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야마 마스미(아인)
/ 사토 패거리
“…그런데 사토 씨, 가끔 오른발을 저네요”
아, 이거. 잘못 걸렸다. 오쿠야마는 제 말에 멈춰 선 사토를 보며 생각했다.
*
아인 오쿠야마의 시작.
도쿄 외곽에 허름한 빌라. 전부 불타고 까맣게 변해버린 방 안. 불꽃의 시작은 청소 안 한 콘센트와 노후한 전선. 온전한 것은 제 몸뚱아리 하나.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지식과 가깝던 오쿠야마는 금방 자신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 아인. 정부에게 잡힐까 하는 두려움보다 먼저 드는 생각.
설마 지금까지 손해 보고 살았나?
유독가스로 질식하면서 덩달아 불탔던 살갗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한 걸음 내디딘다. 아, 그런 건 아니군. 여전히 절뚝이는 오른쪽 다리.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건 리셋이 안 된다 이건가. 편리하다 말았네. 오쿠야마는 까맣게 불탄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아인이어도 의료발급증과는 멀어질 수 없나 보다. 하기야 다리가 낫는다고 이제 와서 뭘 할 것도 아니고.
아쉽다는 마음은 금방 뒤집힌다.
차라리 낫다. 장애가 있다면 아인이란 의심은 안 받을 테니. 가죽이 거의 다 뜯어진 의자 등받이에 기댐과 동시에 감기는 눈. 변화와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오쿠야마. 어차피 주변에 가까운 사람도 없어서 문제 될 것도 없다. 오늘 죽었다면 분명 월세가 밀린 집주인이 발견했겠지. 생각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다시 살아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몸은 한 번도 죽은 적 없다는 듯이 군다. 오쿠야마가 금방 눈을 뜬다.
불사라는 거, 제대로 쓰면 장난 아니겠는걸.
물론 나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오쿠야마의 어렴풋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하이잭 테러. 아인 무리에서 사토가 신이 된 날. 제약 회사 테러 후 바로 이어진 SAT 대원 몰살로 아인들은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게 된다. 반대하는 놈들은 그전에 이미 드럼통에 갇히긴 했다만. 영화에서만 보던 심플 앤 클래식. 그런데 죽지 않는 아인에게는 몇십 배는 더 치명적이다.
사토는 그걸 언제부터 알았을까?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아인은 생존에 대한 절박함과 멀어진다. 죽질 않으니 삶에서 나태해지고 게을러진다. 남는 건 괜히 죽어서 들키지 말아야지 하는 경계심. 그마저도 자주 깜빡하고. 죽지 않아도 여전한 고통의 감각만이 조심성을 담당한다. 그런데 사토는 알고 있다. 죽어도 죽지 않는 그는 죽어도 죽지 않는 아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똑똑한 사람이거나.
살인에 익숙하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오쿠야마는 그날부터 사토의 말이라면 거역하지 않았다.
“오쿠야마군, 잠시 시간 되나?”
“들어오세요.”
도쿄 외곽에 허름한 러브모텔. 형광등 서너 개는 기본으로 나간 폐건물에서 유일하게 불이 꺼지지 않는 방. 무리의 유일한 기술직, 오쿠야마의 작업실. 직전까지 모니터를 보고 있던 오쿠야마가 겉치레로나마 손님을 맞이한다. 짐작한 대로 찾아온 손님은 사토. 헌팅캡과 더불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하얀 셔츠와 서스펜더는 목 아래로 붉게 물들다 못해 축축하게 젖어있다.
“그거 진짜 하는 거예요?”
“재밌을 것 같지?”
웃는 사토. 주름이 파인 눈은 인자해 보이기만 하다. 형태 자체는 인간과 똑같지만 머리라고 할 게 딱히 없는 타카하시의 IBM을 보고 사토가 낸 계획. 저 위에 내 머리를 얹으면 어떨까? 그걸 위해 잘린 목은 현재 아이스박스에서 보관 중. 오쿠야마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
나름 갖는 위안거리 하나. 웃는 사토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것. 무리에서 사토와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역시 오쿠야마 하나. 겉보기에 사토와 가장 친밀해 보이는 인물은 타나카지만 좀 더 결이 맞는 건 오쿠야마다. 둘 사이에는 둠과 배틀필드, 울티마 온라인과 리프트 온라인의 거리가 있지만, 그 정도 세대 차이쯤이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쉽다. 두 사람 모두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나. 아니 어쩌면 다른 아인들은 모르는 걸 공유하고 있기에 특히나 더더욱…….
“설마 눈치챌 줄은 몰랐어.”
