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작품 속 연인들처럼,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줄리엣 하면 로미오, 미녀 하면 야수인 것처럼 이동혁 하면 박지성이고, 박지성 하면 이동혁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이동혁과 박지성은 귀엽뽀짝한 꼬까옷을 입고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항상 함께였다. 나란히 붙어있는 집에, 비슷한 시기에 이사온,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가진, 두 가정의 만남은 가히 운명이라고 부를만했다.
둘의 첫만남은 지성이 이사를 오게 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사온 집 바로 옆이 동혁의 집이었다. 동혁 역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아직 어린이집 등원을 하지 않던 중이라 집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다 해버린 탓에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던 동혁은 더이상 못참겠는지 벌떡 일어나 엄마를 찾았다. 놀이터 갈래! 엄마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 일 방해 안한다고 지금까지 참은게 기특해서라도 놀이터는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동혁은 룰루랄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 도착한 동혁은 그네에 앉아 발을 굴렀다. 엄마는 벤치에 앉아서는 동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놀이터에 사람이 없어서 동혁은 또 한참을 혼자 놀았다. 놀이터도 지겨워질 무렵, 웬 애기가 놀이터에 도착했다. 쭈뼛대며 엄마 뒤에 숨어서는 그네를 타는 동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혁은 마침 심심하던 차에 나타난 애기를 보고 눈을 빛냈다.
"안녕!!"
동혁이 그네에서 내려 애기한테 다가가 인사하자 애기가 휙 몸을 숨겼다. 동혁은 굴하지 않고 몸을 애기 쪽으로 기울여 눈을 맞췄다.
"형아가 인사하네? 우리 지성이도 인사할까?"
지성의 엄마가 말하자 그제서야 지성이 얼굴을 빼꼼하더니 손을 엉성하게 들어 인사했다. 동혁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으이잉이이이잉 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지성은 또 깜짝 놀라며 엄마 뒤에 숨어버렸다.
"나랑 그네 탈래?"
동혁이 아까 그네를 바라보던 시선을 기억해내고 지성에게 묻자 지성은 다시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살짝 끄덕였다. 동혁이 손을 내밀자 지성이 그 손을 잡았다. 엄마의 뒤에서 지성을 이끌어낸 동혁이 뿌듯하게 웃었다. 이 동네 와서 사귄 첫 친구였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하니 지성이 동혁의 옷 끝을 살짝 붙잡았다.
"형아.. 내일도 와..?"
동혁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내일도 같이 그네 타자! 라며 지성에게 답했다. 지성은 그제서야 배시시 웃으며 엄마에게 아장아장 걸어갔다.
"지성아, 동혁이 형아랑 잘 놀았어?"
지성의 엄마가 묻자 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웅, 하고 답했다.
"동혁이 형아가 우리 옆집 산대."
엄마의 말에 지성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집까지 또 나란히 걸어간 둘은 집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내일을 기약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동혁은 지성의 인생에 아주 주요한 인물로 자리를 잡았다.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한 이후, 지성이는 3시가 좀 넘으면 동혁이 있는 꽃잎반으로 가야했다. 동혁과 지성의 부모님은 모두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지성 또래의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지성이가 꽃잎반에 가게 된 것이었다.
맨처음 꽃잎반에 들어섰을 때는 저랑 비슷한 새싹반 친구들과는 달리 덩치가 훨씬 큰 형, 누나들을 보고 놀라서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애초에 새싹반 친구들과도 친해지지 않은 상태인데, 더 큰 사람들을 만나려니 지성이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당황한 선생님이 어르고 달래봐도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기침까지 해가며 펑펑 눈물을 쏟고 있는데, 어디 구석에서 놀고있던 동혁이 울음소리를 듣고 지성에게 다가왔다. 동혁은 지성이가 왜 여기서 울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지성이를 안아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왜 울어, 지성아. 울지마. 동혁의 목소리에 지성이 서서히 울음을 그치고 동혁을 바라봤다. 매일같이 봐왔던 익숙한 동혁의 모습에 지성이는 그제서야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지성의 눈에는 낯설고 불편한 장소에 나타난 구세주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지성은 동혁을 더 따르게 되었다. 나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하는 낮시간보다, 인원이 별로 없어 나이 구분없이 다같이 모이게 되는 저녁시간을 더 좋아하니, 선생님들은 그저 둘의 사이가 참 좋구나 싶었다.
