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최진영
<오로라>는 2인칭으로 전개는 단편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너’가 제주도에서 장기투숙하게 되어 평소의 ‘너’와 다른 존재인 ‘오로라’를 만들어내 제주도에서 ‘오로라’로 지내고자 하는 내용이다. 2인칭 시점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 엄청 신선하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너’가 된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믿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믿음은 둘째 또는 셋째구나. 어쩄든 첫째는 될 수가 없구나. 믿음은 사랑보다 슬프겠구나…… 생각하며 믿음, 믿음, 믿음 중얼거리다 보니 믿음과 미움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소설을 관통한다고 느꼈던 문구였다. 사실 ‘너’는 사귀던 사람이 사실 유부남이었다는 걸 알아챈 뒤에, 그와의 완전한 이별을 회피한 채로 제주도로 왔다. 기존의 ‘나’와 관계에 권태와 염증을 느끼던 ‘너’는 제주도에서만큼은 ‘나’와 정반대인 ‘오로라’를 꾸며내 ‘오로라’로 살고자 하는데, 그 마음이 참 이해가 갔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평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시작해보고 싶은 충동이 가끔 들지 않는가. 대리만족의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은 보통 결을 같이 하게 되는데, 또 막상 관계 속에선 그 보편적인 개념이 깨지는 일이 참 많다. 대표적으로 ‘너’의 상황이 그렇다. 그래서 ‘너’는 계속 믿음과 사랑, 미움 이 세 가지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는 데 몰두한다. 그 과정에서 괴로워하지만 결국엔 또 다른 형태의 믿음을 타인에게서 확인하게 된다. 참 이 과정들이 담담하다. 또 동시에 극도로 낭만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