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글

연하 남친 금연 프로젝트

August8ight by Ros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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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 24세. 2살 연하 남친과 교제중. 최근 고민거리, 연하 남친이 담배를..!(뒷골)

동혁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덩치는 산만해도 하는 짓은 소동물 같은 박지성이 담배라니. 심지어 골초라니! 믿을 수가 없는건지 믿고 싶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속이 답답했다.

박지성이랑 형동생하며 알고 지낸지는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중 사귄지는 7년째. 물론 중간에 깨붙깨붙하다가 대충 한 3년 날렸으니 사귄 날짜로만 치면 4년 정도. 깨진 시기에도 지나치게 서로 근황을 다 알고 있었으니 솔직히 박지성에 대해서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아니, 실제로도 그럴터였다. 나만큼 박지성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데려와보등가. 그런데 그게 다 이동혁의 자만이었을 줄이야.

이동혁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랜만에 밖에서 데이트하고 저녁 근사하게 먹은 후, 집에 데려다준 것까진 완벽했는데. 헤어지기 아쉬워 괜히 어물쩍 시간을 끄는 중에 갑자기 떨어진 담배갑을 보고 진짜 거짓말 안치고 너무 놀라서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아니, 뭐, 그래, 아니, 그래, 어, 그럴 수 있지. 받아들이는데 좀 걸리긴 했지만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담배, 어 그래, 담배, 어, 피울 수 있지, 그래. 동혁이 충격을 받은건 눈치백단에 박지성에 대해 모르는게 없는 (자칭)박지성 박사 이동혁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끔찍한 점은, 담배를 떨어트린 박지성이 아이쿠 태연하게 그걸 주워서 제 주머니에 넣었다는거. 잘못 봤겠지 애써 무시하던 사실을 확인사살 당해버렸다. 뇌에 버퍼링 걸려 굳어있던 이동혁이 정신 퍼뜩 차리고 박지성의 손목을 확 붙잡은건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아마 박지성은 이동혁이 버퍼링 걸린줄도 몰랐을듯.

야이눔아너그게뭐야너그게뭔지는알고줍냐그게뭐라고떨어트린걸다시주워서주머니에넣냐딱보니까한두개핀것도아니고반이상은핀것같은데너이씨언제부터피웠어너임마그게몸에얼마나해로운지알기나하냐누구야누구한테배웠어내가당장찾아가서한소리를하든가해야지안되겠어담배당장내놔다뿌셔버릴라니께

라고 말하려다가 겨우 삼켜내고 그냥 지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엄청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원래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시선이 더 많은 메세지를 전하는,

"조심히 가ㅎㅎ"

이런 젠장할. 살풋 웃으면서 귀엽게스리 왼쪽 볼따구에 뽀뽀쪽 해주고 집에 들어가는 박지성을 동혁은 붙잡지 못했다. 박지성이 은근 눈치 있는듯 싶으면서 쥐뿔도 없다는걸 간과한 제 죄였다. 아, 담배 보자마자 물어봤어야 했는데.

박지성은 담배를 한번 걸리니까 이젠 대놓고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근데 거기다 뭐라고 하냐고. 이미 타이밍 놓쳐서 담배 너그러이 이해해주는 대인배 남친 됐는데. 박지생 저눔 진짜 나 속 그렇게 넓지 않은거 알면서 일부러 저러나. 속으로만 꿍얼꿍얼

담배 피는 것도 마음에 안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디서 담배를 배워온건지, 배우기도 더럽게 나쁘게 배워서 한 자리에서만 담배를 2~3개 줄줄이 피워대는게 그렇게 속이 답답할 수가 없다. 아니 저렇게 피워대는데 이제껏 몰랐다고? 말이 돼? 동혁은 지성에게서 담배냄새가 풍길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박지성이 폐암 걸리는 것보다 내가 홧병 걸리는게 더 빠를듯.. 그렇게 흡연자 남친 둔 죄로 근처 벤치에서 혼자 처량하게 짧으면 10분, 길면 30분 넘게 앉아있는게 일상이 됐다. 근데 요 못된 연하 남친은 신나게 흡연장에서 다른 남자들이랑 히히덕거리며 수다나 떨다가 웃음기를 채 떨치지도 않고 제게 온다. 심지어 담배냄새 배니까 조금 떨어져 걷고 손도 안잡아준다. 와 진짜 서러워서 살겠나..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 병나는데 그냥 속 좁은 남친 한번 되고 말까.... 라고 고민한게 무색하게도 며칠 지나니까 박지성이 먼저 물어왔다. 형은 나 담배 피는거 괜찮아? 괜찮겠냐? 하지만 이번에도 쿨병을 못버려서 괜찮다고 했다. 하여튼 이동혁 자기 무덤 파는거 잘해. 이미 너무 깊게 파놔서 그냥 관짝 넣어놓고 프리다이빙 해도 되겠어. 근데 박지성은 거기다 대고 다행이다! 이러고 있으니 이동혁은 답답한 가슴 퍽퍽 치고 멍청한 자기 머리 빡빡 칠 수밖에 없었다.