"지성이 기여워!"
동혁은 스킨십을 유독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지성의 볼에 쪽쪽 입을 맞추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지성의 볼따구가 말랑말랑하니 뽀뽀할 맛이 난다나. 그런 것치고 지성 이외의 아이들에게 뽀뽀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냥 동혁이 지성과 가장 친하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다.
동혁의 뽀뽀는 좀 커서까지 이어졌는데, 동혁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볼 뿐만 아니라 간혹 입술에도 쪽쪽 입을 맞추게 되었다. 지성이는 입술이나 볼이나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동혁이를 막지는 않았지만, 동혁은 둘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사람들이 없을 때만 간혹 가다가 입을 맞췄다.
"동혀기 형은 왜 사람들 없을 때만 입에다 뽀뽀해?"
여느 때와 같이 동혁의 뽀뽀세레를 받던 지성이 묻자 동혁은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입뽀뽀는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하는 거라 그래!"
동혁의 당당한 말에 지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게 사람들이 없을 때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싶었지만 동혁이 그렇다니 그런 거겠거니 한 것이다.
"형아는 나 조아?"
지성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동혁을 바라보자 동혁은 주변을 슥 살피고는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고 웅, 이라고 답했다. 지성이가 젤 조아. 동혁의 말에 지성은 배시시 웃으면서 나도 형 조아, 하며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이날은 둘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형, 나 고백 받았다?"
지성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둘은 단짝처럼 붙어다녔다. 동혁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나란히 붙어있는 집에 살고 있던 둘은, 오며가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주말에 느긋하게 지성의 방에 모여 각자 휴대폰을 하며 뒹굴거리던 중 던져진 지성의 폭탄발언에 동혁은 휴대폰을 떨굴뻔 하다가 다시 잡았다. 언제..? 동혁이 조심스레 묻자 지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제, 라고 답했다.
"근데 거절했어."
지성의 말에 동혁은 크게 안도하며 시선을 휴대폰으로 옮겼다. 거절했으니 정말 별일이 아닌 거였다.
"고백 받는데 갑자기 형 생각나더라고."
동혁은 금방 또 시선을 옮겨 지성을 바라봤다. 내 생각?
"웅, 형만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거절했어."
지성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그렇게 좋아? 으유 귀여워!"
동혁이 지성에게 달려들어 볼을 꼬집고 쪽쪽 입을 맞추자 지성이 아앙, 나 게임 중이야아—, 하며 작게 앙탈을 부렸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동혁은 더욱 달라붙어 뽀뽀를 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찌송이, 형아보다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말해줘야한다?"
한참을 뽀뽀를 해대던 동혁이 별안간 떨어져서는 말했다. 지성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잠깐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말하는게 당연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형보다 좋은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 지성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지성에게 있어 동혁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대체불가의 인물이었다. 물론 이 감정이 어떤 방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그랬다.
동혁과 지성이 모두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지금까지 함께해온 시간 중에서 가장 적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이유님즉슨 동혁이 고3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동혁은 전교권에서 노는 우등생이었기 때문에 공부 눈치를 주진 않았으나, 온갖 기대를 떠안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능만 끝나면 지성과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떠올리면서 겨우 힘을 얻어 공부를 이어나갔다.
