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해단
소망은 바다로, 그리고 첫 발걸음은
해왕류의 입에서 나온 여자는 현재 모비 딕 호에서 지내고 있다. 해왕류에 등장에 흰 수염 해적단은 1차로 놀랐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2차로 당황했고, 그녀를 모비 딕 호에 내려주고 떠나버린 해왕류에 3차로 경악했다. 그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뉴게이트에게 이 상황을 알리는 건 당연했고, 그 사이에 잔뜩 겁을 먹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가방만 세게 끌어안는 것도 당연했다.
그 중에서 나선 사람은 1번대 대장 겸 선의인 마르코였다. 누구냐는 물음에 그녀는 도통 입을 열지 못했다. 바짝 긴장한 탓인지 어쩌다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를 내뱉지 못했다. 참다 못한 선원 중에서 윽박을 지르자,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보고 마르코가 중재했다. 이러다가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었다. 잘게 떠는 여자의 몸이 심히 애처롭게 보였다. 그러던 중에 에드워드 뉴게이트가 그녀를 선장실로 데려오라고 했고, 혹시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1번대부터 5번대 대장이 그 자리를 함께하기로 했다.
갑판에 있을 때와 다르게 그녀는 에드워드 뉴게이트를 보고 떨거나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았다. 그저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다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을 대거라. 아까와 같은 상황을 생각한 마르코가 입을 열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그녀가 제대로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디아……, 루나 E. 나디아, 입니다.”
그녀는, 나디아는 느리지만, 조곤조곤 자신이 이 곳을 오게 된 경유를 말했다. 바다로 나올 생각은 아니었지만, 바다가 불렀다고 한다. 하늘도 땅도 자신이 밖으로 나오길 바랬다고. 그 목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지만, 자신은 언제나 거부했다고. 하지만 사흘 전, 기어코 이 ‘세상’이 자신을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 ‘애’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 게 맞다면서 루나 E. 나디아는 가방 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고요고요 열매, 그건 악마의 열매였다. 물론 발칵 뒤집어지긴 했다. 그것에 그녀가, 나디아가 몸을 움츠린다. 그 반응을 보고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살며시 한 손을 들어서 그들을 제지한다. 너무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그 다음으로 어쩌다가 해왕류 입 안에 있었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나디아는 다시, 억지로 입을 열어서 조곤조곤 말했다. 바다로 나가기 결심했을 때, 해왕류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 ‘애’에게 데려다 준다고 하여 탔고, 두 눈을 감고 잠들었는데 눈을 뜨고 빛이 보이길래 나왔더니 여기였다고.
물론 그 자리에서 같이 듣고 있던 대장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에드워드 뉴게이트가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아들들과 다른 표정으로 나디아를 내려다본다.
“만물의 소리를 듣는 거로군.”
“…….”
그 말에 나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만물의 소리라는 단어에 대장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제외하고 놀란 반응을 내비친다. 그게 뭔데? 이따가 말해줄게요이. 막내의 물음에 마르코가 모자 위에 손을 한번 올려주며 말한다. 애취급 받는 느낌이 들었지만, 포트거스 D. 에이스는 입술만 비죽 내밀고 딱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직 아버지와 저 여자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 열매의 주인이 있는 곳을 아느냐?”
절레절레. 에드워드 뉴게이트의 물음에 나디아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묵직한 말을 내뱉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나디아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이 바다에, 대해적 시대에, 그것도 여자 혼자서. 하지만 만물의 소리를 듣고, 해왕류는 이 여자의 편이라고 해도 무관했다.
“단지….”
“음?”
“여기서 내려주기 전에, 그 해왕류가 때가 되면,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
“해왕류가 머리를 굴렸다는 건가.”
그건 해왕류 주제에 이 에드워드 뉴게이트에게 감히, 라는 말로 해석이 되었다. 나디아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래서 한 말이 아니었고, 해왕류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여기에 두고 간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단지 루나 E. 나디아가 트라팔가 로우를 만나기 전에 거쳐야 하는 무언가, 였다.
“그래, 좋다.”
그 해왕류가 다시 올 때까지 지내도록 해라. 아버지?! 에드워드 뉴게이트의 말에 얌전히 있었던 그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서 말한다. 이번에도 놀란 것인지 나디아가 어깨를 들썩거린다.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그런 나디아에게 괜찮다는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루나 E. 나디아, 너는 오늘부터 이 에드워드 뉴게이트의 손님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에드워드 뉴게이트가 루나 E. 나디아를 손님으로 맞이했으니, 싫든 좋든 그들은 그녀를 존중하게 대해야 했다. 방을 내어주거라, 마르코. 알겠어요이. 가장 의지하는 아들에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마르코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랐다. 그대로 나디아가 마르코를 따라가면 되는 거였으나, 선장실에서 나오기 전에 그녀는 흰 수염에게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답례로 소망을 하나 들어드릴게요.”
“그 여린 몸으로 말이냐? 됐다.”
물론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거절했다. 아무리 저 여인이 만물의 소리를 듣는 다고 하더라도 무엇 하나 얻어낼 수 있는 여인은 아니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는 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말에 루나 E. 나디아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곳에 왔을 때 저는 이미 들었으니, 그 소망을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무슨 소망인지 궁금해지는 구나.”
