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너머
슬램덩크 정대만 드림
또다. 미츠이 히사시는 묘한 기색을 내비치며 본인 갈비뼈 부근을 손가락 끝으로 뭉근하게 누르는 아야세 후와리를 흘긋대며 곁눈질한다. 요즘 들어 자주 저런 모양새를 보였다.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면 그냥 불편한 건지. 궁금증에 몇 번 돌려 돌려 아프냐는 물음을 던진 적도 있었으나 아야세는 영 말이 없다. 대답도 안 해줄 거면 신경이라도 쓰이게 하지 말아야지……. 미츠이의 입술이 불만족스럽게 불퉁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테츠오가 아야세를 내려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둔감한 얼굴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슬며시 올려 그를 쳐다본다. 원체 시선에 민감한 여자가 미츠이가 하는 꼴을 모를 리가 없건만,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이유를 알려줄 생각이 일절 없다는 걸 돌려 표현하는 것이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테츠오가 담배를 하나 꺼내 꼬나물고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입에 뭐 하나 문 사람의 표본 같은 발음으로 툭 내뱉는다. 너무 괴롭히지 말아라. 저거 귀찮은 거 너도 알잖냐. 앞머리 사이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아야세의 눈이 느릿하게 깜박이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다. 이렇다 할 대답 없어도 테츠오는 답을 들은 것처럼 라이터를 철컥여 담배를 빨았다.
벌겋게 달아올라 따갑기까지 한 갈비뼈를 손가락으로 문댄다. 그다지 멀지만은 않은 거리에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미츠이가 느껴진다. 누가 봐도 저에게 뭔갈 물어보고 싶은 티가 났다. 테츠오 역시 아닌 척해도 제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할 말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할 얘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가슴 밑에 미츠이 히사시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왜 말하겠는가. 아야세는 눈동자를 슬쩍 굴려대 가려진 앞머리 사이로 미츠이를 바라본다. 그는 이미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기에 시선이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아야세 후와리는 선천적 네이머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 전부터 가슴 밑의 통증을 느꼈고, 그것이 네임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멋 모르는 어린 시절엔 그저 좋았다. 온갖 매체에서 로맨틱한 말을 속삭였고,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선망 어린 시선으로 입을 모아 말했기에 아주 달콤한 꿀단지와도 같은 줄로만 알았었다. 이 세상에는 독을 가지고 있는 꽃도 많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야세가 가지고 있던 꿀단지가 독투성이였다는 건 그의 몸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을 만났을 때 알아챘다. 저와 같은 처지구나. 사랑하던 것에게 배신당한 사실은 명확했고 그 역시 아야세를 배신할 사람이라는 것도 명확했다. 그래서 그는 저에게 당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을 밝혔을 때 어색해지는 사이가 되는 것도 싫었고…… 더 이상 비참해지기 싫었다. 짝사랑은 발레만으로도 족하다.
그래서였나. 아야세는 미츠이가 저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주기를 바랐으나 한 편으론 그가 자신을 버려두고 돌아갈 것을 알았다. 그때가 언제가 되더라도 상처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빛은 피와 멍투성이에 앞니 세 개 빠진 우스운 꼴로 엉엉 울어대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의 앞에는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곧게 서 있다. 아야세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안도감으로 욱신거리는 갈비뼈를 손바닥으로 꾹 누른다. 이깟 네임이 뭐라고.
숨이 턱 막힌다.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엉엉 우는 미츠이의 옆에서 저 역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손에 들고 있는 못 박힌 배트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누가 보든 말든 상의를 훌훌 벗어 던져 가슴 밑에 선연하게 박혀있는 미츠이 히사시라는 글자를 내보이며 저 역시 힘들다고, 짝사랑은 지겹다고, 농구만 보지 말고 나도 봐달라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떼를 쓰고 싶다. ……하지만 아야세는 그러지 못함을 알았다. 미츠이는 제 짝사랑 상대를 죽이는 길을 선택했으나 결국 돌아갔고, 아야세는 아주 죽여버리다 못해 산산조각을 내어 저 깊은 땅속에 묻어버렸기에 입 밖으로 내지 못함을 알았다. 그 잠깐 사이 더 거뭇해진 눈가를 한 채 배트를 버린다.
깡! 텅, 텅…….
울음소리 사이 섞여 든 이물질에 아야세에게로 시선이 향한다. 멀죽하니 서서 체육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미츠이에게로 절뚝대며 걸음을 옮긴다. 미츠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그치지 못할 눈물을 서럽게 흘려댄다.
울음소리만 울리던 체육관에 엇박자로 하이힐 소리가 겹친다. 결국 미츠이의 곁으로 다가간 아야세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그의 등에 손을 얹어 쓸어내리며 속삭인다.
히사시. 너는 나처럼 되지 말아. 나는 너무 늦어서 돌아갈 길조차 보이지 않지만 넌 아니란 걸 알았어.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같이 있어주길 바래서 말하지 않았어. 미안하다. 사랑하는 것에 보답받는 삶을 살아. 너는 그럴 수 있을 거야.
……언젠가 브라운관 너머에서 만나자, 히사시.
그렇게 아야세 후와리는 모습을 감춘다. 네임에서 느껴지는 후회와 희열, 안도감과 그에 반하는 제 가슴의 울렁거림을 안고서.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엇박자로 울린다. 미츠이는 무언가를 알아챈 것처럼 울음도 그친 채 멍하게 아야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미츠이 히사시가 마지막으로 본 아야세 후와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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