한편, 지성 역시 고3이 얼마나 힘든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동혁에게 방해가 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전처럼 찾아간다거나 연락을 먼저 보낸다거나, 이런 행동 말이다. 동혁이 없는 생활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그것도 며칠쯤 지나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참에 다른 친구들하고 많이 친해지고 좋지 뭐. 지성은 지금까지 친구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동혁이 형하고만 놀아서 친해지기 어렵댔나. 지성은 짧게 생각을 하고는 이내 털어버렸다. 내가 지들이랑 친해지지 못한게 왜 동혁이 형 탓이야? 지성은 살짝 표정을 구겼다가 풀었다.
"야야, 지성아. 너 이거 봤냐?"
창밖을 보며 잡다한 생각을 하던 지성에게 한 친구가 요란스럽게 다가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어딘가 신이 나 보이는 친구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친구 손에 들린 휴대폰을 바라봤다. 화면을 보자마자 두 눈 가득 들어온 살색의 향연에 지성은 화들짝 놀라 친구의 손을 치워버렸다.
"아, 뭐야!"
"지성이 이런거 처음이지? 한번 봐봐라~ 빠져나올 수 없을 거다~"
지성이 질색을 하며 친구를 노려보자 친구는 지성을 어리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거 관심없어. 지성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친구가 뒤에서 킥킥대며 웃었다. 지성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갔다.
지성은 아까 친구가 보여준 영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버린 영상 속 모습 때문에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야한 동영상을 처음 봐서가 아니었다. 그걸 보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동혁의 얼굴 때문이었다.
저런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건데. 지금은 동혁이 형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럼 형이랑 할 수도 있는거 아니야? 근데 동혁이 형은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게 아닌데? 그럼 동혁이 형을 어떤 식으로 좋아하는 거지? 지성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두통이 밀려왔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자니 어느새 수업이 모두 끝나있었다. 지성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반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어쩐지 느릿느릿 무거웠다.
"찌송아아~"
집에 들어서자 웬일로 먼저 들어온 동혁이 지성에게 늘어지듯 안겨왔다. 지성은 자연스럽게 동혁의 허리에 팔을 둘러 안았다가 퍼뜩 놀라 동혁을 밀어냈다. 평소와 다른 지성의 반응에 동혁이 살짝 당황하다가 이내 장난스런 얼굴로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지성은 순간 아까 본 동영상이 떠올라서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동혁을 지나쳐 호다닥 제 방으로 들어왔다. 가방을 대충 던지고는 침대에 폭 쓰러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형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가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지성이 침대에서 버둥버둥 몸부림을 치고 있을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스르륵 열렸다. 끼익, 하는 소리에 지성이 문쪽을 바라보자 동혁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가도 돼?"
평소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동혁의 모습에 지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이 들어오자 지성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동혁이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서 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걱정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에 지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온전히 제 문제였는데 괜히 동혁을 걱정시킨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동혁이 지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리가 안되면 형한테 말해. 같이 고민해줄게."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겨있는 말에 지성이 고민에 빠졌다. 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좋아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어떻게 해. 지성의 표정이 살짝 굳자, 동혁은 이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는 몸을 일으켰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게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괜시리 섭섭함이 몰려왔지만 한창 비밀이 많아질 나이임을 알기에 동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형 이만 가볼게. 동혁이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자, 지성이 다급하게 동혁의 손을 붙잡았다.
"혀, 형! 잠깐만.."
지성은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솔직히 고민한다고 결론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대책도 없이 동혁을 붙잡은 거였다. 동혁은 지성이 다시 입을 열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형, 키..스 해봤어..?"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에 동혁이 살짝 얼이 빠졌다. 지성은 제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왜, 해보고 싶어?"
동혁이 최대한 여유있는 척하며 묻자 지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의 입장에서는 형이랑 키스를 해보면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명확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동혁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말해달랬더니.. 설마 벌써 생긴건가? 그 사람이랑 하기 전에 나랑 연습하려는 건가? 동혁은 아주 짧은 시간에 별 생각을 다 했다. 사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다. 말이 없어진 동혁을 지성이 안절부절 못하며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제가 동혁이 형을 좋아하더라도 형이 저를 좋아하지 않으면 말짱도루묵 아니던가.
