름달. 그리고 다음은 열여섯 번째의 밤. 기울어가는 달과 함께 스러지는 것은 어느 쪽인가. 이자요이 아야오미는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것이 그의 행동 원리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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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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