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아래로 지는 태양

효월의 종언

푸른잔향 by R2diris
11
0
0

https://youtu.be/-wxsFNHRu_I?si=DDMB6oWmmhRQrUr6

이것은 아주 오래전 그의 영혼이 여러 갈래로 나뉘기 전 온전한 단 하나의 빛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감히 숫자로 셀 수도 없는 아득히 먼 과거의 그를 기억하는 것은 이제 모두 별의 바다에서 부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드넓고 광활한 우주의 시간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태양이 지지 않는 것처럼.

" 어느 한 존재만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

" 일단 그걸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토론을 신청하면 더 편할 것이라는 건 알겠는데. "

" 너무해. 난 딱딱한 형식의 토론보다는 대화가 필요한 거라고. "

" 그러니까 시간이 넘치나 보군. 아쉽게도 나는 아니거든. 이 서류들이 안 보이나? 정 원하면 휘틀로다이우스에게 청해. "

질린다는 듯한 목소리와 단호하게 거절하는 남성의 목소리와 익숙하다는 듯 가면 아래 미소를 머금는 여성이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남자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을 뒷받침하듯 테이블 위 그의 주변에는 서류가 더미로 쌓이다 못해 곧 있으면 쓰러질 것 같이 보였다.

" 그렇게 앉아서 서류만 처리하면 알던 것도 모르게 될걸? "

" 지식이 머리 밖으로 걸어서 나가기라도 하나, 그건 처음 듣는 이론이군. "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흘긋 쳐다보고는 그는 이내 서류를 작성하던 것을 멈추고 질린다는 얼굴로 제 앞의 이를 바라보았다.

" 그래 원하는 답이 뭐야? 어차피 내가 제대로 대화든 토론을 해줄 때까지 내 옆에서 질리도록 말을 걸 거 아니야. "

" 푸핫, 맞아 정답이야. 세상에 질문은 많고 나는 그 질문들의 답을 찾아 나서는 게 즐겁거든. 그러니 도움 좀 줘. "

" 질문이 그러니까…, 어느 한 존재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 뭐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가장 간단히 들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부질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언젠가는 에테르로 순환되고 또 다른 모습이 될 텐데 그렇다면 그 변화된 모습 또한 네가 바라던 모습인가? "

" 오, 내가 딱 질문하려던 게 그거였던 것 같네. 이 세계에서 순환하는 에테르는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을 우리는 같은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생각해보자면 겉모습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건 같은 사람이 아니지. "

" 의외로 맞는 답 같지만 에테르 색이 같은 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모두 다르지만,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그 개체가 소유한 에테르 색이지. 우리를 구분하는 것도 에테르의 색인데 말이야. "

생명의 근원, 어느 한 생명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그것은 모두의 안식처인 별의 바다로 흘러가 다시금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이들에게는 생명이 끊어졌다고 하기보다는 대체로 자신의 선택으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반수이다, 창조물이 아닌 이상. 저 남자 그러니까 에메트셀크의 자리인 하데스는 에테르를 세밀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더랬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으로 일구더라도 넘을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그는 에테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러니 항상 별의 바다로 돌아가는 에테르를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 앞에 있는 선명하다 못해 빛나는 푸른색의 에테르는 찬란하게 빛났다. 그 앞의 여자, 아젬이라는 자리인….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은 새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아젬을 비유하자면 그 자유로운 새와 같았다. 애초에 그 좌를 맡은 자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위원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 다른 좌들에 비해 자유롭다면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었다.

" 에테르가 우리를 의의 하는 것은 아니잖아. 결국, 우리를 나타내는 하나일 뿐 외형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저 특징에 불가한 거지. 특징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정의하지는 않잖아? 그 사람을 정의하려면…, 그래 그때의 기억과 감정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지. 마치 화산의 분출을 막고 먹었던 그때의 포도 맛이라던가! 그 기억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 나의 경험과 의의 하지. "

빠직하는 소리가 남자의 머리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자는 한숨을 픽 내뱉었다.

" 그때 이야기는 말도 말지,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 아무튼, 특징이 그 사람을 의의 하지는 않아도 나타내기는 하지. 결국, 큰 덩어리는 변하지 않지 않아? "

" 에메트셀크님 계십니까? "

길게 이어지지 못한 토론을 깬 것은 문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분명 자료라던가 전달하러 온 이일 것이고 다시 남자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 잡담은 여기서 종료다. 그 질문이 궁금하다면 이제 나 괴롭히지 말고 토론 주제로 올리고 다른 이들과 결론을 내리도록 해. "

여자는 퍽 아쉬운 표정으로 문을 나서며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 이를 기점으로 또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을 마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여자가 자신의 탐구열을 해결하고 저가 맡은 직에서 하는 일이었으니. 남자는 언제나 그가 떠나는 에테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아마 여자 본인은 모르리라.

