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X헌터 드림 작업물 - [KT] 바보와 멍청이
종이비행기
너를 좋아하는 나는 멍청이일 수밖에 없다.
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한심하다고 하면 할 수 있을까. 토코를 좋아하는 내가, 한심한가? 아니. 너를 좋아해서 한심한 게 아니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은 내가 한심한 것이다. 내가 누구인데. 키르아라는 이름 뒤에 붙은 성씨가 짊어지게 하는, 이 무게감이 무엇인데. 사랑이란 한심한 것이다. 함부로 목숨을 걸게 하고, 그 목숨을 쉽사리 포기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놓지 못해. 바라보게 만들어. 그래, 나는. 키르아 조르딕은, 토코 켄드릭을……
음영에 깃드는 볕뉘를 따라 걸어 나오자 보인 것은 너의 뒷모습이다. 밝다 못해 눈부시기 그지없는 태양을 본따 만든 너. 토코 켄드릭. 부르지 않는다. 부를 수 없다.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빛 한 번 잃지 않은 너를, 차마 부를 수 없다. 그 빛을 잃지 않기를, 언제나 밝게 웃으며 남아주기를. 키르아 조르딕은 생각했다. 그러니 부르지 않는다. 부르지 못한다. 언제나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으면서도 친구로조차 남으면 안 될 것만 같다는, 제 손이 닿았다간 사그라들어 버릴 것만 같은 너. 그런 네가, 뒤를 돌아본다. 시선이 마주한다. 둘 중 그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웃는 것은 너다. 나는 너를 보며 웃지 못한다. 소년은 언제나의 삐딱한 자세로 서서, 소녀를 바라본다. 어서 나오라며 손짓하는 소녀를, 바라본다. 그러면 저는 바보, 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뗀다. 그것이 일상이다. 햇빛을 받고 살아갈 수는 없는 제가, 볕뉘를 포기하지 못해 손등 하나만이라도 가져다 대어 상처 입는.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관계. 그것이 바로 우리다. 거기까지 미치면 드는 생각.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아무리 상처 입더라도. 햇빛에 닿은 적 없어 볕뉘에마저 데이더라도. 포기할 생각 없다. 올려다볼 거야. 놓지 않을 거라고. 포기하지 않아. 환한 너의 웃음, 암영이 드리워져도 맑게 웃는 미소. 제게로 향하는 손, 그것을 붙잡는 나. 어느 하나도 놓칠 생각 없다. 그러니 소년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 따위로 허송세월을 보낼 시간에, 너를 더 좋아할 거야. 시도 때도 없이 넘어져서 울상이 된 저 얼굴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손을 내밀 거라고. 바보라고 불러도 모자랄 시간이다.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어 부서진다고 하더라도. 너를 좋아할래. 내가, 너를. 키르아 조르딕이, 토코 켄드릭을.
유독 청명한 하늘이 태양을 감싸고 있는 날이었다. 소년이 소녀와 만나자며 부른, 평범하디 평범한. 그런 날이었다.
키르, 보고 싶었어. 그리 말하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바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허나 소년은 결코 싫은 기색을 내세우지 않는다. 제 속에서만 울리는 문장을 집어삼킨다. 토코. 응? 손 줘 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미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다시금 생각한다. 이래서 암살자는 어떻게 하는 거야. 내민 손을 잡는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잡은 손을 이끈다. 당긴다. 꾸역꾸역 숨기고, 틀어막고. 드러나지 않게 감추었던 이 마음을, 네 손을 잡아 전한다. 네가 나를 싫어할 리 없다는 마음 하나로, 저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동그랗게 뜨인 봄빛 눈동자를 본다. 키르아 조르딕은, 그날 처음으로. 떨어지지 않는 입매를 억지로 잡아 열었다. 지금이 아니면 전할 수 없을 거라는, 암살자로 살아온 저의 강한 직감. 입을 연다.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키르아 조르딕은 말한다.
바보야.
나, 너 좋아해.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우리는 평범한 연애는 어려울 거야. 그래도 괜찮아? 대답을 듣기도 전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키르아 조르딕, 그 소년은 당당했다. 토코 켄드릭이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너도, 나를. 좋아하잖아. 맞지? 바보. 넌 바보야. 사실, 바보인 건 나일지도 몰라. 아니, 멍청이. 너를 좋아하면서 솔직하지 못했던 내가, 진짜 멍청이일 거야. 넌 바보고, 난 멍청이네. 소년이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소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토코 켄드릭,
그 소녀는 여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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