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아르카디오

동족

3/11 단테 아르카디오

아르카디아 by 망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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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단테는 태연히 씻고 몸을 말리고 잠자리에 눕는다. 동작하지 않는 지팡이는 서랍장 위에 올려둔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다. 룸메이트가 간간히 뒤척이며 나는 시트의 부스럭거림, 그리고 그로 인해 이불 사락이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열이 크게 올랐던 적이 있다. 그 당시의 단테는 그저 듀크스 병에 걸린 어린 유랑민 아이였으므로 가족들은 단테가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떠돌이의 삶이다. 아이가 죽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정착민들에게도 그것이 당연한 시대에 병든 방랑자는 마을 가까이로 가기만 해도 손가락질을 당한다. 20세기 초, 듀크스 병 환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유랑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마을 꼬마아이들은 물론이고 다 큰 젊은이마저 돌을 던지는 일이 심심찮았으므로 마을 의사를 보러 갈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단테의 어머니 사비나는 자식에게 버드나무 껍질 달인 물을 먹였고 뜨거운 얼굴과 손바닥에 한 번 구웠다가 물을 섞어 차갑게 식힌 진흙을 바른다. 열로 정신이 혼곤했을 때 어머니는 단테를 업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이, 단테는 바람을 느낀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단테의 온몸을 감싼다. 다시 정신을 차리면 뒤통수에 촉촉하면서 가느다란 것들, 갓 베어내어 코를 찡긋이게 하는 풀 냄새가 느껴진다. 푹신한 잔디밭이다. 개미인지 모를 작은 벌레가 손을 기어올라 간지러워도 털어낼 힘이 없다. 그런 단테 위로 그림자가 진다. 베일이 드리운다. 어머니 사비나다. 사비나는 키 작은 꽃사과나무의 여린 가지를 잡아당기며 단테의 머리 위에서 흔든다.

유랑민들에겐 미신이 있다. 열이 나거나 아픈 아이를 어린 나무 곁에 뉘이고 가장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이파리를 꺾거나 잡아당겨 아이의 머리 위에서 흔든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열이 나무로 옮겨가 아이가 무사할 수 있다. 그 의식은 열병뿐만 아니라 괴로운 일, 아픈 일들을 거두어가준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다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다.

단테는 문득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는 서랍장의 사과나무 지팡이를 집어든다. 그것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 툭 두드리며 창가로 향한다.

후플푸프 기숙사는 지하였으므로 창이 높은 곳에 있다. 키가 큰 단테는 그것을 금세 열어젖힌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호그스미드에서 맞았던 것과 같은 바람이다. 앙상한 뼈다귀 같은 나무들을 배경으로 칼날 같은 추위가 살을 에인다. 헌데 호그스미드에서 가장 날카로웠던 것은 추위나 차가운 바람이 아니다.

호그스미드에서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는 눈들, 유별난 듯이 응시하는 그 눈들, 낙인찍힌 어린 마법사들을 훑는 눈들, 눈들 색이 다른 그 눈들…….

단테의 아버지도 어울려 다니는 유랑민 종족과 눈색이 다르다.

단테의 고모와도, 단테의 사촌 형과도, 사촌 누나와도, 누나의 아이-그러니까 단테의 조카와도 다르다. 그들은 어두운 갈색 또는 검은 눈과 말갈기 같은 머리칼을 지닌다. 팔촌도, 당숙도 모두 서로를 닮는다. 디에고 아르카디오만이 다르다. 어렸을 적에는 왜 아버지가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 있다. 그래도 생김새가 다른 아버지는 열 올라 앓는 자식을 위해 고모부와 함께 토끼를 잡아온다.

가제(유랑민들이 외국인을 일컫는 말)를 무리로 받아들인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본래 다른 색은 잘 어우러지지 않기 마련이다. 마법사들이 그런 것처럼.

실상 디에고와 사비나의 첫만남은 그리 대단치 않다. 언젠가의 과거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유는 후술한다. 디에고는 사비나의 카드 점 손님이자 관객이다. 더블린에서 머물던 동안 사비나는 이름보다는 ‘그 집시 여인’으로 더 자주 불린다. 다분히도 착오적인 호칭이었으나 유랑민으로서의 사비나는 항구의 어떤 골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어야 예비 손님 눈에 잘 띄는지, 어떤 미소가 매력적인지, 그들이 어떤 단어를 반기고 호감을 갖는지를 잘 알고 있다. 병들지 않고 건강하며 젊음 넘치는 청년은 그 자신이 대상이 될 때에 사람들의 시선을 잘 끈다.