이 토론의 끝은 결국 보지 못하였더라. 결국, 이들이 맞이해야 했던 것은 붉은 하늘과 떨어지는 유성, 마물로 변모하는 이들 찢어지는 비명 그리고 종말. 그것은 14개의 자리가 13개의 자리로 줄어들게 된 비운의 이야기.


" 당신은 나를 그 사람과 언제나 비춰보고 있었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마침내 멈췄던 시간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을 때 니베이아는 제 앞에 있는 과거이자 덕분에 찬란할 수 있었던 미래를 만들어준 동료였고 적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의 작별 인사는 당신이 나에게 맡겼던 것. 종말의 시작을 보았음에도 우리는 막을 수 없어 결국 이 끝에 서서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지나온 것은 분노, 슬픔, 적대감, 그리움 그리고 점철된 희망.

잃어버린 시간 속 떠오른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기억.

" 끝내지 못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보다는 이야기에 더 가깝지만. "

니베이아가 물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 다른 대답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모든 것을 잡아먹던 극야의 우주 속에서 그 침묵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고요하지만 요란스러웠다.

" 너는… 다르지. 그날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너에게서 답이 날 줄은 몰랐는데. "

황금빛의 눈이 그 누구보다 찬란하던 에테르의 색을 가지던 이를 관철하였다. 아젬이 지니고 있던 그때의 모습 중 외형만은 그것을 그대로 떼어 영웅을 만든 것 마냥, 영웅의 얼굴은 그를 닮았다. 애초에 비유하자면 영웅은 조각 케이크이고 아젬이 홀 케이크이니 그리 보일 수밖에.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머리색과 성격 정도일 것이다. 머리색은 되려 영웅의 …와 닮았으니. 게다가 가볍고, 단순하고, 무대포라는 단어는 지금의 영웅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은 하나이었으면서 전혀 다른 존재이며 그러나 떼어낼 수 없는 존재.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며 자신이 존속된 세계를 사랑하며 주변인들을 비추는 존재. 언제나.

" 에테르와 외관이 닮았다고 해서 같을 수 없지. 그래…, 너희는 언제나 어떤 물음에서도 답을 찾아내는군. 내가 사랑했던 과거는 이 미래가 아니지만 너는 그자가 내팽개쳤다 여긴 것을 뒤바꿔놓았다. 그러니 나아가라 네 뜻이 옳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과거의 잔향은 이곳이 진정한 퇴장 길이다. "

니베이아는 찬란했던 과거에 살던 그 남자를 떠올린다. 하데스, 그의 이름. 그 단어 하나만으로 빛나는 것은 수 억만 개의 별. 굽었던 등은 없고 올곧으며 자신이 살았던 곳을 사랑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는 듯 발 벗고 나서던 그. 처음 귀를 먹먹하게 마주쳤던 금색의 눈은 마지막의 기억보다는 빛나 황금이 빛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가장 마지막이 되어서야 우리는 항상 서로의 진심을 알고, 곁을 내어줄 수 있었을 때가 당신이 떠나가는 때였다.

최초의 절망, 최후의 절망. 우주의 저 멀리에서 종극을 노래하던 이가 내리려던 결정을 우리는 언제나 맞서 싸워왔고 억 겹의 세월을 넘어서 결국에는 언제나 함께 곁을 나누던 존재, 그리 생각하고 아마도 언제나 변함없을…. 함께 걸어갈 미래는 없기에 이 기억은 과거에 묻혀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라도 만날 또 다른 그때의 우리를 기다리며 변하지 않으리라고.

" 여행 언젠가 같이 다닌다면 즐겁겠죠? "

" 너같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이와는 이제 지쳤다. 됐어.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남자의 얼굴은 퍽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이 들었다.

" 다음은 또 있겠죠, 우리는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

찬란히 별 조각으로 흩어지는 그의 모습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미소. 당신이 짓는 미소는 항상 나의 마음속에 남아 당신과의 약속을 내팽개칠 수 없게 만든다. 이 별의 과거에서 미래까지 당신과 나는 그리 이어져 간절히 바란다면 우리는 또.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