담배는 쥐뿔도 모르던 이동혁이 지성이 담배랑 다른 남자 담배 냄새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박지성은 또 한번 이동혁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흡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또 처량하게 앉아있었는데 박지성이 맡기고 간 휴대폰이 울리길래 흡연장 쪽으로 가던 이동혁이 본 건,

"너, 너.. 지금 뭐해...?"

"어, 형..!"

왜 박지성이 다른 남자 손에 들린 담배를 피고 있어..? 박지성도 자기 손에 담배를 들고 있으니 저건 박지성 담배가 아니다. 그럼? 설마 저 남자가 피던 담배를 입에 문 거야? 설마? 진짜? 그럴싸한 결론에 도달하니 이동혁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했다. 그리고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먹먹해지고 호흡은 가빠진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게 이런거야? 기분 좆같네. 입가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와 진짜 박지성이 담배 핀다는 것보다 큰 충격은 없을줄 알았는데. 이동혁은 자기가 생각보다 박지성을 잘 모른다는걸 이제야 인정했다. 그리고 아무말도 없이 지성에게 휴대폰을 건네주고 휙 돌아서 자리를 피했다. 여기서 얘기하면 버럭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지성은 조용히 담배를 지져끄고는 동혁의 뒤를 따랐다.

"..형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거 아니야.."

한참을 말없이 걷고 또 걷다가, 지성이 머뭇거리며 먼저 말을 꺼낸 후에야 동혁은 걸음을 멈췄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른다면서 어떻게 그게 아니란걸 확신해? 심기가 단단히 뒤틀려서 못된 말이 나가려 하기에 동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된다. 숨을 고르게 쉬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박지성과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나 화를 내게 될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제어가 안됐다.

"진짜, 오늘 처음 해본거야.. 아니 동기가 메론향 나는 담배라길래.. 살짝 맛만 본 거야.."

우물쭈물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지성이는 물론 귀여웠지만 여전히 동혁의 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이 피던 담배를..!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야? 내가 비흡연자라서 그런거야? 나도 담배 피면 그런게 다 이해가 되는 그런 거야? 자꾸만 들끓는 머리를 애써 식히며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이건 지성이 잘못이 아니라 담배 잘못이다. 지성이가 그 못된 담배를 배워서 이 사달이 난 거야. 담배를 못피게 해야겠어.

"앞으로 담배 피지마."

"어, 어? 알았어, 끊을게..!"

이렇게 순순히 끊겠다고 하는걸.. 그동안 마음고생한게 뭔짓거리였나 싶었다. 아니, 오늘같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순순한걸지도.. 자꾸만 담배만 관련되면 지성을 의심하게 되는 자신이 이다지도 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동혁의 연하 남친 금연 프로젝트.

이름이 거창하긴 했지만 사실 이동혁이 하는건 별거 없었다. 박지성의 죄책감과 미안함..이 절반정도 금연을 성공시키고 있었으니까. 그에 나름 엄청난 성과로 이제 지성은 적어도 동혁과 데이트 중에는 담배를 꺼내지도 않았다. 마치 담배를 들키기 전처럼 말이다. 그저 이따금씩 풍겨오는 미세한 담배향이 아직 완전히 끊지 못했다는걸 알게 했을뿐. 지성은 본인 나름대로의 배려를 해준 것이었지만 동혁은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없는데서 또 담배 피고 왔네? 진짜 이럴거면 차라리 나도 담배를 배우는게 낫지 않나? 걍 맞담하는게 내 심신안정에 더 도움 될 것 같은데? 자꾸만 심사가 뒤틀리는 이동혁 때문에, 둘의 관계는 묘하게 냉기가 돌았다. 그래서 박지성이 더 눈치를 보기도 했고. 하, 진짜 담배 하나 때문에 이게 뭔짓거리야. 이번에도 잘못은 담배가 한 거였다.