"아, 그.. 형, 그게 아무것도—."
지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혁이 지성의 뺨을 부여잡고는 입술을 포갰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이로 살짝 깨물었다가, 혀로 한번 훑고는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지성은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동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동혁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지성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동혁의 혀가 부드럽게 입안을 헤집으며 지성의 혀를 옮아맸다. 척추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는 느낌에 지성이 흐응, 하며 소리를 내고는 허리를 바짝 세웠다. 동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지성의 뒷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감싸서 뒤로 눕혔다. 스르륵 몸이 뒤로 넘어간 지성은 그제서야 눈을 꼭 감았다.
지성의 위에 올라탄 동혁이 더욱 깊게 입을 맞춰오자 지성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였다. 간간히 숨 쉴 틈을 만들어주긴 하는데, 지성이 그 박자에 숨을 쉬질 못했다. 한참을 질척이며 입을 맞추던 동혁이 입술을 떼어내자 지성이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 동혁은 속에서 어떤 욕망이 들끓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여유로운척 했다. 지성은 터질 듯 뛰어오는 심장과 낯설었던 감촉이 여운을 잔뜩 남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동혁은 정신을 못차리는 지성을 보고는 뿌듯하게 웃었다.
겨우 진정을 한 지성은 그제서야 뭔가 억울해졌다. 키스를 잘해도 너무 잘하는 동혁 때문이었다. 나는 형보다 좋은 사람이 없어서 아직도 솔로인데, 형은 나보다 좋은 사람이 있었나봐.. 이런 생각을 하며 지성이 울상을 지었다. 삐죽대는 입술을 본 동혁이 입술에 쪽쪽 입을 맞췄다. 뭔가 불만이 있을 때만 나오는 표정인데, 동혁은 그 표정을 참 좋아했다. 그냥 귀여우니까.
"형.. 애인 몇명 사귀어 봤어..?"
지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많으면 많은대로 섭섭할 것 같고, 적으면 적은대로 안믿길 것 같았다. 그야 그렇잖아.. 키스를 이렇게 잘하는걸.
"응? 한명도 없었는데."
동혁의 말에 지성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거짓말! 웬만해서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 지성이 왁 소리치자 동혁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봤다. 진짠데.. 동혁이 작게 중얼거리자 지성이 동혁을 도끼눈을 하고 바라봤다. 그런데 이렇게 잘한다고? 말도 안돼! 차마 입밖으로는 못꺼내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지성이보다 좋은 사람이 없어서 못 사귀었쥐~"
동혁의 장난스런 말에 지성은 다시 심장이 쿵쿵댐을 느꼈다.
"형, 입뽀뽀는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하는 거잖아.."
지성의 말에 동혁이 입을 다물고 지성을 바라봤다.
"그럼 키스는.. 누구랑 하는 거야?"
지성이 동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
동혁이 답하자 지성이 동혁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동혁은 지성이 다가와도 피하지 않고 지성을 바라만 봤다. 둘의 입술이 다시 포개졌다. 이번엔 지성의 혀가 동혁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서툴게 움직이는 혀를 동혁이 부드럽게 감쌌다.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니 지성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 좋아해.."
지성이 시선을 떨구고 아주 작게 말하자 동혁이 지성의 얼굴을 감싸서 시선을 제게 맞췄다.
"사랑해, 지성아."
쪽, 하고 입을 맞추자 지성이 그제서야 배시시 웃었다.
