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아르카디오

카이나

단테>줄리엣 클락

여전히 창가로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겨울을 앞둔 가을은 꽤 춥다. 파충류들의 움직임이 굼떠지며 동면할 은신처를 찾는 시기다. 너덜해진 종이 속 글씨를 눈으로 훑는 내내 단테는 말이 없다. 보통의 경우 단테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은 조금 다르다. 이럴 때가 꽤 곤란하다. 보통 사람들은 떠나고 싶다고 떠나버릴 수가 없다. 혈연이 그렇다. 내내 그 자리에 있어 왔기에 의지가 되기도 하지만 흐르는 피는 칼로도 단번에 끊어낼 수 없다. 동족이란 그런 것이다.

줄리엣의 동족이 누구일지를 생각한다.

마법을 고쳐야 할 질병으로 여기는 머글, 반쪽짜리에게 흐르는 머글 피를 배척하는 마법사.

머글, 마법사, 또는 듀크스 병 환자. 너는 어느 쪽이야? 머글, 마법사, 또는 듀크스 병 환자.

마법은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사람들이다. 언제나 사람이다. 마법은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마치 엉망진창 뒤엉킨 실타래나 봄철 보이는 수천 마리 뱀들의 무리 같기도 하다. 아니면 페르시아 전설 속 독사가 가득 든 항아리일까? 어느 쪽이든 단테는 그리 손을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 없다. 여태까지가 그랬다. 그리고 줄리엣은 그 항아리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순식간에 결론부터 난다.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줄리엣 클락과 그의 아버지는 다르다. 색이 다르다.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다. 정착민들과 유랑민이 그렇고 반쪽짜리 마법사들과 진짜 마법사들이 그렇듯이, 이건 일종의 지긋지긋함이라는 감정에 가깝다. 긴 감상은 이제 차치하고.

단테는 줄리엣의 눈을 본다. 시린 금색이다. 유리처럼 주변을 비춘다.

오래 전 어느 철학자가 세 편에 걸쳐 사후세계를 다루었다. 혈족을 배신한 자들은 카이나라고 불리는 코퀴토스의 첫 번째 지옥에 갇힌다. 크레타 섬의 거인은 세상에 죄 있음을 슬퍼하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것이 흐르고 흘러내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이르러서는 꽁꽁 얼어붙어 빙하의 호수가 된다. 망령들은 선 채로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에 갇힌다. 그들은 차가운 얼음 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 이빨을 덜덜 떤다. 죄가 추위에 모두 씻겨 내려갈 때까지. 줄리엣은 모든 것을 낱낱이 편지에 써 보낼 수도 있었다. 줄리엣은 부모를 거스르고 거짓 편지를 보냈다. 이는 얼어붙은 호수를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다. 대가로 그는 훗날 카이나의 빙하에 갇힐 것이다.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고 싶지는 않았다. 과거형이다.

‘색이 같아.’ 답을 내리는 순간부터 단테가 할 행동은 명쾌하다. 줄리엣의 손을 잡는다.

“넌 방학에 아버지와 겪게 될 일보다도 앞으로 학교를 위해 할 수 없는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운 것 같아. 네 말을 들어보면 그래.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야.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우리는 동족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너를 믿어, 줄리엣. 정말 그렇게 된대도 그때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면, 견뎌. 전부 지나갈 때까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새 스진으로 이래저래 상황이 바뀌었네요 ㅠㅠ 잇는 것도 끊는 것도 편히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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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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