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放浪 by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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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해주가 뛰어내린 뒤의 헬기는 그 상공에서 체감할 수 있는 최저 온도를 넘어 유난히 싸늘했다. 어떤 논쟁이 있었고, 어떤 책임이 있었으며,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절대다수의 당연하고 효율적인 선택이었으니까. 다무는 것은 남은 자들의 마지막 양심이었고 아득한 헬기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던 건 알고 있는 바를 구태여 서로에게 체감시키고 싶지 않았던 거리낌이었다.

 이재겸 또한 그 무리에 있었던 건 윤해주적인 사고에 가까웠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제일 합리적이었던, 한계를 체감하고 현실에 순응했던, 단 하나의 선택지가 있으니 단순하게 그걸 선택한 결과로 이재겸은 홀로 남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동안 윤해주에게 하던 말을 그 선택 하나로 전부 주워 담을 수 있는 원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그 말로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무슨 말을 더 해주고 싶었더라, 0으로 돌아갔으나 곱씹어보기엔 짧은 순간 쌓여버린 부채감에 목 끝까지 파묻힌 듯했다. 찰칵, 하고 라이터의 점화장치를 건드려도 튀는 불꽃은 없었다. 해발고도의 과학적 증명일 수도, 단순히 라이터만의 문제라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재겸의 공허한 눈은 이제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할 여유조차 없었다. 우레 같았던 심장박동은 잦아들고 열기 돌던 혈관은 사무치게 서늘했다. 쌓는 건 숨 차도록 어려운데 무너트리는 건 이렇게 한순간이라고, 유의미한 것을 얻으려 제 추억의 일부를 내몬 결과로 주저앉은 지금의 이재겸에겐 타개점이 필요했다. 윤해주가 곁에 있었다면, 그 생각으로부터 분열되어 나오는 멍청한 오기에 이재겸의 두 눈썹이 움찔거렸다. 터져 나오는 호흡의 하얀 연기가 허공에 흩어짐과 동시에 이재겸은 라이터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이재겸이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의 시간은 고작 5초에 불과했다. 공세환과 제로의 시선을 받아내며 제 허리에 로프를 감는 것까지 합하면 10초 정도의 시간으로 이재겸은 또다시 비효율적인 제 천성을 따라 옆길로새의 곡괭이를 한 손에 들었다.

 "이재겸, 너 설마... 하,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게다가 지금 뛰어내리면 헬기가 어떻게 될지 알고 그러는 거야? 너 진짜..."

 공세환이 이재겸을 보는 시선엔 탓하는 것이 다분했다. 윤해주 마냥 효율적인 인간이었으나 고분고분한 맛이 없어 일찍이 갈라섬을 알았기에 이재겸은 영 귀담아듣는 기색이 없었다. 무감하게 뱉어내는 말은 이미 무엇을 해야 할지 확고해 보였다.

 "무책임하다고? 그래, 방금도 봤잖아. 무책임하게 자기 파트너 저 지경으로 만든 거."

 "재겸아,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책임지러 간다고."

 그래, 너희는 죽이 잘 맞아서 좋겠네. 그 순간에도 서로의 이해자 따윈 될 수 없었던, 제 말풍선에 늘 한 문장을 더 붙이던 제 파트너가 생각이 나서. 이재겸은 그 무의식을 인내하기 힘들었다. 남들 같은 회피력이 제게도 존재했으면 차가운 헬기 좌석에 붙일 엉덩이의 중력도 꽤 강하게 작용했겠지만, 그 수치가 낮아서, 반대쪽 스테이터스에 뜨는 제 성급함은 이미 게이지바를 넘어가고도 남아서, 이재겸은 묵묵하게 헬기 천장에 머리를 박아대며 제 허리에 스스로 고정한 로프를 살필 뿐이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걔 떠밀었던 거, 당연하게 취급했던 거, 전부 감당해. 최소한이라도 걔한테 할 수 있는 배려를 좀 해보라고."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이 황금색에 담긴다. 뺨을 긁는 한기가 틈을 갈라도 이재겸이 뱉어내는 숨은 유독 저를 닮아 뜨거웠다.

 "너희가 정말 사람답다면 말이야."

 그리하여 이재겸은 아득한 겨울 속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하늘을 달리듯, 심연까지 헤엄쳐 내려가듯. 늘 제 손을 맞잡아 감돌았던 그 손의 온기가, 제 코끝을 스치던 초목의 향이 유난히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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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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