사비나는 손님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 몇 자락을 내어놓는다.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만돌린을 타고, 지난번에는 어디를 거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가 더 깊어지면 자신들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카드 점을 보며 듣기 좋은 말을 속삭이면, 그들은 만족하고 돌아간다. 자신이 만난 신비로운 방랑자를 이야깃거리로 삼아서.

그런데 디에고는 자신이 두 달 동안 거대한 여객선의 짐칸에 실려 왔다고 한다.

실은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거대한 여객선을 가진 부유한 영국인들은 이틀이든 이 주든 두 달이든 그들이 부릴 사람에게 일등석을 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정처없이 배를 타고 온 디에고는 낯선 땅에 내려 쿨리들 사이에 끼어들어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낸 햇수가 팔 년이다. 이야기를 들은 사비나는 그에게서 카드점 값을 받고, 다음 날도 디에고는 사비나의 만돌린 연주를 들으러 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다.

얼마 뒤 배에 타지 않고 도망간 어느 멕시칸 쿨리를 찾으러 고용주가 산 사람들이 온다. 여관 주인이 말한다, 그 외국인은 어느 집시 여자를 따라 영영 떠났다고.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느 시간에서든 그들은 떠돈다. 그럴 운명이다. 디에고 아르카디오는 사비나라는 흐르는 물에 떨어진 비 한 방울일 뿐이다. 물은 희석되어 섞여든다. 그렇게 단테가 생겨난다.

섞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핏줄은 중요하다. 혈맥에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혈족이 같은 생각을 공유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동족이란 그런 것이다. 생김새는 다르나 디에고 아르카디오는 유랑민들의 동족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단테에게 마법사들은 동족이 아니다. 마법사들은 섞이지 못했다. 섞이고자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단테는 잠시 머물다 갈 바람이고 고삐 매인 야생 숫말이며 바르도(유랑민들이 집으로 삼는 사륜 마차)를 마을 어귀에 세워 둔 방랑자다. 방랑자는 어머니 사비나가 그랬듯 그 마을에 서슴없이 흙발을 들인다. 만돌린이나 기타를 타며 노래하며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그는 마법사들을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자신과, 자신과 생각이 같은 동족을 위해 노래한다. 이것은 동족을 위한 의식이다. 다른 사람들의 웃음과 기쁨을 이끌어내는 것은 동족을 축복하기 위함이다. 단테 자신과 생각이 같은, 이 학교에 이방인으로서 머무는 어린 마법사들을 위함이다. 다시 언젠가는,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단테의 노랫말에는 그런 과거가 실려 있다. 그는 바르도에 과거를 싣고 왔으므로.

그 이상의 기대는 없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다. 지금 단테는 마법사들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언젠가 떠나갈 곳이다. ‘그 이상의 기대는 없었다.’ 모든 것이 현재형이나 이것만큼은 과거형이다. 단테는 눈밭에 남겨진 핏자국을 생각한다. 두려웠을 텐데도 여러 학생을 겨누며 마법을 쓴, 호통을 치던 어린 마법사 아이를 생각한다. 아이는 그 초라한 아지트를 지키고자 여러 명의 사람들을 추방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아지트를 지켜낸다. 당장은 그렇다. 의문이 남는다.

‘왜 도망가지 않고?’

윽박질러지거나 끌려갈 수 있는데도 아이는 맞서 싸웠다. 이상한 일이다. 단테는 저항하기보다는 떠나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의 후손이다. 의문이 남았다.

족쇄를 끊고 떠나면 된다. 단테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피 흘리며 잔불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상한 일이다. 의문이 남았다.

영영 마법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이제까지 그래왔던 대로 떠나면 된다. 영원한 추방이자 귀환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그렇게 한다면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붕 위를 미끄러지는 빗방울이다. 단단한 벽돌에 스며들어도 물이 벽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처마 아래에 고여 땅속 깊은 곳을 흐르다 바다로 돌아가 다시 비가 될 것처럼,

이것은 일어났던 일이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언젠가 일어날 일이니까.


유랑민들의 생활상 부분에서는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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