"지성아, 너 진짜 담배 끊을 거야?"

"어? 어! 당연하지! 나 지금도 노력 중이야.."

노력중이라는건 사실이지만 아마 제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인지 시선이 흔들린다. 거의 다 끊었다는 하얀 거짓말도 안하는 착한 우리 지성이. 동혁은 지성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동혁의 말에 지성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동혁의 미소에 무슨 의미가 담긴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후로도 동혁은 별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그냥 여태 하던 것처럼 박지성을 졸졸 따라다닐 뿐이었다. 지성은 자기가 동혁이 있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많이 붙어다니면 그만큼 담배를 안피우게 된다, 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동혁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약간의 충격요법이랄까? 이 방법이라면 지성이 단번에 담배를 끊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아는 '박지성'이라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성이 담배를 피우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언제 담배를 피우려나 유심히 지성을 지켜보다보니 의도치 않게 전에는 없었던 버릇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엄지와 중지를 비비적거리는 손버릇. 동혁은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나오는 버릇이라는걸.

동혁은 그 요상한 버릇이 언제 가장 많이 나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데이트가 끝나갈 무렵. 아침 댓바람부터 만나서 하루종일 같이 있다가 저녁 늦게 헤어질 때. 물론 밥을 먹은 직후나 잠깐 틈이 날때도 엄지와 중지를 비비적거리긴 했지만, 유독 눈에 띄는건 빠이빠이 하기 직전이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하기야 그도 그럴게 하루종일 데이트 한다고 담배 하나 못피웠으니 얼마나 피고 싶겠어. 근데 또 박지성은 한다면 하는 애라 그러고 집에 들어가서도 담배를 안피울게 뻔했다. 그렇게 담배 말리는걸 참고 참다 그 버릇 이동혁한테 걸린거고.

못난 남친이 금연하랬다고 이렇게나 노오력 중인 우리 예쁜 지성이. 그럼 못나긴 했지만 일단 듬직한 남친인 내가 도와주는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동혁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빠이빠이 인사를 했다. 손깍지를 끼고 손을 쪼물거리다가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도 많이 해줬다. 쓸데없이 시간을 질질 끌다가 지성이를 놓아주고 뒤를 돌았다. 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또 지성이랑 인사를 했다. 동혁이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까지 지성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발걸음을 멈춘 동혁은 벽에 기대어 섰다. 오늘따라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달빛은 밝았으며, 별도 잘 보였다. 제가 서있는 이곳에서 지성이의 자취방까지는 가로등이 2개. 바람만 살짝 불어도 담배냄새쯤은 가벼이 날아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잠시 하늘 구경을 좀 하다가 다시 모퉁이를 돌아 지성이네 집으로 달렸다. 좀 더 정확히는 집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박지성에게. 아니나다를까 자취방 앞의 가로등 불빛이 아슬하게 닿지 않는 곳. 그곳에 미약한 담뱃불이 빛나고 있었다.

"형..!?"

우다다 달려오는 동혁을 보고 지성은 순간 당황해 담배를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그걸 지져 끌 새도 없이 동혁의 입술이 맞물려졌다. 순식간에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가 얽혀들었다. 이에 미처 뱉어내지 못한 연기가 동혁에게 넘어갔고, 동혁은 입술을 때어내고 켁켁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게져서는 눈물까지 달고 연신 기침을 해대는 동혁을 지성은 얼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모퉁이에서 갑자기 동혁의 모습이 튀어나왔을땐 왜 되돌아오지? 싶다가 냅다 뛰어와서 저를 훅 잡아당길땐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 바보.. 요즘 동혁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건 알았는데 그게 이런 것일 줄이야.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없어서 말도 안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지금 퍽 기분이 좋다는거. 아직도 잔기침을 해대며 이딴거 왜 피우냐고 꿍얼거리는 동혁이 귀여워 죽겠다는거.

"앞으로 담배 피우면 내가 또 뽀뽀할거야. 그렇게 알어."

눈가 촉촉해져서는 으름장을 놓는게 웃겨서 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이 달가워하지 않는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싫어하는줄은 몰랐던 지성은 주머니 속 담배갑을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놀리기엔 퍽 재밌는 물건이긴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건 보고싶지 않으니까. 지성은 자신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동혁을 살짝 안아주면서 작게 웃었다. 이제 진짜 담배 끊어야겠다.

이동혁의 연하 남친 금연 프로젝트 성공.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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