동혁이 돌아간 후, 지성은 침대에 엎드려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곰돌이 이모티콘 옆에 붙은 빨간 하트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다가, 다시 들어서 휴대폰을 봤다가, 다시 또 고개를 파묻었다. 조용히 버둥대며 설레는 기분을 만끽했다. 동혁과 뽀뽀라던지, 그런 애정행각을 하는게 하루이틀도 아닌데 괜시리 설렜다. 이제 친한 형, 동생이 아니라 연인이었다. 지성은 채팅창에 띄워진 잘자 애기야, 라는 말에 실실 웃으며 잠자리에 드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물론 곧바로 하트를 그리는 이모티콘도 보냈다. 살다살다 저런 이모티콘을 보내는 날이 올 줄이야. 휴대폰을 베개 옆에 두고 지성은 눈을 감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동혁의 수능날이 다가왔다. 이 지긋지긋한 공부를 끝낼 결전의 날이었다. 동혁은 굳이 안해도 되는 지성의 배려를 받느라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했던 지난 날을 떠올렸다. 물론 수능이 끝나면 동혁은 성인이 되기 때문에 지성이 성인이 될때까지 또 1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지성과 무언가 하기에 두달이라는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머릿속에 꼭꼭 저장해둔 지성과 할 일 리스트를 다시 곱씹으며 동혁은 수능장으로 향했다.
한편, 지성은 한창 고민에 빠져있었다. 곧 동혁에게 발현될 네임 때문이었다. 대체적으로 성인즈음이 되면 운명의 상대의 이름이 몸 어딘가에 새겨지는데, 지성은 동혁의 운명의 상대가 제가 아닐까봐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이게 다 며칠 전에 꾼 꿈 때문이었다. 은연중에 잔뜩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꿈속에 네임이 발현된 동혁이 나왔다. 처음보는 이름을 쇄골에 새긴 모습이었다. 옆에는 흐릿하게 누군가 서있었는데, 꿈속의 동혁은 그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게 사과를 하며 그 사람과 멀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굉장히 찝찝하고 불쾌한 꿈에 지성은 일어나자마자 히스테리를 부렸다.
"우리 애기!!"
"아앙 밖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애기를 애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수능을 마치고 나오던 동혁이,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는 지성을 향해 냅다 애칭을 불러대며 뛰어와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 행동을 하는 동혁이 부끄러운건 아니었다만, 그 낯간지러운 애칭이 부끄러웠던 지성은 저보다 작은 동혁의 품에 숨어 작게 웅얼거렸다. 동혁은 그런 지성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부빗부빗했다.
동혁과 지성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동혁의 수능이 끝난걸 기념해서 다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비밀 연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밖에서 손잡고 다니는걸 꽤나 부끄러워했던 지성이 오늘은 먼저 손을 잡아왔다. 동혁은 어렴풋이 무슨 일이 있었구나를 짐작하며, 지성이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
한편, 지성은 속으로 네임 발현에 대해 물을지 고민했다. 사실 동혁이라면 네임이 발현되자마자 말해줬을 것 같지만, 정말 그의 운명이 자기가 아닐까봐 무서웠다. 정말 내 이름이 아니라서 말을 안해준 거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런 지성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동혁은 맞잡은 손을 깍지를 껴서 다시 잡으며 손등에 입을 맞췄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걱정 말라는 듯이.
"형.. 혹시.."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지성은 결심이라도 한듯 동혁을 바라봤다. 굳게 먹은 마음과는 달리 목소리는 떨려왔고,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동혁은 그런 지성을 기다려줬다.
"이제 오니?"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동혁의 어머니가 둘을 반겼다. 지성은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약간의 안도와 약간의 허탈함이 섞여있었다. 이따.. 이따가 물어보자. 지성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는 동혁과 집에 들어섰다.
이번 저녁 식사의 본목적은 동혁의 수능이 끝난걸 기념하는 것이었으나, 이를 상실하고 어른들의 술자리로 변해버렸다. 동혁은 이제 곧 성인이라며 어른들이 건네주는 술을 받아먹다가 그대로 뻗어서 방으로 옮겨졌다. 동혁을 침대에 눕힌 지성은 침대 옆에 앉아서 동혁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꿈이 사실이라면.. 쇄골에 이름이 적혀있지 않을까. 그것만 살짝 확인해볼까. 지성의 손이 머뭇대며 동혁에게 향했다. 옷의 목 부분에 손끝을 살짝 걸고 쇄골께를 확인하려던 순간,
"너 뭐해..?"