“내일이면 알 수 있으실 거예요.”
흔하지 않은 백발과 금안을 가져서인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끝에서 나디아는 에드워드 뉴게이트에게 한번 더 미소를 지어주고 고개를 숙인 뒤에 마르코에게 다가간다. 마르코는 아버지인 그를 바라본다. 흰 수염은 고개를 가볍게 한번 끄덕인다. 나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일단 너스들과 가까운 이 방에서 지내는 게 좋을 거요이.”
마르코가 굳게 닫혀있는 어느 한 방 문을 열어주면서 말한다. 나디아는 마르코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 다음에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을 잠시 둘러보는 그 모습은 암만봐도 이 곳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물의 소리를 듣는 다고? 만물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 중에서 골드 D. 로저가 그랬다. 물론 그 또한 마르코는 아버지이면서 선장인 에드워드 뉴게이트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만물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 삶과 운명이 예사롭지 않다고. 확실히 저 백발과 금안을 보면 그렇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손님이니께, 너무 걱정말아요이.”
“…….”
“그리고 되도록이믄 큰 소리 때문에 놀라지 않도록 노력할게요이.”
그 말에 나디아가 마르코를 바라본다. 조금 동그랗게 떠진 눈을 보니, 아마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설령 눈치챈다고 해도 그 부분까지 그들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고 여겼다던가. 마르코는 그녀의 반응에 작게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한다.
“이래 봬도 내가 이 배의 선의이요이. 그리고 눈치도 있고.”
“…….”
“그런데 아버지께 주눅 들지 않은 게 용하요이.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일단 좀 쉬어요이.”
“…감사, 합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소망을 언급했었다. 당시 떠오르는 건 선장이면서 아버지인 그의 건강이었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 아는 건 대장들 뿐이다. 그 다음으로 원피스를 떠올렸지만, 마르코는 그건 아니라고 속으로 단언했다. 설령 악마의 열매 능력자라고 해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으니까. 거기다가 능력을 쓸 거면 진작에 썼을 거다. 눈앞의 여인이 연약해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바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좋든 싫든 당분간 감시가 붙여질 것이다.
마르코의 배려에 나디아가 겨우 입을 열어서 목소리를 들려준다. 아까 에드워드 뉴게이트와 대화할 때랑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낯을 심하게 가리는 모양이었다. 선의여도 그런 부분은 함부로 진단을 내리기가 애매했다. 그래도 고맙다는 예의 바른 말을 들었으니 마르코는 그걸로 족했다. 손수 문까지 닫아주는 것으로 나디아는 그 방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
그제야 나디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곧바로 쓰러지는 것처럼 침대에 몸을 맡긴다.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바다는, 이 세상은 자신이 무언가를 하길 바란 모양이었다. 이 곳의, 그들의 소망을 들었다. 이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소망을 나디아는 들었다. 은혜를 입었다면 더더욱 그 소망을 들어줘야 한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제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이 원하는 소망은 한 개 또는 두 개가 이루어질 것이다. 나디아는 제 시야에 들어오는 가방을 보고 그것을 두 팔로 끌어안는다. 널 만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아, 로우. 부디 네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속으로 나디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는다.
“…뭐라고 했어, 볼프 씨.”
“나디아가 너를 만나려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다! 그 꼴을 보아하니 아직 만나지 못한 모양이구나.”
폴라 탱 호가 스왈로 섬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정비였다. 이 해적선을, 잠수함을 만든 것은 앞에 있는 이 노인이니까. 그런데 트라팔라 로우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누가 바다로 나갔다고? 그녀가 같이 바다에 나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그 이후로 스왈로 섬에서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그것도 자신을 만나러? 트라팔라 로우는 당혹함이 물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달 전이지만, 그때 받은 편지에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고, 마침 폴라 탱 호 점검을 위해서 스왈로 섬으로 온 거였는데.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했던 것인데. 키코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바다는 그 애의 편이니 괜찮을 거다. 그래도 이건 전해야 겠지.”
그런 트라팔가 로우를 보고 볼프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건넨다. 그것을 받아서 확인한 트라팔가 로우가 두 눈을 크게 뜬다. 적혀있는 것은 고요고요 열매를 나디아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것과 혹시 엇갈리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나디아가 가지고 간 전보 벌레의 번호였다. 고요고요 열매라는 단어에 트라팔가 로우가 잘게 몸을 떨기 시작한다.
“어떻게 나디아가,”
“두 눈을 뜨니 고요고요 열매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디아는 ‘아무래도 바다를 거부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아요.’ 라고 하면서 자신이 바다로 나가야 해결 될 문제라고 하더구나.”
“기다렸으면 됐을 텐데…!”
“나도 말렸다. 하지만 하루 빨리 그 악마의 열매을 너에게 주고 싶다고 하더구나. 가져야 하는 이가 있다면, 가장 의미가 있는 너에게 줘야 한다면서.”
“…….”
트라팔가 로우는 제 어금니를 세게 깨문다. 쥐고 있는 종이가 구겨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그대로 볼프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급하게 걸음을 옮긴다. 아직 잠수함 점검이 끝나지 않았다, 이 녀석아! 볼프가 언성을 높여 말했으나, 트라팔가 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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