오른쪽 무릎을 짚는 사토의 손. 흘깃 본 오쿠야마는 눈을 내리깐다. 글과 영상으로 밀리터리를 배운 오쿠야마가 사토를 만나고 그에 대해 가진 두 번째 확신. 저 남자는 군인이다. 그것도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수많은 전장을 거쳐서 살아남은. 뛰어난 군인. 어쩌면 베트남에 있었을지도. 발전된 문명. 창과 칼로 싸우던 시절은 한물가고. 총을 든 군인에게 있어 체술의 비중은 점점 내려가는 때. 군장을 들기 위해서라도 상체가 더 발달한 게 군인이라지만 사토의 움직임은 아주 가끔. 정말 가끔씩. 그가 피로해질 때면 부자연스러워진다.
군인에게는 용납되지 않을 삐그덕거림. 일직선의 부조화. 위화감, 혹은 불편함이 가득한 걸음걸이. 마치 자신의 다리가 어색한 듯. 삐끗삐끗. 절뚝절뚝. 그 모든 게 오쿠야마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결국 입 밖에 내고야 말았던 불균형.
“그렇지 않아도 타나카한테 한 소리 들었어요.”
“응? 뭐라고?”
“사토 씨에게도 밝히기 싫은 과거가 있을 테니 알아서 조심하라던데요.”
“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사토.
“타나카 군이 은근히 보기와는 다른 게 있단 말이지.”
오쿠야마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다. 사과를 해야 하나. 아니면 타카하시를 흉내 낼까. 사토가 오른발을 전다는 말을 듣자마자 하던 걸 내팽개치고 그에게 달라붙어 쨍알거렸던 타카하시. 최종 웨이브를 준비하며 피곤한 사토를 걱정했지만, 진짜로 걱정하는 건 제일 재밌는 최종 웨이브가 실행을 앞두고 무산될까 봐 라는 건 머리가 달려 있으면 모를 수 없다. 사실상 사토 하나로 굴러가는 무리. 사토가 빠지면 다시 그늘 속으로, 전보다 더 치열하게 숨어야 할 아인들. 타카하시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겼던 사토.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가끔 나오는 부스러기들은 죄다 옛날에 해봤던 게임 이야기뿐.
“아인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다리 한 짝으로만 살았거든. 사고를 당했었지. 자네와 똑같은 오른쪽 다리.”
그런 사토가 과거에 대해 말한다.
“꽤 오래 휠체어 신세를 졌어. 손으로는 게임기를 쥐어야 했으니까.”
타나카도 아니고. 타카하시도 아니고.
“그래서 아주 가끔, 이 모든 게 꿈같다고 생각하네.”
오쿠야마, 자신에게만.
“어느 날 눈을 뜨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그 삶은 정말이지 끔찍했어서…….”
무릎을 짚던 사토는 손깍지를 낀다. 이어지는 이야기. 낮아지는 목소리. 진지해지는 얼굴. 장난기는 조금도 없다. 사토의 고백. 오쿠야마는 몇 번 본 적 있는 모습이다. 카메라 앞에서 아인의 인권에 대해 호소할 때. 카메라 너머에 그들에게 기회를 줄 때. 그들에게 경고할 때. 그들에게 선언할 때. 그리고 아인을 위해서 대량 학살을 실시하겠다고 말할 때.
“그렇군요.”
그 끝에서 나온 오쿠야마의 대답. 돌연 하던 말을 멈추는 사토. 짧은 침묵. 생각이나 기분 따위가 표정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장점이 맞구나. 분위기를 읽어가던 오쿠야마는 조용히 독백한다. 눈앞에 있는 아인의 기분과 생각이 안 읽히는 건 논외. 애초에 없는 걸 어떻게 읽을 수 있겠어. 얼마 가지 않아 사토가 주름이 더 깊게 패이도록 웃는다. 특유의 경쾌한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신난 모습.
“오쿠야마군, 자네의 헌신에는 감사하고 있어.”
다시 서글서글해지는 인상. 한순간에 달라진 분위기. 옆집 이웃처럼 가볍고 친근하다. 사토는 기본적으로 눈이 웃고 있지만 평소에 웃고 있는 얼굴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웃고 있는 사토. 아마 많은 사람이 많은 순간에 익숙해하는 얼굴.
“전 검은 유령도 제대로 못 쓰는걸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플레이어가 뛰어나면 굳이 궁극기 같은 것도 필요 없는 법이니까.”
“…궁극기요?”
“게임으로 치면 총 게임에서 나오는 폭탄 같은 거지. 하지만 그런 걸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있든 없든 상관없잖아?”
“확실히, 그렇네요.”
아인이 된 오쿠야마가 자신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걸 체감하는 순간. 사토가 앞에 있을 때. 이론까지는 못 되고, 이야기 정도는 되는 우스갯소리 하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코입이 달리고 자신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는 것에 쉽게 애착을 갖는다. 여기서 또 태클 하나. 오쿠야마라고 딱히 자신의 IBM을 친구라 여긴 건 아니다. 타카하시 뿐만 아니라 자신의 IBM 역시 인간의 머리라고 하기엔 미묘한 게 목 위로 달려 있으니까. 거기다 특히 말도 어눌하고. 동작도 굼뜨고. 그래서 도구로 여겼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렇게 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눌하지만 일단 말을 했고, 굼뜨지만 의지를 가지고 옆에 서서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방임 끝에 자아와 자주성을 가진 사토의 IBM은 그 누구의 유령보다도 사람 같다.