동혁에게 손을 붙잡히고야 말았다. 당황스러워 보이는 목소리. 지성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혁의 입장에서는 자는 사람 옷을 들추려던 걸로 보일게 뻔했다. 지성은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들추려던거 맞잖아.
"지성아"
"....."
"애기야"
동혁이 몸을 일으켜 앉고는 지성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 고개를 들게 했다.
"무슨 일이야. 말을 해줘야 형이 알지."
"..꿈을 꿨는데.. 형한테 다른 사람 네임이 발현돼서.."
지성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부끄러움에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동혁은 지성의 말을 끝까지 듣고는 작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쪽, 입술에 뽀뽀를 해줬다.
"거기 아니고, 여기. 여기 봐바."
동혁이 고개를 돌려 오른쪽 귀 뒤를 보여줬다. 박지성. 귀와 머리카락 사이,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 숨어있었지만 또박또박한 글씨로 똑똑히 쓰여있었다. 지성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미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동혁이 대신 닦아주었다. 이제 괜찮지? 동혁의 다정한 물음에, 지성은 이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지성이 동혁에게 입을 맞췄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평소보다 뜨거운 체온과 은근히 풍겨오는 술냄새. 지성은 술 한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왜인지 취하는 것만 같았다. 혀가 질척이며 섞이고, 손은 서로를 탐했다. 밖에서는 부모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고 뜨겁게, 둘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성이 성인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얼마나 불만이 많았던가. 1년 하고도 약 3개월 전, 동혁의 수능이 끝난 날. 둘은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그리고 그게 시발점이 되어 둘은 질리도록 붙어먹었다. 물론 진짜로 질려버린건 아니었다. 동혁이 성인이 되기까지 두달도 채 안남은 기간동안 알차게 데이트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월 1일이 된 직후, 동혁은 지성이에게 일체 손을 안댔다. 이제 성인이니 미성년자를 건들면 안된다나 뭐라나. 지성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동혁은 완고했다.
그렇게 강제로 순결을 지킨지 1년. 실기 전형으로 입학이 확정된 지성은, 수능은 시원하게 말아먹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왜 네임 발현이 안 되지? 동혁이 수능 즈음에 발현됐으니 본인도 그쯤 발현될 거라고 믿었던 네임이 생일이 지났음에도 발현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어쩜 사람이 이렇게나 안변하는지. 네임 때문에 신경을 너무 써서 또 꿈을 꾸었다. 동혁에게 자신의 이름이 발현된걸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이제는 자신에게 발현될 이름이 동혁의 이름이 아닐까봐 걱정하고 있었나보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발현되는 꿈을 꾸는걸 보면. 지성은 새벽에 번쩍 눈이 뜨여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옷을 홀랑 벗어던지고 몸을 살폈다. 누구는 발현될 때 느낌이 난다던데 나는 왜 안나냐구.. 혹시 몰라서 거울로 등이나 엉덩이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에휴.."
길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 학기 시작도 안했으면서 뭐가 그리 바쁜지, 오랜만에 보는 동혁의 얼굴이 심각하게 잘생겨 보였다. 나는 맨날 홈웨어 아니면 교복밖에 못봤는데. 가끔 데이트할 때나 사복 입은거 봤는데. 대학교 사람들은 형 사복 입은거 맨날 보겠네. 괜히 샘이 나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가 또 불만일까? 동혁이 삐죽 튀어나온 입술에 뽀뽀를 해주며 물으면, 지성은 사르르 풀리는 기분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형 학교에서 인기 많지. 예쁜 누나들이랑 친하게 지내는거 아니야?"
