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유언 1

리키 콜드런, 다이애건 앨리

메리 샌더스는 짙어진 찻잔 속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등이 굽은 그 노인은 떫어졌을 것이 분명한 차에 설탕을 한 스푼 털어 넣고는 천천히 젓기 시작했다. 티스푼이 잔 안쪽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움직였다. 건너편에 앉은 이는 무표정 속에 약간의 불안함을 담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샌더스는 목을 가다듬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희 할아버지 일은 유감이구나."

그녀의 일행은 피로한 기색이었다. 무릎 위로 두 손을 포갠 모습은 언뜻 무심해 보이기도 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의례적인 감사를 표했다.

"내게 더 해 줄 말이 있을 텐데."
"이미 말씀드렸어요."
"헤이즐."
"샌더스 부인께서 직접 유언장을 개봉하셨고요."

그렇지. 잠시 눈썹을 들어 올린 노인은 옆자리에 내려두었던 예언자 일보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신문을 일행에게 밀어준 뒤 그녀는 찻잔을 들었다. 세 번째 페이지, 오른쪽 아래. 헤이즐은 신문을 집어 들고 페이지를 넘겨 지면을 살펴보았다. '사라진 유언,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제목 아래 짧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올리브색 눈동자가 문장을 쫓아 굴러갔다.

"조부가 손녀를 두고 간병인에게 재산을 남기려고 했었다니."
"..."
"설득력은 별로 없지."

기자도 제보자의 이야기를 전부 믿지는 않은 모양이야. 샌더스의 어조가 한층 더 부드럽고 느긋해졌다. 헤이즐은 한숨과 함께 예언자 일보를 내려놓았다. 지겨움이 묻어나는 얼굴이 시선을 비스듬히 돌렸다. 부인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차를 마저 삼키자 씁쓸하게 아린 감각과 함께 미적지근한 단맛이 맴돌았다.

"할아버지가 그러실 분이었나요? 오래 아셨잖아요."

"마커스는... 그가 죽으면 네가 혼자 남게 되는 걸 두려워했어. 병든 몸은 판단력을 흐리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 마커스 윈슬로우가 간병인에게 재산을 남기는 유언을 작성하는 모습을 직접 봤잖아. 그가 죽은 뒤에도 네 가족이 되어주는 조건으로. 노인은 근처 벽에 붙어있는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는 숨을 멈췄다. 샌더스는 찻잔을 내려놓고 미간을 짚었다. 제법 침착하게 구는가 싶더니, 그래봤자 열여섯 남짓한 어린애였어.

"유언장에는 특수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한 번 봉인된 봉투는 적법한 절차하에 담당 오러가 열어야 해. 나는 집행인으로서 너와 간병인 앞에서 유언을 개봉했고."
"메리, 그건...."
"그리고 안에 들어있는 양피지가 백지라는 걸 확인했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니? 샌더스는 언성을 높이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른 뒤, 상대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헤이즐은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테이블 밑으로 제 손끝을 힘주어 감싸쥐었다.

"...고인이 유언 없이 돌아가셨으니 혈연인 제가 상속인이 된다고 말씀하신 건 당신이었어요."
"네가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르니까."

짓씹듯 대답하는 노인의 눈이 번뜩였다. 헤이즐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어지러웠다. 아이는 그제야 메리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분명히 사법부 오러로서의 메리 샌더스는 타격을 받았을 텐데. 형식적으로나마 마법부의 조사를 받아야 했을 거고. 그 모든 것을 제치고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가...

"멀린에 맹세코, 다른 마법사에게 봉인을 풀어달라고 하거나 유언 조작을 의뢰한 적 없어요."
"..."
"오랫동안 믿어왔던 간병인도 믿을 수 없게 되었는데, 제가 타인에게 도움을 구했을 리가 없잖아요."

동요하는 모습을 숨길 수 없게 된 이상, 헤이즐은 자신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답을 고르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한데 섞여 들었다. 아이는 형편 없이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할아버지가 마음을 바꾸셨거나... 당신이 손을 쓴 거라고..."
"내가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렸던 게 아니라면, 그건 아닐 거야."
"모르겠어요. 저는... 그 집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그래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건데..."

노인은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손도 대지 못한 헤이즐의 커피잔을 눈짓하며 의자 깊이 기대앉은 샌더스는 손가락으로 이마와 관자놀이 부근을 힘주어 눌렀다.

"메리, 전 항상 당신에게 사실을 말했어요."

기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헤이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죄악감을 덜기 위한 일종의 자기 세뇌였다. 손가락 사이로 아이를 가만히 살펴보던 샌더스는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등받이에 기댔던 상체를 도로 세웠다. 그녀가 사실을 말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거짓말을 했더라면 진작 들켰을 테니까. 하지만 진실을 말했을까?

"더 지체하면 열차 시간에 늦겠는데."
"그러네요. 이만 가 봐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기대어 놓은 짐가방을 챙기는 헤이즐을 가만히 지켜보던 샌더스는 낮게 혀를 찼다. 아이의 눈가가 다소 부어있었다.

"네가 아직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줘야겠구나."

그대로 가게를 나서려던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에 뵈어요."
"학기 잘 보내고, 크리스마스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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