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너는 나를 주인님이라고만 부르네”
봄이라는 계절의 기운을 한데 모아 빚은듯한 모습의 청년은 뭐가 그리 수줍은지 두 뺨을 붉히며 웃어 보이고는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야 주인님이 나의 주인님이니까? 달리 불리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아니 별로.. 그리 대답을 하고는 끈덕지게 붙어오는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종이를 뚫어버릴 기세로 보고서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다른 남사들도 예전에는 나름 이름으로 불러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다들 주인님과 같은 호칭으로만 부르기 시작해 이름을 불린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게 떠올랐다. 도대체 언제부터 깍듯이 모셔왔다고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된 거였더라 분명..
“주인님 그러다가 다치겠어”
어깨를 감싼 채 당겨오는 힘에 끌려가니 어느새 그의 품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킷코의 시선을 피한다는 게 그만 다른 생각으로 쭉 이어져 버려 책상에 이마를 부딪히기 직전이었나보다. 고개를 들어 올려 힐끔 쳐다보니 그는 안심했다는 듯 헤실거리며 자세를 고쳐잡고는 아예 품속에 가두어버렸다.
“일이 전부 끝나기 전까지는 방해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렇지만 주인님이 다칠 뻔했으니까 이번에는 용서해주세요”
“너는 매번 이런 식이야.. 내가 다른 생각 하고 있는걸 기가 막히게 알아채네”
“그야 매일 주인님만을 바라보고 있는걸”
더 이상의 입씨름도 의미가 없겠다 싶어 품에 안긴 채로 보고서를 훑어보자 만족했는지 더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등 뒤로 기분 좋은 고동 소리만 들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찌뿌둥해진 몸에 기지개를 쭉 피고는 천천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책상 앞에 앉았다. 더는 수정사항도 없으니 이제 이름만 작성해서 담당자에게 보내주면 될 터였다. 볼펜을 손에 들고 평소 하던 대로 이름을 한 글자씩 적어가는데 뒤에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던 그가 가까이 다가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메..이..토리..카..”
“갑자기?”
“아까는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누군가 이름을 불리지 않는다면 사라져 버릴까 싶어서.. 이름으로 불러도 돼?”
“.. 둘이서 있을 때만 부르는거라면.. 괜찮아”
기꺼운 듯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러지 말라 할 수 없어 그만 허락해 버렸다.
어차피 더는 불러줄 이도 많지 않으니 상관없겠다 싶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입에서 불리는 이름이 꽤 나쁘지 않아서, 아니 사실은 듣기 좋아서 아무래도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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