“자네가 우리에게 와주지 않았더라면 오늘에 오기까지 크게 돌아가야 했을 거야.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네, 오쿠야마군.”
손만 뻗으면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오쿠야마의 어깨에 얹어지는 사토의 손. 정말로 자신이 이 자리에 없었으면 그는 지금쯤 난관에 봉착했을까? 불편한 다리를 다른 장점으로 가려야만 벌어 먹고 살 수 있었던 오쿠야마는 자기 객관화가 뛰어나다. 드물게 인간의 형태에서 벗어나 날개를 갖고 있던 IBM이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사토는 비행기를 탈취해 목표를 이루었다. 자신의 참여로 사토는 좀 더 빠르게 목표에 도달한 게 아니라─ 편하게 온 거지.
이쯤에서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질문.
나는 사토의 몇 번째 단축키에 있을까?
“이크, 바쁜 사람 붙잡고 말이 길었구나.”
그럼, 이만. 헌팅캡 끝자락을 잡고 가볍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하는 사토. 일본어에 능숙하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그의 출신으로 오쿠야마는 영국을 예상한다. 직접 꺼내서 확인받을 생각은 없다. 사토에 관해서 출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사토 씨.”
“응?”
순순히 이곳을 떠나는 사토를 붙잡는 오쿠야마. 나가려다 걸음을 멈춘 사토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에 등을 보이며 대답한다.
“전에 검은 세계에서 오래 몸담으셨다고 그랬잖아요.”
“아… 그랬지, 참.”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 타나카에게 운명을 언급하던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르다. 비장하던 그때와 달리 귀찮아 보이는 사토. 연장자와 대화하는 만큼 그를 따라서 일어났던 오쿠야마는 오른발을 대신하는 목발에 체중을 좀 더 기울인다.
“그럼 그쪽도 당연히 빠삭하시겠네요.”
“…그런데 거긴 옛날부터 재미가 없어서.”
여전히 뒤돌아 서 있는 사토.
“야만적인 곳이야. 의미도 없고.”
그런 그의 등이
“무엇보다 하나같이 다 비효율적이지.”
점점 가깝게 보이는 것만 같다면.
“…여전히 기운 좋으시네요.”
어깨 너머로 눈가가 살짝 보일만큼만 고개를 돌린 사토. 그는 다시 한번 헌팅캡의 끝자락을 매만진다. 신사의 인사. 언제까지 할 거냐는 물음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소름 끼치는 대답.
“그럼 앞으로 남은 일도 잘 부탁해, 오쿠야마군. 잘만 되면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사토는 손을 흔들며 작업실을 빠져나간다. 이번에는 붙잡지 않는 오쿠야마.
타나카의 실수는 사토를 인간적으로 대했다는 것이다. 이제 사토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됐다니. 정말로 이제 와서. 사토를 알 수 없다니. 사실 사토만큼 단순한 사람이 없을 텐데도.
보편적으로 마리오를 플레이할 때 거북이는 클리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밟는다. 어쩌면 하이 스코어 갱신을 위해 밟을 수도. 그리고 사토는 거북이를 밟기 위해 마리오를 플레이한다. 클리어는 부수적인 것. 가까운 사람이 없는 오쿠야마는 사토의 테러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지언정 재미만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건 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오쿠야마는 살기 편한 일본을 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토가 이 지경까지 일을 키운 게 인간으로서 곤란하다. 그러나 개인이 예상할 수 있는 아인의 재앙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에게 맞설 생각은 없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
남몰래 구비한 산성 세정제.
맡은 일을 완벽하게 끝내는 이상 사토는 쫓지 않을 것이다.
대화를 끝내고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사토는 더 이상 발을 절지 않는다. 신체 장애 같은 건 알지 못하는 사람의 걸음걸이. 살인이 익숙한데 똑똑하기까지 한 사람. 오쿠야마는 사토를 만나고 그에 대해 가진 첫 번째 확신을 속으로 되새긴다.
미친놈.
*
아, 뭐야! 아까부터 오쿠야마가 전화를 안 받아. 똥 싸러 갔나?
…이거, 튀었구나!
뭐?!
그 친구는 원래 중간에 빠져나갈 분위기였잖나. 그래도 이 타이밍에 튀어버릴 줄은 몰랐네. 뭐, 여기까지 함께 와줬으면 충분해.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그래도 지난 5주일은 굉장히.
평생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특별한 5주일이었어.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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