이미 마음 다 풀렸으면서 괜히 틱틱대며 쏘아붙였다. 동혁은 그런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이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로, 나 인기 없는데. 지성은 자기가 첫 애인이라는 말 들었을 때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인기 많았음 하는건 아닌데, 이렇게 잘생기고 다정한 사람을 왜 안좋아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써있는 지성이 때문에 동혁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애기, 형한테 줄 거 없어?"
이미 지성이 달래기에 도가 튼 동혁이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오늘은 2월 14일. 연인들의 기념일, 발렌타인데이었다. 동혁의 말에, 지성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가방을 열어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공들여 묶었을 리본을 스르륵 풀고 상자를 열어보니 엉성하게 만들어진 초콜릿이 잔뜩이었다. 하트모양부터 곰모양까지.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보는게, 무슨 반응을 원하는지 빤히 보여서 동혁은 웃음이 났다.
잘 만들었다는 말도 잔뜩 해주고, 맛있다는 말도 잔뜩 해주고, 칭찬의 뽀뽀도 잔뜩 해주고 나서야 지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귀엽다는듯 바라보던 동혁이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지성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저번에 갖고 싶다던거~"
갖고 싶다던게 한두갠가.. 잠시 고민하던 지성은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기대에 찬 얼굴로 상자를 열었다. 작은 상자에 담긴 작은 향수병을 본 지성은 잔뜩 신이 나서 동혁을 끌어안았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떨어져 있어야 했던 1년동안 계속 불안해하던 지성이 동혁의 물건을 하나씩 따라사던 중에도 끝끝내 사지 못했던 그 향수였다.
"뿌려봐."
동혁의 말에, 지성이 어설프게 손목에 칙칙 향수를 뿌리고 목 언저리에 갖다댔다. 응? 그런데 향이.. 동혁에게서 나던 달달한 초코향이 아닌 향긋한 플로럴 향에 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기야"
아예 손목을 코 가까이에 대고 향을 맡고 있던 지성이, 동혁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동혁이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아까 먹은 초콜릿 때문인지 어쩐지 단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몸을 바짝 붙이고는 진하게 입을 맞추는 동혁 덕분에 지성은 슬슬 열이 올랐다. 안그래도 1년간 참아서 힘든데! 입술이 떼어지고, 동혁이 지성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쪼옥쪽 입을 맞추며 자욱을 남겼다. 그리고 이쯤되니 풍겨오는 달달한.. 초코향?
"이 초코도 잘 먹을게?"
눈을 똑바로 맞춰오며 씨익 웃는 얼굴에, 지성은 얼굴이 화악 빨개졌다. 집 데이트라 편하게 후드집업만 덜렁 입고 온 지성을 벗겨내는건 손쉬운 일이었다. 지퍼만 주욱 내리니 그대로 드러난 뽀얀 속살에 동혁은 꾹꾹 입술 도장을 찍었다. 가슴께와 허리를 매만지면 움찔거리는 모습이 1년전과 다를게 없어서 귀여웠다.
오랜만에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라서, 동혁은 키스를 해주며 지성의 바지를 벗겼다. 겸사겸사 속옷까지 벗겨내고는 슬슬 힘내고 있는 성기를 툭툭 건드렸다. 지성은 부끄러운지 손으로 가리며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동혁은 딱 막아서며 다리를 더욱 벌렸다.
"어?"
동혁의 손이 사타구니 안쪽으로 향했다. 허벅지 안쪽, 은밀한 부위를 엄지로 쓸어내리는 행동에, 지성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뭐야, 뭔데. 지송이 영문도 모른채 동혁을 바라보고 있자, 동혁이 기쁘게 웃으며 지성에게 입을 맞췄다.
"여기 내 이름 있어!"
"진짜?"
지성이 허리를 바짝 숙여 제 아래를 바라보니 정말 작은 글씨로 쓰인 이름이 보였다. 이동혁. 왜 그렇게 숨어있는 거야.. 긴장이 주르륵 풀려버린 지성이 그대로 뒤로 누워버리자, 동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임이 발현된 곳은 성감대가 된다던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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